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탑상 제4

영취사靈鷲寺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1 · 한자 166자 · 낭독 0.7분

「삼국유사」 탑상 제4 「영취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매가 꿩을 채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절을 세우다

寺中古記云.新羅真骨苐二十一主神文王代永淳二年癸未,〔本文云元年誤.〕宰相忠元公萇山國〔即東萊縣,亦名萊山國.〕温井沐浴,還城次到屈井驛桐旨野駐歇,忽見一人放鷹而逐雉,雉飛過金岳杳無蹤迹.聞鈴尋之到屈井縣官北井过,鷹㘴樹上,雉在井中水渾血色.雉開两𦑡抱二雛焉,鷹亦如相惻隠而不敢攫也.公見之惻然有感,卜問此地云,可立寺.歸亰啓於王,移其縣於他所,創寺於其地名霊鷲寺焉.

절에 있는 옛 기록에 이렇게 이른다.

신라 진골 스물한째 임금 신문왕 때 영순 이년 계미년에〔본문에 원년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萇山國)〔곧 동래현이며 내산국이라고도 한다.〕 온천에서 목욕하고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굴정역 동지 들판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쉬었다.

홀연 어떤 사람이 매를 놓아 꿩을 쫓는 것을 보았는데, 꿩이 금악을 날아 넘어 자취가 아득해졌다.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가 굴정현 관아 북쪽 우물가에 이르니,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속에 있는데 물이 핏빛으로 흐려져 있었다.

꿩은 두 날개를 벌려 새끼 둘을 품고 있었고, 매 또한 가엾이 여기는 듯 감히 채지 못하고 있었다.

공이 이를 보고 측은하여 느낀 바가 있어, 그 땅을 점쳐 물으니 절을 세울 만하다 하였다.

서울로 돌아가 왕에게 아뢰어 그 현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워 영취사(靈鷲寺)라 이름하였다.

협주 3

永淳

영순(永淳)

本文云元年誤.

본문에 원년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即東萊縣, 亦名萊山國.

곧 동래현이며 내산국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