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탑상 제4

황룡사 종, 분황사 약사여래, 봉덕사 종皇龍寺鍾 芬皇寺藥師 奉德寺鍾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3 · 한자 277자 · 낭독 1.1분

「삼국유사」 탑상 제4 「황룡사 종, 분황사 약사여래, 봉덕사 종」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황룡사 종을 붓다

新羅第三十五景徳大王以天寳十三甲午鑄皇龍寺鍾,長一丈三寸,厚九寸,入重四十九万七千五百八十一斤.施主孝貞伊王三毛夫人,匠人里上宅下典.肅宗朝重成新鍾,長六尺八寸.

신라 서른다섯째 경덕대왕이 천보 십삼년 갑오년에 황룡사 종을 부었다.

길이가 한 길 세 치요 두께가 아홉 치이며, 들어간 무게가 사십구만 칠천 오백여든한 근이었다.

시주는 효정 이왕(孝貞伊王)과 삼모부인(三毛夫人)이요, 장인은 이상택(里上宅)의 하전(下典)이었다.

숙종 조에 새 종을 다시 부었으니 길이가 여섯 자 여덟 치였다.

협주 1

天寶

천보(天寶)

2분황사 약사여래상을 붓다

又明年乙未鑄芬皇藥師銅像,重三十万六千七百斤,匠人本彼部強古乃未.

또 이듬해 을미년에 분황사 약사여래 구리상을 부었다. 무게가 삼십만 육천 칠백 근이며, 장인은 본피부의 강고내말(強古乃末)이었다.

3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종을 아들이 이루다

又捨黄銅一十二万斤,爲先考聖徳王欲鑄巨鍾一口,未就而崩,其子惠恭大王乾運以大暦庚戌十二月,命有司鳩工徒乃克成之,安於奉徳寺.寺乃孝成王開元二十六年戊寅,爲先考聖徳大王奉福所創也.故鍾銘曰聖徳大王神鍾之銘.〔聖徳乃景徳之考典光大王也.鍾本景徳爲先考所施之金,故称云聖徳鍾厼.〕朝散大夫前太子司議郎翰林郎金弼粤奉教撰鍾銘,文煩不録.

또 누런 구리 십이만 근을 내어,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왕을 위해 큰 종 하나를 부으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 혜공대왕 건운(乾運)이 대력(大曆) 경술년 12월에 유사에게 명하여 장인들을 모아 마침내 이루어 내고, 봉덕사(奉德寺)에 모셨다.

그 절은 효성왕이 개원 이십육년 무인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성덕대왕의 복을 받들고자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종의 명(銘)을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鍾之銘)」이라 하였다.〔성덕은 곧 경덕왕의 아버지 전광대왕이다. 종은 본래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시주한 쇠이므로 성덕종이라 일컫는 것이다.〕

조산대부 전 태자사의랑 한림랑 김필월(金弼粤)이 명을 받들어 종의 명을 지었는데, 글이 번거로워 싣지 않는다.

협주 1

聖徳乃景徳之考典光大王也. 鍾本景徳爲先考所施之金, 故称云聖徳鍾厼.

성덕은 곧 경덕왕의 아버지 전광대왕(典光大王)이다. 종은 본래 경덕왕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시주한 쇠이므로 성덕종이라 일컫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