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과 해골勝詮髑髏
1어디서 온 사람인지 알 수 없다
勝詮髑髏釋勝詮未詳其所自也.常附舶指中國詣賢首國師講下,領受玄言研微積慮,惠鑒超頴探賾索隱妙盡隅粵.思欲赴感有縁當還國里.
승전과 해골.
승려 승전(勝詮)은 어디서 온 사람인지 자세하지 않다.
늘 배에 붙어 중국으로 향하여 현수국사의 강석에 나아가, 그윽한 말씀을 받아 미묘한 데를 갈고 생각을 쌓았다.
슬기로운 살핌이 뛰어나 깊은 것을 찾고 숨은 것을 캐어 구석까지 묘하게 다하였다.
인연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여 마땅히 나라로 돌아가려 하였다.
2책 목록과 물병 하나
始賢首與義湘同學俱禀儼和尚慈訓.首就於師說演述義科,因詮法師還郷寄示,湘仍寓書〔云云〕,别幅云.“探玄記二十卷两卷未成,教分記三卷·玄義章等雜義一卷·華嚴梵語一卷·起信䟽两卷·十二門䟽一卷·法界無差别論䟽一卷並因勝詮法師抄寫還郷.頃新羅僧孝忠遺金九分云,是上人所寄,雖不得書頂荷無盡.今附西國軍特澡灌一口用表微誠,幸願撿領.謹宣.”師旣還寄信于義湘,湘乃目閱藏文如耳聆儼訓.探討数旬而授門弟子廣演斯文.語在湘傳.按此圎融之教誨遍洽于青丘者寔師之㓛也.厥後有僧梵修,逺適彼國,求得新譯後分華嚴経·觀師義䟽言還流演,時當貞元己卯.斯亦求法洪揚之流乎.
처음에 현수는 의상과 함께 배워 모두 지엄화상의 자애로운 가르침을 받았다.
현수가 스승의 말씀에 나아가 뜻의 갈래를 펴 지었고, 승전법사가 고향에 돌아가는 편에 부쳐 보이면서 의상에게 편지를 붙였다.
따로 붙인 쪽지에 이렇게 이른다.
"『탐현기』 스무 권 가운데 두 권은 아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교분기』 세 권, 『현의장』 등 잡의 한 권, 『화엄범어』 한 권, 『기신소』 두 권, 『십이문소』 한 권, 『법계무차별론소』 한 권을 아울러 승전법사가 베껴 고향으로 돌아가는 편에 부칩니다.
요사이 신라 승려 효충이 금 아홉 푼을 전하며 스님께서 보내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비록 글은 받지 못하였으나 머리에 이는 고마움이 다함이 없습니다.
이제 서역의 물병 하나를 붙여 작은 정성을 표하오니 부디 살펴 받으소서. 삼가 아룁니다."
법사가 돌아와 의상에게 편지를 전하니, 의상이 이에 갈무리된 글을 눈으로 읽되 마치 귀로 지엄의 가르침을 듣는 듯하였다.
여러 순(旬)을 캐어 살핀 뒤 문하 제자에게 주어 이 글을 널리 펴게 하였다. 이 말은 「의상전」에 있다.
살피건대 이 원융한 가르침이 두루 우리 땅에 젖어든 것은 실로 이 법사의 공이다.
그 뒤에 승려 범수(梵修)가 있어 멀리 그 나라에 가서 새로 옮긴 『후분화엄경』과 관사의 의소를 구해 돌아와 펴서 널리 알렸으니, 때는 정원 기묘년에 해당한다. 이 또한 법을 구해 크게 편 갈래라 하겠다.
협주 1
云云
이러이러하다.
3해골을 제자로 삼아 강하다
詮乃於尚州領内開寧郡境開創精廬,以石髑髏爲官屬開講華嚴.新羅沙門可歸頗聦明識道理有傳燈之續,乃撰心源章.其略云,“勝詮法師領石徒衆論議講演.今葛頃寺也.其髑髏八十餘枚至今爲網司所傳,頗有霊異.”其他事迹具載碑文,如大覺國師實録中.
승전이 이에 상주 관내 개령군 지경에 절을 세우고, 돌 해골을 관속으로 삼아 『화엄경』을 강하였다.
신라 사문 가귀(可歸)가 자못 총명하고 도리를 알아 등을 전하는 이음이 있어 『심원장』을 지었다. 그 대략에 이렇게 이른다.
"승전법사가 돌 무리를 거느리고 논의하며 강하여 폈다. 지금의 갈항사다. 그 해골 여든 남짓이 지금까지 강사(綱司)에게 전해 오는데 자못 신령하고 기이함이 있다."
그 밖의 사적은 비문에 갖추어 실려 있으니 『대각국사실록』 가운데와 같다.
협주 1
網司
저본은 「網司」이나 「綱司」의 잘못으로 보아 「강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