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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 풍악 발연수의 돌에 새긴 기록關東楓岳鉢淵藪石記

삼국유사 三國遺事 · 일연(一然) · 1281년 (고려 충렬왕 7) · 단락 6 · 한자 1,189자 · 낭독 4.8분

「삼국유사」 의해 제5 「관동 풍악 발연수의 돌에 새긴 기록」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엮은 삼국시대 설화집. 정사가 버린 이야기를 모았다. 단군신화가 실린 가장 오래된 책이다.

1쌀 한 홉은 쥐에게 주고

關東楓岳鉢淵藪石記〔此記乃寺主瑩岑所撰,承安四年己未立石.〕真表律師全州碧骨郡都那山村大井里人也.年至十二志求出家父許之.師徃金山藪順濟法師䖏零染.濟授沙弥戒法,傳教供飬次第秘法一卷·占察善惡業報經二卷曰,“汝持此戒法於彌勒·地藏两聖前懇求懴悔,親受戒法流傳於世.”師奉教辞退遍歴名山,年已二十七歲.於上元元年庚子蒸二十斗米乃乾爲粮,詣保安縣入邉山不思議房,以五合米爲一日費除一合米飬鼠.

관동 풍악 발연수의 돌에 새긴 기록.〔이 기록은 절 주인 영잠이 지은 것이며, 승안 사년 기미년에 돌을 세웠다.〕

진표율사는 전주 벽골군 도나산촌 대정리 사람이다.

나이 열둘에 출가하기를 뜻하니 아버지가 허락하였다.

법사가 금산사 순제법사에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순제가 사미의 계법과 『전교공양차제비법』 한 권, 『점찰선악업보경』 두 권을 주며 말하였다.

"너는 이 계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 두 성인 앞에서 간절히 참회를 구하여, 몸소 계법을 받아 세상에 전하여라."

법사가 가르침을 받들어 하직하고 이름난 산을 두루 다니니 나이 이미 스물일곱이었다.

상원 원년 경자년에 쌀 스무 말을 쪄서 말려 양식으로 삼고, 보안현에 이르러 변산 부사의방에 들어갔다.

쌀 다섯 홉을 하루 비용으로 삼되, 한 홉을 덜어 쥐를 먹였다.

협주 1

此記乃寺主瑩岑所撰, 承安四年己未立石.

이 기록은 절 주인 영잠(瑩岑)이 지은 것이며, 승안 사년 기미년에 돌을 세웠다.

2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시 붙다

師勤求戒法於弥勒像前三年而未淂授記.發憤捨身嵓下,忽有青衣童手捧而置石上.師更發志願約三七日,日夜勤修扣石懴悔.至三日手臂折落,至七日夜地藏菩薩手揺金錫来爲加持,手臂如舊.菩薩遂與袈裟及鉢,師感其霊應倍加精進.滿三七日,即淂天眼見兠率天衆来儀之相.於是地藏·慈氏現前,慈氏磨師頂曰.“善㦲,大丈夫.求戒如是不惜身命懇求懴悔.”地藏授與戒本,慈氏復與二栍,一題曰九者,一題八者.告師曰.“此二簡子者是吾手指骨,此喻始夲二覺.又九者法尒,八者新熏成佛種子,以此當知果報.汝捨此身受大國王身後生於兠率.”如是語已两聖即隠.時壬寅四月二十七日也.

법사가 미륵상 앞에서 계법을 부지런히 구한 지 세 해가 되도록 예언을 받지 못하였다.

발분하여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지니, 홀연 푸른 옷 입은 동자가 손으로 받들어 돌 위에 놓았다.

법사가 다시 뜻을 내어 삼칠일을 기약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닦으며 돌에 부딪쳐 참회하였다.

사흘째에 이르러 팔이 부러져 떨어졌다.

이렛날 밤에 이르러 지장보살이 손에 금 지팡이를 흔들며 와서 가지(加持)해 주니 팔이 예전과 같아졌다.

보살이 마침내 가사와 바리를 주니, 법사가 그 신령한 감응에 감동하여 정진을 갑절로 더하였다.

삼칠일이 차자 곧 하늘 눈을 얻어 도솔천 무리가 와서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았다.

이에 지장과 미륵이 앞에 나타났다.

미륵이 법사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좋구나, 대장부여. 계를 구하기를 이와 같이 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참회를 구하였구나."

지장이 계본을 주었고, 미륵이 다시 간자 둘을 주었는데 하나에는 '아홉'이라 쓰고 하나에는 '여덟'이라 썼다.

법사에게 일렀다.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뼈이니, 이는 시각과 본각 두 깨달음을 나타낸다.

또 '아홉'은 법 그대로요, '여덟'은 새로 익혀 부처를 이루는 씨앗이니, 이로써 마땅히 과보를 알라.

너는 이 몸을 버리고 큰 나라 왕의 몸을 받은 뒤 도솔천에 나리라."

이렇게 말하고 두 성인이 곧 숨었다. 그때는 임인년 4월 스무이렛날이었다.

3용왕이 옥가사를 바치다

師受教法已,欲創金山寺下山而来.至大淵津,忽有龍王出献玉袈裟,将八萬眷屬侍徃金山藪.四方子来不日成之.復感慈氏従兠率駕雲而下與師受戒法,師勸檀縁鑄成弥勒丈六像.復畫下䧏受戒威儀之相於金堂南壁□.於甲辰六月九日鑄成丙午五月一日安置金堂,是嵗大暦元年也.

법사가 가르침의 법을 받고 나서 금산사를 세우고자 산을 내려왔다.

대연진에 이르니 홀연 용왕이 나와 옥가사를 바치고, 팔만 권속을 거느려 모시고 금산사로 갔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오니 며칠 걸리지 않아 이루었다.

다시 미륵이 도솔천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 법사에게 계법을 주는 감응이 있었다.

법사가 시주하는 인연을 권하여 미륵 장륙상을 부어 만들었다.

또 미륵이 내려와 계를 주던 위의를 금당 남쪽 벽에 그렸다.

갑진년 6월 초아흐렛날에 부어 이루고 병오년 5월 초하룻날에 금당에 모셨으니, 이해가 대력 원년이다.

4소가 무릎 꿇고 울다

師出金山向俗離山,路逢駕牛乗車者.其牛䓁向師前跪膝而泣.乗車人下問,“何故此牛䓁見和尚泣耶.和尚従何而来.”師曰,“我是金山藪真表僧,予曽入邉山不思議房於弥勒·地藏两聖前親受戒法真栍,欲覔創寺鎮長修道之䖏故来爾.此牛䓁外愚内明,知我受戒法爲重法,故跪膝而泣.”其人聞已乃曰,“畜生尚有如是信心,况我爲人豈無心乎.”即以手執鎌自断頭髮.師以悲心爲祝髮受戒.行至俗離山洞裏見吉祥草所生䖏而識之.還向溟州海邉徐行次,有魚鼈黿鼉䓁類出海向師前綴身如陸,師踏而入海唱念戒法遝出.行至高城郡入皆骨山始創鉢淵藪,開占察法㑹.住七年,時溟州界年糓不登人民飢饉,師爲說戒,法人人奉持致敬三寳.俄於髙城海邉有無数魚類自死而出,人民賣此爲食得免死.

법사가 금산사를 나와 속리산으로 향하다가 길에서 소에 멍에를 메워 수레를 탄 이를 만났다.

그 소들이 법사 앞을 향해 무릎을 꿇고 울었다.

수레 탄 사람이 내려 물었다. "무슨 까닭에 이 소들이 스님을 보고 웁니까. 스님은 어디서 오십니까."

법사가 말하였다. "나는 금산사의 진표라는 중이오. 내가 일찍이 변산 부사의방에 들어가 미륵과 지장 두 성인 앞에서 몸소 계법과 참된 간자를 받았소. 절을 세우고 오래 도를 닦을 곳을 찾으려 오는 길이오.

이 소들은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은 밝아, 내가 받은 계법이 무거운 법인 줄 알기에 무릎 꿇고 우는 것이오."

그 사람이 듣고 말하였다. "짐승도 오히려 이런 믿는 마음이 있는데, 하물며 나는 사람이니 어찌 마음이 없겠소."

곧 손으로 낫을 잡아 스스로 머리털을 잘랐다.

법사가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머리를 깎아 주고 계를 주었다.

걸어서 속리산 골짜기 안에 이르러 길상초가 난 곳을 보고 그것을 표해 두었다.

다시 명주 바닷가로 향하여 천천히 가는데, 물고기와 자라와 큰 자라와 악어 따위가 바다에서 나와 법사 앞에 몸을 이어 뭍처럼 만들었다.

법사가 밟고 바다에 들어가 계법을 외고 나서 다시 나왔다.

걸어서 고성군에 이르러 개골산에 들어가 비로소 발연사를 세우고 점찰법회를 열었다.

일곱 해를 머물렀다.

그때 명주 지경에 곡식이 여물지 않아 백성이 굶주렸다. 법사가 그들을 위해 계를 설하니 사람마다 받들어 지녀 삼보에 공경을 드렸다.

이윽고 고성 바닷가에 수없이 많은 물고기가 절로 죽어 나오니, 백성이 이를 팔아 먹을 것을 얻어 죽음을 면하였다.

5복숭아나무에서 몸을 던지다

師出鉢淵復到不思議房,然後徃詣家邑謁父,或到真門大徳房居住.時俗離山大徳永深與大徳融宗·佛陁等同詣律師所伸請曰.“我等不逺千里來求戒法.願授法門.”師默然不荅.三人者乗桃樹上倒墮於地勇猛懴悔.師乃傳教灌頂,遂與袈裟及鉢·供飬次第秘法一卷·日察善惡業報経二卷·一百八十九栍.復與弥勒真栍九者八者,誡曰.“九者法尒,八者新熏成佛種子.我已付囑汝等,持此還歸俗離山.山有吉祥草生處於此創立精舎,依此教法廣度人天,流布後世.”永深等奉教直徃俗離,尋吉祥草生處創寺名曰吉祥.永深於此始設占察法㑹.

법사가 발연사를 나와 다시 부사의방에 이르렀고, 그런 뒤에 고향 고을에 가서 아버지를 뵈었으며, 더러는 진문대덕의 방에 이르러 살았다.

그때 속리산의 대덕 영심(永深)이 대덕 융종·불타 등과 함께 율사가 있는 곳에 이르러 청하였다.

"저희가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와서 계법을 구합니다. 원컨대 법문을 주소서."

법사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복숭아나무 위에 올라 거꾸로 땅에 떨어지며 용맹하게 참회하였다.

법사가 이에 가르침을 전하고 정수리에 물을 부었다.

마침내 가사와 바리, 『공양차제비법』 한 권, 『점찰선악업보경』 두 권, 간자 백여든아홉 개를 주었다.

다시 미륵의 참 간자인 '아홉'과 '여덟'을 주며 경계하였다.

"'아홉'은 법 그대로요, '여덟'은 새로 익혀 부처를 이루는 씨앗이다. 내가 이미 너희에게 부촉하였으니, 이것을 지니고 속리산으로 돌아가라.

산에 길상초가 난 곳이 있으니 거기에 절을 세우고, 이 가르침에 따라 사람과 하늘을 널리 건져 뒷세상에 퍼뜨려라."

영심 등이 가르침을 받들어 곧장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난 곳을 찾아 절을 세우고 길상사(吉祥寺)라 이름하였다.

영심이 여기서 비로소 점찰법회를 베풀었다.

협주 1

日察

저본은 「日察」이나 「占察」의 잘못으로 보아 「점찰」로 옮겼다.

6두 나무 아래에서 뼈를 찾다 — 무극이 적다

律師與父復到鉢淵,同修道業而終孝之.師遷化時登於寺東大巖上示滅,弟子等不動真体而供飬,至于骸骨散落於是以圡覆藏乃爲幽宫.有青松即出嵗月久逺而枯,復生一樹,後更生一樹,其根一也.至今雙樹存焉.凢有致敬者松下覔骨,或得或不得.子恐聖骨堙滅,丁巳九月特詣松下拾骨盛筒有三合許.於大嵓上雙樹下立石安骨焉云云.此録所載真表事跡與鉢淵石記互有不同,故刪取瑩岑所記而載之,後賢冝考之.無極記.

율사가 아버지와 함께 다시 발연사에 이르러 함께 도업을 닦으며 효를 마쳤다.

법사가 세상을 옮길 때 절 동쪽 큰 바위 위에 올라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이 참몸을 옮기지 않고 공양하다가 뼈가 흩어져 떨어지기에 이르자, 이에 흙으로 덮어 감추어 그윽한 궁으로 삼았다.

푸른 소나무가 곧 났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말랐고, 다시 한 그루가 났으며, 뒤에 또 한 그루가 났는데 그 뿌리가 하나다.

지금까지 두 나무가 남아 있다.

무릇 공경을 드리는 이가 소나무 아래에서 뼈를 찾으면 더러 얻기도 하고 더러 얻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거룩한 뼈가 묻혀 사라질까 두려워, 정사년 9월에 특별히 소나무 아래에 가서 뼈를 주워 통에 담으니 세 홉쯤이었다.

큰 바위 위 두 나무 아래에 돌을 세우고 뼈를 모셨다.

이 기록에 실린 진표의 사적은 「발연 석기」와 서로 같지 않은 데가 있다. 그러므로 영잠이 적은 것을 추려 실었으니, 뒷날의 어진 이가 마땅히 상고할 일이다.

무극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