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흥법 제3

법왕이 살생을 금하다法王禁殺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3 · 한자 201자 · 낭독 0.8분

「삼국유사」 흥법 제3 「법왕이 살생을 금하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살생을 금하는 명을 내리다

百濟第二十九主法王諱宣,或云孝順.開皇十年己未即位.是年冬下詔禁殺生.放民家所養鷹鸇之類焚,漁獵之具一切禁止.

백제 스물아홉째 임금 법왕(法王)은 이름이 선(宣)이며 효순(孝順)이라고도 한다. 개황 십년 기미년에 즉위하였다.

그해 겨울에 명을 내려 살생을 금하였다. 민가에서 기르던 매와 새매 따위를 놓아 주게 하고, 고기잡이와 사냥에 쓰는 도구를 불살라 일체 금하였다.

협주 1

開皇

개황(開皇)

2왕흥사를 시작하고 무왕이 이루다

明年庚申度僧三十人,創王興寺於時都泗泚城〔今扶餘〕始立栽而升遐.武王継統,父基子構歴數紀而畢成,其寺亦名弥勒寺.附山臨水花木秀䴡四時之羙具焉.王每命舟㳂河入寺,賞其形勝壯䴡.〔与古記所載小異.武王是貧母與池龍通交而所生,小名薯蕷,即位後謚号武王.初与王妃草創也.〕

이듬해 경신년에 서른 사람을 승려로 삼고, 그때의 도읍 사비성(泗沘城)에〔지금의 부여이다.〕 왕흥사(王興寺)를 세웠다. 터를 닦기 시작하고 세상을 떠났다.

무왕(武王)이 뒤를 이으니, 아버지가 터를 닦고 아들이 지어 여러 해를 지나 마쳤다. 그 절을 미륵사(彌勒寺)라고도 한다.

산에 기대고 물에 임하여 꽃과 나무가 빼어나게 고와 사철의 아름다움을 다 갖추었다. 왕이 그때마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절에 들어가 그 경치의 웅장하고 고움을 즐겼다.

〔『고기』에 실린 것과 조금 다르다. 무왕은 가난한 어머니가 못의 용과 통하여 낳은 이로 어릴 적 이름이 서여(薯蕷)이며, 즉위한 뒤의 시호가 무왕이다. 처음에 왕비와 함께 세우기 시작하였다.〕

협주 2

今扶餘

지금의 부여이다.

与古記所載小異. 武王是貧母與池龍通交而所生, 小名薯蕷, 即位後謚号武王. 初与王妃草創也.

『고기(古記)』에 실린 것과 조금 다르다. 무왕은 가난한 어머니가 못의 용과 통하여 낳은 이로 어릴 적 이름이 서여(薯蕷)이며, 즉위한 뒤의 시호가 무왕이다. 처음에 왕비와 함께 세우기 시작하였다.

3기려서 이르다

讃曰.詔寬狨千丘惠,澤洽豚魚四海仁.莫噵聖君輕下世,上方兜率正芳春.

기려서 이른다.

명이 너그러워 짐승들에게 언덕만 한 은혜가 미치고 은택이 두루 미쳐 물고기에까지 온 바다의 어짊이 닿았네 거룩한 임금이 가벼이 세상을 떠났다 말하지 말라 저 위 도솔천은 바야흐로 꽃다운 봄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