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피은 제8

영여법사迎如師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05자 · 낭독 0.8분

「삼국유사」 피은 제8 「영여법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문에 들자 사라지다

迎如師實際寺釋迎如未詳族氏,徳行雙髙.景徳王将邀致供飬遣使徴之.如詣内齋罷将還,王遣使陪送至寺.入門即隠不知所在.使来奏,王異之,追封國師.後亦不復現世,至今稱曰國師房.

영여법사.

실제사 승려 영여(迎如)는 씨족이 자세하지 않으며 덕과 행실이 다 높았다.

경덕왕이 맞이하여 공양하려고 사신을 보내 불렀다.

영여가 궁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니, 왕이 사신을 보내 모시고 절까지 배웅하게 하였다.

영여가 절 문에 들어서자 곧 사라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신이 와서 아뢰니 왕이 기이히 여겨 국사로 추봉하였다.

뒤에도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국사방(國師房)이라 일컫는다.

2포천산 다섯 비구

布川山五比丘景徳王代歃良州東北二十許里有布山川石窟竒秀宛如人斲.有五比丘未詳名氏.来寓而念弥陁,求西方㡬十年,忽有聖象自西来迎.於是五比丘各㘴蓮䑓,乗空而逝至通度寺門外留連,而天樂間奏.寺僧出觀,五比丘爲說無常苦空之理,蛻棄遺骸放大光明向西而去.其捐舎處寺僧起亭榭,名置樓至今存焉.

포천산 다섯 비구.

경덕왕 대에 삽량주 동북쪽 이십 리쯤에 포천산이 있는데, 돌굴이 기이하고 빼어나 마치 사람이 깎은 듯하였다.

다섯 비구가 있어 이름과 씨족이 자세하지 않다.

와서 머물며 아미타를 염하고 서방을 구한 지 몇 십 해에, 홀연 거룩한 모습이 서쪽에서 와서 맞이하였다.

이에 다섯 비구가 각각 연꽃 자리에 앉아 허공을 타고 갔다.

통도사 문밖에 이르러 머무르니 하늘 음악이 사이사이 울렸다.

절의 승려가 나와 보니, 다섯 비구가 그를 위해 덧없음과 괴로움과 빔의 이치를 설하고, 껍질을 벗듯 남은 몸을 버리고 큰 빛을 놓으며 서쪽으로 갔다.

그 몸을 버린 자리에 절의 승려가 정자를 세우고 치루(置樓)라 이름하였으니 지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