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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성의 파사석탑金官城婆娑石塔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316자 · 낭독 1.3분

「삼국유사」 탑상 제4 「금관성의 파사석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허황후가 바다를 건너며 싣고 온 탑

金官虎溪寺婆娑石塔者昔此邑爲金官國時,世祖首露王之妃許皇后名黄玉,以東漢建武二十四年甲申,自西域阿踰陁國所載來.初公主承二親之命泛海將指東,阻波神之怒不克而還白父王.父王命載兹塔,乃獲利渉來泊南涯.有緋㠶茜旗珠玉之羙,今云主浦.初解綾袴於岡上處曰綾峴,茜旗初入海涯曰旗出邊.首露王聘迎之,同御國一百五十餘年.然于時海東未有創寺奉法之事.蓋像敎未至而圡人不信伏,故本記無創寺之文.逮第八代銍知王二年壬辰置寺於其地.又創王后寺〔在阿道訥祗王之世,法㒷王之前.〕至今奉福焉,兼以鎮南倭,具見本國本記.塔方四面五層,其彫𨩐甚竒.石微赤班色其質良脆,非此方類也.本草所云,㸃雞冠血爲驗者是也.金官國亦名駕洛國,具載本記.

금관(金官)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婆娑石塔)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이던 때에 세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후(許皇后), 이름이 황옥(黃玉)인 이가 동한 건무 이십사년 갑신년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 공주가 두 어버이의 명을 받들어 바다에 떠서 동쪽으로 가려 하였으나, 물결 신의 노여움에 막혀 이기지 못하고 돌아와 아버지 왕에게 아뢰었다. 아버지 왕이 이 탑을 싣게 하니, 그제야 순조롭게 건너 남쪽 물가에 닿았다.

붉은 돛과 붉은 깃발과 주옥의 아름다움이 있었으므로 지금 주포(主浦)라 한다. 처음 비단 바지를 벗은 언덕을 능현(綾峴)이라 하고, 붉은 깃발이 처음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 한다.

수로왕이 예를 갖추어 맞이하여 함께 나라를 다스린 것이 백쉰 해가 넘는다.

그러나 그때 해동에는 절을 세우고 법을 받드는 일이 아직 없었다. 대개 불교가 이르지 않아 이 땅 사람들이 믿고 따르지 않았으므로, 본기에도 절을 세웠다는 글이 없다.

여덟째 질지왕 2년 임진년에 이르러 그 자리에 절을 두었다. 또 왕후사(王后寺)를 세워〔아도가 있던 눌지왕 대이니 법흥왕보다 앞선다.〕 지금까지 복을 받들며, 아울러 남쪽 왜를 누른다. 자세한 것은 이 나라 본기에 보인다.

탑은 네모진 사면에 다섯 층이며 새김이 매우 기이하다. 돌은 옅게 붉은 얼룩빛이고 그 바탕이 무르니 이 지방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본초(本草)』에 이른바 닭 볏의 피를 찍어 시험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금관국은 가락국이라고도 하니 자세한 것은 본기에 실려 있다.

협주 1

在阿道訥祗王之世, 法㒷王之前.

아도가 있던 눌지왕 대이니 법흥왕보다 앞선다.

2기려서 이르다

讃曰.載厭緋㠶茜斾輕,乞靈遮莫海濤驚.豈徒到岸扶黃玉,千古南倭遏怒鯨.

기려서 이른다.

실어 누르니 붉은 돛과 붉은 깃발이 가벼워지고 신령께 빌어 사나운 물결의 놀람을 막았네 어찌 한갓 언덕에 닿아 황옥을 도왔을 뿐이랴 천고에 남쪽 왜의 성난 고래를 막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