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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랑과 망해사處容郞望海寺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5 · 한자 561자 · 낭독 2.2분

「삼국유사」 기이 제2 「처용랑과 망해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헌강왕 때 서울이 번성하다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自京師至扵海内比屋連墻,無一草屋.笙歌不絶道路,風雨調扵四時.

마흔아홉째 헌강대왕(憲康大王) 때에는 서울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집이 즐비하고 담장이 맞닿아 초가 한 채 없었다. 길에는 풍악과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2동해 용의 아들 처용을 얻다

扵是大王逰開雲浦〔在䳽城西南,今蔚州.〕王将還駕.畫歇扵汀过,忽雲霧冥曀迷失道路.恠問左右,日官奏云,“此東海龍所變也,冝行勝事以解之.”扵是勑有司為龍刱佛寺近境.施令已出雲開霧散.因名開雲浦.東海龍喜乃率七子現扵駕前,讃徳獻舞奏樂.其一子隨駕入京輔佐王政,名曰處容.

이에 대왕이 개운포(開雲浦)에 놀러 갔다가〔학성 서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이다.〕 돌아오려 하였다.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었다.

괴이하게 여겨 좌우에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이는 동해 용이 부린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짓게 하였다. 명령을 내리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이로 인해 그곳을 개운포라 이름하였다.

동해 용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임금의 수레 앞에 나타나 덕을 기리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중 한 아들이 수레를 따라 서울에 들어와 왕의 정사를 도왔으니,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하였다.

협주 1

在䳽城西南, 今蔚州.

학성(䳽城) 서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蔚州)이다.

3처용이 노래하고 물러나자 역신이 굴복하다

王以羙女妻之欲留其意,又賜級干職.其妻甚羙,疫神欽慕之變無人,夜至其家竊與之宿.處容自外至其家見寢有二人,乃唱歌作舞而退.歌曰.東京明期月良,夜入伊逰行如可,入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二肹隠吾下扵叱古,二肹隠誰支下焉古.本矣吾下是如馬扵隠,奪叱良乙何如為理古.時神現形跪扵前曰,“吾羡公之妻今犯之矣.公不見怒,感而美之.誓今已後見畫公之形容,不入其門矣.”因此國人門帖處容之形,以僻邪進慶.

왕이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어 그의 마음을 붙들려 하였고, 또 급간(級干) 벼슬을 내렸다.

그 아내가 몹시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으로 변해, 밤에 그 집에 와 몰래 함께 잤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났다. 노래는 이러하다.

처용가(處容歌) · 향찰(鄕札)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逰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肹隠吾下扵叱古
二肹隠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扵隠
奪叱良乙何如為理古

향찰(鄕札)로 적혀 있어 해독에 학설이 갈립니다. 본 앱은 특정 해독을 채택하지 않고 원문만 싣습니다. 행 나눔은 저본의 표점을 따른 것이며, 학계의 행 구분과 다를 수 있습니다.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逰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肹隠吾下扵叱古 二肹隠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扵隠 奪叱良乙何如為理古

그때 역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앞에 꿇어앉아 말하였다. "제가 공의 아내를 흠모하여 지금 범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이 노여워하지 않으시니 감복하여 아름답게 여깁니다. 맹세컨대 이후로는 공의 얼굴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였다.

4망해사를 세우다

王旣還,乃卜霊鷲山東麓勝地,置寺曰望海寺.亦名新房寺,乃為龍而置也.

왕이 돌아온 뒤 영취산(靈鷲山) 동쪽 기슭의 좋은 자리를 잡아 절을 세우고 망해사(望海寺)라 하였다. 신방사(新房寺)라고도 하니, 곧 용을 위하여 세운 것이다.

5산신이 춤으로 경고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다

又幸鮑石亭,南山神現舞扵御前,左右不見王獨見之.有人現舞扵前,王自作舞以像示之.神之名或曰祥審,故至今國人傳此舞曰御舞祥審,或曰御舞山神.或云旣神出舞,審象其皃命工摹刻以示後代,故云象審.或云霜髯舞,此乃以其形稱之.又幸扵金剛嶺時,北岳神呈舞,名玉刀鈐,又同禮殿宴時,地神出舞,名地伯級干.語法集云,“于時山神獻舞唱歌云,智理多都波都波”等者,盖言以智理國者知而多逃,都邑将破云謂也.乃地神·山神知國将亡故作舞以警之,國人不悟謂爲現瑞,耽樂滋甚故國終亡.

또 포석정(鮑石亭)에 행차하였을 때 남산신(南山神)이 임금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좌우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왕만 홀로 보았다. 어떤 이가 앞에 나타나 춤을 추므로 왕이 스스로 춤을 추어 그 모습을 보였다.

신의 이름을 혹 상심(祥審)이라 하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이 이 춤을 어무상심(御舞祥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전한다. 혹은 이렇게도 말한다. 신이 나와 춤을 추자 그 모습을 살펴 장인에게 명해 새기게 하여 후대에 보였으므로 상심(象審)이라 한다고. 혹은 상염무(霜髯舞)라고도 하니, 이는 그 생김새로 일컬은 것이다.

또 금강령(金剛嶺)에 행차하였을 때는 북악신(北岳神)이 춤을 바쳤는데 이름을 옥도검(玉刀鈐)이라 하였고, 동례전(同禮殿)에서 잔치할 때는 지신(地神)이 나와 춤을 추었는데 이름을 지백급간(地伯級干)이라 하였다.

『어법집(語法集)』에 이르기를 "그때 산신이 춤을 바치며 노래하기를 '지리다도파도파(智理多都波都波)'라 하였다" 하는데, 이는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던 이들이 미리 알고 많이 달아나 도읍이 장차 깨지리라는 말이다.

곧 지신과 산신이 나라가 망할 것을 알았으므로 춤을 추어 경계한 것인데, 나라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상서가 나타났다 하여 향락에 더욱 빠졌으므로 나라가 끝내 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