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몸이 공양을 받다眞身受供
1탑이 흔들린 해에 난이 일어나다
真身受供長夀元年壬辰孝昭即位,始創望徳寺將以奉福唐室.後景徳王十四年望徳寺塔戰動,是年有安史之亂,羅人云,“爲唐室立兹寺,冝其應也.”
참몸이 공양을 받다.
장수 원년 임진년에 효소왕이 즉위하여 비로소 망덕사를 세우고 장차 당나라 왕실의 복을 빌고자 하였다.
뒤에 경덕왕 14년에 망덕사의 탑이 흔들렸다. 이해에 안녹산과 사사명의 난이 있었다.
신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당나라 왕실을 위해 이 절을 세웠으니 마땅히 응한 것이다."
2참몸 석가에게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소서
八年丁酉設落成㑹王親駕辦供.有一比丘儀彩踈陋.局束立於庭請曰,“貧道亦望齋.”王許赴床杪.將罷王戯調之曰,“住鍚何所”,僧曰琵琶嵓.王曰“此去莫向人言赴國王親供之齋.”僧笑荅曰,“陛下亦莫與人言供飬真身釋迦.”言訖湧身淩空向南而行.王驚愧馳上東罔向方遥禮,使徃尋之.到南山參星谷或云大磧川源石上置錫鉢而隐.使来復命,遂創釋迦寺於琵琶嵓下,創佛無事於滅影處分置錫鉢焉.二寺至今存,錫鉢亾矣.
8년 정유년에 낙성회를 베풀고 왕이 몸소 거둥하여 공양을 차렸다.
한 비구가 있어 몸가짐과 차림이 거칠고 초라하였다. 몸을 움츠려 뜰에 서서 청하였다.
"소승도 재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왕이 허락하여 상 끄트머리에 나아가게 하였다.
마치려 할 때 왕이 놀리며 말하였다. "어디에 머무시오?"
승려가 "비파암입니다"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이제 가거든 임금이 몸소 차린 재에 참여했다고 남에게 말하지 마시오."
승려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도 남에게 참몸 석가에게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소서."
말을 마치고 몸을 솟구쳐 허공에 올라 남쪽을 향해 갔다.
왕이 놀라고 부끄러워 동쪽 언덕에 달려 올라 그쪽을 향해 멀리 절하고, 사람을 보내 찾게 하였다.
남산 삼성곡, 대적천 근원이라고도 하는 곳의 돌 위에 지팡이와 바리를 놓고 숨었다.
심부름꾼이 돌아와 아뢰니, 마침내 비파암 아래에 석가사를 세우고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 불무사를 세워 지팡이와 바리를 나누어 두었다.
두 절은 지금도 있으나 지팡이와 바리는 없어졌다.
3이 밥은 옷이 얻은 것이오
智論第四云.“昔有罽賔三藏行阿蘭若法至一王寺,寺設大㑹.守門人見其衣服麁幤遮門不前.如是數數.以衣幤故每不得前,便作防便假借好衣而来,門人見之聴前不禁.既獲詣㘴得種種好食先以與衣.衆人問言,‘何以爾乎.’荅曰,‘我比數来每不淂入,今以衣故淂此座得種種食冝以與衣爾.’事可同按.”讃曰.燃香擇佛看新繪,辦供齋僧喚舊知.従此琵琶嵓上月,時時雲掩到潭遅.
『대지도론』 제4권에 이렇게 이른다.
"옛날 계빈의 삼장이 아란야의 법을 행하다가 한 왕실의 절에 이르렀는데 절에서 큰 모임을 베풀고 있었다.
문 지키는 이가 그 옷이 거칠고 해진 것을 보고 문을 막아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기를 여러 번 하였다.
옷이 해진 까닭에 늘 나아가지 못하자, 곧 방편을 지어 좋은 옷을 빌려 입고 왔다. 문지기가 보고 나아가게 하며 막지 않았다.
자리에 나아가 온갖 좋은 음식을 얻자 먼저 그것을 옷에 주었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어찌하여 그러시오.'
대답하였다. '내가 요사이 여러 번 왔으나 늘 들어오지 못하였소. 이제 옷 덕분에 이 자리를 얻고 온갖 음식을 얻었으니 마땅히 옷에 주어야 할 뿐이오.'"
일이 이와 같이 견주어 볼 만하다.
기려서 이른다.
향을 사르고 부처를 가려 새 그림을 보고 공양을 차려 승려를 재하며 옛 아는 이를 부르네. 이로부터 비파암 위의 달은 때때로 구름에 가려 못에 이르기 더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