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취 — 새로 맞은 아내後娶
1어진 아버지와 효자 사이를 갈라놓은 계모
吉甫,賢父也,伯奇,孝子也,以賢父御孝子,合得終於天性,而後妻閒之,伯奇遂放。曾參婦死,謂其子曰:「吾不及吉甫,汝不及伯奇。」王駿喪妻,亦謂人曰:「我不及曾參,子不如華、元。」並終身不娶,此等足以爲誡。其後,假繼慘虐孤遺,離閒骨肉,傷心斷腸者,何可勝數。慎之哉!慎之哉!
길보는 어진 아버지요 백기는 효자였다. 어진 아버지가 효자를 거느렸으니 마땅히 천성대로 끝마쳤어야 하는데, 후처가 사이를 가르니 백기는 끝내 내쫓겼다. 증삼은 아내가 죽자 아들에게 「나는 길보만 못하고 너는 백기만 못하다」 하였고, 왕준은 아내를 잃자 남에게 「나는 증삼만 못하고 아들은 화·원만 못하다」 하고는 둘 다 죽을 때까지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이런 일은 훈계로 삼기에 넉넉하다. 그 뒤로 계모가 남겨진 아이를 모질게 학대하고 골육을 이간하여 마음 아프고 창자 끊어지게 한 일이 이루 셀 수 없다. 삼갈지어다, 삼갈지어다.
2강남과 하북의 재혼 풍속
江左不諱庶孽,喪室之後,多以妾媵終家事;疥癬蚊䖟,或未能免,限以大分,故稀鬬鬩之恥。河北鄙於側出,不預人流,是以必須重娶,至於三四,母年有少於子者。後母之弟,與前婦之兄,衣服飲食,爰及婚宦,至於士庶貴賤之隔,俗以爲常。身沒之後,辭訟盈公門,謗辱彰道路,子誣母爲妾,弟黜兄爲傭,播揚先人之辭迹,暴露祖考之長短,以求直己者,往往而有。悲夫!自古姦臣佞妾,以一言陷人者衆矣!況夫婦之義,曉夕移之,婢僕求容,助相說引,積年累月,安有孝子乎?此不可不畏。
강좌에서는 서출을 꺼리지 않아 아내를 잃은 뒤에는 흔히 첩으로 집안일을 마치게 한다. 옴이나 모기 같은 자잘한 다툼이야 면하지 못하더라도 큰 분수로 한정하니 다투는 부끄러움이 드물다. 하북에서는 서출을 천하게 여겨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으므로 반드시 다시 장가들어 서너 번에 이르니, 어머니 나이가 아들보다 적은 일도 있다. 후처의 아우와 전처의 형이 옷과 음식에서 혼인과 벼슬에 이르기까지 사와 서인, 귀와 천의 간격이 지도록 하는 것을 풍속으로 예사로 여긴다. 아비가 죽은 뒤에는 송사가 관청 문을 메우고 비방과 욕이 길거리에 드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첩이라 무함하고 아우는 형을 머슴이라 깎아내리며, 선인이 남긴 말과 자취를 들추고 조상의 장단점을 드러내어 제 옳음을 구하는 자가 곳곳에 있다. 슬프다! 예부터 간신과 아첨하는 첩이 한마디 말로 사람을 빠뜨린 일이 많았다. 하물며 부부의 의리로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옮기고 종들이 환심을 사려고 거들어 이끄니, 여러 해가 쌓이면 어찌 효자가 남겠는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3의붓아버지는 사랑하고 계모는 학대하는 까닭
凡庸之性,後夫多寵前夫之孤,後妻必虐前妻之子;非唯婦人懷嫉妒之情,丈夫有沈惑之僻,亦事勢使之然也。前夫之孤,不敢與我子争家,提攜鞠養,積習生愛,故寵之;前妻之子,每居己生之上,宦學婚嫁,莫不爲防焉,故虐之。異姓寵則父母被怨,繼親虐則兄弟爲讎,家有此者,皆門戶之禍也。
보통 사람의 성정은 의붓아버지는 전남편의 아이를 흔히 사랑하고, 후처는 전처의 자식을 반드시 학대한다. 부인이 질투하는 마음을 품고 사내가 빠져 홀리는 버릇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형편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전남편의 아이는 감히 제 아들과 집안을 다투지 못하고, 이끌고 길러 익숙해지면 사랑이 생기니 그래서 사랑한다. 전처의 자식은 늘 제가 낳은 아이 위에 있어 벼슬과 학업과 혼사에 막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래서 학대한다. 다른 성씨를 사랑하면 부모가 원망을 받고, 계모가 학대하면 형제가 원수가 되니, 집안에 이런 일이 있으면 다 문호의 화다.
4새어머니에게 절할 때마다 흐느낀 아들
思魯等從舅殷外臣,博達之士也。有子基、諶,皆已成立,而再娶王氏。基每拜見後母,感慕嗚咽,不能自持,家人莫忍仰視。王亦悽愴,不知所容,旬月求退,便以禮遣,此亦悔事也。
사로 등의 종외숙 은외신은 널리 통달한 선비였다. 아들 기와 심이 다 성인이 된 뒤에 왕씨에게 다시 장가들었다. 기는 새어머니에게 절할 때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흐느껴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집안사람들이 차마 우러러보지 못하였다. 왕씨도 처량하고 슬퍼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열흘 남짓 만에 물러나기를 청하니 곧 예로써 보내 주었다. 이 또한 뉘우칠 일이다.
5후한서의 설포 — 쫓겨나고도 아침마다 마당을 쓸다
《後漢書》曰:「安帝時,汝南薛包孟嘗,好學篤行,喪母,以至孝聞。及父娶後妻而憎包,分出之。包日夜號泣,不能去,至被毆杖。不得已,廬於舍外,旦入而洒埽。父怒,又逐之,乃廬於里門,昏晨不廢。積歲餘,父母慚而還之。後行六年服,喪過乎哀。既而弟子求分財異居,包不能止,乃中分其財:奴婢引其老者,曰:『與我共事久,若不能使也。』田廬取其荒頓者,曰:『吾少時所理,意所戀也。』器物取其朽敗者,曰:『我素所服食,身口所安也。』弟子數破其產,還復賑給。建光中,公車特徵,至拜侍中。包性恬虛,稱疾不起,以死自乞。有詔賜告歸也。」
『후한서』에 이른다. 「안제 때 여남의 설포(자는 맹상)는 배움을 좋아하고 행실이 도타워 어머니를 잃고 지극한 효로 알려졌다. 아버지가 후처를 얻자 설포를 미워하여 갈라 내보냈다. 설포는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떠나지 못하다가 몽둥이로 맞기까지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집 밖에 움막을 짓고 아침이면 들어와 물 뿌리고 쓸었다. 아버지가 노하여 또 내쫓으니 마을 문에 움막을 짓고 아침저녁 문안을 그치지 않았다. 한 해 남짓 지나자 부모가 부끄러워 돌아오게 하였다. 뒤에 여섯 해 상복을 입었는데 슬픔이 지나쳤다. 얼마 뒤 아우의 아들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청하니 설포는 말리지 못하고 재산을 반으로 나누었다. 노비는 늙은 이를 데리고 가며 『나와 오래 함께 일하였으니 너는 부리지 못할 것이다』 하고, 밭과 집은 거칠고 무너진 것을 가지며 『내가 젊어서 손질하던 것이라 마음에 그립다』 하고, 그릇은 낡고 부서진 것을 가지며 『내가 늘 쓰고 먹던 것이라 몸과 입에 편하다』 하였다. 아우의 아들이 여러 번 재산을 탕진하자 다시 도와주었다. 건광 연간에 공거(公車)로 특별히 불러 시중에 임명하였다. 설포는 성품이 담박하여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고 죽음으로 사직을 빌었다. 조서를 내려 휴가를 주어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