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률사栢栗寺
1돌에 남은 발자국
雞林之北岳曰金剛嶺,山之陽有栢栗寺.寺有大悲之像一軀,不知作始而霊異頗著.或云是中國之神匠塑衆生寺像時并造也.諺云此大聖曽上忉利天還来,入法堂時所履石上脚迹至今不刓.或云救夫禮郎還来時之所視迹也.
계림의 북악을 금강령(金剛嶺)이라 하는데, 산 남쪽에 백률사(栢栗寺)가 있다.
절에 대비상(大悲像) 한 구가 있는데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신령한 이적이 자못 뚜렷하다. 혹은 중국의 신묘한 장인이 중생사 상을 만들 때 함께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세간에 이르기를, 이 큰 성인이 일찍이 도리천에 올랐다 돌아와 법당에 들어갈 때 밟았던 돌 위의 발자국이 지금까지 닳지 않았다고 한다.
혹은 부례랑(夫禮郎)을 구해 돌아올 때 보인 자취라고도 한다.
2부례랑이 국선이 되다
天授三年壬辰九月七日,孝昭王奉大玄薩喰之子夫禮郎爲國仙.珠履千徒親安常尤甚.
천수 삼년 임진년 9월 이레에, 효소왕이 대현 살찬(薩飡)의 아들 부례랑을 받들어 국선(國仙)으로 삼았다.
따르는 무리가 천 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안상(安常)과 특히 가까웠다.
협주 1
天授
천수(天授)
3국선이 잡혀가고 거문고와 피리도 사라지다
天授四年癸巳暮春之月,領徒逰金蘭到北溟之境,被犾賊所掠而去.門客皆失措而還,獨安常追迹之,是三月十一日也.大王聞之驚駭不勝曰,“先君得神笛傳于朕躬,今與玄琴藏在内庫,因何國仙忽爲賊俘爲之奈何.”〔琴笛事具載別傳〕時有瑞雲覆天尊庫.王又震懼使撿之,庫内失琴笛二寳.乃曰“朕何不予昨失國仙又亡琴笛.”乃囚司庫吏金貞髙等五人.四月募於國曰,“得琴笛者賞之一歳租.”
천수 사년 계사년 늦봄에, 무리를 거느리고 금란(金蘭)에 놀러 갔다가 북명(北溟) 지경에 이르러 오랑캐 도적에게 잡혀갔다.
문객들은 모두 어쩔 줄 몰라 돌아왔으나, 안상만이 홀로 자취를 쫓았다. 3월 열하루의 일이다.
대왕이 이를 듣고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였다. "선왕께서 신령한 피리를 얻어 짐에게 전하시어 지금 거문고와 함께 내고에 간직해 두었는데, 어찌하여 국선이 갑자기 도적의 포로가 되었는가. 이를 어찌하랴."〔거문고와 피리의 일은 다른 전에 갖추어 실려 있다.〕
그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天尊庫)를 덮었다. 왕이 또 두려워하여 살피게 하니, 창고 안에서 거문고와 피리 두 보배가 사라져 있었다.
이에 말하였다. "짐이 어찌 이리 복이 없는가. 어제는 국선을 잃고 또 거문고와 피리를 잃었구나."
창고를 맡은 아전 김정고(金貞高) 등 다섯 사람을 가두었다. 4월에 나라에 널리 알렸다. "거문고와 피리를 찾는 자에게는 한 해의 조세를 상으로 주리라."
협주 1
琴笛事具載別傳
거문고와 피리의 일은 다른 전에 갖추어 실려 있다.
4대비상 앞에 빌자 모두 돌아오다
五月十五日郎二親就栢栗寺大悲像前,禋祈累夕,忽香卓上得琴笛二寳,而郎·常二人來到於像後.二親顛喜問其所由來,郎曰“予自被椋為波國大都仇羅家之牧子,放牧於大烏羅尼野.忽有一僧容儀端正,手携琴笛來慰曰,‘憶桑梓乎’,予不覺跪于前曰,‘眷戀君親何論其極.’僧曰‘然則冝從我来’,遂率至海壖,又與安常㑹.乃批笛為兩分與二人各乗一隻,自乗其琴泛泛歸來,俄然至此矣.”…施鑄金銀五噐二副各重五十两,摩衲袈裟五領大綃三千疋,田一萬頃納於寺,用荅慈庥焉.大赦國内,賜人爵三級,復民租三年.…封郎爲大角干〔羅之冢宰爵名〕,父大玄阿喰爲大大角干.母龍寳夫人爲沙梁部鏡井宫主,安常師爲大統,司庫五人皆免賜爵各五級.
5월 보름에 낭의 두 어버이가 백률사 대비상 앞에 나아가 여러 밤을 정성껏 빌었다.
홀연 향탁 위에서 거문고와 피리 두 보배를 얻었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이 상 뒤에 와 있었다.
두 어버이가 놀라 기뻐하며 어찌 된 일인지 물으니 부례랑이 말하였다.
"제가 잡혀간 뒤로 그 나라 대도구라(大都仇羅)의 집에서 목동이 되어 대오라니 들에서 짐승을 치고 있었습니다.
홀연 모습이 단정한 승려 하나가 손에 거문고와 피리를 들고 와서 위로하며 '고향이 생각나느냐' 하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앞에 꿇어앉아 '임금과 어버이를 그리는 마음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승려가 '그렇다면 마땅히 나를 따라오라' 하고는 마침내 바닷가로 데려갔는데, 거기서 또 안상을 만났습니다.
이에 피리를 둘로 쪼개어 두 사람에게 주어 각각 하나씩 타게 하고, 자기는 거문고를 타고 둥실 떠서 돌아오니 어느새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을 갖추어 아뢰니 왕이 크게 놀라 사람을 보내 낭을 맞이하고, 거문고와 피리를 따라 대궐로 들어오게 하였다.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다섯 벌씩 두 벌, 각각 무게 오십 냥과 마납가사 다섯 벌, 큰 비단 삼천 필, 밭 일만 경을 절에 바쳐 그 은혜에 보답하였다.
나라 안에 크게 사면하고 사람들에게 벼슬 세 등급을 올려 주었으며 백성의 조세를 세 해 동안 면제하였다.
부례랑을 대각간(大角干)에〔신라의 재상 벼슬 이름이다.〕 봉하고, 아버지 대현 아찬을 대대각간으로, 어머니 용보부인을 사량부 경정궁주로 삼았으며, 안상법사를 대통으로 삼고, 창고를 맡았던 다섯 사람은 모두 놓아주고 벼슬을 다섯 등급씩 올려 주었다.
협주 1
羅之冢宰爵名
신라의 재상 벼슬 이름이다.
5피리 이름을 만만파파식으로 높이다
六月十二日有彗星孛于東方,十七日又孛于西方,日官奏曰,“不封爵於琴笛之瑞.”於是冊号神笛爲萬萬波波息,彗乃㓕.後多霊異文煩不載.世謂安常爲俊永郎徒,不之審也.永郎之徒唯真才·繁完等知名,皆亦不測人也.〔詳見别傳.〕
6월 열이틀에 살별이 동쪽에 나타나고 열이레에 또 서쪽에 나타났다.
일관이 아뢰었다. "거문고와 피리의 상서에 벼슬을 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신령한 피리를 책봉하여 만만파파식(萬萬波波息)이라 이름하니 살별이 곧 사라졌다.
뒤에도 신령한 이적이 많았으나 글이 번거로워 싣지 않는다.
세상에서 안상을 준영랑(俊永郎)의 무리라 하나 자세하지 않다. 영랑의 무리로는 오직 진재(眞才)·번완(繁完) 등이 이름을 알렸으니, 이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자세한 것은 다른 전에 보인다.〕
협주 1
詳見别傳.
자세한 것은 다른 전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