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사天龍寺
1이 절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
東都南山之南有一峰屹起,俗云髙位山.山之陽有寺,俚云髙寺或云天龍寺.討論三韓集云.“雞林圡内有客水二條逆水一條,其逆水客水二源不鎮天災則致天龍覆没之災.”俗傳云,“逆水者州之南馬等烏村南流川是.”又“是水之源致大龍寺.”中國來使樂鵬龜來見云,“破此寺則國亡無日矣.”又相傳云,“昔有檀越有二女曰天女·龍女,二親爲二女創寺因名之.”境地異常助道之塲,羅季殘破久矣.
동도(東都) 남산의 남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 하나가 있어 세속에서 고위산(高位山)이라 한다. 산 남쪽에 절이 있어 마을에서 고사(高寺) 또는 천룡사(天龍寺)라 한다.
『토론삼한집(討論三韓集)』에 이르기를 "계림 땅 안에 객수(客水) 두 줄기와 역수(逆水) 한 줄기가 있는데, 그 역수와 객수 두 근원을 누르지 못하면 천룡이 뒤집혀 잠기는 재앙에 이른다" 하였다.
세속에 전하기를 "역수란 고을 남쪽 마등오촌(馬等烏村) 남쪽으로 흐르는 내가 그것이다" 하고, 또 "이 물의 근원이 천룡사에 이른다" 한다.
중국에서 온 사신 악붕귀(樂鵬龜)가 와서 보고 말하였다. "이 절을 헐면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으리라."
또 서로 전하기를 "옛날 시주하는 이에게 두 딸이 있어 천녀(天女)와 용녀(龍女)라 하였는데, 두 어버이가 두 딸을 위해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따 지었다" 한다.
자리가 남다르고 도를 돕는 터전이었으나, 신라 말에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협주 1
大龍寺
저본은 「大龍寺」이나 「天龍寺」의 잘못으로 보아 「천룡사」로 옮겼다.
2최제안이 무너진 절을 다시 세우다
衆生寺大聖所乳崔殷諴之子承魯,魯生肅,肅生侍中齊顔,顔乃重修起廢,仍置釋迦万日道塲受朝㫖,兼有信書願文留于寺.旣卒爲護伽藍神,頗著霊異.
중생사의 큰 성인이 젖을 먹여 기른 최은함의 아들이 승로(承魯)요, 승로가 최숙을 낳고 최숙이 시중 제안(齊顔)을 낳았다.
제안이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고 석가만일도량(釋迦萬日道場)을 두었으며 조정의 뜻을 받들었다. 아울러 신서(信書)와 원문(願文)이 있어 절에 남아 있다.
죽은 뒤에는 절을 지키는 신이 되어 신령한 이적이 자못 뚜렷하였다.
3주지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
其信書略曰.“檀越内史侍郎同内史門下平章事柱國崔齊顔状.東京高位山天龍寺殘破有年.弟子特爲聖壽天長民國安泰之願,殿堂廊閣房舎廚庫已來興構畢,具石造泥塑佛聖數軀,開置釋迦万日道塲.旣爲國修營,官家差定主人亦可,然當遆換交代之時道塲僧衆不得安心.側觀入田稠足寺院,如公山地藏寺入田二百結,毗瑟山道仙寺入田二十結,西京之四面山寺各田二十結例.皆勿論有職·無職湏擇戒備才髙者,社中衆望連次住持焚修以爲恒䂓.弟子聞風而恱,我此天龍寺亦於社衆之中擇選才徳雙髙大徳兼爲棟梁,差主人鎮長焚修.具録文字付在剛司,自當時主人爲始受留守官文通示道塲諸衆,各冝知悉.重熈九年六月日.”具衘如前署.按重熈乃契丹興宗年号,夲朝靖宗七年庚辰歳也.
그 신서의 대략은 이러하다.
"시주하는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주국 최제안이 아룁니다.
동경 고위산 천룡사가 무너진 지 여러 해입니다. 제자가 특별히 임금의 수명이 길고 백성과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라, 전각과 행랑과 방과 부엌과 곳간에 이르기까지 지어 마쳤고, 돌로 새기고 흙으로 빚은 부처와 성인 여러 구를 갖추어 석가만일도량을 열었습니다.
이미 나라를 위해 지었으니 관가에서 주인을 정하는 것도 옳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바꾸어 교대할 때마다 도량의 승려들이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곁으로 보건대 딸린 밭이 넉넉한 절들, 이를테면 공산 지장사는 딸린 밭이 이백 결, 비슬산 도선사는 이십 결, 서경 사면의 산사는 각각 이십 결의 예가 있습니다.
모두 벼슬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말고, 모름지기 계를 갖추고 재주가 높은 이를 가려, 절 안 여러 사람의 바람에 따라 차례로 주지가 되어 향불을 받들게 하는 것을 떳떳한 규례로 삼고 있습니다.
제자가 그 소문을 듣고 기뻤습니다. 우리 이 천룡사도 절 안 여러 사람 가운데 재주와 덕이 다 높은 대덕을 가려 뽑아 아울러 기둥으로 삼고, 주인으로 정해 오래도록 향불을 받들게 하려 합니다.
글로 갖추어 적어 강사(剛司)에게 맡기니, 그때의 주인부터 시작하여 유수관의 글을 받아 도량의 여러 사람에게 두루 알려 각각 마땅히 알게 하십시오.
중희 구년 6월 아무 날."
벼슬 이름은 앞서와 같이 서명하였다.
살피건대 중희는 곧 거란 흥종의 연호이니, 본조 정종 7년 경진년이다.
협주 1
重熙
중희(重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