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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 신문왕 대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5 · 한자 601자 · 낭독 2.4분

「삼국유사」 효선 제9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 신문왕 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품팔던 밭을 시주하다

大城孝二世父母神文代牟梁里〔一作浮雲村.〕之貧女慶祖有児.頭大頂平如城因名大城.家窘不能生育,因伇傭於貨殖福安家.其家俵田數畒以備衣食之資.時有開士漸開欲設六輪㑹於興輪寺,勸化至福安家.安施布五十疋,開呪願曰,“檀越好布施天神常護持,施一得萬倍,安樂壽命長.”大城聞之跳踉而入謂其母曰,“予聴門僧誦倡,云施一得萬倍.念我定無宿善今兹困匱矣,今又不施來世益艱.施我傭田於法㑹以啚後報何如.”母曰,“善.”乃施田於開.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 신문왕 대.

모량리〔부운촌이라고도 한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이가 있었다.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하여 성(城) 같았으므로 이로 인해 대성(大城)이라 이름하였다.

집이 구차하여 기를 수 없어, 재산을 불리는 복안(福安)의 집에 품을 팔았다.

그 집에서 밭 몇 이랑을 나누어 주어 옷과 밥의 밑천으로 삼게 하였다.

그때 개사 점개(漸開)가 흥륜사에서 육륜회를 베풀려고 권선하러 복안의 집에 이르렀다.

복안이 베 쉰 필을 시주하니 점개가 축원하였다. "시주가 보시하기를 좋아하니 하늘 신이 늘 지키고 도우며, 하나를 베풀면 만 배를 얻고 안락하고 수명이 길리라."

대성이 듣고 뛰어 들어와 그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제가 문에서 승려가 외는 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베풀면 만 배를 얻는다 합니다.

생각건대 저는 정녕 전생에 지은 착함이 없어 지금 이렇게 궁핍합니다. 이제 또 베풀지 않으면 오는 세상에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품팔던 밭을 법회에 시주하여 뒷날의 갚음을 도모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가 "좋다" 하니, 이에 밭을 점개에게 시주하였다.

협주 1

一作浮雲村.

부운촌이라고도 한다.

2손에 쥐고 태어난 금 조각

未㡬城物故,是日夜國宰金文亮家有天唱云,“牟梁里大城児今杔汝家.”家人震驚使檢牟梁里,城果亡其日與唱同時.有娠生児,左手握不發七日乃開,有金簡子彫‘大城’二字,又以名之,迎其母於第中兼飬之.

오래지 않아 대성이 죽었다.

그날 밤 나라의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에서 외쳤다. "모량리 대성이라는 아이가 이제 네 집에 의탁하리라."

집안 사람들이 놀라 모량리를 살피게 하니, 대성이 과연 그날 죽었는데 외친 때와 같은 때였다.

아이를 배어 아이를 낳았는데, 왼손을 쥐고 펴지 않다가 이레 만에 열었다.

금 조각에 '대성' 두 글자가 새겨져 있으므로 또 그것으로 이름을 삼고, 그 어머니를 집으로 맞아 아울러 봉양하였다.

3곰이 꿈에 와서 따지다

既壯好逰獵.一日登吐含山捕一熊宿山下村.夢熊變爲鬼訟曰,“汝何殺我.我還啖汝.”城怖懅請容赦.鬼曰,“能爲我創佛寺乎.”城誓之曰,“喏.”既覺汗流被蓐.自後禁原野,爲熊創長壽寺於其㭪地.

자란 뒤 사냥을 좋아하였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아래 마을에서 묵었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따졌다. "네가 어찌 나를 죽였느냐. 내가 도리어 너를 잡아먹으리라."

대성이 두려워하며 용서를 청하였다.

귀신이 말하였다. "나를 위해 절을 세울 수 있겠느냐."

대성이 맹세하여 "그러겠습니다" 하였다.

깨어나니 땀이 흘러 요를 적셨다.

이 뒤로 들에서 사냥하기를 그만두고, 곰을 위해 그 잡은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4불국사와 석불사

因而情有所感,悲願増篤.乃爲現生二親創佛國寺,為前世爺孃創石佛寺,請神琳·表訓二聖師各住焉,茂張像設且酬鞠飬之勞,以一身孝二世父母古亦罕聞.善施之験可不信乎.将彫石佛也欲錬一大石爲龕盖,石忽三裂.憤恚而假寐.夜中天神來降畢造而還.城方枕起走跋南嶺,爇香木以供天神.故名其地爲香嶺.其佛國寺雲梯石塔彫鏤石木之㓛東都諸刹未有加也.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슬픈 원이 더욱 두터워졌다.

이에 이승의 두 어버이를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어버이를 위해 석불사를 세웠다.

신림과 표훈 두 성사를 청하여 각각 머물게 하고, 불상을 성대히 베풀어 길러 준 수고를 갚았다.

한 몸으로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한 일은 옛날에도 드물게 들리는 바다. 잘 베푼 일의 영험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돌부처를 새기려 할 때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실 뚜껑을 삼으려 하는데 돌이 홀연 셋으로 갈라졌다.

분하여 어렴풋이 잠들었는데, 한밤중에 하늘 신이 내려와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대성이 막 베개에서 일어나 남쪽 고개로 달려가 향나무를 사르고 하늘 신에게 공양하였다. 그러므로 그 땅을 향령(香嶺)이라 이름하였다.

그 불국사의 구름다리와 돌탑은 돌과 나무를 새기고 아로새긴 공이 동도의 여러 절 가운데 더한 것이 없다.

5절의 기록은 다르게 전한다

古郷傳所載如上,而寺中有記云,“景徳王代大相大城以天寳十年辛夘始創佛國寺.歴恵恭世以大歴九年甲寅十二月二日大城卒,國家乃畢成之.初請瑜伽大徳降魔住此寺継之至于今.”與古傳不同,未詳孰是.讃曰.牟梁春後施三畝,香嶺秋来獲萬金.萱室百年貧富貴,槐庭一夢去来今.

옛 전에 실린 것은 위와 같다.

그런데 절 안에 기록이 있어 이렇게 이른다.

"경덕왕 대에 대상 대성이 천보 십년 신묘년에 비로소 불국사를 세웠다.

혜공왕 대를 거쳐 대력 구년 갑인년 12월 초이튿날에 대성이 죽으니 나라에서 이에 마저 이루었다.

처음에 유가의 대덕 항마를 청하여 이 절에 머물게 하고 이어 오늘에 이른다."

옛 전과 같지 않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기려서 이른다.

모량리에 봄이 지난 뒤 세 이랑을 베풀었더니 향령에 가을이 와 만금을 거두었네. 어머니의 방은 백 년에 가난하고도 부귀하였으니 홰나무 뜰의 한 꿈에 가고 오는 것이 지금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