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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이 가르침을 전하다義湘傳敎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5 · 한자 922자 · 낭독 3.7분

「삼국유사」 의해 제5 「의상이 가르침을 전하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지엄이 먼저 꿈을 꾸다

義湘傳教法師義湘考曰韓信金氏,年二十九依亰師皇福寺落髮.未㡬西啚觀化.遂與元曉道出遼東,邉戍邏之爲諜者囚閉者累旬僅免而遝.〔事在崔侯夲傳及曉師行状䓁.〕永徽初㑹唐使舡有西還者寓載入中國.初止揚州,州将劉至仁請留衙内供飬豊贍.尋徃終南山至相寺謁智儼.儼前夕夢一大樹生海東枝葉溥布来䕃神州,上有鳯巢登視之,有一摩尼寳珠光明屬逺.覺而驚異洒掃而待湘乃至.殊禮迎際從容謂曰,“吾昨者之夢子来投我之兆.”許爲入室,雜花妙旨剖柝幽微.儼喜逢郢質克發新致可謂鈎深索隠,藍茜沮夲色.

의상이 가르침을 전하다.

법사 의상(義湘)은 아버지가 한신(韓信)이며 김씨다. 나이 스물아홉에 서울 황복사에 의지하여 머리를 깎았다.

오래지 않아 서쪽으로 가서 교화를 보고자 하였다. 마침내 원효와 함께 길을 잡아 요동으로 나갔는데, 변방 수비군이 순찰하다가 첩자로 여겨 가두어 여러 순(旬)이 지난 뒤에야 겨우 풀려 돌아왔다.〔이 일은 최후의 본전과 원효법사의 행장 등에 있다.〕

영휘 초에 마침 당나라 사신의 배로 서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있어 얹혀 타고 중국에 들어갔다.

처음에 양주에 머무니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청하여 관아 안에 머물게 하고 공양이 넉넉하였다.

이윽고 종남산 지상사에 가서 지엄(智儼)을 뵈었다.

지엄이 그 전날 저녁 꿈을 꾸었다. 큰 나무 하나가 해동에서 나서 가지와 잎이 널리 퍼져 중국을 덮었고, 위에 봉황의 둥지가 있어 올라가 보니 마니 보배 구슬 하나가 있어 빛이 멀리 뻗었다.

깨어나 놀라고 기이히 여겨 물 뿌리고 쓸며 기다리니 의상이 이르렀다.

특별한 예로 맞이하며 조용히 일렀다. "내가 어젯밤 꾼 꿈은 그대가 와서 내게 의탁할 조짐이었다."

방에 들이기를 허락하니, 『화엄경』의 묘한 뜻을 쪼개어 그윽하고 미묘한 데까지 밝혔다.

지엄은 좋은 바탕을 만나 새로운 뜻을 능히 펴게 된 것을 기뻐하였으니, 깊은 것을 낚고 숨은 것을 찾았다 이를 만하며, 쪽과 꼭두서니가 본래 빛보다 짙어진 것과 같다.

협주 1

事在崔侯夲傳及曉師行状䓁.

이 일은 최후(崔侯)의 본전과 원효법사의 행장 등에 있다.

2먼저 알려 나라가 화를 면하다

旣而夲國承相金欽純一作仁問,良啚䓁徃囚於唐,髙宗将大舉東征.欽純䓁宻遣湘誘而先之.以咸享元年庚午還國聞事於朝.命神印大徳明朗假設宻壇法禳之,國乃免.儀鳳元年湘歸太伯山,奉朝旨創浮石寺敷敞大乗霊感頗著.

이윽고 본국의 승상 김흠순(金欽純)〔인문(仁問)이라 적은 데도 있다.〕과 양도(良圖) 등이 당나라에 가서 갇히게 되었고, 고종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동쪽을 치려 하였다.

흠순 등이 몰래 의상을 보내 이끌어 먼저 알리게 하였다.

함형 원년 경오년에 나라에 돌아와 조정에 이 일을 아뢰었다.

명하여 신인종 대덕 명랑(明朗)에게 밀단(密壇)의 법을 임시로 베풀어 물리치게 하니 나라가 이에 화를 면하였다.

의봉 원년에 의상이 태백산으로 돌아가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을 널리 펴니 신령한 감응이 자못 뚜렷하였다.

3현수가 보낸 편지

終南門人賢首撰搜玄䟽送副本於湘䖏,并奉書懃懇曰.西亰崇福寺僧法藏致書於海東新羅華嚴法師侍者.一従分别二十餘年傾望之誠豈離心首,加以烟雲萬里海陸千重恨此一身不復再靣.抱懷戀戀夫何可言.故由夙世同因今生同業,得於此報俱沐大経,特蒙先師授兹粵典.仰承,上人歸郷之後開演華嚴,宣揚法界無㝵縁起重重帝網新新佛國,利益弘廣喜躍增深.是知如来滅後,光輝佛日再轉法輪令法久住者其唯法師矣.藏進趣無成,周旋寡况仰念兹典愧荷先師.隨分受持不能捨離希憑此業用結来因.但以和尚章䟽義豊文簡致令後人多難趣入,是以録和尚微言妙旨勒成義記.近因勝詮法師抄冩還郷傳之彼圡,請上人詳撿臧否幸示箴誨.伏願當當来世捨身受身,相與同於盧舎郙聽受如此無盡妙法修行如此無量普賢願行,儻餘惡業一朝顛墜.伏希上人不遺宿昔在諸趣中示以正道,人信之次時訪存没不具.〔文載大文類.〕

종남산의 문인 현수(賢首)가 『수현소』를 짓고 그 부본을 의상에게 보내면서, 아울러 간곡한 편지를 올려 이렇게 말하였다.

"서경 숭복사 승려 법장(法藏)이 해동 신라 화엄법사의 시자에게 글을 드립니다.

한 번 헤어진 뒤 스무 해 남짓, 우러러 바라는 정성이 어찌 마음에서 떠나겠습니까. 게다가 안개와 구름이 만 리요 바다와 뭍이 천 겹이니, 이 한 몸이 다시 얼굴을 뵙지 못함이 한스럽습니다.

품은 그리움을 무슨 말로 다하겠습니까.

지난 세상에 같은 인연을 지었고 이승에 같은 업을 이루었으므로, 이 과보를 얻어 함께 큰 경에 젖고 특별히 먼저 가신 스승께 이 뛰어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삼가 듣건대, 스님께서 고향에 돌아간 뒤 화엄을 열어 펴시고 법계의 걸림 없는 연기와 겹겹의 인드라 그물, 새롭고 새로운 불국토를 널리 밝히시어 이롭게 함이 크고 넓다 하니, 기뻐 뛰는 마음이 더욱 깊습니다.

이로써 알겠습니다. 여래가 가신 뒤 부처의 해를 다시 빛내고 법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려 법이 오래 머물게 할 이는 오직 법사뿐임을.

저는 나아가 이룬 바가 없고 주선한 것도 적으니, 이 가르침을 우러러 생각할수록 먼저 가신 스승께 부끄럽습니다.

분수대로 받아 지녀 버리지 못하고, 이 업에 기대어 오는 인연을 맺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만 스승의 장과 소가 뜻은 넉넉하나 글이 간략하여 뒷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승의 은미한 말씀과 묘한 뜻을 적어 『의기』를 엮었습니다.

요사이 승전법사가 베껴 고향에 돌아가 그 땅에 전하게 되었으니, 스님께서 자세히 살펴 좋고 나쁨을 가리시고 바로잡는 가르침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오는 세상마다 몸을 버리고 몸을 받되, 서로 함께 노사나 앞에서 이와 같은 다함 없는 묘한 법을 듣고 이와 같은 한량없는 보현의 원행을 닦기를 원합니다.

혹 남은 악업으로 하루아침에 굴러떨어지거든, 엎드려 바라건대 스님께서 지난날을 잊지 마시고 어느 갈래에 있든 바른길을 보여 주소서.

인편이 있는 대로 때때로 안부를 여쭙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글이 『대문류』에 실려 있다.〕

협주 1

文載大文類.

글이 『대문류』에 실려 있다.

4열 절에 가르침을 전하다

湘乃令十刹傳敎,太伯山浮石寺·原州毗摩羅·伽耶之海印·毗瑟之玊泉·金井之梵魚·南嶽華嚴寺䓁是也.又著法界啚書印并略䟽括盡一乗樞要,千載龜鏡竸所珎佩.餘無撰述,嘗鼎味一臠足矣.啚成緫章元年戊辰.是年儼亦帰寂,如孔氏之絶筆於獲麟矣.世傳湘乃金山寳蓋之㓜有也.

의상은 이에 열 절에 가르침을 전하게 하였으니,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남악 화엄사 등이 그것이다.

또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과 아울러 간략한 소를 지어 일승의 요체를 다 묶었으니, 천 년의 거울이 되어 다투어 귀하게 지녔다.

그 밖에 지은 것이 없으니, 솥의 국맛은 고기 한 점이면 넉넉하다.

법계도를 이룬 것은 총장 원년 무진년이다. 이해에 지엄 또한 세상을 떠났으니, 공자가 기린을 잡은 데서 붓을 놓은 것과 같다.

세상에 전하기를 의상은 곧 금산보개(金山寶蓋)의 후신이라 한다.

5층계 없는 탑을 도는 제자들

徒弟悟真·智通·表訓·真㝎·真藏·道融·良圎·相源·能仁·義寂䓁十大徳爲領首,皆亞聖也各有傳.真嘗䖏下柯山鶻嵒寺每夜伸臂㸃浮石室燈.通著錐洞記,蓋承親訓故辞多詣妙.訓曽住佛國寺常徃来天宫.湘住皇福寺時與徒衆繞塔,每歩虚而工不以階升.故其塔不設梯磴,其徒離階三尺履空而旋.湘乃顧謂曰,“世人見此必以爲怪不可以訓世.”餘如崔侯所撰夲傳.讃曰.披榛跨海冐烟塵,至相門開接瑞珎.采采雜花我故國,終南太伯一般春.

제자로는 오진·지통·표훈·진정·진장·도융·양원·상원·능인·의적 등 열 대덕이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모두 성인에 버금가는 이들이며 각각 전이 있다.

오진은 일찍이 하가산 골암사에 있으면서 밤마다 팔을 뻗어 부석사 방의 등에 불을 켰다.

지통은 『추동기』를 지었는데, 대개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말이 묘한 데에 이른 것이 많다.

표훈은 일찍이 불국사에 머물며 늘 하늘 궁전을 오갔다.

의상이 황복사에 머물 때 무리와 함께 탑을 도는데, 걸음마다 허공을 밟고 올라 층계를 밟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탑에는 사다리와 디딤돌을 두지 않았고, 그 무리는 층계에서 석 자를 떠서 허공을 밟고 돌았다.

의상이 이에 돌아보며 일렀다. "세상 사람이 이것을 보면 반드시 괴이하다 할 것이니, 세상을 가르칠 수 없다."

나머지는 최후가 지은 본전과 같다.

기려서 이른다.

덤불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 안개와 티끌을 무릅쓰니 지상사 문이 열려 상서로운 보배를 맞이하였네. 화엄의 꽃을 캐고 캐어 내 고향에 옮기니 종남산과 태백산이 한결같은 봄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