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효선 제9

가난한 딸이 어머니를 봉양하다貧女養母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63자 · 낭독 1.1분

「삼국유사」 효선 제9 「가난한 딸이 어머니를 봉양하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지난날의 겨죽은 마음이 편하였는데

貧女飬母孝宗郎逰南山鮑石亭〔或云三花述.〕門客星馳有二客獨後.郎問其故,曰,“芬皇寺之東里有女年二十左右手抱盲母相號而哭.問同里,曰,“此女家貧,乞啜而反哺有年矣.適嵗荒,倚門難以藉手,贖賃他家得穀三十石寄置大家服役.日暮櫜米而来家炊餉伴宿,晨則敀役大家,如是者數日矣.母曰,“昔日之糠粃心和且平,近日之香秔膈肝若刺而心未安何哉.”女言其實,母痛哭,女嘆己之但能口腹之飬而失於色難也,故相持而泣.”見此而遲留厼.”

가난한 딸이 어머니를 봉양하다.

효종랑(孝宗郎)이 남산 포석정에서〔삼화술이라고도 한다.〕 노닐 때, 문객들이 별처럼 달려왔는데 두 사람만 홀로 늦었다.

효종랑이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분황사 동쪽 마을에 나이 스무 살쯤 된 여자가 있어, 눈먼 어머니를 안고 서로 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같은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여자는 집이 가난하여 빌어먹으며 어머니를 되먹인 지 여러 해다.

마침 흉년이 들어 문에 기대어 손을 벌리기도 어려워지자, 남의 집에 몸을 팔아 곡식 서른 섬을 얻어 주인집에 맡겨 두고 일을 하였다.

날이 저물면 쌀을 싸 와서 집에서 밥을 지어 먹이고 함께 자고, 새벽이면 주인집에 일하러 갔다. 이러기를 며칠이었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지난날의 겨죽은 마음이 화평하고 편안하였는데, 요사이의 향기로운 쌀밥은 가슴을 찌르는 듯하여 마음이 편치 않으니 어찌 된 일이냐."

여자가 사실을 말하니 어머니가 통곡하였다.

여자는 자기가 다만 입과 배를 채우는 봉양만 하고 낯빛을 부드럽게 하는 데서 잘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서로 붙들고 우는 것이다.'

이것을 보느라 늦었을 뿐입니다."

협주 1

或云三花述.

삼화술이라고도 한다.

2삼국유사, 여기서 끝난다

郎聞之潜然送榖一百斛,郎之二親亦送衣袴一襲,郎之千徒歛租一千石遺之.事逹宸聰,時真聖王賜穀五百石并宅一㕓,遣卒徒衛其家以儆劫椋.旌其坊爲孝飬之里.後拾其家爲寺,名两尊寺.三國遺事卷第五

효종랑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곡식 백 섬을 보냈다.

효종랑의 두 어버이도 옷과 바지 한 벌을 보냈고, 효종랑의 천 낭도가 조 천 섬을 거두어 주었다.

일이 임금의 귀에 이르니, 그때 진성왕이 곡식 오백 섬과 아울러 집 한 채를 내리고, 군졸을 보내 그 집을 지켜 도둑을 경계하게 하였다.

그 마을을 표하여 효양리(孝養里)라 하였다.

뒤에 그 집을 내놓아 절로 삼고 양존사(兩尊寺)라 이름하였다.

『삼국유사』 권 제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