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기이 제2

무왕武王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4 · 한자 513자 · 낭독 2.1분

「삼국유사」 기이 제2 「무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못의 용과 통하여 서동이 태어나다

武王〔古夲作武康,非也.百濟無武康.〕第三十武王名璋.母寡居築室扵京師南池邊,池龍文通而生小名薯童.噐量難測.常掘薯蕷賣為活業.國人因以爲名.

무왕(武王)〔옛 책에는 무강이라 되어 있으나 잘못이다. 백제에 무강왕은 없다.〕

서른째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어머니가 홀로 살면서 서울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의 용과 통하여 그를 낳았다. 어릴 적 이름은 서동(薯童)이었다.

그릇과 도량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를 캐어 팔아 살림을 삼았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협주 1

古夲作武康, 非也. 百濟無武康.

옛 책에는 무강(武康)이라 되어 있으나 잘못이다. 백제에 무강왕은 없다.

2노래를 지어 선화공주를 얻다

聞新羅真平王第三公主善花〔一作善化〕羙艶無雙,剃髮來京師.以薯蕷餉閭里羣童,羣童親附之.乃作謡誘羣童而唱之云.善化公主主隠,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卵乙抱遣去如.童謡滿京逹扵宫禁,百官極諌竄流公主扵逺方.将行,王后以純金一斗贈行.公主將至竄所,薯童出拜途中將欲侍衛而行.公主雖不識其從來,偶爾信恱.因此隨行潛通焉.然後知薯童名,乃信童謡之驗.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공주 선화(善花)〔선화(善化)로 된 곳도 있다.〕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서울로 왔다.

마를 마을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그를 따랐다. 이에 노래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 부르게 하였다.

서동요(薯童謠) · 향찰(鄕札)

善化公主主隠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夜矣卵乙抱遣去如

향찰(鄕札)로 적혀 있어 해독에 학설이 갈립니다. 본 앱은 특정 해독을 채택하지 않고 원문만 싣습니다. 행 나눔은 저본의 표점을 따른 것이며, 학계의 행 구분과 다를 수 있습니다.

善化公主主隠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卵乙抱遣去如

동요가 서울에 가득 퍼져 대궐까지 이르자, 백관이 극력으로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 떠나려 할 때 왕후가 순금 한 말을 주어 보냈다.

공주가 귀양지에 이르려 할 때 서동이 도중에 나와 절하고 모시고 가겠다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우연히 믿고 기뻐하였다. 이로 인해 따라가며 몰래 정을 통하였다. 그런 뒤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가 들어맞았음을 믿게 되었다.

협주 1

一作善化

선화(善化)로 된 곳도 있다.

3황금을 신력으로 실어 보내고 왕위에 오르다

同至百濟,出母后所贈金将謀計活,薯童大笑曰.“此何物也.”主曰“此是黄金可致百年之富.”薯童曰“吾自小掘薯之地委積如泥土.”主聞大驚曰.“此是天下至寳.君今知金之所在則此寳輸送父母宫殿何如.”薯童曰“可.”於是聚金積如丘陵,詣龍華山師子寺知命法師所問輸金之計,師曰“吾以神力可輸,將金來矣.”主作書并金置扵師子前.師以神力一夜輸置新羅宫中.真平王異其神變,尊敬尤甚,常馳書問安否.薯童由此得人心即王位.

함께 백제에 이르러 어머니 왕후가 준 금을 꺼내 살아갈 길을 꾀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무슨 물건이오."

공주가 말하였다. "이는 황금이니 백 년의 부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서동이 말하였다. "내가 어릴 적부터 마를 캐던 곳에 이것이 흙처럼 쌓여 있소."

공주가 듣고 크게 놀라 말하였다. "이는 천하의 지극한 보배입니다. 그대가 지금 금이 있는 곳을 아신다면, 이 보배를 부모님 궁전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동이 "좋소" 하였다. 이에 금을 모으니 언덕처럼 쌓였다.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를 찾아가 금을 옮길 방도를 물으니, 법사가 말하였다. "내가 신통한 힘으로 옮길 수 있으니 금을 가져오시오."

공주가 편지를 써서 금과 함께 사자사 앞에 두었다. 법사가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옮겨 놓았다.

진평왕이 그 신통한 변화를 기이하게 여겨 더욱 존경하였고, 늘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써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올랐다.

4하룻밤에 못을 메우고 절을 세우다

一日王與夫人欲幸師子寺至龍華山下大池邊,彌勒三尊出現池中,留駕致敬.夫人謂王曰,“湏創大伽藍扵此地.固所願也.”王許之.詣知命所問填池事,以神力一夜頹山填池為平地.乃法像彌勒三㑹殿·塔·廊廡各三所創之,額曰彌勒寺.〔囯史云王興寺.〕真平王遣百工助之,至今存其寺.〔三囯史云是法王之子,而此傳之獨女之子,未詳.〕

하루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렀는데,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예를 올렸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였다. "모름지기 이 땅에 큰 절을 세우십시오. 진실로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를 찾아가 못 메울 일을 물으니,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

이에 미륵삼회(彌勒三會)를 본떠 전각과 탑과 회랑을 각각 세 곳씩 세우고, 현판을 미륵사(彌勒寺)라 하였다.〔『국사』에는 왕흥사라 하였다.〕 진평왕이 여러 장인을 보내 도왔으며, 지금도 그 절이 남아 있다.〔『삼국사』에는 법왕의 아들이라 하였는데, 이 전에는 홀로 사는 여인의 아들이라 하니 자세하지 않다.〕

협주 2

囯史云王興寺.

『국사(國史)』에는 왕흥사(王興寺)라 하였다.

三囯史云是法王之子, 而此傳之獨女之子, 未詳.

『삼국사(三國史)』에는 법왕(法王)의 아들이라 하였는데, 이 전(傳)에는 홀로 사는 여인의 아들이라 하니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