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선화와 미시랑, 그리고 진자사彌勒仙花 未尸郎 眞慈師
1원화를 두었다가 시샘 끝에 폐하다
第二十四真興王姓金氏,名彡麥宗,一作深麥宗.以梁大同六年庚申即位.慕伯父法興之志一心奉佛廣興佛寺,度人爲僧尼.又天性風味多尚神仙擇人家娘子美艶者捧爲原花.要聚徒選士教之以孝悌忠信,亦理國之大要也.乃取南毛娘·峧姣貞娘两花,聚徒三四百人.峧貞者嫉妬毛娘.多置酒飮毛娘,至醉潜舁去北川中舉石埋殺之.其徒罔知去處悲泣而散.有人知其謀者作歌誘街巷小童唱於街.其徒聞之,尋淂其尸於北川中乃殺峧貞娘.於是大王下令廢原花.
스물넷째 진흥왕은 성이 김씨요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며 심맥종(深麥宗)이라고도 한다. 양나라 대동 육년 경신년에 즉위하였다.
큰아버지 법흥왕의 뜻을 사모하여 한마음으로 부처를 받들고 절을 널리 일으켰으며, 사람들을 승려와 비구니가 되게 하였다.
또 천성이 풍류를 좋아하고 신선을 숭상하여, 남의 집 낭자 가운데 아름다운 이를 가려 원화(原花)로 받들었다. 무리를 모아 인재를 가려 효도와 우애와 충성과 믿음을 가르치려 함이니,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큰 요체였다.
이에 남모랑(南毛娘)과 교정랑(峧貞娘) 두 원화를 뽑으니 무리가 삼사백 명이 되었다.
교정이 모랑을 시샘하였다. 술을 많이 차려 모랑에게 먹이고, 취하자 몰래 메고 가서 북천(北川) 가운데 돌을 들어 묻어 죽였다.
그 무리가 간 곳을 알지 못하여 슬피 울며 흩어졌다.
그 꾀를 아는 이가 있어 노래를 지어 거리의 아이들을 꾀어 거리에서 부르게 하였다. 무리가 이를 듣고 북천에서 그 주검을 찾아내고는 교정랑을 죽였다.
이에 대왕이 명을 내려 원화를 폐하였다.
2화랑을 다시 세우다
累年王又念欲興邦國湏先風月道,更下令選良家男子有徳行者攺爲花娘.始奉薛原郎爲國仙,此花郎國仙之始.故竪碑於溟州.自此使人悛惡更善,上敬下順,五常·六藝·三師·六正廣行於代.〔囯史真智王大建八年庚申始奉花郎,恐史傳乃誤.〕
여러 해 뒤에 왕이 또 생각하기를, 나라를 일으키려면 모름지기 풍월도(風月道)를 먼저 세워야 한다 하였다.
다시 명을 내려 좋은 집안의 사내 가운데 덕행이 있는 이를 가려 뽑아 화랑(花郎)으로 고쳤다.
처음으로 설원랑(薛原郎)을 받들어 국선(國仙)으로 삼으니, 이것이 화랑 국선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명주(溟州)에 비를 세웠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악을 뉘우쳐 선으로 고치고,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따르게 되었으며, 오상·육예·삼사·육정이 그 시대에 널리 행해졌다.〔『국사』에 진지왕 대건 팔년 경신년에 비로소 화랑을 받들었다 하나, 아마도 사서의 전함이 잘못인 듯하다.〕
협주 1
囯史真智王大建八年庚申始奉花郎, 恐史傳乃誤.
『국사』에 진지왕 대건 팔년 경신년에 비로소 화랑을 받들었다 하나, 아마도 사서의 전함이 잘못인 듯하다.
3진자가 미륵을 찾아 나서다
及真智王代有興輪寺僧真慈〔一作貞慈也.〕.每就堂主弥勒像前發原誓言,“願我大聖化作花郎出現於世,我常親近睟容奉以周旋.”…一夕夢有僧謂曰,“汝徃熊川〔今公州〕水源寺得見弥勒仙花也.”慈覺而驚喜,尋其寺行十日程一歩一禮.及到其寺,門外有一郎儂纎不爽.盼倩而迎引入小門邀致賔軒.慈且升且揖曰,“郎君素昧平昔何見待殷勤如此.”郎曰,“我亦亰師人也.見師髙蹈逺届勞来之厼.”俄而岀門,不知所在.…寺僧…乃曰,“此去南隣有千山,自古賢哲寓止多有冥感.盍歸彼居.”慈從之至於山下,山霊變老人出迎曰,“到此奚爲.”荅曰,“願見弥勒仙花厼.”老人曰,“向於水源寺之門外已見弥勒仙花,更来何求.”慈聞即驚汗驟還本寺.居月餘,真智王聞之徴詔問其由曰,“郎旣自稱亰師人,聖不虛言,盍覔城中乎.”
진지왕 대에 이르러 흥륜사에 진자(眞慈)라는 승려가 있었다.〔정자라고도 한다.〕
늘 법당 주불인 미륵상 앞에 나아가 발원하여 맹세하였다. "원컨대 우리 큰 성인께서 화랑으로 몸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시면, 제가 늘 가까이 모시고 받들겠습니다."
그 정성이 간절하여 비는 마음이 날로 두터워졌다.
어느 저녁 꿈에 승려가 나타나 말하였다. "너는 웅천(熊川)〔지금의 공주이다.〕 수원사(水源寺)에 가면 미륵선화를 보게 되리라."
진자가 깨어 놀라고 기뻐하여, 그 절을 찾아 열흘 길을 한 걸음마다 한 번씩 절하며 갔다.
그 절에 이르니 문밖에 한 소년이 있었는데 곱고 어여쁨이 어긋남이 없었다. 눈웃음으로 맞이하여 작은 문으로 이끌어 손님방으로 모셨다.
진자가 오르며 읍하고 말하였다. "낭군은 평소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 어찌 이토록 은근히 대접하시오."
낭이 말하였다. "저 또한 서울 사람입니다. 스님께서 높은 뜻으로 멀리 오심을 보고 위로하려는 것뿐입니다."
이윽고 문을 나가더니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진자는 우연이려니 하여 그리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다만 절의 승려에게 지난 꿈과 찾아온 뜻을 이야기하고 말하였다. "잠시 아랫자리에 머물며 미륵선화를 기다리고자 하는데 어떻겠소."
절의 승려는 그 마음이 허황하다 여겼으나 그 정성스러움을 보고 말하였다. "여기서 남쪽 이웃에 천산(千山)이 있는데, 예로부터 어질고 밝은 이들이 머물러 그윽한 감응이 많았소. 그리로 가 보는 것이 어떻겠소."
진자가 그 말을 좇아 산 아래에 이르니, 산신령이 노인으로 변해 나와 맞으며 말하였다. "여기에 무엇 하러 왔는가."
대답하였다. "미륵선화를 뵙기를 원합니다."
노인이 말하였다. "지난번 수원사 문밖에서 이미 미륵선화를 보았거늘, 다시 와서 무엇을 구하는가."
진자가 듣고 곧 놀라 땀을 흘리며 본절로 달려 돌아왔다.
한 달 남짓 지나 진지왕이 이를 듣고 불러 그 까닭을 묻고 말하였다. "낭이 이미 스스로 서울 사람이라 하였고 성인은 헛된 말을 하지 않으니, 어찌 성안에서 찾아보지 않는가."
협주 2
一作貞慈也.
정자(貞慈)라고도 한다.
今公州
지금의 공주이다.
4미시랑을 만나 국선으로 삼다
慈奉宸旨㑹徒衆遍於閭閻間物色求之.有一小郎子,断紅齊具眉彩秀䴡,霊妙寺之東北路傍樹下婆娑而遊.慈迓之驚曰,“此弥勒仙花也.”乃就而問曰,“郎家何在,願聞芳氏.”郎荅曰,“我名未尸.兒孩時爺孃俱没未知何姓.”於是肩輿而入見於王,王敬愛之奉爲國仙.其和睦子弟禮義風敎不類於常.風流耀世㡬七年忽亾所在.慈哀壞殆甚.然飮沐慈澤,昵承清化能自悔攺精修爲道,晩年亦不知所終.說者曰,“未與弥聲相近,尸與力形相類,乃託其近似而相䛧也.大聖不獨感慈之誠欵也,抑有縁于兹圡故比比示現焉.”至今國人稱神仙曰弥勒仙花,凢有媒係於人者曰未尸皆慈氏之遺風也.路傍樹至今名見郎,又俚言似如樹〔一作印如樹.〕.
진자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무리를 모아 마을 사이를 두루 다니며 찾았다.
한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얼굴빛이 곱고 눈썹이 아름다웠으며, 영묘사 동북쪽 길가 나무 아래에서 거닐며 놀고 있었다.
진자가 맞이하며 놀라 말하였다. "이분이 미륵선화다."
나아가 물었다. "낭의 집은 어디이며 성씨를 듣기 원합니다."
낭이 대답하였. "제 이름은 미시(未尸)입니다. 어릴 적에 부모를 모두 여의어 무슨 성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에 가마에 태워 들어가 왕께 뵈니, 왕이 공경하고 사랑하여 받들어 국선으로 삼았다.
그가 자제들을 화목하게 하고 예의로 가르친 것이 여느 이와 같지 않았다. 풍류가 세상에 빛난 지 일곱 해쯤에 홀연히 간 곳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진자가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매우 심하였다. 그러나 자비로운 은택에 젖고 맑은 교화를 가까이 받든 터라, 스스로 뉘우쳐 고치고 정성껏 도를 닦았다. 늘그막에 그 또한 마친 곳을 알 수 없다.
말하는 이가 이렇게 이른다.
"미(未)는 미(彌)와 소리가 가깝고, 시(尸)는 력(力)과 모양이 비슷하다. 그 비슷함에 기대어 서로 감춘 것이다. 큰 성인이 다만 진자의 정성에 감응한 것만이 아니라, 이 땅에 인연이 있었으므로 자주 모습을 나타내신 것이다."
지금도 나라 사람들이 신선을 미륵선화라 일컫고, 남에게 중매를 서는 이를 미시라 하는 것이 모두 자씨(慈氏)의 남긴 풍속이다.
길가의 나무는 지금도 견랑(見郎)이라 부르며, 또 우리말로 사여수(似如樹)라 한다.〔인여수라고도 한다.〕
협주 1
一作印如樹.
인여수(印如樹)라고도 한다.
5기려서 이르다
讃曰.尋芳一歩一瞻風,到處栽培一樣㓛.羃地春歸無覔處,誰知頃刻上林紅.
기려서 이른다.
꽃다움을 찾아 한 걸음마다 한 번씩 우러르니 이르는 곳마다 가꾼 공이 한결같구나 땅을 덮던 봄이 돌아가 찾을 곳 없더니 뉘 알았으랴, 잠깐 사이 동산이 붉어질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