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탑상 제4

오대산 월정사의 다섯 성중臺山月精寺五類聖衆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3 · 한자 362자 · 낭독 1.4분

「삼국유사」 탑상 제4 「오대산 월정사의 다섯 성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깃털 너머로 보니 모두 짐승이었다

按寺中所傳古記云,慈藏法師初至五䑓欲覩真身,於山麓結茅而住,七日不見而到妙梵山創淨岩寺.後有信孝居士者,或云㓜童菩薩化身.家在公州,飬母純孝.母非肉不食,士求肉出行山野,路見五䳽射之有一䳽落一羽而去.士執其羽遮眼而見人,人皆是畜生.故不得肉,而因割股肉進母.後乃出家,捨其家爲寺,今爲孝家院.

절에 전하는 옛 기록을 살피건대 이러하다.

자장법사가 처음 오대산에 이르러 참몸을 뵈려고 산기슭에 띠집을 얽고 머물렀으나 이레가 되도록 보지 못하였다. 이에 묘범산(妙梵山)에 가서 정암사(淨岩寺)를 세웠다.

뒤에 신효거사(信孝居士)라는 이가 있었는데, 혹은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집이 공주에 있었고 어머니를 봉양함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어머니가 고기가 아니면 먹지 않으므로, 거사가 고기를 구하러 산과 들을 다녔다.

길에서 학 다섯 마리를 보고 쏘았더니, 한 마리가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다.

거사가 그 깃털을 집어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니, 사람이 모두 짐승이었다.

그러므로 고기를 얻지 못하고, 이에 제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께 드렸다.

뒤에 출가하여 제 집을 내놓아 절로 삼았으니, 지금의 효가원(孝家院)이다.

2깃털이 가사의 빈 폭에 들어맞다

士自慶州界至河率見人多是人形.因有居住之志,路見老婦問可住處,婦云,“過西嶺有北向洞可居.”言訖不現.士知觀音所教,因過省烏坪入慈藏初結茅處而住.俄有五比丘到云,“汝之持來袈裟一幅今何在.”士茫然,比丘云,“汝所執見人之羽是也.”士乃出呈.比丘乃置羽於袈裟闕幅中相合.而非羽乃布也.士與五比丘别後方知是五類聖衆化身也.

거사가 경주 지경에서 하솔(河率)에 이르러 사람을 보니 대개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에 여기 살 뜻이 생겼다.

길에서 늙은 여인을 보고 살 만한 곳을 물으니, 여인이 말하였다. "서쪽 고개를 넘으면 북쪽으로 난 골짜기가 있어 살 만하다." 말을 마치고 나타나지 않았다.

거사는 관음이 일러 준 것임을 알고, 성오평(省烏坪)을 지나 자장이 처음 띠집을 얽었던 자리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윽고 다섯 비구가 이르러 말하였다. "그대가 가져온 가사 한 폭이 지금 어디 있는가."

거사가 어리둥절해하니 비구가 말하였다. "그대가 쥐고서 사람을 보던 그 깃털이 그것이다."

거사가 이에 꺼내어 바쳤다. 비구가 그 깃털을 가사의 빈 폭에 놓으니 서로 들어맞았다. 깃털이 아니라 베였다.

거사가 다섯 비구와 헤어진 뒤에야 그들이 다섯 성중의 화신임을 알았다.

3월정사가 큰 절이 되기까지

此月精寺慈藏初結茅,次信孝居士來住,次梵日門人信義頭陁來創庵而住.後有水多寺長老有縁來住,而漸成大寺.寺之五類聖衆·九層石塔皆聖跡也.相地者云,“國内名山此地最勝,佛法長興之處云云.”

이 월정사는 자장이 처음 띠집을 얽었고, 다음으로 신효거사가 와서 머물렀으며, 다음으로 범일의 문인 신의두타(信義頭陀)가 와서 암자를 세우고 머물렀다.

뒤에 수다사(水多寺)의 장로 유연(有緣)이 와서 머물면서 점차 큰 절이 되었다.

절의 다섯 성중과 구층 석탑은 모두 거룩한 자취다.

땅을 보는 이가 이르기를 "나라 안 이름난 산 가운데 이 땅이 가장 빼어나니, 불법이 오래 일어날 곳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