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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자 — 아이를 가르치는 법教子

안씨가훈 顏氏家訓 · 안지추(顏之推) · 6세기 말 · 단락 7 · 한자 875자 · 낭독 3.5분

「안씨가훈」 한 권 「교자 — 아이를 가르치는 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북조 말의 학자 안지추가 자손에게 남긴 스무 편의 가훈. 양나라에서 나서 서위·북제·북주·수 네 나라를 떠돌며 살아남은 사람이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자손을 일깨우려고」 쓴 글이라, 아이 가르치기·형제·재혼·집안 살림·몸가짐과 말씨·배움·문장·이름과 실상·족함을 아는 것에서 글자와 책의 고증, 말소리, 글씨·그림·활·점·거문고·바둑 같은 여러 재주, 그리고 제 장례를 어떻게 치르라는 유언까지 이른다. 「수레에서 안 떨어지면 저작랑」이라던 양나라 귀족 자제가 난리 뒤 밭 갈고 말 기르게 된 것을 보고 「몸에 지닌 작은 재주가 재물 천만보다 낫다」고 한 대목, 「어려서 배우는 이는 해 뜰 때의 빛 같고 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다」는 대목이 여기서 나왔다. 뒷날의 가훈이 모두 이 책을 조상으로 삼는다.

1가르치지 않고 사랑만 하면

上智不教而成,下愚雖教無益,中庸之人,不教不知也。古者聖王有胎教之法:懷子三月,出居別宮,目不邪視,耳不妄聽,音聲滋味,以禮節之。書之玉版,藏諸金匱。生子咳㖷,師保固明孝仁禮義,導習之矣。凡庶縱不能爾,當及嬰稚,識人顏色,知人喜怒,便加教誨,使爲則爲,使止則止。比及數歲,可省笞罸。父母威嚴而有慈,則子女畏慎而生孝矣。吾見世間,無教而有愛,每不能然;飲食運爲,恣其所欲,宜誡翻獎,應訶反笑,至有識知,謂法當爾。驕慢已習,方復制之,捶撻至死而無威,忿怒日隆而增怨,逮于成長,終爲敗德。孔子云「少成若天性,習慣如自然」是也。俗諺曰:「教婦初來,教兒嬰孩。」誠哉斯語!

가장 지혜로운 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이루고, 가장 어리석은 이는 가르쳐도 소용이 없으며, 보통 사람은 가르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옛날 성왕에게는 태교의 법이 있었다. 아이를 밴 지 석 달이면 나가 별궁에 살며, 눈으로 비뚠 것을 보지 않고 귀로 함부로 듣지 않으며, 음악과 음식을 예로써 절제하였다. 이것을 옥판에 적어 금궤에 간직하였다. 아이가 나서 웃을 줄 알면 사보(師保)가 효도·어짊·예·의를 밝혀 이끌어 익히게 하였다. 뭇사람이 비록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마땅히 어릴 때에 이르러 사람의 낯빛을 알아보고 기쁨과 노여움을 알게 되면 곧 가르쳐서 하라면 하고 그치라면 그치게 해야 한다. 몇 살에 이르면 매질을 덜 수 있다. 부모가 위엄 있으면서도 자애로우면 자녀는 두려워 삼가며 효심이 난다. 내가 세상을 보니 가르침은 없고 사랑만 있어 늘 그렇게 하지 못한다. 먹고 마시고 하는 일마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고, 타일러야 할 때 도리어 칭찬하며 꾸짖어야 할 때 도리어 웃으니, 철이 들어서는 법이 본디 그런 줄로 안다. 교만이 이미 버릇이 된 뒤에야 비로소 다시 누르려 하니, 매질하여 죽음에 이르러도 위엄이 서지 않고 노여움이 날로 더할수록 원망만 는다. 자라서는 끝내 덕을 그르치고 만다. 공자가 「어려서 이룬 것은 천성과 같고, 버릇은 자연과 같다」 한 것이 이것이다. 속담에 「며느리는 처음 왔을 때 가르치고, 아이는 갓난아기일 때 가르쳐라」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2병을 고치는 데 탕약과 침을 쓰듯

凡人不能教子女者,亦非欲陷其罪惡;但重於訶怒。傷其顏色,不忍楚撻慘其肌膚耳。當以疾病爲諭,安得不用湯藥鍼艾救之哉?又宜思勤督訓者,可願苛虐於骨肉乎?誠不得已也。

자녀를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녀를 죄악에 빠뜨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꾸짖고 성내기를 어려워하여 그 낯빛을 상하게 하고, 차마 매질하여 살갗을 아프게 하지 못할 뿐이다. 마땅히 병에 견주어 볼 일이다. 어찌 탕약과 침과 뜸을 써서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부지런히 다그쳐 가르치는 이가 어찌 제 골육을 모질게 대하고 싶어서 그러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참으로 어쩔 수 없어서다.

3마흔 넘은 아들을 매질한 어머니, 오냐오냐 키워 창자를 뽑힌 아들

王大司馬母魏夫人,性甚嚴正;王在湓城時,爲三千人將,年踰四十,少不如意,猶捶撻之,故能成其勳業。梁元帝時,有一學士,聰敏有才,爲父所寵,失於教義:一言之是,徧於行路,終年譽之;一行之非,揜藏文飾,冀其自改。年登婚宦,暴慢日滋,竟以言語不擇,爲周逖抽腸釁鼓云。

왕대사마의 어머니 위부인은 성품이 몹시 엄정하였다. 왕이 분성에 있을 때 삼천 명을 거느린 장수로 나이 마흔을 넘었는데도, 조금이라도 뜻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매질하였다. 그러므로 그 공업을 이룰 수 있었다. 양나라 원제 때 학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재주가 있었으나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가르침을 잃었다. 한마디 옳은 말을 하면 길 가는 이에게까지 두루 알려 한 해가 다하도록 칭찬하고, 한 가지 그른 짓을 하면 덮어 감추고 꾸며 주며 스스로 고치기만 바랐다. 혼인하고 벼슬할 나이에 이르자 난폭함과 오만이 날로 더하여, 끝내 말을 가리지 않다가 주적에게 창자를 뽑혀 북에 피 칠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4군자는 제 아들을 몸소 가르치지 않는다

父子之嚴,不可以狎;骨肉之愛,不可以簡。簡則慈孝不接,狎則怠慢生焉。由命士以上,父子異宮,此不狎之道也;抑搔癢痛,懸衾篋枕,此不簡之教也。或問曰:「陳亢喜聞君子之遠其子,何謂也?」對曰:「有是也。蓋君子之不親教其子也,《詩》有諷刺之辭,《禮》有嫌疑之誡,《書》有悖亂之事,《春秋》有衺僻之譏,《易》有備物之象:皆非父子之可通言,故不親授耳。」

부자 사이의 엄함은 허물없이 굴어서는 안 되고, 골육 사이의 사랑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소홀하면 자애와 효도가 이어지지 않고, 허물없이 굴면 게으름과 업신여김이 생긴다. 명사(命士) 이상은 아버지와 아들이 거처를 달리하니 이것이 허물없이 굴지 않는 도리요, 가려운 데와 아픈 데를 긁어 드리고 이불을 걷고 베개를 챙겨 드리니 이것이 소홀히 하지 않는 가르침이다. 누가 묻기를 「진항이 군자가 제 아들을 멀리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는데 무슨 뜻입니까」 하기에 답하였다. 「그런 일이 있다. 군자가 제 아들을 몸소 가르치지 않는 것은, 『시경』에는 풍자하는 말이 있고 『예기』에는 혐의를 피하라는 훈계가 있으며 『서경』에는 어그러지고 어지러운 일이 있고 『춘추』에는 삿되고 치우친 짓을 나무라는 대목이 있고 『주역』에는 만물을 갖춘 형상이 있어, 모두 아버지와 아들이 터놓고 말할 것이 아니므로 몸소 가르치지 않을 뿐이다.」

5「지존께서 가지신 것을 내가 어찌 못 가지랴」 — 낭야왕의 끝

齊武成帝子琅邪王,太子母弟也,生而聰慧,帝及后並篤愛之,衣服飲食,與東宮相準。帝每面稱之曰:「此黠兒也,當有所成。」及太子即位,王居別宮,禮數優僭,不與諸王等;太后猶謂不足,常以爲言。年十許歲,驕恣無節,器服玩好,必擬乘輿;常朝南殿,見典御進新氷,鈎盾獻早李,還索不得,遂大怒,詬曰:「至尊已有,我何意無?」不知分齊,率皆如此。識者多有叔段州吁之譏。後嫌宰相,遂矯詔斬之,又懼有救,乃勒麾下軍士,防守殿門;既無反心,受勞而罷,後竟坐此幽薨。

제나라 무성제의 아들 낭야왕은 태자의 동복아우였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황제와 황후가 다 도탑게 사랑하였고, 옷과 음식이 동궁과 같았다. 황제는 늘 앞에서 「이 아이는 영특하니 반드시 이룰 것이 있으리라」 하였다. 태자가 즉위하자 왕은 별궁에 살며 예우가 지나쳐 다른 왕들과 같지 않았는데도 태후는 오히려 모자란다 하여 늘 말을 하였다. 나이 열 살 남짓에 교만하고 방자하여 절제가 없어 그릇과 옷과 노리개를 반드시 황제의 것과 견주었다. 언젠가 남전에서 조회할 때 전어(典御)가 새로 뜬 얼음을 올리고 구순(鉤盾)이 이른 오얏을 바치는 것을 보고 돌아와 찾다가 얻지 못하자 크게 노하여 꾸짖기를 「지존께서 이미 가지신 것을 내가 어찌 못 가진단 말이냐」 하였다. 분수를 모르는 것이 대개 이러하였다. 식자들은 숙단(叔段)과 주우(州吁)에 견주어 나무라는 이가 많았다. 뒤에 재상을 미워하여 조서를 꾸며 그를 베고, 또 구하러 오는 이가 있을까 두려워 휘하 군사를 시켜 궁문을 지키게 하였다. 반역할 마음은 없었으므로 위로를 받고 그쳤으나, 뒤에 끝내 이 일로 갇혀 죽었다.

6자식 사랑이 고르지 못하면

人之愛子,罕亦能均;自古及今,此弊多矣。賢俊者自可賞愛,頑魯者亦當矜憐,有偏寵者,雖欲以厚之,更所以禍之。共叔之死,母實爲之。趙王之戮,父實使之。劉表之傾宗覆族,袁紹之地裂兵亡,可爲靈龜明鑒也。

사람이 자식을 사랑하되 고르게 하는 이는 드물다. 예부터 지금까지 이 폐단이 많았다. 어질고 빼어난 아이는 아껴 줄 만하지만 둔하고 어리석은 아이도 마땅히 가엾이 여겨야 한다. 치우쳐 사랑하는 것은 두터이 하려다가 도리어 화를 부르는 길이다. 공숙(共叔)의 죽음은 실로 어머니가 만든 것이요, 조왕(趙王)의 죽임은 실로 아버지가 시킨 것이다. 유표가 종족을 뒤엎고 원소가 땅이 갈리고 군사가 망한 것은 밝은 거울로 삼을 만하다.

7아들에게 선비어와 비파를 가르치는 아버지

齊朝有一士大夫,嘗謂吾曰:「我有一兒,年已十七,頗曉書疏,教其鮮卑語及彈琵琶,稍欲通解,以此伏事公卿,無不寵愛,亦要事也。」吾時俛而不答。異哉,此人之教子也!若由此業,自致卿相,亦不願汝曹爲之。

제나라 조정의 한 사대부가 일찍이 내게 말하였다. 「나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나이 열일곱에 글과 편지를 제법 알아, 선비(鮮卑) 말과 비파 타기를 가르쳐 이제 곧 통하게 되었소. 이것으로 공경을 섬기면 사랑받지 않을 리 없으니 이 또한 요긴한 일이오.」 나는 그때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괴이하다, 이 사람이 아들 가르치는 것이여! 이런 일로 경상(卿相)에 이른다 하여도 나는 너희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