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기駕洛國記
1구지봉에서 알 여섯이 내려오다
駕洛國記〔文庙朝大康年間, 金官知州事文人所撰也, 今略而載之.〕
가락국기〔문묘조(文廟朝) 대강(大康) 연간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로 있던 문인이 지은 것이다. 이제 줄여서 싣는다.〕
1. 나라도 임금도 없던 때, 아홉 干이 다스리다
開闢之後,此地未有邦國之號,亦無君臣之稱.越有我刀干·汝刀干·彼刀干·五刀干·留水干·留天干·神天干·五天干·神鬼干等九干者,是酋長領緫百姓凢一百户七万五千人.多以自都山野鑿井而飲耕田而食.
천지가 열린 뒤로 이 땅에는 나라 이름이 없었고 임금과 신하라는 일컬음도 없었다.
다만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오도간(五刀干)·유수간(留水干)·유천간(留天干)·신천간(神天干)·오천간(五天干)·신귀간(神鬼干) 등 아홉 간(干)이 있어, 이들이 추장으로서 백성을 거느렸으니 무릇 일백 호에 칠만 오천 명이었다.
대개 저마다 산과 들에 모여 살며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다.
2. 구지봉에서 하늘의 소리가 나다
屬後漢世祖光㱏帝建㱏十八年壬寅三月禊洛之日,所居北龜㫖〔是峯巒之稱,若十明伏之状,故云也.〕有殊常聲氣呼喚.衆庻二三百人集㑹於此,有如人音隠其形而發其音曰.“此有人否.”九干等云“吾徒在.”又曰“吾所在為何.”對云“龜旨也.”又曰“皇天所以命我者御是處惟新家邦為君后,為兹故降矣,你等湏掘峯頂撮土歌之云‘龜何龜何,首其現也.若不現也,燔灼而喫也.’以之蹈舞.則是迎大王歡喜踴躍之也.”
후한 세조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8년 임인년 3월, 계욕(禊浴)하던 날이었다.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봉(龜旨峯)에서〔봉우리의 이름이다. 열 마리가 엎드린 듯한 모습이므로 그렇게 이른 것이다.〕 이상한 소리가 나며 부르는 기척이 있었다. 무리 이삼백 명이 그곳에 모였는데,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모습은 감춘 채 소리만 내어 말하였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아홉 간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
대답하였다. "구지입니다."
또 말하였다.
"하늘이 내게 명하시기를 이곳에 임하여 나라를 새로 열고 임금이 되라 하셨으므로 이 때문에 내려온 것이다. 너희는 모름지기 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며 이렇게 노래하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이렇게 하며 뛰고 춤추면, 이것이 곧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뛰노는 것이 되리라."
3. 자줏빛 줄에 매달린 금합에서 황금알 여섯이 나오다
九干等如其言咸忻而歌舞.未㡬仰而観之,唯紫䋲自天垂而着地.尋䋲之下乃見紅幅褁金合子開而視之,有黄金卵六圎如日者.衆人悉皆驚喜俱伸百拜,尋還褁著抱持而歸我刀家寘榻上,其衆各散.
아홉 간이 그 말대로 모두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러러보니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 땅에 닿아 있었다. 줄 끝을 찾아가 보니 붉은 보자기에 싼 금합이 있었다. 열어 보니 황금알 여섯이 있었는데 둥글기가 해와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기뻐하여 다 함께 백 번 절하였다. 이내 다시 싸서 안고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와 평상 위에 두고 저마다 흩어졌다.
4. 먼저 나타난 이를 수로라 하고 여섯 가야가 서다
過浹辰翌日平明,衆庻復相聚集開合而六卵化為童子,容皃甚偉.仍坐於床衆庻拜賀盡恭敬止.日日而大踰十餘晨昏,身長九尺則殷之天乙,顔如龍焉則漢之髙祖.眉之八彩則有唐之髙,眼之重瞳則有虞之舜.其於月望日即位也.始現故諱首露.或云首陵.〔首陵是崩後謚也.〕國稱大駕洛又稱伽耶國,即六伽耶之一也.餘五人各歸為五伽耶主,東以黄山江,西南以濸海,西北以地理山,東北以伽耶山,南而為國尾.
열이틀이 지난 이튿날 새벽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합을 여니, 여섯 알이 아이로 변해 있었는데 모습이 매우 헌걸찼다. 평상에 앉히고 사람들이 절하며 하례하고 공경을 다하였다.
날마다 자라 열흘 남짓 지나자 키가 아홉 자였으니 은(殷)나라 탕왕과 같았고, 얼굴이 용과 같았으니 한나라 고조와 같았다. 눈썹의 여덟 빛깔은 요임금과 같았고, 겹눈동자는 순임금과 같았다.
그달 보름날에 왕위에 올랐다. 먼저 나타났으므로 이름을 수로(首露)라 하였다. 수릉(首陵)이라고도 한다.〔수릉은 세상을 떠난 뒤의 시호이다.〕
나라를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伽耶國)이라 일컬었으니 곧 여섯 가야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돌아가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동쪽은 황산강(黃山江), 서남쪽은 바다,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으로 하고, 남쪽을 나라의 끝으로 삼았다.
5.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짓다
俾創假宫而入御,但要質儉茅茨不剪,土階三尺.二年癸卯春正月王若曰,“朕欲定置京都.”仍駕幸假宫之南新畓坪〔是古來閑田,新耕作故云也.畓乃俗文也.〕四望山嶽,顧左右曰.“此地狹小如蓼葉然而秀異,可為十六羅漢住地.何况自一成三,自三成七,七聖住地固合于是.托土開疆終然允臧歟.”築置一千五百歩周迴羅城,官禁殿宇及諸有司屋宇虎庫倉廩之地.事訖還宫,徧徴國内丁壯·人夫·工匠,以其月二十日資始金陽,墍三月十日役畢.其宫闕屋舎俟農隙而作之,經始于厥年十月逮甲辰二月而成.㳙吉辰御新宮,理万機而懃庻務.
임시 궁궐을 짓게 하고 들어가 계셨는데, 다만 질박하고 검소함을 힘써 이엉을 자르지 않았고 흙 계단은 석 자였다.
2년 계묘년 봄 정월에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서울을 정하려 한다."
이에 임시 궁궐 남쪽 신답평(新畓坪)으로 행차하여〔예로부터 묵은 땅인데 새로 갈아 지었으므로 그렇게 이른 것이다. '畓'은 곧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쓰는 글자이다.〕 사방의 산악을 둘러보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땅이 좁기가 여뀌 잎 같으나 빼어나니, 열여섯 나한이 머물 만한 땅이다. 하물며 하나에서 셋이 되고 셋에서 일곱이 되니, 일곱 성인이 머물 곳으로 진실로 여기가 마땅하다. 땅을 열어 경계를 삼으면 끝내 좋지 않겠는가."
둘레 일천오백 보의 성을 쌓고, 관청과 전각과 여러 관아의 건물, 무기고와 곳간 자리를 정하였다.
일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 나라 안의 장정과 인부와 장인을 두루 불러, 그달 스무날에 터를 닦기 시작하여 3월 열흘에 역사를 마쳤다.
궁궐과 집은 농사철이 한가해지기를 기다려 지었으니, 그해 10월에 시작하여 갑진년 2월에 이루었다. 좋은 날을 가려 새 궁에 드시어 온갖 정사를 다스리고 여러 일에 부지런하셨다.
2탈해가 술법을 겨루다 물러나다
忽有琓夏國含逹王之夫人妊娠,旀月生卵,卵化爲人名曰脫解.從海而來.身長三尺頭圎一尺.恱焉詣闕語於王云,“我欲奪王之位故來耳.”王荅曰“天命我俾即于位將令安中國而綏下民,不敢違天之命以與之位,又不敢以吾國吾民付囑於汝.”解云“若爾可爭其術.”王曰“可也.”俄頃之間解化為鷹,王化為鷲又解化為雀王化為鸇.于此際也寸隂未移.解还夲身王亦復然.解乃伏膺曰,“僕也適於角術之場鷹之鷲,雀之於鸇獲免焉,此盖聖人惡殺之仁而然乎.僕之與王爭位良難.”便拜辝而出,到麟郊外渡頭將中朝來泊之水道而行.王竊恐滯留謀亂,急發舟師五百艘而追之,解奔入雞林地界,舟師盡還.事記所載多異與新羅.
홀연히 완하국(琓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이 아이를 배어 달이 차서 알을 낳았는데, 알이 변하여 사람이 되니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 바다를 따라 왔는데 키가 석 자요 머리 둘레가 한 자였다.
기꺼이 대궐에 나아가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왔을 뿐이오."
왕이 대답하였다. "하늘이 내게 명하여 왕위에 올라 나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어루만지게 하셨으니,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 그대에게 자리를 주지 못하겠고, 또 감히 내 나라와 내 백성을 그대에게 맡기지 못하겠소."
탈해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술법으로 겨루어 봅시다."
왕이 말하였다. "좋소."
삽시간에 탈해가 매로 변하니 왕은 독수리로 변하였고, 또 탈해가 참새로 변하니 왕은 새매로 변하였다. 이 사이에 잠깐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탈해가 본래 몸으로 돌아오니 왕도 그렇게 하였다.
탈해가 이에 엎드려 말하였다. "제가 술법을 겨루는 자리에서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잡히기를 면한 것은, 아마도 성인이 죽이기를 싫어하는 어짊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왕과 자리를 다투기는 참으로 어렵겠습니다."
곧 절하고 물러나, 인교(麟郊) 밖 나루에 이르러 중국에서 온 배가 대는 물길을 따라 갔다.
왕은 그가 머물러 있으면서 난을 꾀할까 염려하여 급히 수군 오백 척을 내어 뒤쫓게 하였다. 탈해가 계림 땅으로 달아나므로 수군은 모두 돌아왔다.
다만 이 기록에 실린 것은 신라 쪽 기록과 다른 데가 많다.
3바다 건너온 허황옥을 왕후로 맞다
屬建㱏二十四年戊申七月二十七日,九干等朝謁之次献言曰,“大王降靈已來好仇未得,請臣等所有處女絶好者選入宫闈俾爲伉儷.”王曰“朕降于兹天命也,配朕而作后亦天之命,卿等無慮.”遂命留天干押軽舟持駿馬到望山島立待,申命神鬼干就乗岾.忽自海之西南隅掛緋㠶張茜旗而指乎北.留天等先舉火於島上,則競渡下陸爭奔而來.…王后於山外别浦津頭維舟.登陸憇於髙嶠,解所著綾袴為贄遺于山霊也.…於是王與后共在御國寢,從容語王曰.“妾是阿踰陁國公主也,姓許名黄玉,年二八矣.…”王荅曰“朕生而頗聖,先知公主自逺而届,下臣有納妃之請不敢從焉.今也淑質自臻眇躬多幸.”
건무 이십사년 무신년 7월 스무이레에, 아홉 간이 조회하는 자리에서 아뢰었다. "대왕께서 내려오신 이래 좋은 짝을 얻지 못하셨으니, 저희에게 있는 처녀 가운데 가장 빼어난 이를 골라 궁에 들여 배필로 삼으시기를 청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이다. 나에게 짝지어 왕후가 되는 일도 하늘의 명이니, 그대들은 염려하지 말라."
마침내 유천간에게 명하여 가벼운 배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望山島)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다시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乘岾)으로 나아가게 하였다.〔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고, 승점은 대궐 아래의 땅이다.〕
홀연히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세운 배가 북쪽을 향해 왔다. 유천간 등이 먼저 섬 위에서 횃불을 드니, 다투어 건너 뭍에 내려 달려왔다.
왕후는 산 밖 별포(別浦) 나루에 배를 대고 뭍에 올라 높은 언덕에서 쉬었다.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벗어 폐백으로 삼아 산신에게 바쳤다.
왕과 왕후가 함께 침전에 있을 때, 왕후가 조용히 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요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올해 오월에 아버님 왕과 어머님 황후께서 저를 돌아보며 말씀하시기를, 어젯밤 꿈에 함께 하늘의 상제를 뵈었는데 '가락국의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내 큰 자리에 오르게 한 이이니 신령하고 거룩한 사람이다. 이제 나라를 새로 세웠으나 아직 짝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어 짝지어 주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오르셨다 하셨습니다. 잠에서 깬 뒤에도 상제의 말씀이 아직 귀에 남아 있으니, 너는 여기서 어버이를 하직하고 그리로 가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다에 떠서 멀리 찾아왔습니다."
왕이 대답하였다. "나는 나면서부터 자못 신령하여 공주가 멀리서 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소.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들이라 청하여도 감히 따르지 않았소. 이제 어진 이가 스스로 이르렀으니 이 몸에게 큰 다행이오."
협주 2
建武
건무(建武)
望山島京南島嶼也, 乗岾輦下國也.
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고, 승점은 대궐 아래의 땅이다.
4아홉 干의 이름을 고치고 나라를 다스리다
一日上語臣下曰.“九干等俱為庻僚之長,其位與名皆是宵人野夫之號,頓非簪履職位之稱.儻化外傳聞必有嗤笑之耻.”遂改我刀為我躬,汝刀為汝諧,彼刀為彼藏,五方為五常,留水·留天之名不動上字攺下字留㓛·留徳,攺為神道,五天攺為五能,神鬼之音不易攺訓爲臣貴.取雞林職儀置角干·阿叱干·級干之秩,其下官僚以周判漢儀而分定之,斯所以革古鼎,新設官分職之道歟.於是乎理國齊家愛民如子,其教不肅而威,其政不嚴而理.况與王后而居也此如天之有地,日之有月,陽之有隂.頻年有夢得熊羆之兆,誕生太子居登公.
하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아홉 간이 모두 여러 관리의 우두머리인데, 그 지위와 이름이 다 낮은 사람이나 시골 사람의 일컬음이요 벼슬자리의 이름이 전혀 아니다. 만일 바깥에 알려지면 반드시 비웃음을 사는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마침내 아도를 아궁(我躬)으로, 여도를 여해(汝諧)로, 피도를 피장(彼藏)으로, 오도를 오상(五常)으로 고쳤다. 유수와 유천은 윗글자를 두고 아랫글자만 고쳐 유공(留功)·유덕(留德)이라 하였고, 신천을 신도(神道)로, 오천을 오능(五能)으로 고쳤으며, 신귀는 소리를 바꾸지 않고 새김만 고쳐 신귀(臣貴)라 하였다.
계림의 관제를 가져다 각간(角干)·아질간(阿叱干)·급간(級干)의 등급을 두고, 그 아래 관리는 주(周)나라와 한(漢)나라의 제도를 나누어 정하였다. 이것이 옛것을 고쳐 새롭게 하고 관직을 설치하여 직분을 나눈 길이었다.
이에 나라를 다스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니, 그 가르침은 엄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었고 그 정사는 모질지 않아도 다스려졌다.
하물며 왕후와 함께 계심은 하늘에 땅이 있고 해에 달이 있으며 양에 음이 있는 것과 같았다.
여러 해 만에 곰을 얻는 꿈의 조짐이 있어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협주 1
五方
저본은 「五方」이나 「五道」의 잘못으로 보아 「오도」로 옮겼다.
5왕후가 먼저 가고 왕이 뒤따르다
霊帝中平六年己巳三月一日后崩,壽一百五十七.國人如嘆坤崩,葬於龜㫖東北䲧.遂欲忘子愛下民之惠,因號初來下纜渡頭村曰主浦村,解緩袴髙岡曰綾峴,茜旗行入海涯曰旗出邊.…元君乃每歌鰥枕悲嘆良多,隔二五歳以献帝立安四年己卯三月二十三日而殂落,壽一百五十八歳矣.國中之人若亡天只悲慟甚於后崩之日.遂於闕之艮方平地造立殯宫,髙一丈周三百歩,而葬之號首陵王廟也.
영제(靈帝) 중평 육년 기사년 3월 초하루에 왕후가 세상을 떠나니 나이 백쉰일곱이었다. 나라 사람들이 땅이 무너진 듯 탄식하고 구지봉 동북쪽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왕후가 처음 와서 닻을 내린 나루 마을을 주포촌(主浦村)이라 하고, 비단 바지를 벗은 높은 언덕을 능현(綾峴)이라 하며, 붉은 깃발이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 이름하였다.
임금은 늘 홀로 된 베개를 노래하며 슬퍼함이 많았다. 열 해가 지난 헌제(獻帝) 건안 사년 기묘년 3월 스무사흘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 백쉰여덟이었다.
나라 사람들이 하늘을 잃은 듯하여 슬퍼함이 왕후가 떠난 날보다 더하였다.
마침내 대궐 동북쪽 평지에 빈궁(殯宮)을 세웠으니 높이가 한 길이요 둘레가 삼백 보였다. 거기에 장사 지내고 수릉왕묘(首陵王廟)라 이름하였다.
협주 4
立安
저본은 「立安」이나 「建安」의 잘못으로 보아 「건안」으로 옮겼다.
遂欲忘
저본은 「遂欲忘」이나 잘못으로 보아 「잊지 않으려고」로 옮겼다.
建安
건안(建安)
中平
중평(中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