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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사의 도솔가月明師兜率歌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4 · 한자 553자 · 낭독 2.2분

「삼국유사」 감통 제7 「월명사의 도솔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해가 둘 나타나다 — 도솔가

月明師兠卛歌景徳王十九年庚子四月朔二日並現挾旬不㓕.日官奏請,“縁僧作散花功徳則可欀.”於是潔壇於朝元殿駕幸青陽樓望縁僧.時有月明師行于阡陌時之南路,王使召之命開壇作啓.明奏云.“臣僧但属於國仙之徒,只解郷歌不閑聲梵.”王曰,“既卜縁僧雖用郷歌可也.”明乃作兠率歌賦之.其詞曰.今日此矣散花唱良,巴寳白乎隠花良汝隐,直等隠心音矣命叱使以惡只,弥勒座主陪立羅良.解曰.龍樓此日散花歌,挑送青雲一片花.殷重直心之所使,逺邀兠卛大僊家.今俗謂此爲散花歌誤矣.冝云兠卛歌.别有散花歌,文多不載.

월명사의 도솔가.

경덕왕 19년 경자년 4월 초하루에 해 둘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일관이 아뢰어 청하였다. "인연 있는 승려를 청하여 산화공덕을 지으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에 조원전에 단을 깨끗이 차리고, 임금이 청양루에 거둥하여 인연 있는 승려를 기다렸다.

그때 월명사(月明師)가 밭두둑 사이 남쪽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이 불러오게 하여 단을 열고 기도문을 짓게 하였다.

월명이 아뢰었다.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하여 오직 우리 노래만 알 뿐 범패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이미 인연 있는 승려로 점쳐졌으니 비록 우리 노래를 쓰더라도 좋다."

월명이 이에 도솔가를 지어 읊었다. 그 노랫말은 이러하다.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寳白乎隠花良汝隐 直等隠心音矣命叱使以惡只 弥勒座主陪立羅良

풀이하여 이른다.

용루에서 이날 산화가를 부르며 푸른 구름에 한 조각 꽃을 돋우어 보내네. 은근하고 무거운 곧은 마음이 시키는 바이니 멀리 도솔의 큰 신선을 맞이하네.

지금 세속에서 이것을 산화가라 이르는 것은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라 해야 한다. 산화가는 따로 있는데 글이 많아 싣지 않는다.

2동자가 차와 구슬을 받들고 나오다

既而日恠即滅.王嘉之賜品茶一襲水精念珠百八箇.忽有一童子儀形鮮㓗,跪奉茶珠従殿西小門而出.明謂是内宫之使,王謂師之従者,及玄徴而俱非.王甚異之使人追之,童入內院塔中而隠,茶珠在南壁畫慈氏像前.知明之至徳與至誠能昭假于至聖也.如此朝野莫不聞知.王益敬之更贐絹一百疋以表鴻誠明.

이윽고 해의 괴변이 곧 사라졌다.

왕이 가상히 여겨 좋은 차 한 벌과 수정 염주 백여덟 개를 내렸다.

홀연 한 동자가 있어 몸가짐이 깨끗하고 고운데, 꿇어앉아 차와 구슬을 받들고 전각 서쪽 작은 문으로 나갔다.

월명은 이가 궁 안의 심부름꾼이라 여겼고, 왕은 법사의 시자라 여겼는데, 살펴보니 둘 다 아니었다.

왕이 몹시 기이히 여겨 사람을 시켜 뒤쫓게 하니, 동자가 내원의 탑 안으로 들어가 숨었고, 차와 구슬은 남쪽 벽에 그린 미륵상 앞에 있었다.

월명의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지극한 성인에게 밝게 닿을 수 있음을 알겠다.

이와 같으니 조정과 민간에 듣고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왕이 더욱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하였다.

3누이를 보내며 — 제망매가

又嘗爲亡妹營齋,作郷歌祭之.忽有驚颷吹紙錢飛舉向西而没.歌曰.生死路隠,此矣有阿米次肹伊遣,吾隐去内如辝叱都,毛如云遣去内尼叱古.於內秋察早隠風未,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一等隠枝良出古,去奴隠處毛冬乎丁.阿也,彌陁刹良逢乎吾,道修良待是古如.

또 일찍이 죽은 누이를 위해 재를 올리며 우리 노래를 지어 제사하였다.

홀연 놀랄 만한 회오리바람이 일어 종이돈을 불어 올려 서쪽으로 날려 사라지게 하였다.

노래는 이러하다.

生死路隠 此矣有阿米次肹伊遣 吾隐去内如辝叱都 毛如云遣去内尼叱古 於內秋察早隠風未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一等隠枝良出古 去奴隠處毛冬乎丁 阿也 彌陁刹良逢乎吾 道修良待是古如

4달이 수레를 멈추다

明常居四天王寺,善吹笛.嘗月夜吹過門前大路,月馭爲之停輪.因名其路日月明里.師亦以是著名.師即能俊大師之門人也.羅人尚郷歌者尚矣.盖詩頌之類欤.故徃徃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讃曰.風送飛錢資逝妹,笛摇明月住姮娥.莫言兠卛連天逺.萬徳花迎一曲歌.

월명은 늘 사천왕사에 살았고 피리를 잘 불었다.

일찍이 달밤에 피리를 불며 문 앞 큰길을 지나니 달의 수레가 이 때문에 바퀴를 멈추었다.

이로 인해 그 길을 월명리라 이름하였다. 법사 또한 이로써 이름이 났다.

법사는 곧 능준대사의 문인이다.

신라 사람이 우리 노래를 숭상한 것이 오래되었다. 대개 『시경』의 송(頌) 같은 것인가.

그러므로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둘이 아니다.

기려서 이른다.

바람은 날리는 종이돈을 보내 떠난 누이를 돕고 피리는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를 머물게 하였네. 도솔이 하늘에 이어져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 가지 덕의 꽃이 한 곡조 노래를 맞이하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