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가 간자를 전하다眞表傳簡
1만경현 사람
真表傳簡釋真表完山州〔今全州牧.〕萬頃縣人.〔或作豆乃山縣,或作那山縣今萬頃,古名亘乃山縣也.貫寕傳釋□之郷里云金山縣人,以寺名及縣名混之也.〕父曰真乃末,母吉寳娘姓井氏.
진표가 간자를 전하다.
승려 진표(眞表)는 완산주〔지금의 전주목이다.〕 만경현 사람이다.〔두내산현이라 적기도 하고 나산현이라 적기도 하니 지금의 만경이며 옛 이름은 긍내산현이다. 『관녕전』에 그의 고향을 금산현 사람이라 한 것은 절 이름과 현 이름을 섞은 것이다.〕
아버지는 진(眞) 내말이며,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으로 성은 정씨다.
협주 2
今全州牧.
지금의 전주목이다.
或作豆乃山縣, 或作那山縣今萬頃, 古名亘乃山縣也. 貫寕傳釋□之郷里云金山縣人, 以寺名及縣名混之也.
두내산현이라 적기도 하고 나산현이라 적기도 하니 지금의 만경이며 옛 이름은 긍내산현이다. 『관녕전』에 그의 고향을 금산현 사람이라 한 것은 절 이름과 현 이름을 섞은 것이다.
2몸을 던져 무릎과 팔이 부서지다
年至十二嵗投金山寺崇濟法師講下落彩請業.其師嘗謂曰,“吾曽入唐受業於善道三藏,然後入五臺感文殊菩薩現受五戒.”表啓曰,“勤修㡬何得戒耶.”濟曰,“精至則不過一年.”表聞師之言遍逰名岳止錫仙溪山不思議菴,該鍊三業以亡身懴□□□.初以七宵爲期,五輪撲石膝腕俱碎雨血嵒崖若無聖應,决志捐捨更期七日.二七日終見地藏菩薩現受浄戒.即開元二十八年庚辰三月十五日辰時也,時齡二十餘三矣.
나이 열둘에 금산사 숭제법사의 강석에 나아가 머리를 깎고 배움을 청하였다.
그 스승이 일찍이 일렀다. "내가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선도삼장에게 배우고, 그런 뒤에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이 나타나는 감응을 입어 오계를 받았다."
진표가 여쭈었다. "부지런히 닦으면 얼마 만에 계를 얻습니까."
숭제가 말하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한 해를 넘지 않는다."
진표가 스승의 말을 듣고 이름난 산을 두루 다니다가 선계산 부사의암에 지팡이를 멈추었다.
세 가지 업을 갖추어 닦되 몸을 잊는 참회로 하였다.
처음에 이레 밤을 기한으로 삼아, 다섯 곳으로 돌에 몸을 던지니 무릎과 팔이 모두 부서지고 바위 벼랑에 피가 비처럼 뿌려졌다.
거룩한 감응이 없는 듯하므로 몸을 버리기로 뜻을 정하고 다시 이레를 기약하였다.
두 이레 만에 지장보살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깨끗한 계를 받았다.
곧 개원 이십팔년 경진년 3월 보름 진시이며, 그때 나이 스물셋 남짓이었다.
3간자 백여든아홉 개
然志存慈氏故不敢中止,乃移霊山寺〔一名邉山又楞伽山.〕又懃勇如初.果感弥力現授占察経兩卷〔此經乃陳·隋間外國所譯,非今始出也.慈氏以経搜之耳.〕并證果簡子一百八十九介,謂曰“於中第八簡子喻新得妙戒,第九簡子喻增得具戒.斯二簡子是我手指骨,餘皆沉檀木造喻諸煩惱.汝以此傳法於世作濟人津筏.”
그러나 뜻이 미륵에게 있었으므로 감히 중간에 그치지 못하였다.
이에 영산사로〔변산 또는 능가산이라고도 한다.〕 옮겨 또 처음처럼 부지런하고 굳세게 하였다.
과연 미륵이 나타나는 감응을 입어 『점찰경』 두 권을〔이 경은 진나라와 수나라 사이에 다른 나라에서 옮긴 것이며 이제 비로소 나온 것이 아니다. 미륵이 그 경을 가지고 건네준 것일 뿐이다.〕 아울러 깨달음을 증명하는 간자(簡子) 백여든아홉 개를 받았다.
미륵이 일렀다. "이 가운데 여덟째 간자는 새로 얻은 묘한 계를 나타내고, 아홉째 간자는 더 얻은 구족계를 나타낸다.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뼈다. 나머지는 모두 침향과 전단향 나무로 만든 것으로 여러 번뇌를 나타낸다.
너는 이것으로 세상에 법을 전하여 사람을 건지는 나루의 뗏목이 되게 하라."
협주 2
一名邉山又楞伽山.
변산 또는 능가산이라고도 한다.
此經乃陳·隋間外國所譯, 非今始出也. 慈氏以経搜之耳.
이 경은 진나라와 수나라 사이에 다른 나라에서 옮긴 것이며 이제 비로소 나온 것이 아니다. 미륵이 그 경을 가지고 건네준 것일 뿐이다.
4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다
表旣受聖莂来住金山.每歲開壇阪張法施,壇席精嚴末季未之有也.風化旣周逰渉到阿瑟羅州.島嶼間魚鼇成橋迎入水中,講法受戒.即天寳十一載壬辰二月望日也.或夲云元和六年,誤矣.元和在憲徳王代.〔去聖徳㡬七十年矣.〕景徳王聞之迎入宮闥,受菩薩戒嚫租七萬七千石,椒庭列岳皆受戒品,施絹五百端·黄金五十两.皆容受之分施諸山廣興佛事.其骨石今在鉢淵寺,即爲海族演戒之地.
진표가 거룩한 예언을 받고 와서 금산사에 머물렀다.
해마다 단을 열어 법의 베풂을 널리 폈는데, 단의 자리가 정밀하고 엄하여 말세에 있지 않던 일이었다.
교화가 두루 미치자 두루 다니다가 아슬라주에 이르렀다.
섬 사이에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이루어 맞아들여 물 가운데로 들어가 법을 강하고 계를 주었다.
곧 천보 십일년 임진년 2월 보름날이다.
어떤 책에는 원화 육년이라 하나 잘못이다. 원화는 헌덕왕 대에 있다.〔성덕왕 때와는 거의 일흔 해가 떨어진다.〕
경덕왕이 듣고 궁궐에 맞아들여 보살계를 받고 조 칠만 칠천 섬을 시주하였다. 왕비와 궁중 사람들이 모두 계품을 받고 비단 오백 단과 황금 쉰 냥을 시주하였다.
모두 받아들여 여러 산에 나누어 주고 널리 불사를 일으켰다.
그 뼈와 돌이 지금 발연사에 있으니 곧 바다 무리에게 계를 편 자리다.
협주 1
去聖徳㡬七十年矣.
성덕왕 때와는 거의 일흔 해가 떨어진다.
5간자를 이어받은 이들
得法之䄂領曰永深·寳宗·信芳·体珎·珎海·真善·釋忠䓁,皆爲山門祖.深則真表簡子住俗離山爲克家子,作壇之法與占察六輪稍異,修如山中所傳夲䂓.
법을 얻은 우두머리는 영심·보종·신방·체진·진해·진선·석충 등이니, 모두 산문의 조사가 되었다.
영심은 곧 진표의 간자를 받아 속리산에 머물러 집을 잘 이은 아들이 되었다.
단을 짓는 법이 점찰의 여섯 바퀴와 조금 다르나, 산중에 전하는 본래의 규례대로 닦았다.
6삼을 지고 금을 버리다 — 일연이 따지다
按唐僧傳云.“開皇十三年廣州有僧行懴法,以皮作帖子二枚書善惡两字,令人擲之得善者吉.又行自撲懴法以爲滅罪.而男女合匝妄承宻行,青州接響同行.官司撿察謂是妖妄,彼云‘此搭懴法依占察経,撲懴法依諸経中’,五體投地如大山崩.時以奏聞,乃勑內史侍郎李元撰就大興寺問諸大徳.有大沙門法経·彦琮等對曰,‘占察経見有两卷,首題菩提登在外國譯文似近代所出.亦有冩而傳者,撿勘群録並無正名譯人時䖏,搭懴與衆経復異不可依行.’因勑禁之.”今試論之.青州居士等搭懴䓁事如大儒以詩書發塚,可謂畫虎不成類狗者矣.佛所預防正爲此爾.若曰占察経無譯人時䖏爲可疑也,是亦擔麻棄金也.何則詳彼経文,乃悉壇深宻洗滌穢瑕激昂懶夫者莫如兹典.故亦名大乗懴,又云出六根聚中.開元·貞元二釋敎録中編入正藏.雖外乎性宗,其相敎大乗殆亦優矣.豈與搭·撲二懴同日而語㦲.
살피건대 당나라 『승전』에 이렇게 이른다.
"개황 십삼년에 광주에 어떤 승려가 참회법을 행하였다. 가죽으로 첩자 두 개를 만들어 선(善)과 악(惡) 두 글자를 쓰고 사람에게 던지게 하여 선을 얻으면 길하다 하였다.
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참회법을 행하여 죄를 없앤다 하였다.
그런데 남녀가 뒤섞여 함부로 은밀한 행을 이었고, 청주에서도 소리를 이어 같이 행하였다.
관청이 살펴 이를 요망하다 하니, 저들이 말하기를 '이 첩참법은 『점찰경』에 따른 것이요 박참법은 여러 경 가운데에 따른 것이라' 하며, 온몸을 땅에 던지기를 큰 산이 무너지듯 하였다.
그때 아뢰니 명하여 내사시랑 이원찬으로 하여금 대흥사에 나아가 여러 대덕에게 묻게 하였다.
큰 사문 법경과 언종 등이 대답하였다. '『점찰경』은 두 권이 있는데 첫머리에 보리등이 다른 나라에서 옮겼다고 적혔으나 글이 근래에 나온 듯합니다. 베껴 전하는 것도 있으나 여러 목록을 살펴보아도 옮긴 이의 이름과 때와 곳이 없습니다. 첩참은 여러 경과 또 다르니 따라 행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명을 내려 금하였다."
이제 시험 삼아 논한다.
청주 거사들의 첩참 따위 일은 큰 유학자가 『시경』과 『서경』으로 무덤을 파는 것과 같으니, 범을 그리려다 이루지 못하고 개를 닮았다 이를 만하다. 부처가 미리 막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점찰경』에 옮긴 이와 때와 곳이 없어 의심스럽다고 한다면, 이 또한 삼을 지고 금을 버리는 일이다.
어째서인가. 저 경의 글을 자세히 보면 실단(悉壇)이 깊고 은밀하여 더러움을 씻고 게으른 이를 떨쳐 일으키는 데 이 경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대승참(大乘懺)이라고도 하고, 또 육근취(六根聚) 가운데서 나왔다고도 한다. 개원과 정원 두 석교록에 정장(正藏)으로 편입되었다.
비록 성종(性宗) 밖에 있으나 그 상교(相敎) 대승으로는 자못 뛰어나다. 어찌 첩참·박참 두 참법과 한날한시에 말할 수 있겠는가.
7금을 움키느라 사람을 보지 못했다
如舎利佛問経,佛告長者子邠若多羅曰.“汝可七日七夜悔汝先罪皆使清淨.”多羅奉教日夜懇惻,至第五夕於其室中雨種種物,若巾若帊若拂箒若刁錐斧䓁墮其目前.多羅歡喜問於佛,佛言.“是離塵之相.割拂之物也.”㩀此則與占察経擲輪得相之事奚以異哉.乃知表公翹懴得簡聞法見佛可謂不誣.况此経若僞妄,則慈氏何以親授表師.又此経如可禁,舎刹問経亦可禁乎.琮軰可謂攫金不見人,讀者詳焉.讃曰.現身澆季激慵聾,霊岳仙溪感應通.莫謂翹懃傳搭懴.作橋東海化魚龍.
『사리불문경』에 이러하다.
부처가 장자의 아들 빈야다라에게 일렀다. "너는 이레 밤낮으로 네 앞의 죄를 뉘우쳐 모두 깨끗하게 하라."
다라가 가르침을 받들어 밤낮으로 간절히 슬퍼하니, 닷샛날 저녁에 이르러 그 방 안에 온갖 물건이 비처럼 내렸다. 수건이며 보자기며 총채며 빗자루며 송곳이며 도끼 따위가 눈앞에 떨어졌다.
다라가 기뻐하며 부처께 물으니 부처가 말하였다. "이는 티끌을 여읜 모습이니 베고 떨어 내는 물건이다."
이에 따르면 『점찰경』에서 바퀴를 던져 모습을 얻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에 알겠다. 진표가 몸을 던져 참회하여 간자를 얻고 법을 듣고 부처를 뵌 것은 속임이 아니라 이를 만하다.
하물며 이 경이 거짓되고 망령된 것이라면 미륵이 어찌하여 진표법사에게 몸소 주었겠는가.
또 이 경을 금할 수 있다면 『사리불문경』도 금할 수 있겠는가.
언종의 무리는 금을 움키느라 사람을 보지 못한 자라 이를 만하니, 읽는 이는 자세히 살피라.
기려서 이른다.
메마른 말세에 몸을 나타내어 게으르고 귀먹은 이를 떨쳐 일으키니 신령한 산과 선계산에 감응이 통하였네. 몸을 던진 부지런함을 첩참을 전한 것이라 말하지 말라 동해에 다리를 놓아 물고기와 용을 교화하였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