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구층탑皇龍寺九層塔
1태화지에서 신인이 탑을 세우라 이르다
新羅第二十七善徳王即位五年,貞觀十年丙申慈藏法師西學,乃於五䑓感文殊授法.〔詳見本傳.〕…経由中國太和池邉,忽有神人出問.“胡爲至此.”藏荅曰,“求菩提故.”神人禮拜又問,“汝國有何留難.”藏曰,“我國北連靺鞨,南接倭人,䴡濟二國迭犯封陲,隣冦縱橫是爲民梗.”神人云,“今汝國以女爲王有徳而無威.故隣國謀之.冝速歸本國.”藏問,“歸郷將何爲利益乎.”神曰“皇龍寺護法龍是吾長子,受梵王之命來護是寺,歸本國成九層塔於寺中,隣國降伏九韓來貢,王祚永安矣.建塔之後,設八關㑹赦罪人,則外賊不能爲害.…”言已遂奉王而獻之,忽隱不現.〔寺中記云,於終南山圎香禪師処,受建塔因由.〕
신라 스물일곱째 선덕왕 즉위 5년, 정관 십년 병신년에 자장법사가 서쪽으로 배우러 가서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법을 받았다.〔자세한 것은 본전에 보인다.〕
문수가 또 말하였다.
"그대 나라의 임금은 곧 천축의 찰리종(刹利種) 왕으로 미리 부처의 수기를 받았으므로 따로 인연이 있어, 동쪽 오랑캐의 여느 겨레와 같지 않다. 그러나 산천이 험한 까닭에 사람들의 성정이 거칠고 그릇된 견해를 많이 믿어, 때로 천신이 화를 내리기도 한다. 다만 많이 들은 비구가 나라 안에 있으므로 임금과 신하가 편안하고 만백성이 화평한 것이다."
말을 마치고 나타나지 않았다. 자장은 이가 큰 성인의 변화임을 알고 피눈물을 흘리며 물러났다.
중국 태화지(太和池) 가를 지나는데, 홀연 신인이 나와 물었다. "어찌하여 여기에 이르렀는가."
자장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신인이 절하고 또 물었다. "그대 나라에는 무슨 어려움이 있는가."
자장이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에 잇닿고 남으로 왜인과 접하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국경을 침범합니다. 이웃의 도적이 멋대로 드나드니 이것이 백성의 괴로움입니다."
신인이 말하였다.
"지금 그대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다. 그러므로 이웃 나라가 꾀하는 것이다. 마땅히 속히 본국으로 돌아가라."
자장이 물었다. "고향에 돌아가면 장차 무엇이 이로움이 되겠습니까."
신이 말하였다.
"황룡사의 호법룡은 내 맏아들이다.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그 절을 지키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 절 안에 아홉 층 탑을 이루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아홉 오랑캐가 조공을 바쳐 왕업이 길이 편안하리라. 탑을 세운 뒤에 팔관회를 열고 죄인을 놓아주면 바깥 도적이 해칠 수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 홀연히 숨어 나타나지 않았다.〔절에 있는 기록에는 종남산 원향선사가 있는 곳에서 탑 세울 연유를 받았다고 한다.〕
협주 2
詳見本傳.
자세한 것은 본전에 보인다.
寺中記云, 於終南山圎香禪師処, 受建塔因由.
절에 있는 기록에는 종남산 원향선사가 있는 곳에서 탑 세울 연유를 받았다고 한다.
2백제 장인 아비지가 탑을 세우다
貞觀十七年癸卯十六日,將唐帝所賜經·像·袈裟·幤帛而還國,以建塔之事聞於上.善徳王議於群臣,群臣曰“請工匠於百濟然後方可.”乃以寳帛請於百濟.匠名阿非知受命而来経營木石,伊干龍春〔一云龍樹.〕幹蠱率小匠二百人.初立刹柱之日匠夢本國百濟㓕亡之狀.匠乃心疑停手,忽大地震動,晦冥之中有一老僧一壯士自金殿門出乃立其柱,僧與壯士皆隱不現.匠於是攺悔畢成其塔.
정관 십칠년 계묘년 열엿새에, 당나라 임금이 내린 경전과 불상과 가사와 폐백을 가지고 나라로 돌아와 탑 세울 일을 임금께 아뢰었다.
선덕왕이 신하들과 의논하니 신하들이 말하였다. "백제에 장인을 청한 뒤에야 될 것입니다."
이에 보배와 비단을 보내 백제에 청하였다. 장인의 이름은 아비지(阿非知)로 명을 받고 와서 나무와 돌을 다루었고, 이간 용춘(龍春)이〔용수라고도 한다.〕 일을 주관하며 작은 장인 이백 명을 거느렸다.
처음 찰주(刹柱)를 세우던 날, 장인이 제 나라 백제가 망하는 모습을 꿈꾸었다. 장인이 이에 마음이 의심스러워 손을 멈추었다.
홀연 대지가 진동하고 어두컴컴한 가운데 늙은 승려 하나와 장사 하나가 금전(金殿) 문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승려와 장사가 모두 숨어 나타나지 않았다.
장인이 이에 뉘우치고 마침내 그 탑을 이루었다.
협주 1
一云龍樹.
용수(龍樹)라고도 한다.
3탑이 선 뒤 삼한이 하나가 되다
刹柱記云,“䥫盤已上髙四十二尺,已下一百八十三尺.”慈藏以五䑓所授舎利百粒分安於柱中并通度寺戒壇及大和寺塔,以副池龍之請.〔大和寺在阿曲縣南,今蔚州,亦藏師所創也.〕樹塔之後天地開泰三韓爲一,豈非塔之霊䕃乎.後髙䴡王将謀伐羅,乃曰“新羅有三寳不可犯也,何謂也.”“皇龍丈六并九層塔與真平王天賜玉帶”,遂寢其謀.周有九鼎楚人不敢北窺,此之類也.
「찰주기(刹柱記)」에 이르기를 "쇠 소반 위가 높이 마흔두 자요, 그 아래가 백여든세 자이다" 하였다.
자장이 오대산에서 받은 사리 백 알을 나누어 기둥 속과 통도사 계단(戒壇)과 대화사 탑에 모셔, 못의 용이 청한 바에 부응하였다.〔대화사는 아곡현 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이며, 또한 자장법사가 세운 것이다.〕
탑을 세운 뒤에 천지가 태평해지고 삼한이 하나가 되었으니, 어찌 탑의 신령한 그늘이 아니겠는가.
뒤에 고구려 왕이 신라를 치려 꾀하며 말하였다. "신라에 세 보배가 있어 범할 수 없다 하니 무엇을 이르는가."
"황룡사의 장륙존상과 구층탑, 그리고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입니다."
이에 그 꾀를 그만두었다. 주나라에 아홉 솥이 있어 초나라 사람이 감히 북쪽을 엿보지 못한 것과 같은 부류다.
협주 1
大和寺在阿曲縣南, 今蔚州, 亦藏師所創也.
대화사는 아곡현 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이며, 또한 자장법사가 세운 것이다.
4기려서 이르다
讃曰.鬼拱神扶壓帝亰,輝煌金碧動飛甍.登臨何啻九韓伏.始覺乾坤特地平.
기려서 이른다.
귀신이 받들고 신이 도와 서울을 누르니 금빛 푸른빛 눈부시게 처마가 나는 듯하네 올라서 굽어보매 어찌 아홉 오랑캐만 엎드리랴 비로소 하늘과 땅이 유난히 평평함을 깨닫네
5아홉 층이 누른 아홉 나라, 그리고 벼락과 중건의 기록
又海東名賢安弘撰東都成立記云.“新羅第二十七代女王爲主,雖有道無威九韓侵勞.若龍宫南皇龍寺建九層塔則隣國之災可鎮.第一層日本,第二層中華,第三層吳越,第四層托羅,第五層鷹逰,第六層靺鞨,第七層丹國,第八層女犾,第九層獩㹮.”又按國史及寺中古記,真興王癸酉創寺後,善徳王代貞觀十九年乙巳塔初成.…第三十三聖徳王代庚申歳重成.四十八景文王代戊子六月第二霹靂,同代第三重修.至本朝光宗即位五年癸丑十月第三霹靂,現宗十三年辛酉第四重成.又靖宗二年乙亥第四霹靂,又文宗甲辰年第五重成.又憲宗末年乙亥第五霹靂,肅宗丙子第六重成.又髙宗十六年戊戌冬月,西山兵火塔寺丈六殿宇皆災.
또 해동의 이름난 어진 이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 이르기를 —
"신라 스물일곱째에 여자가 임금이 되니, 비록 도는 있으나 위엄이 없어 아홉 오랑캐가 침노하였다. 만약 용궁 남쪽 황룡사에 아홉 층 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의 재앙을 누를 수 있다.
첫째 층은 일본 둘째 층은 중화 셋째 층은 오월 넷째 층은 탁라 다섯째 층은 응유 여섯째 층은 말갈 일곱째 층은 단국 여덟째 층은 여적 아홉째 층은 예맥"
또 『국사』와 절의 옛 기록을 살피건대, 진흥왕 계유년에 절을 세운 뒤 선덕왕 대 정관 십구년 을사년에 탑이 처음 이루어졌다.
서른두째 효소왕 즉위 7년 성력 원년 무술년 6월에 벼락이 쳤다.〔절의 옛 기록에 성덕왕 대라 한 것은 잘못이다. 성덕왕 대에는 무술년이 없다.〕
서른셋째 성덕왕 대 경신년에 다시 세웠다. 마흔여덟째 경문왕 대 무자년 6월에 두 번째 벼락이 쳤고, 같은 대에 세 번째로 고쳐 세웠다.
본조 광종 즉위 5년 계축년 10월에 세 번째 벼락이 쳤고, 현종 13년 신유년에 네 번째로 다시 세웠다. 정종 2년 을해년에 네 번째 벼락이 쳤고, 문종 갑진년에 다섯 번째로 다시 세웠다. 헌종 말년 을해년에 다섯 번째 벼락이 쳤고, 숙종 병자년에 여섯 번째로 다시 세웠다.
고종 16년 무술년 겨울에 서산(西山)의 병화로 탑과 절과 장륙존상과 전각이 모두 불탔다.
협주 1
寺中古記云聖徳王代, 誤也. 聖徳王代無戊戌.
절의 옛 기록에 성덕왕 대라 한 것은 잘못이다. 성덕왕 대에는 무술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