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의 신인종明朗神印
1우물 바닥에서 솟아 나오다
明朗神印按金光寺夲記云.“師挺生新羅,入唐學道.將還,因海龍之請入龍宫傳秘法施黄金千两,〔一云千斤.〕潜行地下湧出夲宅井底.乃捨爲寺以龍王所施黄金餙塔像光曜殊特,因名金光焉.〔僧傳作金羽寺,誤.〕
명랑의 신인종.
금광사의 본기를 살피건대 이렇게 이른다.
"법사는 신라에 빼어나게 태어나 당나라에 들어가 도를 배웠다.
돌아오려 할 때 바다 용의 청으로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하고 황금 천 냥을〔천 근이라고도 한다.〕 시주받았다.
땅 밑으로 몰래 다녀 본디 살던 집 우물 바닥에서 솟아 나왔다.
이에 집을 내놓아 절로 삼고,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탑과 상을 꾸미니 빛남이 유난하였다. 이로 인해 금광사(金光寺)라 이름하였다."〔『승전』에는 금우사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협주 2
一云千斤.
천 근이라고도 한다.
僧傳作金羽寺, 誤.
『승전』에는 금우사(金羽寺)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2당나라 군사를 물리치다
師諱明郎,字國育,新羅沙干才良之子.母曰南澗夫人,或云法乖娘,蘇判茂林之子金氏,則慈藏之姝也.三息長曰國教大徳,次曰義安大徳,師其季也.初母夢呑青色珠而有娠.善徳王元年入唐,貞觀九年乙未来歸.緫章元年戊辰唐将李勣統大兵合新羅滅髙䴡,後餘軍留百濟将襲滅新羅.羅人覺之發兵拒之,髙宗聞之赫怒命薜邦興師将討之.文武王聞之懼,請師開秘法禳之.〔事在文武王傳中.〕因兹爲神印宗祖.
법사의 이름은 명랑(明朗)이요 자는 국육(國育)이며, 신라 사간 재량(才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간부인이라 하며 법승랑이라고도 하는데, 소판 무림의 딸 김씨이니 곧 자장의 누이다.
아들 셋 가운데 맏이는 국교대덕, 다음은 의안대덕이며 법사는 그 막내다.
처음에 어머니가 푸른 구슬을 삼키는 꿈을 꾸고 아이를 배었다.
선덕왕 원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정관 구년 을미년에 돌아왔다.
총장 원년 무진년에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큰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와 합쳐 고구려를 멸하였다. 뒤에 남은 군사가 백제에 머물며 장차 신라를 습격하여 없애려 하였다.
신라 사람들이 알아채고 군사를 내어 막았다. 고종이 듣고 크게 노하여 설방(薛邦)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치게 하였다.
문무왕이 듣고 두려워하여 법사에게 비법을 열어 물리쳐 주기를 청하였다.〔이 일은 「문무왕전」 가운데 있다.〕
이로 인해 신인종의 조사가 되었다.
협주 2
法乖娘
저본은 「法乖娘」이나 잘못으로 보아 「법승랑」으로 옮겼다.
事在文武王傳中.
이 일은 「문무왕전」 가운데 있다.
3누가 원원사를 세웠는가
及我太祖創業之時亦有海賊来擾,乃請安惠·朗融之裔廣學·大縁等二大徳作法禳鎮,皆朗之傳系也.故并師而上至龍樹爲九祖,〔夲寺記三師爲律祖,未詳.〕又太祖爲創現聖寺爲一宗根柢焉.又新羅亰城東南二十餘里有逺源寺,諺傳安惠等四大徳與金庾信·金義元·金述宗䓁同願所創也.四大徳之遺骨皆藏寺之東峰,因号四霊山祖師嵓云.則四大徳皆羅時髙徳.按堗白寺柱貼注脚載.“慶州戶長巨川母阿之女,女母明珠女,女母積利女之子廣學大徳·大縁三重,〔古名善㑹.〕昆季二人皆投神印宗.以長興二年辛邜随太祖上亰随駕焚修.賞其勞給二人父母忌日寶于堗白寺田畓若于結云云.”則廣學·大縁二人随聖祖入亰者,安師䓁乃與金庾信䓁創逺源寺者也.廣學等二人骨亦来安于兹爾,非四徳皆創逺源皆随聖祖也.詳之.
우리 태조가 나라를 세울 때에도 바다 도적이 와서 어지럽히므로, 안혜·낭융의 후예인 광학·대연 두 대덕을 청하여 법을 지어 물리쳐 누르게 하였으니 모두 명랑이 전한 갈래다.
그러므로 법사를 아울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 아홉 조사로 삼는다.〔본사의 기록에는 세 법사를 율종의 조사라 하였으나 자세하지 않다.〕
또 태조가 그를 위해 현성사를 세워 한 종파의 뿌리로 삼았다.
또 신라 서울 동남쪽 이십여 리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속에 전하기를 안혜 등 네 대덕이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네 대덕의 남은 뼈를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갈무리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사령산 조사암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즉 네 대덕은 모두 신라 때의 높은 이들이다.
돌백사의 주첩 각주에 실린 것을 살피건대 이러하다.
"경주 호장 거천의 어머니는 아지녀, 아지녀의 어머니는 명주녀, 명주녀의 어머니는 적리녀인데, 그 아들이 광학대덕과 대연 삼중이다.〔옛 이름은 선회다.〕 형제 두 사람이 모두 신인종에 몸을 던졌다.
장흥 이년 신묘년에 태조를 따라 서울에 올라와 어가를 따르며 향불을 받들었다. 그 수고를 상 주어 두 사람의 부모 기일에 쓸 재물로 돌백사에 밭과 논 몇 결을 주었다."
그런즉 광학과 대연 두 사람이 태조를 따라 서울에 들어간 이들이요, 안혜 등은 곧 김유신 등과 함께 원원사를 세운 이들이다.
광학 등 두 사람의 뼈도 여기에 와서 모셨을 뿐이지, 네 대덕이 모두 원원사를 세우고 모두 태조를 따른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피라.
협주 2
夲寺記三師爲律祖, 未詳.
본사의 기록에는 세 법사를 율종의 조사라 하였으나 자세하지 않다.
古名善㑹.
옛 이름은 선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