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오만 진신臺山五萬眞身
1자장이 태화지에서 게송을 받다
桉山中古傳,此山之署名真聖住䖏者始自慈藏法師.初法師欲見中國五䑓山文殊真身,以善徳王代貞觀十年丙申〔唐僧傳云十二年,今從三國夲史.〕入唐.初至中國太和池邉石文殊䖏,虔祈七日,忽夢大聖授四句偈.覺而記憶然皆梵語罔然不解.明旦忽有一僧将緋羅金㸃袈娑一領佛鉢一具佛頭骨一片到于師邉問,“何以無聊.”師荅“以夢所受四句偈梵音不解爲辞.”僧譯之云…仍以所将袈裟䓁付而囑云,此是夲師釋迦尊之道具也,汝善護持.又曰,“汝夲國艮方溟州界有五䑓山,一萬文殊常住在彼汝徃見之.”言已不現.遍尋霊迹将欲東還,太和池龍現身請齋,供飬七日.乃告云,“昔之傳偈老僧是真文殊也.”亦有叮囑創寺立塔之事,具載别傳.
산중에 전하는 옛 기록을 살피건대, 이 산을 참성인이 머무는 곳이라 이름한 것은 자장법사에게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법사가 중국 오대산의 문수 참몸을 뵈려고, 선덕왕 대 정관 십년 병신년에〔당나라 『승전』에 십이년이라 하나 이제 『삼국본사』를 따른다.〕 당나라에 들어갔다.
먼저 중국 태화지 가의 돌문수가 있는 곳에 이르러 이레를 정성껏 빌었더니, 홀연 꿈에 큰 성인이 네 구의 게송을 주었다. 깨어나 외기는 하였으나 모두 범어라 아득하여 알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 홀연 한 승려가 붉은 비단에 금점을 놓은 가사 한 벌과 부처의 바리 한 벌과 부처의 머리뼈 한 조각을 가지고 법사 곁에 이르러 물었다. "어찌하여 시름겨워 하시오."
법사가 "꿈에 받은 네 구의 게송이 범어라 알지 못해서"라고 대답하니, 승려가 그 뜻을 풀어 주었다. 온갖 법을 밝게 알면 제 성품에 있는 바가 없음을 알고, 이렇게 법의 성품을 깨달으면 곧 노사나를 뵙는다는 뜻이었다.
이어 가지고 온 가사 등을 건네며 당부하였다. "이는 본사 석가세존의 도구이니 그대는 잘 지니시오."
또 말하였다. "그대 본국의 동북쪽 명주 지경에 오대산이 있고 일만 문수가 늘 머무르니, 그대는 가서 뵈시오."
말을 마치고 나타나지 않았다.
신령한 자취를 두루 찾고 동쪽으로 돌아오려 할 때, 태화지의 용이 몸을 나타내어 재를 청하므로 이레를 공양하였다. 이에 알려 주었다. "지난번 게송을 전한 늙은 승려가 바로 참문수다."
아울러 절을 세우고 탑을 세우라 당부한 일이 있다.〔다른 전에 갖추어 실려 있다.〕
협주 2
唐僧傳云十二年, 今從三國夲史.
당나라 『승전』에 십이년이라 하나, 이제 『삼국본사』를 따른다.
具載别傳.
다른 전에 갖추어 실려 있다.
2자장은 사흘 만에 돌아가다
師以貞觀十七年來到此山欲覩真身,三日晦隂不果而還,復住元寧寺乃見文殊云,“至葛蟠處.”今淨嵓寺是.〔亦載别傳.〕後有頭陁·信義乃梵日之門人也,來尋藏師憇息之地創庵而居.信義旣卒庵亦久廢,有水多寺長老有縁重創而居,今月精寺是也.
법사가 정관 십칠년에 이 산에 이르러 참몸을 뵈려 하였으나, 사흘 동안 날이 흐려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다시 원녕사(元寧寺)에 머무르다가 비로소 문수를 뵈니 "칡덩굴이 서린 곳으로 가라" 하였다. 지금의 정암사(淨岩寺)가 그곳이다.〔또한 다른 전에 실려 있다.〕
뒤에 두타 신의(信義)가 있어 곧 범일의 문인인데, 자장법사가 쉬던 자리를 찾아와 암자를 세우고 살았다.
신의가 죽은 뒤 암자도 오래 폐하였는데, 수다사의 장로 유연이 다시 세우고 살았으니 지금의 월정사가 그것이다.
협주 1
亦載别傳.
또한 다른 전에 실려 있다.
3두 형제가 오대산에 숨어들다
藏師之返新羅淨神大王太子寳川·孝明二昆弟〔按國史,新羅無淨神·寳川·孝明三父子明文…則淨神恐政明神文之訛也.孝明乃孝照一作昭之訛也.…神龍年立寺者乃聖徳王也.〕到河西府,〔今溟州亦有河西郡是也.一作河曲縣,今蔚州非是也.〕世献角干之家留一宿.翌日過大嶺各領千徒到省烏坪遊覽累日,忽一夕昆弟二人宻約方外之志,不令人知逃隱入五䑓山.〔古記云“大和元年戊申八月初王隠山中”,恐此文大誤.按孝照…以天授三年壬辰即位,時年十六.長安二年壬寅崩,壽二十六.…若曰太和元年戊申,則先於孝照即位甲辰已過四十五歳,乃太宗文武王之世也.以此知此文爲誤,故不取之.〕侍衛不知所歸於是還國.
자장법사가 신라로 돌아온 뒤, 정신대왕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형제가〔『국사』를 살피건대 신라에 정신·보천·효명 세 부자에 관한 분명한 글이 없다. '정신'은 아마도 정명, 곧 신문왕의 잘못인 듯하고 '효명'은 곧 효조의 잘못인 듯하다. 신룡 연간에 절을 세운 이는 곧 성덕왕이다.〕 하서부에 이르러〔지금의 명주에 하서군이 있는 것이 이것이다. 하곡현이라 한 것도 있으나 지금의 울주는 아니다.〕 세헌 각간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대령을 넘어 각각 천 명을 거느리고 성오평에 이르러 여러 날을 노닐었다.
홀연 어느 저녁 두 형제가 세상 밖으로 나갈 뜻을 은밀히 약속하고, 남이 알지 못하게 달아나 오대산으로 숨어들었다.〔『고기』에 '태화 원년 무신년'이라 하나 이 글은 크게 잘못된 듯하다. 연대를 따져 보면 효조왕 즉위보다 마흔다섯 해나 앞서 태종·문무왕 때가 되므로, 이로써 잘못임을 알겠기에 취하지 않는다.〕
모시던 이들이 간 곳을 알지 못하여 나라로 돌아갔다.
협주 2
按國史, 新羅無淨神·寳川·孝明三父子明文 … 則淨神恐政明神文之訛也. 孝明乃孝照一作昭之訛也. … 神龍年立寺者乃聖徳王也.
『국사』를 살피건대 신라에 정신·보천·효명 세 부자에 관한 분명한 글이 없다. 다만 이 기록 아래 글에 신룡 원년에 터를 열어 절을 세웠다 하니, 신룡은 곧 성덕왕 즉위 4년 을사년이다. '정신'은 아마도 정명, 곧 신문왕의 잘못인 듯하고, '효명'은 곧 효조(효소)의 잘못인 듯하다. 신룡 연간에 절을 세운 이는 곧 성덕왕이다.
古記云 “大和元年戊申八月初王隠山中”, 恐此文大誤. … 若曰太和元年戊申, 則先於孝照即位甲辰已過四十五歳, 乃太宗文武王之世也. 以此知此文爲誤, 故不取之.
『고기』에 '태화 원년 무신년 팔월 초에 왕이 산중에 숨었다' 하나 이 글은 크게 잘못된 듯하다. 효조왕은 천수 삼년 임진년에 즉위하였고 그때 나이 열여섯이며 장안 이년 임인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스물여섯이다. 만약 태화 원년 무신년이라 하면 효조왕이 즉위한 갑진년보다 마흔다섯 해나 앞서니 곧 태종·문무왕 때가 된다. 이로써 이 글이 잘못임을 알겠으므로 취하지 않는다.
4다섯 봉우리에서 오만 참몸을 뵙다
二太子到山中青蓮忽開地上.兄太子結庵而止住,是日寳川庵.向東北行六百餘歩北䑓南麓亦有青蓮開處,弟太子孝明又結庵而止,各懃修業.一日同上五峯瞻禮次,東䑓滿月山有一萬觀音真身現在,南䑓騏驎山八大菩薩爲首一萬地藏,西䑓長嶺山無量壽如來爲首一萬大勢至,北䑓象王山釋迦如来爲首五百大阿羅漢,中䑓風盧山毗盧遮那爲首一萬文殊…五萬真身一一瞻禮.
두 태자가 산중에 이르니 푸른 연꽃이 홀연 땅 위에 피었다.
형 태자가 암자를 얽고 머무르니 이를 보천암(寶川庵)이라 한다. 동북쪽으로 육백여 걸음을 가니 북대 남쪽 기슭에도 푸른 연꽃이 핀 곳이 있어, 아우 효명태자가 또 암자를 얽고 머물렀다. 각각 부지런히 도를 닦았다.
하루는 함께 다섯 봉우리에 올라 우러러 예배하는데 —
동대 만월산에는 일만 관음의 참몸이 나타나 있었고, 남대 기린산에는 여덟 큰 보살을 우두머리로 일만 지장이, 서대 장령산에는 무량수여래를 우두머리로 일만 대세지가, 북대 상왕산에는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오백 대아라한이, 중대 풍로산에는 비로자나를 우두머리로 일만 문수가 있었다.
오만 참몸에 하나하나 우러러 예배하였다.
5형은 울며 사양하고 아우가 왕이 되다
二公每汲洞中水煎茶献供,至夜各庵修道.淨神王之弟與王争位,國人廢之,遣將軍四人到山迎之.先到孝明庵前呼萬歳,時有五色雲七日垂覆.國人尋雲而畢至排列鹵薄,将邀两太子而歸.寳川哭泣以辞,乃奉孝明歸即位.
두 분이 날마다 골짜기 물을 길어 차를 달여 공양하고, 밤이 되면 각각 암자에서 도를 닦았다.
정신왕의 아우가 왕과 자리를 다투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하고, 장군 네 사람을 보내 산에 이르러 맞이하게 하였다.
먼저 효명의 암자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니, 그때 오색 구름이 이레 동안 드리워 덮였다.
나라 사람들이 구름을 좇아 다 이르러 의장을 벌여 놓고 두 태자를 맞아 돌아가려 하였다.
보천은 울며 사양하였다. 이에 효명을 받들어 돌아가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6진여원을 열고 화엄사를 맺다
理國有年〔記云,在位二十餘年盖崩年壽二十六之訛也.在位但十年尓.又神文之弟爭位事囯史無文,未詳.〕以神龍元年〔乃唐中宗復位之年,聖徳王即位四年也.〕乙巳三月初四日始攺創真如院,大王親率百寮到山營排殿堂,并塑泥像文殊大聖安于堂中.以知識靈卞䓁五貟長轉華嚴経仍結爲華嚴社,長年供費每歳春秋各給近山州·縣倉租一百石.淨油一石·以爲恒䂓…
나라를 다스린 지 여러 해에〔기록에 재위 스무 해 남짓이라 한 것은 아마도 죽을 때 나이 스물여섯을 잘못 옮긴 듯하다. 자리에 있은 것은 다만 열 해뿐이다. 또 신문왕의 아우가 자리를 다툰 일은 『국사』에 글이 없어 자세하지 않다.〕 신룡 원년〔곧 당나라 중종이 다시 자리에 오른 해이며 성덕왕 즉위 4년이다.〕 을사년 3월 초나흘에 비로소 진여원을 고쳐 세웠다.
대왕이 몸소 백관을 거느리고 산에 이르러 전각을 지어 벌이고, 아울러 흙으로 문수대성의 상을 빚어 법당 가운데 모셨다.
지식(知識) 영변(靈卞) 등 다섯 사람으로 하여금 오래도록 『화엄경』을 돌려 읽게 하고 이내 화엄사(華嚴社)를 맺었다.
해마다 드는 공양 비용은 봄가을에 각각 산 가까운 주와 현의 창고에서 조 백 섬과 정유 한 섬을 주는 것을 떳떳한 규례로 삼았다.
협주 2
記云, 在位二十餘年盖崩年壽二十六之訛也. 在位但十年尓. 又神文之弟爭位事囯史無文, 未詳.
기록에 재위 스무 해 남짓이라 한 것은 아마도 죽을 때 나이 스물여섯을 잘못 옮긴 듯하다. 자리에 있은 것은 다만 열 해뿐이다. 또 신문왕의 아우가 자리를 다툰 일은 『국사』에 글이 없어 자세하지 않다.
乃唐中宗復位之年, 聖徳王即位四年也.
곧 당나라 중종이 다시 자리에 오른 해이며 성덕왕 즉위 4년이다.
7보천이 남긴 유언 — 다섯 대에 무엇을 둘 것인가
寳川常汲服其霊洞之水,故晚年肉身飛空到流沙江外蔚珎國掌天窟停止,誦隨求陁羅尼日夕爲課,窟神現身白云,“我爲窟神已二千年,今日始聞隨求真詮,請受菩薩戒.”旣受已翌日窟亦無形.…又修真五十年…川将圎寂之日留記後來山中所行輔益邦家之事.云.此山乃白頭山之大脉,各䑓真身常住之地.…以此華藏寺爲五䑓社之本寺堅固護持,命淨行福田鎮長香火,則國王千秋,人民安泰,文虎和平,百糓豊穰矣.又加排下院文殊岬寺爲社之都㑹,福田七貟晝夜常行華嚴神衆禮懴,上件三十七貟齋料衣費以河西府道内八州之稅充爲四事之資.代代君王不忘遵行幸矣.
보천은 늘 그 신령한 골짜기의 물을 길어 마셨으므로, 늘그막에 육신이 하늘로 날아 유사강 밖 울진국 장천굴에 이르러 머물렀다.
수구다라니를 밤낮으로 외는 것을 일과로 삼으니, 굴의 신이 몸을 나타내어 아뢰었다. "제가 굴의 신이 된 지 이미 이천 해인데, 오늘에야 비로소 수구의 참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보살계 받기를 청합니다."
계를 받고 나니 이튿날 굴 또한 형체가 없어졌다.
보천이 놀라고 기이히 여겨 스무 날을 머물다 오대산 신성굴로 돌아왔다. 다시 쉰 해 동안 참됨을 닦았다.
보천이 세상을 뜨려는 날, 뒷날 산중에서 행하여 나라를 도울 일을 적어 남겼다. 이르기를 —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요 각 대에 참몸이 늘 머무는 땅이다.
동대에는 관음방을 두어 관음상과 일만 관음을 그리고, 낮에는 경을 읽고 밤에는 관음을 염하여 원통사(圓通社)라 한다. 남대에는 지장방을 두어 지장상과 일만 지장을 그리고, 밤에는 점찰예참을 행하여 금강사(金剛社)라 한다. 서대에는 미타방을 두어 무량수상과 일만 대세지를 그리고, 밤에는 미타를 염하여 수정사(水精社)라 한다. 북대에는 나한당을 두어 석가상과 오백 나한을 그리고, 밤에는 열반경을 염하여 백련사(白蓮社)라 한다. 중대 진여원에는 문수부동상을 모시고 뒷벽에 비로자나를 우두머리로 서른여섯 화형을 그려, 밤에는 문수예참을 행하여 화엄사(華嚴社)라 한다.
보천암은 화장사(華藏社)로 고쳐 세워 비로자나 삼존과 대장경을 모시고, 해마다 화엄회를 백 일 동안 베풀어 법륜사(法輪社)라 한다.
이 화장사를 오대사(五臺社)의 본사로 삼아 굳게 지키고, 깨끗이 행하는 이들에게 명하여 오래도록 향불을 받들게 하면, 임금은 천추를 누리고 백성은 편안하며 문(文)과 무(武)가 화평하고 온갖 곡식이 잘 여물 것이다.
또 아래 원인 문수갑사를 더 두어 결사의 도회로 삼고, 일곱 사람이 밤낮으로 늘 화엄신중 예참을 행하게 하라.
위의 서른일곱 사람의 재 비용과 옷값은 하서부 도내 여덟 고을의 세금으로 충당하여 네 가지 살림의 밑천으로 삼으라.
대대의 임금들이 잊지 않고 따라 행하면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