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엄사 석탑의 사리伯嚴寺石塔舍利
1절의 내력을 아는 이가 없다
開運三年丙午十月二十九日,康州界任道大監柱貼云,“伯嚴禪寺坐草八縣〔今草溪〕,寺僧偘逰上座年三十九云,寺之絰始則不知.”但古傳云.前代新羅時北宅廳基捨置兹寺中間久廢,去丙寅年中沙木谷陽孚和尚攺造住持丁丑遷化.乙酉年曦陽山兢讓和尚来住十年,又乙未年却返曦陽,時有神卓和尚自南原白嵓藪来入當院如法住持.
개운 삼년 병오년 시월 스무아흐레, 강주(康州) 지경 임도대감(任道大監)의 문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백엄선사(伯嚴禪寺)는 초팔현(草八縣)에 자리하는데〔지금의 초계이다.〕, 절의 승려 간유(偘遊) 상좌가 나이 서른아홉으로 말하기를 절이 언제 처음 섰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였다."
다만 옛 전승에 이렇게 이른다.
앞선 시대 신라 때 북택(北宅) 관청 터를 내놓아 이 절을 두었는데, 중간에 오래 폐하였다.
지난 병인년에 사목곡(沙木谷) 양부화상(陽孚和尙)이 고쳐 짓고 주지가 되었다가 정축년에 세상을 떠났다.
을유년에 희양산(曦陽山) 긍양화상(兢讓和尙)이 와서 열 해를 머물다가 을미년에 도로 희양으로 돌아갔다.
그때 신탁화상(神卓和尙)이 남원 백암수(白嵓藪)에서 와 이 절에 들어와 법대로 주지가 되었다.
협주 2
開運
개운(開運)
今草溪
지금의 초계이다.
2탑을 세우고 절의 규례를 정하다
又咸雍元年十一月當院住持得奥㣲定大師釈秀立定院中常規十條,新竪五層石塔真身佛舎利四十二粒安邀,以私財立寳追年供飬條弟一.當寺護法敬僧嚴欣伯欣两明神及近岳等三位前,立寳供養條,〔諺傳, 嚴欣·伯欣二人捨家爲寺因名曰伯嚴, 仍爲護法神.〕金堂藥師前,木鉢月朔遆米條等.已下不録.
또 함옹 원년 십일월에 이 절의 주지 득오미정대사(得奧微定大師) 석수(釋秀)가 절 안의 상규(常規) 열 조목을 세워 정하였다.
새로 오층 석탑을 세우고 참몸 부처의 사리 마흔두 알을 모셨으며, 사재로 보(寶)를 세워 해마다 공양하게 한 것이 첫째 조목이다.
이 절의 법을 지키고 승려를 공경하는 엄흔·백흔 두 밝은 신과 근악(近岳) 등 세 자리 앞에 보를 세워 공양하는 조목이 있다.〔세간에 전하기를, 엄흔·백흔 두 사람이 집을 내놓아 절로 삼았으므로 백엄이라 이름하였고, 이내 법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금당의 약사여래 앞에 나무 바리를 두고 초하루마다 쌀을 올리는 조목 등이 있다. 그 아래는 적지 않는다.
협주 2
咸雍
함옹(咸雍)
諺傳, 嚴欣·伯欣二人捨家爲寺因名曰伯嚴, 仍爲護法神.
세간에 전하기를, 엄흔(嚴欣)·백흔(伯欣) 두 사람이 집을 내놓아 절로 삼았으므로 백엄이라 이름하였고, 이내 법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