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탑상 제4

오대산 문수사 석탑기五臺山文殊寺石塔記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58자 · 낭독 1.0분

「삼국유사」 탑상 제4 「오대산 문수사 석탑기」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어부들이 도끼로 찍은 탑

庭畔石塔盖新羅人所立也.制作雖淳朴不巧,然甚有霊響不可勝記.就中一事聞之諸古老云.昔連谷縣人具舡㳂海而漁忽見一塔隨逐舟揖,凢水族見其影者皆逆散四走.以故漁人一無所得,不堪憤恚尋影而至盖此塔也.於是共揮斤斫之而去,今此塔四隅皆缺者以此也.

뜰 가의 석탑은 대개 신라 사람이 세운 것이다. 만듦새가 비록 소박하고 정교하지 않으나, 신령한 감응이 매우 많아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일을 여러 옛 노인에게 들었다.

옛날 연곡현(連谷縣) 사람이 배를 갖추어 바다를 따라 고기를 잡는데, 홀연 탑 하나가 배를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무릇 물속 것들이 그 그림자를 보면 모두 거슬러 흩어져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 때문에 어부가 하나도 잡지 못하여 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림자를 좇아 이르러 보니 바로 이 탑이었다.

이에 함께 도끼를 휘둘러 찍고 갔다. 지금 이 탑의 네 모서리가 다 이지러진 것은 이 때문이다.

2자리를 옮기자 이십 년간 감응이 끊기다

予驚嘆無已,然怪其置塔稍東而不中,於是仰見一懸板云.比丘䖏玄曽住此院,輙移置庭心則二十餘年間寂無霊應.及日者求基抵此乃嘆曰,“是中庭地非安塔之所,胡不移東乎.”於是衆僧乃悟復移舊䖏,今所立者是也.余非好怪者,然見其佛之威神,其急於現迹利物如此,爲佛子者詎可黙而無言耶.時正豊元年丙子十月日白雲子記.

내가 놀라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탑을 조금 동쪽에 두어 한가운데가 아닌 것이 이상하였다.

이에 우러러 걸린 판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구 처현(處玄)이 일찍이 이 절에 머물면서 문득 뜰 한가운데로 옮겨 두었더니, 스무 해 남짓 적막하여 신령한 감응이 없었다.

점치는 이가 터를 구하러 이곳에 이르러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뜰 한가운데 땅은 탑을 둘 자리가 아니오. 어찌 동쪽으로 옮기지 않소."

이에 여러 승려가 깨달아 다시 옛 자리로 옮겼으니, 지금 서 있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괴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부처의 위엄과 신령함이 자취를 나타내어 만물을 이롭게 함에 이토록 급함을 보았으니, 부처의 제자 된 이가 어찌 잠자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때는 정풍 원년 병자년 시월 아무 날, 백운자(白雲子)가 적는다.

협주 1

正豊

정풍(正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