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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백월의 두 성인 — 노힐부득과 달달박박南白月二聖 努肹夫得 怛怛朴朴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5 · 한자 1,566자 · 낭독 6.3분

「삼국유사」 탑상 제4 「남백월의 두 성인 —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당나라 못에 비친 산을 찾다

白月山两聖成道記云,“白月山在新羅仇史郡之北.〔古之屈自郡,今義安郡.〕峰巒竒秀,延袤數百里真巨鎮也.”古老相傳云.“昔唐皇帝甞鑿一池,每月望前月色滉朗,中有一山,嵓石如師子隠映花間之影,現於池中.上命畫工啚其狀,遣使搜訪天下,至海東見此山有大師子嵓.山之西南二歩許有三山,其名花山〔其山一体三首,故云三山.〕與啚相近.然未知真僞以隻履懸於師子嵓之頂使還奏聞.履影亦現池.帝乃異之賜名曰白月山,〔望前白月影現,故以名之.〕然後池中無影.”

「백월산 양성성도기(白月山兩聖成道記)」에 이르기를,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仇史郡) 북쪽에 있다.〔옛 굴자군이니 지금의 의안군이다.〕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며 수백 리에 뻗쳤으니 참으로 큰 진산이다.

옛 노인들이 이렇게 전한다.

옛날 당나라 황제가 못 하나를 팠는데, 달마다 보름 전이면 달빛이 환하고 그 가운데 산 하나가 있어, 바위가 사자 같고 꽃 사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못에 나타났다.

황제가 화공에게 명하여 그 모습을 그리게 하고 사신을 보내 천하를 찾게 하였다. 해동에 이르러 이 산에 큰 사자바위가 있는 것을 보았다. 산 서남쪽 두 걸음쯤에 세 산이 있어 이름이 화산(花山)이었는데〔그 산은 몸이 하나에 봉우리가 셋이므로 삼산이라 한다.〕 그림과 서로 가까웠다.

그러나 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신 한 짝을 사자바위 꼭대기에 걸어 두고 돌아가 아뢰었다. 신의 그림자가 또한 못에 나타났다.

황제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내려 백월산이라 하였다.〔보름 전 흰 달에 그림자가 나타났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그런 뒤로 못에 그림자가 없어졌다.

협주 3

古之屈自郡, 今義安郡.

옛 굴자군이니 지금의 의안군이다.

其山一体三首, 故云三山.

그 산은 몸이 하나에 봉우리가 셋이므로 삼산이라 한다.

望前白月影現, 故以名之.

보름 전 흰 달에 그림자가 나타났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2두 벗이 함께 출가하여 따로 암자를 짓다

山之東南三千歩許有仙川村,村有二人.其一曰努肹夫得,父名月藏,母味勝.其一曰怛怛朴朴,父名修梵,母名梵摩.〔郷傳云雉山村誤矣.二士之名方言,二家各以二士心行騰騰苦節二義名之尓.〕皆風骨不凡,有域外遐想而相與友善.…觀身世無常因相謂曰,“腴田羙歳良利也,不如衣食之應念而至自然得飽煖也,婦女屋宅情好也,不如蓮池花藏千聖共逰…况學佛當成佛,修真必得真.…”遂唾謝人間世將隱於深谷.夜夢白毫光自西而至光中垂金色臂摩二人頂.及覺說夢與之符同,皆感嘆久之遂入白月山無等谷.朴朴師占北嶺師子嵓作板屋八尺房而居故云板房,夫得師占東嶺磊石下有水處亦成方丈而居焉故云磊房,〔郷傳云夫得處山北瑠璃洞今板房, 朴朴居山南法精洞磊房, 與此相反. 以今驗之郷傳誤矣.〕各庵而居.夫得勤求弥勒,朴朴禮念弥陁.

산 동남쪽 삼천 걸음쯤에 선천촌(仙川村)이 있고, 마을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노힐부득(努肹夫得)이니 아버지 이름은 월장(月藏)이요 어머니는 미승(味勝)이다. 하나는 달달박박(怛怛朴朴)이니 아버지 이름은 수범(修梵)이요 어머니는 범마(梵摩)이다.〔향전에 치산촌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우리말이니, 두 집안이 각각 두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실에서 '등등'과 '고절' 두 뜻을 따 이름한 것일 뿐이다.〕

둘 다 풍채와 골격이 범상치 않고 세상 밖을 생각하는 뜻이 있어 서로 벗으로 지냈다.

나이 스물에 마을 동북쪽 고개 밖 법적방(法積房)에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얼마 뒤 서남쪽 치산촌 법종곡 승도촌에 옛 절이 있어 머물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과 소불전 두 골짜기에 각각 살았다.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 붙어 살았고 박박은 유리광사(瑠璃光寺)에 살았다. 둘 다 처자를 데리고 살면서 살림을 꾸리고 서로 오갔으나, 마음을 편히 하고 세상 밖을 향하는 뜻은 잠시도 그친 적이 없었다.

몸과 세상이 덧없음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기름진 밭과 좋은 해는 이롭기는 하나, 옷과 밥이 마음먹은 대로 이르러 저절로 배부르고 따뜻한 것만 못하다. 아내와 집은 정겹기는 하나, 연꽃 못 화장세계에서 천 성인과 함께 노니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고, 참됨을 닦으면 반드시 참됨을 얻는다."

마침내 인간 세상을 떨치고 깊은 골짜기에 숨으려 하였다.

밤 꿈에 흰 터럭의 빛이 서쪽에서 이르고 빛 가운데서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깨어나 꿈을 이야기하니 서로 들어맞았다. 오래 감탄하고 마침내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에 들어갔다.

박박은 북쪽 고개 사자바위를 차지하여 여덟 자 널빤지 집을 짓고 살았으므로 판방(板房)이라 하고, 부득은 동쪽 고개 돌무더기 아래 물 있는 곳을 차지하여 또한 방장을 지어 살았으므로 뇌방(磊房)이라 하였다.〔향전에는 이와 반대로 적었으나 지금 살펴보면 향전이 잘못이다.〕

각각 암자를 두고 살았는데, 부득은 미륵을 부지런히 구하였고 박박은 아미타를 예로 염하였다.

협주 2

郷傳云雉山村誤矣. 二士之名方言, 二家各以二士心行騰騰苦節二義名之尓.

향전에 치산촌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우리말이니, 두 집안이 각각 두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실에서 '등등(騰騰)'과 '고절(苦節)' 두 뜻을 따 이름한 것일 뿐이다.

郷傳云夫得處山北瑠璃洞今板房, 朴朴居山南法精洞磊房, 與此相反. 以今驗之郷傳誤矣.

향전에는 부득이 산 북쪽 유리동 지금의 판방에 있고 박박이 산 남쪽 법정동 뇌방에 살았다 하여 이와 반대다. 지금 살펴보면 향전이 잘못이다.

3밤에 찾아온 여인을 하나는 물리고 하나는 들이다

未盈三載景龍三年己酉四月八日,聖徳王即位八年也.日将夕有一娘子年㡬二十姿儀殊妙氣襲蘭麝俄然到北庵請寄宿焉,因投詞曰.…朴朴曰,“蘭若護凈爲務,非爾所取近.行矣無滯此處.”閉門而入.〔記云,“我百念灰冷無以血囊見試.”〕娘歸南庵又請如前,夫得曰,“汝從何處犯夜而来”,娘荅曰,“湛然與大虛同體,何有徃来.伹聞賢士志願深重徳行髙堅,將欲助成菩提.”因投一偈曰.…師聞之驚駭謂曰,“此地非婦女相汚.然隨順衆生亦菩薩行之一也,况窮谷夜暗其可忽視歟.”乃迎揖庵中而置之.…及夜將艾娘呼曰,“予不幸適有産憂乞和尚排備苫草.”夫得悲矜莫逆燭火殷勤娘旣産又請浴.…又備盆槽坐娘於中薪湯以浴之.旣而槽中之水香氣郁烈變成金液.弩肹大駭,娘曰,“吾師亦冝浴此.”肹勉強從之,忽覺精神爽凉肌膚金色.視其傍忽生一蓮䑓.娘勧之坐因謂曰,“我是觀音菩薩來助大師成大菩提矣.”言訖不現.朴朴謂肹今夜必染戒將歸听之.旣至見肹坐蓮䑓作弥勒尊像放光明身彩檀金不覺扣頭而禮曰,“何得至於此乎”,肹具叙其由.朴朴嘆曰,“我乃障重幸逢大聖而反不遇.大徳至仁先吾著鞭,願無忘昔日之契事須同攝.”肹曰,“槽有餘液但可浴之.”朴朴又浴亦如前成無量壽二尊相對儼然.…二聖爲說法要全身躡雲而逝.

세 해가 차기 전, 경룡 삼년 기유년 4월 초파일이니 성덕왕 즉위 8년이다.

해가 저물 무렵 한 낭자가 있었는데 나이 스물쯤에 자태가 남달리 묘하고 난초와 사향 향기를 풍기며 홀연 북쪽 암자에 이르러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다. 이어 시를 지어 건넸다. 산길에 해가 저물어 사방에 이웃이 끊겼으니, 오늘 이 암자 아래 묵고자 하오니 자비로운 화상은 성내지 마시라는 뜻이었다.

박박이 말하였다. "절은 깨끗함을 지키는 것을 힘쓰는 곳이니 그대가 가까이할 바가 아니오. 가시오, 여기 머물지 마시오."

문을 닫고 들어갔다.〔기록에 이르기를 "나는 온갖 생각이 재처럼 식었으니 피주머니로 나를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

낭자가 남쪽 암자로 가서 앞서처럼 청하였다.

부득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디서 밤을 무릅쓰고 왔는가."

낭자가 대답하였다. "고요하기가 큰 허공과 한 몸이거늘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이의 뜻이 깊고 무거우며 덕행이 높고 굳다 하기에, 도우려 온 것입니다."

이어 게송 하나를 건넸다. 저문 산길에 이웃이 끊기고 대와 솔 그늘이 깊으며 시내 소리가 새로운데, 묵기를 청함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라 스님이 길을 가리켜 주기를 바라서이니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는 뜻이었다.

스님이 듣고 놀라 말하였다. "이곳은 여자가 더럽힐 곳이 아니다. 그러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다. 하물며 깊은 골짜기에 밤이 어두우니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이에 맞아들여 암자 안에 두었다.

밤이 되자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가다듬으며, 희미한 등불이 벽을 반쯤 비추는 가운데 조용히 염불하였다.

밤이 깊어 갈 무렵 낭자가 불렀다. "제가 불행히 마침 해산할 기미가 있으니, 화상께서 짚자리를 마련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부득이 가엾이 여겨 거스르지 못하고 촛불을 은근히 밝혔다. 낭자가 아이를 낳고 또 목욕하기를 청하였다.

노힐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에 엇갈렸다. 그러나 가엾이 여기는 정이 더할 뿐 그치지 않아, 또 통을 마련해 낭자를 그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시켰다.

이윽고 통 안의 물에서 향기가 짙게 나더니 금빛 액체로 변하였다. 노힐이 크게 놀랐다.

낭자가 말하였다. "우리 스님도 마땅히 여기에 목욕하십시오."

노힐이 마지못해 따르니, 홀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결이 금빛이 되었다. 곁을 보니 홀연 연화대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낭자가 앉기를 권하고 말하였다. "나는 관음보살이다. 큰 스님이 큰 깨달음을 이루도록 도우러 왔다."

말을 마치고 나타나지 않았다.

박박은 노힐이 오늘 밤 반드시 계를 더럽혔으리라 여겨 가서 비웃으려 하였다. 이르러 보니 노힐이 연화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빛을 놓고 몸빛이 단금(檀金) 같았다.

저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말하였다.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노힐이 그 까닭을 갖추어 말하였다.

박박이 탄식하였다. "나는 업장이 무거워 다행히 큰 성인을 만나고도 도리어 만나지 못한 셈이 되었다. 큰 덕과 지극한 어짊으로 나보다 먼저 채찍을 잡았으니, 원컨대 옛날의 약속을 잊지 말고 일을 함께 하자."

노힐이 말하였다. "통에 남은 물이 있으니 목욕할 수 있다."

박박이 또 목욕하니 앞서와 같이 무량수(無量壽)를 이루어, 두 존상이 마주하여 엄연하였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며 감탄하였다. "드물고 드문 일이로다."

두 성인이 법의 요체를 설하고 온몸으로 구름을 밟고 떠나갔다.

협주 1

記云, “我百念灰冷無以血囊見試.”

기록에 이르기를 "나는 온갖 생각이 재처럼 식었으니 피주머니로 나를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

4절이 서고, 일연이 논하다

天寳十四年乙未新羅景徳王即位〔古記云天鑑二十四年乙未法㒷即位, 何先後倒錯之甚如此.〕聞斯事,以丁酉歳遣使創大伽藍号白月山南寺.廣徳二年〔古記云大暦元年, 亦誤.〕甲辰七月十五日寺成.更塑弥勒尊像安於金堂額曰現身成道弥勒之殿.又塑弥陁像安於講堂,餘液不足塗浴未周故弥陁像亦有斑駁之痕.額曰現身成道無量壽殿.議曰.娘可謂應以婦女身攝化者也.華嚴經摩耶夫人善知識寄十一地生佛如幻解脫門,今娘之桷産㣲意在此.觀其投詞哀婉可愛宛轉有天仙之趣.鳴呼,使娘婆不解隨順衆生語言陁羅尼,其能若是乎.其末聮冝云‘清風一榻莫予嗔.’然不爾云者盖不欲同乎流俗語爾.

천보 십사년 을미년에 신라 경덕왕이 즉위하여〔『고기』에 천감 이십사년 을미년에 법흥왕이 즉위하였다 하니, 어찌 앞뒤가 이토록 심하게 뒤바뀌었는가.〕 이 일을 듣고, 정유년에 사신을 보내 큰 절을 세우고 백월산 남사(南寺)라 이름하였다.

광덕 이년〔『고기』에 대력 원년이라 한 것도 잘못이다.〕 갑진년 7월 보름에 절이 이루어졌다.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에 모시고 현판을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하였다.

또 아미타상을 만들어 강당에 모셨는데, 남은 물이 모자라 바르고 씻기를 두루 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미타상에는 얼룩진 자국이 있다. 현판을 '현신성도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하였다.

논하여 이른다.

낭자는 여인의 몸으로 응하여 교화한 이라 할 만하다. 『화엄경』에 마야부인이 선지식으로서 열한 지위에 붙어 부처를 낳음이 허깨비 같은 해탈문이라 하였으니, 지금 낭자가 아이를 낳은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그가 건넨 시를 보면 애처롭고 곱고 어여뻐 완연히 하늘 신선의 정취가 있다.

아, 낭자가 중생을 따르는 말의 다라니를 알지 못하였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그 끝 구절은 마땅히 '맑은 바람 한 자리이니 나를 성내지 마시라'고 해야 할 것이나,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은 대개 세속의 말과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협주 2

古記云天鑑二十四年乙未法㒷即位, 何先後倒錯之甚如此.

『고기』에 천감 이십사년 을미년에 법흥왕이 즉위하였다 하니, 어찌 앞뒤가 이토록 심하게 뒤바뀌었는가.

古記云大暦元年, 亦誤.

『고기』에 대력 원년이라 한 것도 잘못이다.

5기려서 이르다 — 세 수

讃曰.滴翠嵓前剥啄聲,何人日暮扣雲扃.南庵且近冝尋去,莫踏蒼苔汚我庭.右北庵.谷暗何歸已暝煙,南䆫有蕈且流連.夜闌百八深深轉,只恐成喧惱客眠.右南庵.十里松隂一徑迷,訪僧來試夜招提.三槽浴罷天将曉,生下雙児擲向西.右聖娘.

기려서 이른다.

푸른 물 듣는 바위 앞에 문 두드리는 소리 누가 해 저문 때 구름 빗장을 두드리는가 남쪽 암자가 가까우니 그리로 찾아가시오 푸른 이끼를 밟아 내 뜰을 더럽히지 마시오

— 북쪽 암자

골짜기 어두운데 어디로 가리, 이미 저녁 연기라 남쪽 창에 자리가 있으니 잠시 머무시오 밤 깊도록 백여덟 번 염주를 깊이 굴리나니 다만 시끄러워 손님 잠을 방해할까 두렵소

— 남쪽 암자

십 리 솔 그늘에 한 갈래 길을 잃고 스님을 찾아와 밤 절집을 시험하네 세 통의 목욕을 마치고 하늘이 밝으려 할 때 두 아이를 낳아 두고 서쪽으로 던져 가네

— 거룩한 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