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종, 분황사 약사여래, 봉덕사 종皇龍寺鍾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1황룡사 종을 붓다
新羅第三十五景徳大王以天寳十三甲午鑄皇龍寺鍾,長一丈三寸,厚九寸,入重四十九万七千五百八十一斤.施主孝貞伊王三毛夫人,匠人里上宅下典.肅宗朝重成新鍾,長六尺八寸.
신라 서른다섯째 경덕대왕이 천보 십삼년 갑오년에 황룡사 종을 부었다.
길이가 한 길 세 치요 두께가 아홉 치이며, 들어간 무게가 사십구만 칠천 오백여든한 근이었다.
시주는 효정 이왕(孝貞伊王)과 삼모부인(三毛夫人)이요, 장인은 이상택(里上宅)의 하전(下典)이었다.
숙종 조에 새 종을 다시 부었으니 길이가 여섯 자 여덟 치였다.
협주 1
天寶
천보(天寶)
2분황사 약사여래상을 붓다
又明年乙未鑄芬皇藥師銅像,重三十万六千七百斤,匠人本彼部強古乃未.
또 이듬해 을미년에 분황사 약사여래 구리상을 부었다. 무게가 삼십만 육천 칠백 근이며, 장인은 본피부의 강고내말(強古乃末)이었다.
3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종을 아들이 이루다
又捨黄銅一十二万斤,爲先考聖徳王欲鑄巨鍾一口,未就而崩,其子惠恭大王乾運以大暦庚戌十二月,命有司鳩工徒乃克成之,安於奉徳寺.寺乃孝成王開元二十六年戊寅,爲先考聖徳大王奉福所創也.故鍾銘曰聖徳大王神鍾之銘.〔聖徳乃景徳之考典光大王也.鍾本景徳爲先考所施之金,故称云聖徳鍾厼.〕朝散大夫前太子司議郎翰林郎金弼粤奉教撰鍾銘,文煩不録.
또 누런 구리 십이만 근을 내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을 위해 큰 종 하나를 부으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 혜공대왕 건운(乾運)이 대력(大曆) 경술년 12월에 유사에게 명하여 장인들을 모아 마침내 이루어 내고, 봉덕사(奉德寺)에 모셨다.
그 절은 효성왕이 개원 이십육년 무인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의 복을 받들고자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종의 명(銘)을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鍾之銘)」이라 하였다.〔성덕은 곧 경덕왕의 아버지 전광대왕이다. 종은 본래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시주한 쇠이므로 성덕종이라 일컫는 것이다.〕
조산대부 전 태자사의랑 한림랑 김필월(金弼粤)이 명을 받들어 종의 명을 지었는데, 글이 번거로워 싣지 않는다.
협주 1
聖徳乃景徳之考典光大王也. 鍾本景徳爲先考所施之金, 故称云聖徳鍾厼.
성덕은 곧 경덕왕의 아버지 전광대왕(典光大王)이다. 종은 본래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시주한 쇠이므로 성덕종이라 일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