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유사 › 의해 제5

양지가 지팡이를 부리다良志使錫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2 · 한자 292자 · 낭독 1.2분

「삼국유사」 의해 제5 「양지가 지팡이를 부리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지팡이가 혼자 날아가 시주를 받아 오다

良志使錫釋良志未詳祖考郷邑.唯現迹於善徳王朝.錫杖頭掛一布帒錫自飛至檀越家振拂而鳴.户知之納齋費,帒滿則飛還.故名其所住曰錫杖寺.其神異莫測皆類此.旁通雜譽神妙絶比.又善筆扎靈庙丈六三尊·天王像并殿塔之瓦·天王寺塔下八部神将·法林寺主佛三尊·左右金剛神等皆所槊也.書霊庙法林二寺額,又嘗彫磚造一小塔并造三千佛安其塔,置於寺中致敬焉.

양지가 지팡이를 부리다.

승려 양지(良志)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고향이 자세하지 않다. 다만 선덕왕 조에 자취를 드러냈다.

지팡이 머리에 베 자루 하나를 걸어 두면, 지팡이가 혼자 날아 시주하는 집에 이르러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그 집에서 알고 재에 쓸 것을 넣어 자루가 차면 날아 돌아왔다.

그러므로 그가 머물던 곳을 석장사(錫杖寺)라 이름하였다.

그 신묘하고 기이함을 헤아릴 수 없음이 모두 이런 따위였다.

곁으로 온갖 재주에 통하여 신묘하기가 견줄 데 없었다.

또 글씨를 잘 썼다. 영묘사의 장륙삼존과 천왕상, 아울러 전각과 탑의 기와, 천왕사 탑 아래 팔부신장, 법림사 주불 삼존과 좌우 금강신 들이 모두 그가 빚은 것이다.

영묘사와 법림사 두 절의 현판 글씨를 썼다.

또 일찍이 벽돌을 새겨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삼천 부처를 만들어 그 탑에 모셔, 절 안에 두고 공경을 드렸다.

2흙을 나르며 부른 노래 — 풍요

其塑霊庙之丈六也,自入定以正受所對爲揉式,故傾城士女爭運泥圡.風謡云.來如來如來如,來如哀反多羅.哀反多矣徒良,㓛徳修叱如良来如.至今圡人㫪相役作皆用之,蓋始于此.像成之費入穀二萬三千七百碩.〔或金時祖.〕議曰,師可謂才全徳充,而以大方隠於末技者也.讃曰.齋罷堂前錫杖閑,静装爐鴨自焚檀.殘経讀了無餘事,聊塑圎容合掌看.

영묘사의 장륙상을 빚을 때는, 스스로 선정에 들어 삼매 속에 뵌 모습을 본으로 삼아 빚었다.

그러므로 성안의 남녀가 다투어 진흙을 날랐다.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㓛徳修叱如良来如

지금도 그 땅 사람들이 방아를 찧거나 일을 할 때 모두 이 노래를 쓰니, 대개 여기서 비롯되었다.

상을 이루는 데 든 비용은 곡식 이만 삼천칠백 섬이었다.〔혹은 '금을 칠할 때의 비용'이라고도 한다.〕

논하여 이른다. 법사는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가득한 이로서, 큰 방편을 지니고도 작은 재주 뒤에 숨은 사람이라 이를 만하다.

기려서 이른다.

재가 끝난 법당 앞에 지팡이는 한가롭고 고요히 향로를 차려 놓으니 단향이 절로 탄다. 남은 경을 다 읽고 나면 다른 일이 없어 그저 둥근 얼굴을 빚어 놓고 손 모아 바라본다.

협주 1

或金時祖.

혹은 '금을 칠할 때의 비용'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