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지가 구름을 타다 — 보현나무朗智乘雲普賢樹
1이름도 성도 말하지 않는 승려
朗智乗雲普賢樹歃良州阿曲縣之霊鷲山〔歃良今梁州.阿曲一作西,又云求佛又屈弗.今蔚州置屈弗馹,今存其名.〕有異僧庵居累紀,而郷邑皆不識,師亦不言氏名.常講法華仍有通力.
낭지가 구름을 타다 — 보현나무.
삽량주 아곡현의 영취산에〔삽량은 지금의 양주다. 아곡은 서로 적기도 하고 구불 또는 굴불이라고도 한다. 지금 울주에 굴불역을 두었으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기이한 승려가 있어 암자에 산 지 여러 해였다.
그런데 고을에서 모두 알지 못하였고, 법사 또한 성과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늘 『법화경』을 강하고 이내 신통한 힘이 있었다.
협주 1
歃良今梁州. 阿曲一作西, 又云求佛又屈弗. 今蔚州置屈弗馹, 今存其名.
삽량은 지금의 양주다. 아곡은 서(西)로 적기도 하고 구불 또는 굴불이라고도 한다. 지금 울주에 굴불역을 두었으니 그 이름이 남아 있다.
2까마귀가 두 사람에게 알리다
龍朔初有沙彌智通,伊亮公之家奴也.出家年七歳,時有烏來鳴云,“霊鷲去投朗智爲弟子.”通聞之,尋訪此山來憩於洞中樹下.忽見異人出曰“我是普大士欲授汝戒品,故來爾.”因宣戒訖乃隐.通神心豁爾,智證頓圎.遂前行路逢一僧乃問朗智師何所住,僧曰“奚問朗智乎.”通具陳神烏之事.僧莞爾而笑曰,“我是朗智,今兹堂前亦有烏來報,有聖児投師将至矣,冝出迎故來迎爾.”乃執手而嘆曰,“霊烏驚爾投吾,報予迎汝是何祥也.殆山霊之隂助也.傳云山主乃辨才天女.”
용삭 초에 사미 지통(智通)이 있었으니 이량공의 집 종이었다.
출가한 나이가 일곱이었는데, 그때 까마귀가 와서 울며 말하였다. "영취산에 가서 낭지에게 몸을 던져 제자가 되어라."
지통이 듣고 이 산을 찾아와 골짜기 안 나무 아래에 쉬었다.
홀연 기이한 사람이 나와 말하였다. "나는 보현대사다. 너에게 계품을 주고자 하여 왔을 뿐이다."
이내 계를 베풀고 마치자 숨었다. 지통은 정신과 마음이 활짝 열려 지혜의 증득이 단박에 원만해졌다.
마침내 앞으로 가다가 길에서 한 승려를 만나 낭지법사가 어디 사는지 물었다.
승려가 말하였다. "어찌 낭지를 묻는가."
지통이 신령한 까마귀의 일을 갖추어 말하였다.
승려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낭지다. 지금 이 법당 앞에도 까마귀가 와서 알리기를, 거룩한 아이가 스승에게 몸을 던지러 곧 이를 터이니 마땅히 나가 맞이하라 하였다. 그래서 맞으러 왔을 뿐이다."
이에 손을 잡고 탄식하였다.
"신령한 까마귀가 너를 놀래어 나에게 오게 하고, 나에게 알려 너를 맞게 하였으니 이 무슨 상서인가. 아마 산신령이 몰래 도운 것이리라."
전하기를 산의 주인은 곧 변재천녀라 한다.
3내가 너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
通聞之泣謝投禮於師.既而將與授戒,通曰“予於洞口樹下已蒙普賢大士乃授正戒.”智嘆曰,“善㦲.汝已親禀大士滿分之戒.我自生年來夕惕慇懃,念遇至聖而猶未能昭格,今汝已受,吾不及汝逺矣.”反禮智通,因名其樹曰普賢.通曰“法師住此其已久.”如曰,“法興王丁未之嵗始寓足焉,不知今㡬.”通到山之時乃文武王即位元年辛酉嵗也,計已一百三十五年矣.通後詣義湘之室,升堂覩奥,頗資玄化,寔爲錐洞記主也.
지통이 듣고 울며 사례하고 법사에게 몸을 던져 예를 하였다.
이윽고 계를 주려 하니 지통이 말하였다. "저는 골짜기 어귀 나무 아래에서 이미 보현대사께 바른 계를 받았습니다."
낭지가 탄식하였다. "좋구나. 너는 이미 대사에게서 몸소 원만한 계를 받았구나.
나는 태어난 뒤로 저녁마다 두려워하며 부지런히 거룩한 이를 만나기를 생각하였으나 아직 밝게 이르지 못하였다. 이제 네가 이미 받았으니 내가 너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
도리어 지통에게 절하고, 이로 인해 그 나무를 보현이라 이름하였다.
지통이 말하였다. "법사께서 여기 사신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까."
낭지가 말하였다. "법흥왕 정미년에 비로소 발을 붙였는데 지금 얼마인지 모르겠다."
지통이 산에 이른 때는 곧 문무왕 즉위 원년 신유년이니, 헤아리면 이미 백서른다섯 해다.
지통은 뒤에 의상의 방에 나아가 마루에 올라 깊은 데를 보고 그윽한 교화에 자못 도움이 되었으니, 실로 『추동기』를 지은 이다.
4원효가 스승으로 섬기다
元曉住磻髙寺時,常徃謁智,令著初章觀文及安身事心論.曉撰訖,使隠士文善奉書馳逹,其篇尾述偈云,“西谷沙弥稽首禮,東岳上徳高巖前〔磻髙在霊鷲之西北,故西谷沙弥乃自謂也.〕吹以細塵補鷲岳,飛以微滴投龍淵.〔云云.〕山之東有大和江,乃爲中國大和池龍植福所創,故云龍淵.通與曉皆大聖也,二聖而摳衣師之,道迈可知.
원효가 반고사에 머물 때 늘 낭지를 찾아뵈니, 낭지가 『초장관문』과 『안신사심론』을 짓게 하였다.
원효가 짓기를 마치고 숨어 사는 선비 문선(文善)에게 글을 받들어 달려가 전하게 하였다.
그 글 끝에 게송을 지어 이르기를,
서쪽 골짜기의 사미가 머리 조아려 절하며 동쪽 산 큰 덕의 높은 바위 앞에 올립니다.〔반고사가 영취산의 서북쪽에 있으므로 '서쪽 골짜기의 사미'라 한 것은 곧 자기를 이른 것이다.〕 가는 티끌을 불어 취봉을 보태고 작은 물방울을 날려 용연에 던집니다.
산 동쪽에 태화강이 있으니 곧 중국 태화지의 용을 위해 복을 심고자 세운 것이므로 용연이라 한다.
지통과 원효는 모두 큰 성인이다. 두 성인이 옷깃을 여미고 스승으로 섬겼으니 도의 높음을 알 만하다.
협주 2
磻髙在霊鷲之西北, 故西谷沙弥乃自謂也.
반고사가 영취산의 서북쪽에 있으므로 '서쪽 골짜기의 사미'라 한 것은 곧 자기를 이른 것이다.
云云.
이러이러하다.
5구름을 타고 중국까지 다니다
師甞乗雲徃中國清涼山,隨衆聽講俄項即還.彼中僧謂是隣居者然罔知攸止.一日令於衆曰,“除常住外,别院來僧各持所居名花異植来献道塲.”智明日折山中異木一枝歸呈之.彼僧見之乃曰,“此木梵号怚提伽,此云赫,唯西笁·海東二霊鷲山有之.彼二山皆第十法雲地菩薩所居,斯必聖者也.”遂察其行色,乃知住海東霊鷲也.因此攺觀名著中外.郷人乃號其庵曰赫木.今赫木寺之北崗有古基,乃其遺趾.霊鷲寺記云,朗智甞云,“此庵趾乃迦葉佛時寺基也.”堀地得燈缸二.隔元聖王代有大徳縁㑹来居山中,撰師之傳行于世.按華嚴經,第十名法雲地今師之馭雲,蓋佛陁屈三指,元曉分百身之類也欤.讃曰.想料嵓藏百嵗間,髙名曽未落人寰,不禁山鳥閑饒舌,雲馭無端洩徃還.
법사가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에 가서, 무리를 따라 강의를 듣고 잠깐 사이에 곧 돌아왔다.
그곳 승려들은 이웃에 사는 이라 여겼으나 어디에 머무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하루는 무리에게 명하였다. "늘 머무는 이 밖에 다른 원에서 온 승려는 각각 사는 곳의 이름난 꽃과 남다른 나무를 가져와 도량에 바쳐라."
낭지가 이튿날 산속의 기이한 나무 한 가지를 꺾어 돌아와 바쳤다.
그곳 승려가 보고 말하였다. "이 나무는 범어로 달제가(怚提伽)라 하고 여기서는 혁(赫)이라 하는데, 오직 서천축과 해동의 두 영취산에만 있다.
저 두 산은 모두 제십 법운지 보살이 사는 곳이니, 이는 반드시 거룩한 이다."
마침내 그 행색을 살펴 해동 영취산에 사는 것을 알았다.
이로 인해 다시 보게 되어 이름이 안팎에 드러났다.
고을 사람들이 이에 그 암자를 혁목(赫木)이라 불렀다. 지금 혁목사 북쪽 언덕에 옛터가 있으니 곧 그 남은 자취다.
『영취사기』에 이르기를, 낭지가 일찍이 "이 암자 터는 곧 가섭불 때의 절터다" 하였다 한다. 땅을 파서 등잔 항아리 둘을 얻었다.
원성왕 대에 대덕 연회(緣會)가 있어 산속에 와서 살며 법사의 전을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화엄경』을 살피건대 제십을 법운지라 하니, 이제 법사가 구름을 부린 것은 대개 부처가 세 손가락을 굽힌 일과 원효가 몸을 백으로 나눈 일 같은 따위인가.
기려서 이른다.
생각건대 바위에 숨어 백 해를 지내는 사이 높은 이름이 일찍이 사람 세상에 떨어지지 않았네. 산새의 한가로운 수다를 막지 못하여 구름 수레가 부질없이 오간 것을 새어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