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왕이 불법을 일으키고 이차돈이 몸을 버리다原宗興法 厭髑滅身
1절을 세우려 하나 신하들이 따르지 않다
原宗興法〔距訥祗世一百餘年.〕猒髑滅身.新羅夲記,“法興大王即位十四年,小臣異次頓爲法滅身.”即蕭梁普通八年丁未,西笁逹摩來金陵之歳也.…元和中南澗寺沙門一念撰髑香墳禮佛結社文,載此事甚詳.其略曰.昔在法興大王垂拱紫極之殿俯察扶桑之域以謂,“昔漢明感夢佛法東流.寡人自登位願爲蒼生欲造修福滅罪之處.”於是朝臣〔郷傳云工目·謁恭等〕未測深意,唯遵理國之大義,不從建寺之神略.大王嘆曰,“於戱,寡人以不徳丕承大業,上虧隂陽之造化,下無黎庻之歡,萬機之暇留心釋風,誰與爲伴.”粤有内養者姓朴,字猒髑〔或作異次,或云伊處,方音之別也.譯云猒也.髑·頓·道·覩·獨等皆隨書者之便,乃助辝也.今譯上不譯下,故云猒髑,又厭覩等也.〕.
법흥왕이 불법을 일으키고〔눌지왕 대에서 백여 해 떨어졌다.〕 염촉이 몸을 버리다.
「신라본기」에 "법흥대왕 즉위 14년에 소신 이차돈이 법을 위해 몸을 버렸다" 하였다. 곧 소량(蕭梁) 보통 팔년 정미년이요, 서역의 달마가 금릉에 온 해이다.
원화(元和) 연간에 남간사(南澗寺)의 사문 일념(一念)이 「촉향분예불결사문(髑香墳禮佛結社文)」을 지어 이 일을 매우 자세히 실었다. 그 대략은 이러하다.
옛날 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殿)에서 팔짱을 끼고 정사를 보다가 동쪽 땅을 굽어보며 말하였다. "옛날 한나라 명제가 꿈에 감응하여 불법이 동쪽으로 흘러왔다. 과인은 즉위한 뒤로 창생을 위하여 복을 닦고 죄를 없앨 곳을 짓고자 한다."
이에 조정 신하들이〔향전에는 공목·알공 등이라 한다.〕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나라 다스리는 큰 뜻만 따라 절을 세우려는 신묘한 계책을 좇지 않았다.
대왕이 탄식하였다. "아, 과인이 덕이 없이 큰 업을 이어받아 위로는 음양의 조화를 이지러뜨리고 아래로는 백성의 즐거움이 없다. 온갖 정사의 틈에 마음을 부처의 가르침에 두었으나 누구와 더불어 짝하랴."
이때 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이가 있었으니 성은 박(朴)이요 자는 염촉(厭髑)이었다.〔이차 또는 이처라고도 하니 사투리의 다름이다. 뜻으로 옮기면 '싫어함'이다. 촉·돈·도·도·독 등은 모두 적는 이의 편의를 따른 것으로 곧 어조사다. 이제 앞 글자는 뜻으로 옮기고 뒷 글자는 옮기지 않았으므로 염촉이라 하고 또 염도 등이라 한다.〕
협주 4
普通
보통(普通)
距訥祗世一百餘年.
눌지왕 대에서 백여 해 떨어졌다.
郷傳云工目·謁恭等
향전에는 공목(工目)·알공(謁恭) 등이라 한다.
或作異次, 或云伊處, 方音之別也. 譯云猒也. 髑·頓·道·覩·獨等皆隨書者之便, 乃助辝也. 今譯上不譯下, 故云猒髑, 又厭覩等也.
이차(異次) 또는 이처(伊處)라고도 하니 사투리의 다름이다. 뜻으로 옮기면 '싫어함(厭)'이다. 촉(髑)·돈(頓)·도(道)·도(覩)·독(獨) 등은 모두 적는 이의 편의를 따른 것으로 곧 어조사다. 이제 앞 글자는 뜻으로 옮기고 뒷 글자는 옮기지 않았으므로 염촉이라 하고 또 염도 등이라 한다.
2목을 베니 흰 젖이 솟다
時年二十二當充舎人.瞻仰龍顔知情擊目奏云,“臣聞古人問策蒭蕘,願以危罪啓諮.”王曰“非爾所爲.”舎人曰“爲國亡身臣之大節,爲君盡命民之直義,以謬傳辭刑臣斬首,則萬民咸伏不敢違敎.”…舎人曰“一切難捨不過身命.然小臣夕死大敎朝行,佛日再中聖主長安.”…王喚舎人而詰之,舎人失色無辭以對.大王忿怒勑令斬之,有司縳到衙下.舎人作誓,獄吏斬之,白乳湧出一丈〔郷傳云,舎人誓曰,“大聖法王欲㒷佛敎,不顧身命多却結縁,天垂瑞祥遍示人庻.”於是其頭飛出落於金剛山頂云云.〕.天四黯黲斜景爲之晦明,地六震動雨花爲之飄落.…遂乃葬北山之西嶺〔即金剛山也.傳云頭飛落處因葬其地,今不言何也.〕.内人哀之卜勝地造蘭若,名曰刺楸寺.
그때 나이 스물둘로 사인(舍人)에 충당되었다. 임금의 얼굴을 우러러보고 뜻을 알아 눈짓하며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옛사람은 꼴 베는 이에게도 계책을 물었다 하니, 위태로운 죄를 무릅쓰고 여쭙기를 원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네가 할 바가 아니다."
사인이 말하였다. "나라를 위해 몸을 버리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요, 임금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말을 그릇 전하였다 하여 신을 형벌하여 목을 베시면, 만백성이 다 엎드려 감히 명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살을 베어 몸을 저울질하여 새 한 마리를 대속하려 하였고, 피를 뿌려 목숨을 끊어 스스로 일곱 짐승을 가엾이 여긴 이도 있었다. 짐의 뜻은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어찌 죄 없는 이를 죽이랴. 네가 비록 공덕을 짓는다 하나 죄를 피함만 못하다."
사인이 말하였다. "온갖 것 가운데 버리기 어려운 것이 목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이 저녁에 죽어 큰 가르침이 아침에 행해진다면, 부처의 해가 다시 중천에 오르고 거룩하신 임금께서 길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이에 대왕이 짐짓 위엄을 갖추어 칼날을 동서에 세우고 창을 남북에 늘어놓은 뒤 신하들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은 내가 절을 지으려 하는데 짐짓 어렵게 하는가."
신하들이 두려워 떨며 황급히 맹세하고 손으로 동서를 가리켰다.
왕이 사인을 불러 꾸짖으니 사인이 낯빛을 잃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왕이 성내어 목을 베라 명하니 유사가 묶어 관아 아래에 이르렀다.
사인이 맹세하자 옥리가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았다.〔향전에 이르기를, 사인이 맹세하되 "거룩한 법왕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신명을 돌보지 않고 널리 인연을 맺으니, 하늘은 상서를 내려 백성에게 두루 보이소서" 하였다. 이에 그 머리가 날아가 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다 한다.〕
하늘 사방이 어두워져 저무는 빛이 그로 인해 밝음을 감추었고, 땅이 여섯 번 진동하며 비 오듯 꽃이 흩날려 떨어졌다.
임금은 슬퍼하여 곤룡포에 눈물을 적셨고, 재상은 근심하여 관에 땀을 흘렸다. 단 샘이 홀연 마르고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었으며, 곧은 나무가 먼저 꺾이고 원숭이들이 무리 지어 울었다.
널을 바라보고 소리를 들으니 부모를 잃은 듯하였다.
마침내 북산 서쪽 고개에 장사 지냈다.〔곧 금강산이다. 전하기를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장사 지냈다 하는데, 지금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궁중 사람들이 슬퍼하여 좋은 자리를 가려 절을 지으니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 하였다.
협주 2
郷傳云, 舎人誓曰, “大聖法王欲㒷佛敎, 不顧身命多却結縁, 天垂瑞祥遍示人庻.” 於是其頭飛出落於金剛山頂云云.
향전에 이르기를, 사인이 맹세하되 "거룩한 법왕께서 불교를 일으키려 하시므로 신명을 돌보지 않고 널리 인연을 맺으니, 하늘은 상서를 내려 백성에게 두루 보이소서" 하였다. 이에 그 머리가 날아가 금강산 꼭대기에 떨어졌다 한다.
即金剛山也. 傳云頭飛落處因葬其地, 今不言何也.
곧 금강산이다. 전하기를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장사 지냈다 하는데, 지금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3흥륜사가 이루어지다
真興大王即位五年甲子,造大興輪寺.〔按囯史與郷傳,实法㒷王十四年丁未始開,二十一年乙夘大伐天鏡林始㒷工,梁棟之材皆於其林中取足,而階礎石龕皆有之.至真興王五年甲子,寺成故云甲子.僧傳云七年,誤.〕…嗚呼,無是君無是臣,無是臣無是切,可謂劉葛魚水,雲龍感㑹之羙歟.法興王旣舉廢立寺,寺成謝冕旒披方袍,施宫戚爲寺隷.〔寺隷至今称王孫.…〕主住其寺躬任弘化.真興乃繼徳重聖…因賜額大王興輪寺.
진흥대왕 즉위 5년 갑자년에 대흥륜사(大興輪寺)를 지었다.〔『국사』와 향전을 살피건대, 실은 법흥왕 14년 정미년에 처음 열고 21년 을묘년에 천경림을 크게 베어 공사를 일으켰다. 들보와 기둥 재목을 모두 그 숲에서 넉넉히 얻었고 섬돌과 주춧돌과 석감도 다 있었다. 진흥왕 5년 갑자년에 절이 이루어졌으므로 갑자라 한 것이다. 『승전』에 7년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절과 절이 별처럼 벌여 서고 탑과 탑이 기러기 줄지어 날듯 늘어섰다. 법당을 세우고 범종을 다니, 승려들은 세상의 복밭이 되고 크고 작은 가르침은 서울의 자비로운 구름이 되었다.
아, 이 임금이 없었으면 이 신하가 없고, 이 신하가 없었으면 이 공덕이 없었을 것이다. 유비와 제갈량의 물고기와 물 같고 구름과 용이 서로 만난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법흥왕이 이미 폐한 것을 일으켜 절을 세우고, 절이 이루어지자 면류관을 벗고 승복을 입었으며 궁중의 친척을 시주하여 절의 종으로 삼았다.〔절의 종을 지금도 왕손이라 일컫는다.〕
그 절에 머물며 몸소 널리 교화하는 일을 맡았다.
진흥왕이 덕을 이어 거룩함을 거듭하고 임금 자리에 올라 온 관리를 거느리니 호령이 다 갖추어졌다. 이로 인해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는 현판을 내렸다.
협주 2
無是切
저본은 「無是切」이나 잘못으로 보아 「이 공덕이 없었을 것이다」로 옮겼다.
按囯史與郷傳, 实法㒷王十四年丁未始開, 二十一年乙夘大伐天鏡林始㒷工, 梁棟之材皆於其林中取足, 而階礎石龕皆有之. 至真興王五年甲子, 寺成故云甲子. 僧傳云七年, 誤.
『국사』와 향전을 살피건대, 실은 법흥왕 14년 정미년에 처음 열고 21년 을묘년에 천경림(天鏡林)을 크게 베어 공사를 일으켰다. 들보와 기둥 재목을 모두 그 숲에서 넉넉히 얻었고 섬돌과 주춧돌과 석감도 다 있었다. 진흥왕 5년 갑자년에 절이 이루어졌으므로 갑자라 한 것이다. 『승전』에 7년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4두 임금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다
前王姓金氏,岀家法雲,字法空.〔僧傳与諸說亦以王妃岀家名法雲,又真㒷王爲法雲,又以爲真㒷之妃名法雲,頗多疑混.〕…國史云“建福三十一年永興寺塑像自壞,未幾真興王妃比丘尼卒.”按真興乃法興之姪子,妃思刀夫人朴氏牟梁里英失角干之女.亦出家爲尼而非永興寺之創主也.則恐真字當作法.謂法興之妃巴刁夫人爲尼者之卒也,乃創寺立像之主故也.二興捨位岀家史不書非經世之訓也.
법흥왕은 성이 김씨요 출가하여 법운(法雲)이라 하고 자는 법공(法空)이다.〔『승전』과 여러 설에는 왕비가 출가하여 법운이라 하고, 또 진흥왕을 법운이라 하며, 또 진흥의 비 이름을 법운이라 하니 자못 의심스럽고 뒤섞였다.〕
처음 역사를 일으킨 을묘년에 왕비도 영흥사(永興寺)를 세우고, 왕과 함께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이름을 묘법(妙法)이라 하며 영흥사에 머물다 여러 해 만에 마쳤다.
『국사』에 "건복 삼십일년에 영흥사의 소상이 저절로 무너지더니 얼마 안 되어 진흥왕비 비구니가 죽었다" 하였다.
살피건대 진흥은 곧 법흥의 조카이고 그 비는 사도부인 박씨로 모량리 영실각간의 딸이다. 그 또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으나 영흥사를 세운 이는 아니다. 그러므로 '진(眞)' 자는 마땅히 '법(法)' 자가 되어야 할 듯하다. 법흥왕의 비 파조부인이 비구니가 되어 죽은 일을 이르는 것이니, 곧 절을 세우고 상을 세운 주인이기 때문이다.
두 임금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일을 사서에 쓰지 않은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교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협주 1
僧傳与諸說亦以王妃岀家名法雲, 又真㒷王爲法雲, 又以爲真㒷之妃名法雲, 頗多疑混.
『승전』과 여러 설에는 왕비가 출가하여 법운이라 하고, 또 진흥왕을 법운이라 하며, 또 진흥의 비 이름을 법운이라 하니 자못 의심스럽고 뒤섞였다.
5대통사를 세우다
又於大通元年丁未,爲梁帝創寺於熊川州名大通寺.〔熊川即公州也,時屬新羅故也.然恐非丁未也.乃中大通元年己酉歳所創也.始創㒷輪之丁未,未暇及於他郡立寺也.〕
또 대통 원년 정미년에 양나라 임금을 위하여 웅천주(熊川州)에 절을 세우고 대통사(大通寺)라 이름하였다.〔웅천은 곧 공주이니 그때 신라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미년이 아닌 듯하다. 곧 중대통 원년 기유년에 세운 것이다. 흥륜사를 처음 세우던 정미년에는 다른 고을에 절을 세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협주 2
大通
대통(大通)
熊川即公州也, 時屬新羅故也. 然恐非丁未也. 乃中大通元年己酉歳所創也. 始創㒷輪之丁未, 未暇及於他郡立寺也.
웅천은 곧 공주이니 그때 신라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미년이 아닌 듯하다. 곧 중대통 원년 기유년에 세운 것이다. 흥륜사를 처음 세우던 정미년에는 다른 고을에 절을 세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6기려서 이르다 — 두 수
讃曰.聖智從來萬世謀,區區輿議謾秋毫,法輪解逐金輪轉,舜日方將佛日髙.右原宗.徇義輕生已足驚,天花白乳更多情,俄然一釰身亡後,院院鍾聲動帝亰.右猒髑.
기려서 이른다.
거룩한 지혜는 예로부터 만세를 헤아리거늘 구구한 뭇 의논은 부질없는 가을 터럭이라 법의 수레는 임금의 수레를 따라 구를 줄 아니 순임금의 해가 바야흐로 부처의 해와 함께 높으리
— 법흥왕을 기림
의를 좇아 목숨을 가벼이 여긴 것만도 놀라운데 하늘 꽃과 흰 젖이 더욱 정겨워라 문득 한 칼에 몸이 스러진 뒤로 절마다 종소리가 서울을 울리네
— 이차돈을 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