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피은 제8

물계자勿稽子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334자 · 낭독 1.3분

「삼국유사」 피은 제8 「물계자」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공을 다투는 것은 뜻있는 이가 할 바가 아니다

勿稽子第十奈解王即位十七年壬辰,保羅國·古自國〔今固城〕·史勿國〔今泗州〕等八國併力來侵过境.王命太子㮈音·将軍一伐等率兵拒之,八國皆降.時勿稽子軍㓛第一,然爲太子所嫌不賞其㓛.或謂勿稽子,“此戰之㓛唯子而已.而賞不及子,太子之嫌君其㤪乎.”稽曰,“國君在上何㤪人臣.”或曰,“然則奏聞子王幸矣.”稽曰,“伐功爭命掦己掩人志士之所不爲也,勵之待時而已.”

물계자.

열째 내해왕 즉위 17년 임진년에, 보라국과 고자국〔지금의 고성이다.〕과 사물국〔지금의 사주다.〕 등 여덟 나라가 힘을 합쳐 변경에 쳐들어왔다.

왕이 태자 내음과 장군 일벌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하니 여덟 나라가 모두 항복하였다.

그때 물계자(勿稽子)의 군공이 으뜸이었으나, 태자에게 미움을 받아 그 공에 상을 주지 않았다.

어떤 이가 물계자에게 말하였다. "이 싸움의 공은 오직 그대뿐인데 상이 그대에게 미치지 않았소. 태자가 미워하니 그대는 원망스럽지 않소?"

물계자가 말하였다. "나라 임금이 위에 계신데 어찌 남의 신하를 원망하겠소."

어떤 이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임금께 아뢰는 것이 좋겠소."

물계자가 말하였다. "공을 자랑하고 목숨을 다투어 자기를 드러내고 남을 덮는 것은 뜻있는 선비가 할 바가 아니오. 힘써 때를 기다릴 뿐이오."

협주 2

今固城

지금의 고성이다.

今泗州

지금의 사주다.

2충도 효도 잃었으니 무슨 낯으로

十年乙未骨浦國〔今合浦也.〕䓁三國王各率兵来攻竭火.〔疑屈弗也,今蔚州.〕王親率禦之,三國皆敗.稽所獲数十級,而人不言稽之功.稽謂其妻曰,“吾聞仕君之道見危致命,臨難忘身,仗於節義不顧死生之謂忠也.夫保羅〔疑發羅,今羅州.〕·竭火之役誠是國之難君之危,而吾未曽有忘身致命之勇,此乃不忠甚也.旣以不忠而仕君累及於先人可謂孝乎.旣失忠孝,何顔復逰朝市之中乎.”乃被髮荷琴入師彘山〔未詳〕,悲竹樹之性病,寄托作歌擬溪澗之咽響扣琴制曲,隠居不復現世.

십 년 을미년에 골포국〔지금의 합포다.〕 등 세 나라 왕이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갈화를〔아마도 굴불인 듯하니 지금의 울주다.〕 쳤다.

왕이 몸소 거느리고 막으니 세 나라가 모두 졌다.

물계자가 벤 것이 수십 급이었으나 사람들이 그의 공을 말하지 않았다.

물계자가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에 임하여 몸을 잊으며, 절의에 기대어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는 것을 충이라 한다 하오.

무릇 보라와〔아마도 발라인 듯하니 지금의 나주다.〕 갈화의 싸움은 참으로 나라의 어려움이요 임금의 위태로움이었소.

그런데 나는 일찍이 몸을 잊고 목숨을 바치는 용기가 없었으니 이는 곧 충하지 못함이 심한 것이오.

이미 충하지 못하고서 임금을 섬겨 허물이 조상에게 미쳤으니 효라 할 수 있겠소.

이미 충과 효를 잃었으니 무슨 낯으로 다시 조정과 저자 가운데를 다니겠소."

이에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지고 사체산에〔자세하지 않다.〕 들어갔다.

대나무의 성품이 병든 것을 슬퍼하여 거기에 붙여 노래를 짓고, 시냇물의 목메는 소리를 본떠 거문고를 타 곡을 지었다.

숨어 살며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협주 4

今合浦也.

지금의 합포다.

疑屈弗也, 今蔚州.

아마도 굴불인 듯하니 지금의 울주다.

疑發羅, 今羅州.

아마도 발라인 듯하니 지금의 나주다.

未詳

자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