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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월산 — 감산사南月山 (甘山寺)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329자 · 낭독 1.3분

「삼국유사」 탑상 제4 「남월산 — 감산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미륵존상 광배 뒤에 새긴 글

南月山〔亦名甘山寺.〕寺在京城東南二十許里.金堂主弥勒尊像火光後記云.開元七年己未二月十五日,重阿喰全忘誠爲亡考仁章一吉于·亡妃觀肖里夫人敬造甘山寺一所石彌勒一軀,兼及愷元伊飡·第懇誠小舎·玄度師·姊古巴里·前妻古老里·後妻阿好里兼庶族及漠一吉喰·一幢薩喰·聦敏七舎·妹首肹買䓁同營兹善.亡妣肖里夫人古人成之,東海攸友邊散也.〔古人成之以下文未詳其意, 但存古文而已. 下同.〕

남월산〔감산사라고도 한다.〕은 서울 동남쪽 이십 리쯤에 있다.

금당 주불인 미륵존상의 광배 뒤에 새긴 글에 이렇게 이른다.

개원 칠년 기미년 2월 보름에, 중아찬 전망성(全忘誠)이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간과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부인(觀肖里夫人)을 위하여 삼가 감산사 한 곳과 돌미륵 한 구를 만들었다.

아울러 개원 이찬, 아우 간성 소사, 현도법사, 누이 고파리, 전처 고로리, 후처 아호리와 서족(庶族)인 막 일길찬·일당 살찬·총민 대사·누이 수힐매 등이 함께 이 좋은 일을 이루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초리부인은…〔'고인성지' 아래 글은 그 뜻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옛 글을 그대로 두었을 뿐이다. 아래도 같다.〕

협주 4

七舎

저본은 「七舎」이나 「大舍」의 잘못으로 보아 「대사」로 옮겼다.

開元

개원(開元)

亦名甘山寺.

감산사(甘山寺)라고도 한다.

古人成之以下文未詳其意, 但存古文而已. 下同.

'고인성지(古人成之)' 아래 글은 그 뜻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옛 글을 그대로 두었을 뿐이다. 아래도 같다.

2아미타불 광배 뒤에 새긴 글

弥陁佛火光後記云.重阿喰金志全曽以尚衣奉御,又執事侍郎,年六十七致仕閑居.奉爲國主大王·伊喰愷元·亡考仁章一吉于·亡妃·亡弟小舎梁誠·沙門玄度·亡妻古路里·亡妹古巴里,又爲妻阿好里等捨甘山莊田建伽藍,仍造石彌陁一軀奉爲亡考仁章一吉于.古人成之,東海攸反邊散也.〔按帝系, 金愷元乃太宗春秋之弟太子愷元角干也, 乃丈熈之所生也. 誠志全乃仁章一吉于之子. 東海攸反恐法敏葬東海也.〕

아미타불의 광배 뒤에 새긴 글에 이렇게 이른다.

중아찬 김지전(金志全)은 일찍이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내고 또 집사시랑을 지냈으며, 나이 예순일곱에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지냈다.

나라의 임금이신 대왕과 이찬 개원,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간과 돌아가신 어머니, 돌아가신 아우 소사 양성, 사문 현도, 돌아가신 아내 고로리, 돌아가신 누이 고파리를 위하고, 또 아내 아호리 등을 위하여 감산의 농장과 밭을 내놓아 절을 세웠다.

이어 돌 아미타 한 구를 만들어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간께 받들어 올렸다.

〔제왕의 계보를 살피건대 김개원은 곧 태종 춘추의 아우 태자 개원 각간이니 문희의 소생이다. 성지전은 곧 인장 일길간의 아들이다. '동해유반'은 아마도 법민을 동해에 장사 지낸 일을 이르는 듯하다.〕

협주 2

丈熈

저본은 「丈熈」이나 「文熙」의 잘못으로 보아 「문희」로 옮겼다.

按帝系, 金愷元乃太宗春秋之弟太子愷元角干也, 乃丈熈之所生也. 誠志全乃仁章一吉于之子. 東海攸反恐法敏葬東海也.

제왕의 계보를 살피건대 김개원은 곧 태종 춘추의 아우 태자 개원 각간이니 문희의 소생이다. 성지전은 곧 인장 일길간의 아들이다. '동해유반'은 아마도 법민을 동해에 장사 지낸 일을 이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