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2 — 원종과 쿠빌라이高麗 二
1세자여 왕이 되라
:世子其趣裝命駕,歸國知政,解仇釋憾,布德施恩。緬惟瘡痍之民,正在撫綏之日,出彼滄溟,宅於平壤。賣刀劍而買牛犢,捨干戈而操耒耜,凡可援濟,毋憚勤勞。苟富庶之有徵,冀禮義之可復,亟正疆界,以定民心,我師不復踰限矣。大號一出,朕不食言。復有敢踵亂犯上者,非干爾主,乃亂我典刑,國有常憲,人得誅之。於戲!世子其王矣。往欽哉!恭承丕訓,永為東藩,以揚我休命。
「세자는 행장을 서둘러 수레를 명해 귀국하여 정사를 맡아, 원한을 풀고 유감을 놓으며 덕을 펴고 은혜를 베풀라. 아득히 생각건대 상처 입은 백성이 바로 어루만질 날에 있으니, 저 푸른 바다에서 나와 평양에 자리 잡으라. 칼을 팔아 송아지를 사고 창을 버리고 쟁기를 잡되, 무릇 구제할 수 있는 일이면 수고를 꺼리지 말라. 진실로 부유해짐이 징험되면 예의가 회복되기를 바랄 수 있으리니, 빨리 강계를 바로잡아 민심을 정하면 우리 군사가 다시는 한계를 넘지 않으리라. 큰 호령이 한 번 나가면 짐은 식언하지 않는다. 다시 감히 난을 뒤따라 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네 임금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곧 나의 전형(典刑)을 어지럽힘이니,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어 사람마다 벨 수 있다. 아, 세자는 왕이 될지어다. 가서 공경하라! 큰 가르침을 공손히 받들어 길이 동번(東藩)이 되어 나의 아름다운 명을 드날리라.」
2책봉과 인장
四月,復降旨諭倎曰:「朕祗若天命,獲承祖宗休烈,仰惟覆燾,一視同仁,無遐邇小大之間也。以爾歸款,既冊為王還國,今得爾與邊將之書,因知其上下之情,朕甚憫焉。」倎求出水就陸,免軍馬侵擾,還被虜及逃民,皆從之。詔班師,乃赦其境內。六月,倎遣其子永安公僖、判司宰事韓即入賀即位,以國王封冊、王印及虎符賜之。是月,又下詔撫諭之。
4월에 다시 지시를 내려 전을 타일렀다. 「짐이 천명을 공경히 따라 조종의 아름다운 공렬을 이어받으니, 우러러 하늘이 덮듯 하나같이 어질게 보아 멀고 가깝고 크고 작음의 사이가 없다. 네가 귀순했으므로 이미 왕으로 책봉해 귀국시켰는데, 이제 너와 변장의 글을 얻어 그 위아래의 사정을 아니 짐이 매우 가엾게 여긴다.」 전이 물에서 나와 뭍으로 나아갈 것과 군마의 침요를 면할 것과 포로 및 도망한 백성을 돌려받을 것을 구하니 다 따랐다. 조서로 군사를 돌리고 그 지경 안을 사면하였다. 6월에 전이 아들 영안공 희와 판사재사 한즉을 보내 즉위를 하례하니, 국왕 봉책과 왕인과 호부(虎符)를 내렸다. 이달에 또 조서를 내려 어루만져 타일렀다.
3이름을 식(禃)으로 고치다
二年三月,遣使入貢。四月,倎入朝。六月,倎更名禃,遣其世子愖奉表以聞。八月,賜禃玉帶一,遣侍衞將軍孛里察、禮部郎中高逸民護愖還國。九月,禃遣其侍御史張鎰奉表入謝。十月,帝遣阿的迷失、焦天翼持詔,諭以開榷場事。
2년 3월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4월에 전이 입조하였다. 6월에 전이 이름을 식(禃)으로 고치고 세자 심(愖)을 보내 표를 받들어 아뢰었다. 8월에 식에게 옥띠 하나를 내리고, 시위장군 패리찰과 예부낭중 고일민을 보내 심을 호위해 귀국시켰다. 9월에 식이 시어사 장일을 보내 표를 받들어 사례하였다. 10월에 황제가 아적미실·초천익을 보내 조서를 지니고 가서 각장(榷場) 여는 일을 타일렀다.
4책력을 내리다
三年正月,罷互市。諸王塔察兒請置鐵冶,從之。請立互市,不從。賜禃曆,後歲以為常,禃遣使入謝,優詔答之。四月,禃遣其左諫議大夫朴倫、郎將辛洪成等奉表入朝。六月,遣使入貢。八月,朴倫等還,賜西錦三段、間金熟綾六段。十月,詔諭禃籍編民,出師旅,輸糧餉,助軍儲。是月,禃遣使入貢。
3년 정월에 호시(互市)를 없앴다. 제왕 탑찰아가 철야(鐵冶) 두기를 청하니 따랐고, 호시 세우기를 청하니 따르지 않았다. 식에게 책력을 내리고 뒤에 해마다 상례로 삼으니, 식이 사신을 보내 사례하매 너그러운 조서로 답하였다. 4월에 식이 좌간의대부 박륜과 낭장 신홍성 등을 보내 표를 받들어 입조시켰다. 6월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8월에 박륜 등이 돌아갈 때 서금 세 단과 간금숙릉 여섯 단을 내렸다. 10월에 조서로 식에게 백성을 호적에 올리고 군사를 내고 군량을 날라 군수를 도우라 타일렀다. 이달에 식이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5간곡한 사연을 받아들이다
四年二月,以禃不答詔書,詰其使者。禃表乞俟民生稍集,然後惟命。帝以其辭意懇實,允之。朝貢物數,亦命稱其力焉。自三月至于六月,禃凡三遣使入貢,賜禃羊五百。十一月,禃以免置驛籍民等事,遣其翰林學士韓就奉表入謝。
4년 2월에 식이 조서에 답하지 않았다 하여 그 사자를 힐책하였다. 식이 표로 백성의 살림이 조금 모이기를 기다린 뒤에 명대로 하겠다 비니, 황제가 그 말뜻이 간곡하고 참되다 하여 허락하고, 조공하는 물건의 수도 그 힘에 맞게 하라 명하였다. 3월부터 6월까지 식이 무릇 세 번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식에게 양 오백 마리를 내렸다. 11월에 식이 역참 두는 일과 백성을 호적에 올리는 일 등을 면제받은 데 대해 한림학사 한취를 보내 표를 받들어 사례하였다.
6원종의 친조
五年正月丁丑朔,禃遣使奉表入賀,諭還使,令禃親朝京師。四月,以西北諸王率眾款附,擬今歲朝王公羣牧于上都,又遣必闍赤古乙獨徵禃入朝,修世見之禮。五月,禃遣其借國子祭酒張鎰從古乙獨入見。六月,乃親朝。九月,帝以改中統五年為至元元年,遣郎中路得成持赦令,與禃郎將康允(玿)〔紹〕頒其國。十月,禃入朝。十二月,遣禃還國。是年春,禃遣使入貢。自是終世祖三十一年,其國入貢者凡三十有六。
5년 정월 정축 초하루에 식이 사신을 보내 표를 받들어 하례하니, 사신을 돌려보내며 식에게 서울에 친조하라 타일렀다. 4월에 서북 제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귀부했으므로 올해 상도에서 왕공과 군목의 조회를 받기로 하고, 또 필도치 고을독을 보내 식의 입조를 불러 대대로 뵙는 예를 닦게 하였다. 5월에 식이 차국자좨주 장일을 고을독에 딸려 보내 뵈었다. 6월에 이에 친조하였다. 9월에 황제가 중통 오년을 지원 원년으로 고치면서 낭중 노득성을 보내 사면령을 지니고 식의 낭장 강윤소와 함께 그 나라에 반포하였다. 10월에 식이 입조하고 12월에 식을 귀국시켰다. 이해 봄에 식이 사신을 보내 조공했으니, 이로부터 세조 31년이 끝나기까지 그 나라가 조공한 것이 무릇 서른여섯 번이다.
협주 1
康允(玿)〔紹〕據高麗史卷二六元宗世家元宗五年五月己丑條、卷一二三康允紹傳改。下同。
「강윤(玿)〔소(紹)〕」는 고려사 원종세가 5년 5월 기축조와 강윤소전에 따라 고쳤다. 아래도 같다.
7일본 길잡이가 되라
至元三年二月,立瀋州,以處高麗降民。帝欲通好日本,以高麗與日本鄰國,可為鄉導,八月,遣國信使兵部侍郎黑的、禮部侍郎殷弘、計議官伯德孝先等使日本,先至高麗諭旨。十二月,禃遣其樞密院副使宋君斐、借禮部侍郎金贊等導詔使黑的、殷弘等往日本,不至而還。
지원 삼년 2월에 심주(瀋州)를 세워 고려의 항복한 백성을 살게 하였다. 황제가 일본과 통호하고자 하는데 고려가 일본과 이웃 나라라 길잡이가 될 만하므로, 8월에 국신사 병부시랑 흑적과 예부시랑 은홍과 계의관 백덕효선 등을 일본에 사신 보내며 먼저 고려에 이르러 뜻을 알리게 하였다. 12월에 식이 추밀원부사 송군비와 차예부시랑 김찬 등을 보내 조사(詔使) 흑적·은홍 등을 인도해 일본으로 가게 했으나,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8반부의 사행
四年正月,禃遣君斐等奉表從黑的等入朝。六月,帝以禃飾辭,令去使徒還,復遣黑的與君斐等以詔諭禃,委以日本事,以必得其要領為期。九月,禃遣其起居舍人潘阜、書狀官李挺充國信使,持書詣日本。
4년 정월에 식이 군비 등을 보내 표를 받들고 흑적 등을 따라 입조시켰다. 6월에 황제가 식이 말을 꾸며 간 사신을 헛되이 돌아오게 했다 하여, 다시 흑적을 군비 등과 함께 보내 조서로 식을 타이르고 일본 일을 맡기며 반드시 요령을 얻는 것을 기한으로 삼았다. 9월에 식이 기거사인 반부와 서장관 이정을 국신사로 삼아 글을 지니고 일본에 가게 하였다.
9여섯 가지 일을 묻다
五年正月,禃遣其弟淐入朝。帝以禃見欺於淐,面數其事切責之。特遣北京〔路〕總管兼大(興)〔定〕府尹于也孫脫、禮部郎中孟甲持詔諭禃,其略曰:「向請撤兵,則已撤之矣。三年當去水就陸,而前言無徵也。又太祖法制,凡內屬之國,納質、助軍、輸糧、設驛、編戶籍、置長官,已嘗明諭之,而稽延至今,終無成言。在太(祖)〔宗〕時,王綧等已入質,驛傳亦粗立,餘率未奉行。今將問罪於宋,其所助士卒舟艦幾何?輸糧則就為儲積,至若設官及戶版事,其意謂何?故以問之。」三月,于也孫脫等至其國。
5년 정월에 식이 아우 창(淐)을 보내 입조시켰다. 황제가 식이 창에게 속임을 당했다 하여 그 일을 면전에서 헤아리며 절실히 꾸짖었다. 특별히 북경로총관 겸 대정부윤 우야손탈과 예부낭중 맹갑을 보내 조서로 식을 타이르니 그 대략에 일렀다. 「지난번 철병을 청하기에 이미 철병하였다. 세 해 안에 물을 떠나 뭍으로 나온다더니 앞말이 징험이 없다. 또 태조의 법제에 무릇 내속한 나라는 볼모를 바치고, 군사를 돕고, 군량을 나르고, 역참을 두고, 호적을 만들고, 장관을 두는 것이라 이미 밝게 타일렀는데, 지금까지 미루며 끝내 이룬 말이 없다. 태종 때 왕준 등이 이미 볼모로 들어왔고 역전도 대강 섰으나 나머지는 대개 봉행하지 않았다. 이제 송에 죄를 물으려 하니 도울 사졸과 배가 얼마인가. 군량은 곧 쌓아 두라. 관을 두는 일과 호적 일은 그 뜻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묻는다.」 3월에 우야손탈 등이 그 나라에 이르렀다.
협주 2
北京〔路〕總管兼大(興)〔定〕府尹于也孫脫據本書卷六世祖紀至元五年正月辛丑條及高麗史卷二六元宗世家元宗九年三月壬申條補改。按當時有北京路總管府,領大定府。大興府屬燕京路。
「북경〔로〕총관 겸 대(興)〔정(定)〕부윤 우야손탈」은 본서 세조기 지원 5년 정월 신축조와 고려사 원종세가 9년 3월 임신조에 따라 보충해 고쳤다. 당시 북경로총관부가 있어 대정부를 거느렸고, 대흥부는 연경로에 속했다.
太(祖)〔宗〕時王綧等已入質按上文,王綧于太宗十三年入質,與本書卷二太宗紀太宗十三年秋條符,據改。
「태(祖)〔종(宗)〕 때 왕준 등이 이미 볼모로 들어왔다」 — 앞글에 왕준이 태종 13년에 입질했다 하니 본서 태종기 13년 가을조와 맞으므로 이에 따라 고쳤다.
10배 천 척을 지으라
四月,禃遣其門下侍郎李藏用奉表與也孫脫等入朝。五月,帝敕藏用曰:「往諭爾主,速以軍數實奏,將遣人督之。今出軍,爾等必疑將出何地,或欲南宋,或欲日本,爾主當造舟一千艘,能涉大海可載四千石者。」藏用曰:「舟艦之事即當應命,但人民殘少,恐不及期。往者臣國有軍四萬,三十餘年間死於兵疫,今止有牌子頭、五十戶、百戶、千戶之類虛名,而無軍卒。」帝曰:「死者有之,生者亦有之。」藏用曰:「賴聖德,自撤兵以來,有生長者僅十歲耳。」帝又曰:「自爾來者言,海中之事,於宋得便風可三日而至,日本則朝發而夕至。舟中載米,海中捕魚而食之,則豈不可行乎?」又敕藏用曰:「歸可以此言諭爾主。」
4월에 식이 문하시랑 이장용을 보내 표를 받들고 야손탈 등과 입조시켰다. 5월에 황제가 장용에게 칙하였다. 「가서 네 임금에게 타일러 빨리 군사 수를 사실대로 아뢰게 하라. 사람을 보내 독촉하리라. 이제 군사를 내면 너희는 반드시 어디로 나갈지 의심하리니, 남송일 수도 일본일 수도 있다. 네 임금은 배 일천 척을 짓되 큰 바다를 건널 수 있고 사천 석을 실을 수 있는 것으로 하라.」 장용이 「배 일은 곧 명에 응하겠으나 인민이 쇠잔하고 적어 기한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지난날 신의 나라에 군사 사만이 있었으나 삼십여 년 사이 전쟁과 돌림병에 죽어, 이제 패자두·오십호·백호·천호 따위 헛이름만 있고 군졸이 없습니다」 하니, 황제가 「죽은 자도 있고 산 자도 있다」 하였다. 장용이 「성덕에 힘입어 철병한 뒤로 나서 자란 이가 겨우 열 살일 뿐입니다」 하였다. 황제가 또 「너희 나라에서 온 자들이 말하기를, 바닷일은 송까지 순풍이면 사흘에 이르고 일본은 아침에 떠나 저녁에 닿는다 한다. 배에 쌀을 싣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먹으면 어찌 갈 수 없으랴」 하고, 또 장용에게 「돌아가 이 말로 네 임금을 타이르라」 칙하였다.
11군사를 사열하고 배를 짓다
七月,詔都統領脫朵兒、武德將軍統領王國昌、武略將軍副統領劉傑等使其國,與其來朝者大將軍崔東秀偕行。八月,至其國,禃出昇天府迎之,蓋諭以閱軍造船也。九月,以禃表奏潘阜等奉使無功而還,復遣黑的等使日本,詔禃遣重臣導送。十二月,禃遣其知門下省事申思(全)〔佺〕、禮部侍郎陳井、起居舍人潘阜等從國信使黑的等赴日本,借禮部侍郎張鎰奉表從脫朵兒入朝。
7월에 조서로 도통령 탈타아, 무덕장군 통령 왕국창, 무략장군 부통령 유걸 등을 그 나라에 사신 보내며, 조회 와 있던 대장군 최동수와 함께 가게 하였다. 8월에 그 나라에 이르니 식이 승천부에 나와 맞았는데, 대개 군사를 사열하고 배 짓는 일을 타이른 것이다. 9월에 식이 표로 반부 등이 사행에 공 없이 돌아왔다 아뢰니, 다시 흑적 등을 일본에 사신 보내며 조서로 식에게 중신을 시켜 인도해 보내게 하였다. 12월에 식이 지문하성사 신사전, 예부시랑 진정, 기거사인 반부 등을 국신사 흑적 등을 따라 일본에 보내고, 차예부시랑 장일이 표를 받들고 탈타아를 따라 입조하였다.
협주 1
申思(全)〔佺〕據高麗史卷二六元宗世家元宗九年十二月庚辰條改。新元史已校。下同。
「신사(全)〔전(佺)〕」은 고려사 원종세가 9년 12월 경진조에 따라 고쳤다. 신원사가 이미 교감했다. 아래도 같다.
12김준을 베다
六年正月,禃遣其大將軍康允(玿)〔紹〕奉表奏誅權臣金俊等。三月,禃復遣申思(全)〔佺〕奉表從黑的入朝。六月,禃遣其世子愖入朝。賜禃玉帶一,愖金五十兩,從官銀幣有差。七月,帝遣明威將軍都統領脫朵兒、武德將軍統領王國昌、武略將軍副統領劉傑相視耽羅等處道路,詔禃選官引達,以人言耽羅海道往南宋、日本甚易故也。
6년 정월에 식이 대장군 강윤소를 보내 표를 받들어 권신 김준 등을 벤 일을 아뢰었다. 3월에 식이 다시 신사전을 보내 표를 받들고 흑적을 따라 입조시켰다. 6월에 식이 세자 심을 보내 입조시키니, 식에게 옥띠 하나를, 심에게 금 오십 냥을, 따르는 관원에게 은과 폐백을 차등 있게 내렸다. 7월에 황제가 명위장군 도통령 탈타아, 무덕장군 통령 왕국창, 무략장군 부통령 유걸을 보내 탐라 등지의 길을 살피게 하고, 조서로 식에게 관원을 골라 인도하게 하니, 사람들이 탐라 바닷길로 남송과 일본에 가기가 매우 쉽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3임연의 폐립
八月,世子愖至朝,奏本國臣下擅廢禃立其弟安慶公淐事。詔遣使臣斡朵思不花、李諤等至其國詳問之。九月,其樞密院副使金方慶奉表從斡朵思不花等入朝。樞密院御史臺奏,世子愖言:「朝廷若出征,能辦軍三千,備糧五月,如官軍入境,臣宜同往,庶不驚擾。」帝然之。詔授世子禃特進、上柱國,敕愖率兵三千赴其國難。命抄不花往征其國,以病不果行,詔遣蒙哥都代之。
8월에 세자 심이 조정에 이르러, 본국 신하가 제멋대로 식을 폐하고 아우 안경공 창을 세운 일을 아뢰었다. 조서로 사신 알타사불화와 이악 등을 그 나라에 보내 자세히 묻게 하였다. 9월에 추밀원부사 김방경이 표를 받들고 알타사불화 등을 따라 입조하였다. 추밀원과 어사대가 아뢰기를, 세자 심이 「조정이 출정하시면 군사 삼천을 마련하고 다섯 달 양식을 갖추겠으며, 관군이 지경에 들어가면 신이 마땅히 함께 가야 놀라 소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다 하니 황제가 옳다 하였다. 조서로 세자에게 특진·상주국을 제수하고, 심에게 군사 삼천을 거느리고 나라의 어려움에 달려가라 칙하였다. 초불화에게 명해 그 나라를 치러 가게 했다가 병으로 못 가게 되자 조서로 몽가도를 대신 보냈다.
14최탄이 오십여 성을 바치다
十月,帝以禃、淐廢置乃林衍所為,遣中憲大夫兵部侍郎黑的、淄萊路總管府判官徐世雄詔禃、淐、衍等以十二月同詣闕下,面陳情實,聽其是非。又遣國王頭輦哥等率兵壓境,如踰期不至,即當窮治首惡,進兵勦戮。命趙璧行中書省于東京,仍詔諭高麗國軍民。十一月,高麗都統領崔坦等以林衍作亂,挈西京五十餘城入附。遣斷事官別同瓦馳驛於王綧、洪茶丘所管實科差戶內簽軍至東京,付樞密院,得三千三百人。高麗西京都統李延齡乞益兵,遣忙哥都率兵二千赴之。
10월에 황제가 식과 창의 폐립이 곧 임연의 소행이라 하여, 중헌대부 병부시랑 흑적과 치래로총관부판관 서세웅을 보내 식·창·연 등에게 12월에 함께 대궐 아래 나아와 실정을 면전에서 아뢰어 시비를 가리게 하고, 또 국왕 두련가 등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경을 눌러, 기한을 넘겨 이르지 않으면 곧 원흉을 끝까지 다스리고 진병하여 무찌르게 하였다. 조벽에게 명해 동경에서 중서성 일을 행하게 하고 그대로 고려 국군과 백성을 조서로 타일렀다. 11월에 고려 도통령 최탄 등이 임연의 난을 구실로 서경 등 오십여 성을 끌고 들어와 붙었다. 단사관 별동와를 역마로 보내 왕준·홍다구가 관할하는 실과차호 안에서 군사를 뽑아 동경에 이르러 추밀원에 붙이니 삼천삼백 명을 얻었다. 고려 서경도통 이연령이 군사를 더해 달라 비니 망가도를 보내 군사 이천을 거느리고 달려가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