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사의 돌미륵生義寺石彌勒
「삼국유사」 탑상 제4 「생의사의 돌미륵」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꿈이 시킨 자리를 파니 돌미륵이 나오다
善徳王時釋生義常住道中寺.夢有僧引上南山而行令結草爲標,至山之南洞謂曰,“我埋此處,請師出安嶺上.”旣覺與友人尋所標至其洞掘地,有石弥勒出,置於三花嶺上.善徳王十二年甲辰歳創寺而居,後名生義寺.〔今訛言性義寺.忠淡師每歳重三重九烹茶献供者,是此尊也.〕
선덕왕 때 승려 생의(生義)가 늘 도중사(道中寺)에 머물렀다.
꿈에 어떤 승려가 그를 이끌고 남산에 올라가며 풀을 묶어 표시하게 하였다. 산 남쪽 골짜기에 이르러 말하였다.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스님께서는 꺼내어 고개 위에 모셔 주시오."
깨어난 뒤 벗과 함께 표시한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파니 돌미륵이 나왔다. 이를 삼화령(三花嶺) 위에 모셨다.
선덕왕 12년 갑진년에 절을 세우고 머물렀으니, 뒤에 생의사(生義寺)라 이름하였다.〔지금은 잘못 전해져 성의사라 한다. 충담사가 해마다 삼짇날과 중양절에 차를 달여 바치던 것이 바로 이 부처이다.〕
협주 1
今訛言性義寺. 忠淡師每歳重三重九烹茶献供者, 是此尊也.
지금은 잘못 전해져 성의사(性義寺)라 한다. 충담사(忠談師)가 해마다 삼짇날과 중양절에 차를 달여 바치던 것이 바로 이 부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