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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惠現求靜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36자 · 낭독 0.9분

「삼국유사」 피은 제8 「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혀만 남아 세 해가 지나도 붉고 부드러웠다

恵現求静釋惠現百濟人.小出家苦心專志誦蓮經爲業,祈禳請福霊應良稠.兼攻三論染指通神.初住北部修徳寺有衆則講,無則持誦四逺欽風户外之履滿矣.稍猒煩擁遂徃江南逹拏山居焉.山極嵓險來徃艱稀.現静㘴求忘終于山中.同學轝尸置石室中,虎啖盡遺骸唯髏舌存焉.三周寒暑舌猶紅軟.過後方變紫硬如石,道俗敬之藏于石塔.俗齡五十八即貞觀之初.現不西學静退以終,而乃名流諸夏立傳在唐聲著矣.

혜현이 고요함을 구하다.

승려 혜현(惠現)은 백제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오로지 하여 『법화경』 외기를 업으로 삼았다. 빌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청하니 신령한 감응이 참으로 잦았다.

아울러 삼론을 닦아 손을 대자 신묘한 데 통하였다.

처음에 북부 수덕사에 머물러 무리가 있으면 강하고 없으면 외웠다. 사방에서 그 바람을 우러러 문밖에 벗어 놓은 신발이 가득하였다.

차츰 번거롭게 둘러싸이는 것을 싫어하여 마침내 강남 달나산에 가서 살았다.

산이 몹시 바위투성이로 험하여 오가는 이가 드물었다.

혜현은 고요히 앉아 잊기를 구하다가 산속에서 마쳤다.

같이 배우던 이들이 주검을 옮겨 돌방에 두었는데, 범이 다 뜯어 먹고 남은 뼈 가운데 오직 해골과 혀만 남았다.

세 해 추위와 더위를 지나도록 혀가 여전히 붉고 부드러웠다.

그 뒤에야 비로소 자줏빛으로 바뀌고 돌처럼 굳었다. 승려와 속인이 공경하여 돌탑에 갈무리하였다.

세속 나이 쉰여덟이니 곧 정관 초다.

혜현은 서쪽으로 배우러 가지 않고 고요히 물러나 마쳤는데, 이름이 중국에까지 흘러 당나라의 승전에 그 전기가 실리고 명성이 드러났다.

2고구려의 파약도 그러하였다

夫又髙䴡釋波若入中國天台山,受智者教觀以神異間山中而㓕.唐僧傳亦有章,頗多霊範.讃曰.鹿尾傳經倦一塲,去年清誦倚雲藏.風前青史名流逺,火後紅蓮舌帶芳.

또 고구려 승려 파약(波若)이 중국 천태산에 들어가 지자대사의 교관을 받고, 신이함으로 산중에 알려지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나라 『승전』에도 글이 있으니 신령한 본보기가 자못 많다.

기려서 이른다.

사슴꼬리 총채로 경을 전하는 한자리에 지쳐 지난해 맑은 독송을 구름에 기대어 감추었네. 바람 앞의 푸른 역사에 이름이 멀리 흐르고 불 뒤의 붉은 연꽃 같은 혀가 향기를 띠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