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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학 — 배움에 힘써라勉學

안씨가훈 顏氏家訓 · 안지추(顏之推) · 6세기 말 · 단락 30 · 한자 5,198자 · 낭독 20.8분

「안씨가훈」 한 권 「면학 — 배움에 힘써라」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북조 말의 학자 안지추가 자손에게 남긴 스무 편의 가훈. 양나라에서 나서 서위·북제·북주·수 네 나라를 떠돌며 살아남은 사람이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자손을 일깨우려고」 쓴 글이라, 아이 가르치기·형제·재혼·집안 살림·몸가짐과 말씨·배움·문장·이름과 실상·족함을 아는 것에서 글자와 책의 고증, 말소리, 글씨·그림·활·점·거문고·바둑 같은 여러 재주, 그리고 제 장례를 어떻게 치르라는 유언까지 이른다. 「수레에서 안 떨어지면 저작랑」이라던 양나라 귀족 자제가 난리 뒤 밭 갈고 말 기르게 된 것을 보고 「몸에 지닌 작은 재주가 재물 천만보다 낫다」고 한 대목, 「어려서 배우는 이는 해 뜰 때의 빛 같고 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다」는 대목이 여기서 나왔다. 뒷날의 가훈이 모두 이 책을 조상으로 삼는다.

1몇 해 부지런히 배우기를 아껴 한평생 부끄러움을 받으랴

自古明王聖帝,猶須勤學,況凡庶乎!此事遍於經史,吾亦不能鄭重,聊舉近世切要,以啓寤汝耳。士大夫子弟,數歲已上,莫不被教,多者或至禮、傳,少者不失詩、論。及至冠婚,體性稍定;因此天機,倍須訓誘。有志尚者,遂能磨礪,以就素業;無履立者,自茲墮慢,便爲凡人。人生在世,會當有業:農民則計量耕稼,商賈則討論貨賄,工巧則致精器用,伎藝則沈思法術,武夫則慣習弓馬,文士則講議經書。多見士大夫恥涉農商,差務工伎,射則不能穿札,筆則纔記姓名,飽食醉酒,忽忽無事,以此銷日,以此終年。或因家世餘緒,得一階半級,便自爲足,全忘修學;及有吉凶大事,議論得失,蒙然張口,如坐雲霧;公私宴集,談古賦詩,塞默低頭,欠伸而已。有識旁觀,代其入地。何惜數年勤學,長受一生愧辱哉!

예부터 밝은 임금과 성스러운 황제도 오히려 부지런히 배워야 했거늘 하물며 범인이랴. 이 일은 경서와 사서에 두루 있어 나도 거듭 말할 것이 없으니, 다만 근세의 절실하고 긴요한 것을 들어 너희를 일깨우려 한다. 사대부의 자제는 몇 살만 넘으면 가르침을 받지 않는 이가 없어, 많은 이는 『예기』와 『춘추좌씨전』에 이르고 적은 이도 『시경』과 『논어』는 놓치지 않는다. 관례와 혼인에 이르면 몸과 성품이 차츰 정해지니 이 타고난 틀에 따라 곱절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 뜻을 품은 이는 마침내 갈고 닦아 본업을 이루고, 발 디딜 데 없는 이는 이때부터 게을러져 곧 범인이 된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 마땅히 생업이 있어야 한다. 농민은 농사를 헤아리고, 상인은 물건을 따지고, 장인은 그릇을 정교히 하고, 기예 하는 이는 법술에 잠기고, 무인은 활과 말을 익히고, 문사는 경서를 강론한다. 흔히 보니 사대부는 농사와 장사를 부끄러워하고 공장과 기예를 창피해하며, 활을 쏘면 갑옷 한 겹도 못 뚫고 붓을 잡으면 겨우 제 이름이나 적으며, 배불리 먹고 술에 취해 멍하니 일 없이 이렇게 날을 보내고 이렇게 해를 마친다. 더러는 집안의 남은 덕으로 벼슬 한 계단 반 계단을 얻으면 스스로 만족하여 배움을 닦기를 아주 잊는다. 길흉의 큰일이 있어 잘잘못을 논할 때면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구름과 안개 속에 앉은 듯하고, 공사의 잔치에 옛일을 이야기하고 시를 지을 때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하품하고 기지개나 켤 뿐이다. 식견 있는 이가 곁에서 보면 대신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찌 몇 해 부지런히 배우기를 아껴 한평생 부끄러움과 욕을 받는가.

2「수레에서 안 떨어지면 저작랑」 — 난리 뒤에 드러난 것

梁朝全盛之時,貴遊子弟,多無學術,至於諺云:「上車不落則著作,體中何如則秘書。」無不熏衣剃面,傅粉施朱,駕長檐車,跟高齒屐,坐棋子方褥,憑斑絲隱囊,列器玩於左右,從容出入,望若神仙。明經求第,則顧人答策;三九公燕,則假手賦詩。當爾之時,亦快士也。及離亂之後,朝市遷革,銓衡選舉,非復曩者之親;當路秉權,不見昔時之黨。求諸身而無所得,施之世而無所用。被褐而喪珠,失皮而露質,兀若枯木,泊若窮流,鹿獨戎馬之間,轉死溝壑之際。當爾之時,誠駑材也。有學藝者,觸地而安。自荒亂已來,諸見俘虜。雖百世小人,知讀論語、孝經者,尚爲人師;雖千載冠冕,不曉書記者,莫不耕田養馬。以此觀之,安可不自勉耶?若能常保數百卷書,千載終不爲小人也。

양나라가 한창 성할 때 귀족 자제는 배움이 없는 이가 많아 속담에 「수레에 올라 떨어지지 않으면 저작랑이요, 몸이 어떠하시냐 안부만 물을 줄 알면 비서랑이라」 하였다. 옷에 향을 쐬고 얼굴을 다듬고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으며, 긴 처마 수레를 타고 굽 높은 나막신을 신고, 바둑판무늬 모난 방석에 앉아 얼룩 비단 안석에 기대어 좌우에 노리개를 늘어놓고 느긋이 드나드니 바라보면 신선 같았다. 명경으로 급제를 구하면 남을 사서 책문을 답하게 하고 삼구(三九)의 공적인 잔치에서는 남의 손을 빌려 시를 지었다. 그때는 그것도 통쾌한 선비였다. 난리를 겪은 뒤 조정과 저자가 바뀌고 인재를 가리는 이도 예전의 친척이 아니며 길목에 권세를 잡은 이도 옛날의 패거리가 아니게 되자, 제 몸에서 구하여도 얻을 것이 없고 세상에 베풀려 하여도 쓸 데가 없었다. 베옷을 걸치고 구슬을 잃은 채, 가죽을 벗기고 속살을 드러낸 채, 마른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고 다한 물줄기처럼 잦아들어, 전쟁의 말발굽 사이를 헤매다 구렁에서 죽어 갔다. 그때는 참으로 둔한 재목이었다. 배움과 재주가 있는 이는 어디를 가나 편안하였다. 난리 이래 여러 포로를 보니, 백 대의 소인이라도 『논어』와 『효경』을 읽을 줄 알면 오히려 남의 스승이 되고, 천 년의 관면(冠冕) 집안이라도 글을 모르면 밭 갈고 말 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것으로 보건대 어찌 스스로 힘쓰지 않겠는가. 늘 수백 권의 책을 지닐 수 있다면 천 년이 지나도 끝내 소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3재물 천만이 몸에 지닌 작은 재주만 못하다

夫明六經之指,涉百家之書,縱不能增益德行,敦厲風俗,猶爲一藝,得以自資。父兄不可常依,鄉國不可常保,一旦流離,無人庇蔭,當自求諸身耳。諺曰:「積財千萬,不如薄伎在身。」伎之易習而可貴者,無過讀書也。世人不問愚智,皆欲識人之多,見事之廣,而不肯讀書,是猶求飽而懶營饌,欲暖而惰裁衣也。夫讀書之人,自羲、農巳來,宇宙之下,凡識幾人,凡見幾事,生民之成敗好惡,固不足論,天地所不能藏,鬼神所不能隱也。

육경의 뜻을 밝히고 백가의 책을 섭렵하면, 덕행을 더하고 풍속을 도탑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오히려 한 가지 재주가 되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 부형에게 늘 기댈 수 없고 고향과 나라를 늘 지킬 수 없으니, 하루아침에 흘러 떠돌아 감싸 줄 이가 없으면 마땅히 제 몸에서 구할 뿐이다. 속담에 「재물을 천만 쌓아도 몸에 지닌 작은 재주만 못하다」 하였다. 재주 가운데 익히기 쉽고 귀히 여길 만한 것으로 책 읽기보다 나은 것이 없다. 세상 사람은 어리석든 지혜롭든 다 사람을 많이 알고 일을 널리 보기를 바라면서도 책 읽기를 마다하니, 이는 배부르기를 구하면서 밥 짓기를 게을리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면서 옷 마르기를 게을리하는 것과 같다. 책 읽는 사람은 복희·신농 이래 우주 아래 몇 사람이나 알고 몇 가지 일이나 보았겠는가. 백성의 성패와 좋고 나쁨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늘과 땅도 감출 수 없고 귀신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4「배운 이의 가난을 배우지 않은 이의 부귀에 견주지 마라」

有客難主人曰:「吾見強弩長戟,誅罪安民,以取公侯者有矣;文義習吏,匡時富國,以取卿相者有矣;學備古今,才兼文武,身無祿位,妻子饑寒者,不可勝數,安足貴學乎?」主人對曰:「夫命之窮達,猶金玉木石也;修以學藝,猶磨瑩雕刻也。金玉之磨瑩,自美其礦璞,木石之段塊,自丑其雕刻;安可言木石之雕刻,乃勝金玉之礦璞哉?不得以有學之貧賤,比於無學之富貴也。且負甲爲兵,咋筆爲吏,身死名滅者如牛毛,角立傑出者如芝草;握素披黃,吟道詠德,苦辛無益者如日蝕,逸樂名利者如秋荼,豈得同年而語矣。且又聞之:生而知之者上,學而知之者次。所以學者,欲其多知明達耳。必有天才,拔群出類,爲將則闇與孫武、吳起同術,執政則懸得管仲、子產之教,雖未讀書,吾亦謂之學矣。今子即不能然,不師古之蹤迹,猶蒙被而臥耳。

어떤 손이 주인에게 따져 물었다. 「강한 쇠뇌와 긴 창으로 죄인을 베고 백성을 편안히 하여 공후가 된 이가 있고, 문서와 아전 일에 익숙하여 시대를 바로잡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여 경상이 된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배움이 고금을 갖추고 재주가 문무를 겸하고도 몸에 벼슬이 없어 처자가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이는 이루 셀 수 없으니, 어찌 배움을 귀히 여길 만하겠습니까.」 주인이 답하였다. 「운명의 궁함과 달함은 금옥과 목석 같은 것이요, 배움과 재주로 닦는 것은 갈고 새기는 것과 같소. 금옥을 갈면 그 원석보다 절로 아름답고, 목석 덩어리는 새겨도 절로 추하니, 어찌 목석의 새김이 금옥의 원석보다 낫다 하겠소. 배운 이의 빈천을 배우지 않은 이의 부귀에 견주어서는 안 되오. 또 갑옷을 지고 군사가 되고 붓을 물고 아전이 되어 몸이 죽고 이름이 사라진 이는 쇠털 같고 뿔처럼 우뚝 뛰어난 이는 지초 같으며, 흰 책을 쥐고 누런 책을 펴서 도를 읊고 덕을 노래하다 괴로움만 있고 보탬이 없는 이는 일식 같고 편안히 즐기며 이름과 이익을 얻는 이는 가을 씀바귀 같으니, 어찌 같은 자리에 놓고 말하겠소. 또 듣건대 나면서 아는 이가 으뜸이요 배워서 아는 이가 그다음이라 하였소. 배우는 까닭은 많이 알고 밝게 통하고자 함일 뿐이오. 반드시 하늘이 낸 재주가 있어 무리에서 뛰어나 장수가 되면 저도 모르게 손무·오기와 술법이 같고 정사를 잡으면 절로 관중·자산의 가르침을 얻는다면 비록 책을 읽지 않았어도 나는 그것을 배움이라 하겠소. 지금 그대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옛사람의 자취를 스승 삼지 않는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것과 같을 뿐이오.」

5장수와 재상과 목민관, 그리고 어부와 백정에게도 스승이 있다

人見鄰里親戚有佳快者,使子弟慕而學之,不知使學古人,何其蔽也哉?世人但見跨馬被甲,長槊強弓,便云我能爲將;不知明乎天道,辯乎地利,比量逆順,鑒達興亡之妙也。但知承上接下,積財聚穀,便云我能爲相;不知敬鬼事神,移風易俗,調節陰陽,薦舉賢聖之至也。但知私財不入,公事夙辦,便云我能治民;不知誠己刑物,執轡如組,反風滅火,化鴟爲鳳之術也。但知抱令守律,早刑晚舍,便云我能平獄;不知同轅觀罪,分劍追財,假言而奸露,不問而情得之察也。爰及農商工賈,廝役奴隸,釣魚屠肉,飯牛牧羊,皆有先達,可爲師表,博學求之,無不利於事也。

사람들은 이웃과 친척 가운데 잘된 이를 보면 자제에게 우러러 배우게 하면서 옛사람을 배우게 할 줄은 모르니 어찌 그리 어두운가. 세상 사람은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긴 창과 강한 활을 보면 곧 「나는 장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의 도에 밝고 땅의 이로움을 가리며 거스름과 따름을 견주고 흥망을 꿰뚫는 묘함이 있는 줄은 모른다. 위를 받들고 아래를 대하며 재물을 모으고 곡식을 쌓을 줄만 알고 곧 「나는 재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귀신을 공경히 섬기고 풍속을 바꾸며 음양을 고르고 어진 이와 성인을 천거하는 지극함이 있는 줄은 모른다. 사사로운 재물을 들이지 않고 공무를 일찍 처리할 줄만 알고 곧 「나는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 하지만, 제 몸을 성실히 하여 남의 본이 되고 고삐를 끈처럼 잡으며 바람을 돌려 불을 끄고 올빼미를 봉황으로 만드는 술법이 있는 줄은 모른다. 법령을 붙들고 율을 지켜 이르게 벌하고 늦게 놓아줄 줄만 알고 곧 「나는 옥사를 공평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레 채를 보고 죄를 알고 칼을 나누어 재물을 찾으며 거짓말에서 간사함이 드러나고 묻지 않아도 실정을 얻는 살핌이 있는 줄은 모른다. 농부와 상인과 장인, 심부름꾼과 종, 고기 낚고 짐승 잡고 소 먹이고 양 치는 이에 이르기까지 다 앞서 통달한 이가 있어 스승으로 삼을 만하니, 널리 배워 구하면 일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6책을 읽는 까닭은 마음을 열고 눈을 밝혀 행실에 이롭게 하려는 것

夫所以讀書學問,本欲開心明目,利於行耳。未知養親者,欲其觀古人之先意承顏,怡聲下氣,不憚劬勞,以致甘腝,惕然慚懼,起而行之也;未知事君者,欲其觀古人之守職無侵,見危授命,不忘誠諫,以利社稷,惻然自念,思欲效之也;素驕奢者,欲其觀古人之恭儉節用,卑以自牧,禮爲教本,敬者身基,瞿然自失,斂容抑志也;素鄙吝者,欲其觀古人之貴義輕財,少私寡欲,忌盈惡滿,賙窮恤匱,赧然悔恥,積而能散也;素暴悍者,欲其觀古人之小心黜己,齒弊舌存,含垢藏疾,尊賢容眾,苶然沮喪,若不勝衣也;素怯懦者,欲其觀古人之達生委命,強毅正直,立言必信,求福不回,勃然奮厲,不可恐懾也:歷茲以往,百行皆然。縱不能淳,去泰去甚。學之所知,施無不達。世人讀書者,但能言之,不能行之,忠孝無聞,仁義不足;加以斷一條訟,不必得其理;宰千戶縣,不必理其民;問其造屋,不必知楣橫而梲豎也;問其爲田,不必知稷早而黍遲也;吟嘯談謔,諷詠辭賦,事既優閒,材增迂誕,軍國經綸,略無施用:故爲武人俗吏所共嗤詆,良由是乎!

책을 읽고 학문하는 까닭은 본디 마음을 열고 눈을 밝혀 행실에 이롭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어버이 봉양을 모르는 이는 옛사람이 뜻을 앞질러 낯빛을 받들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맛난 음식을 올린 것을 보고 두려워 부끄러워하며 일어나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임금 섬기기를 모르는 이는 옛사람이 직분을 지켜 넘보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성실한 간언을 잊지 않아 사직을 이롭게 한 것을 보고 측은히 스스로 돌아보아 본받고자 하게 하려는 것이다. 본디 교만하고 사치한 이는 옛사람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절약하고 낮추어 스스로를 기르며 예를 가르침의 근본으로 공경을 몸의 터로 삼은 것을 보고 흠칫 스스로를 잃고 낯빛을 거두고 뜻을 누르게 하려는 것이다. 본디 인색한 이는 옛사람이 의를 귀히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사욕을 적게 하고 가득 참을 꺼리며 궁한 이를 돕고 없는 이를 구한 것을 보고 부끄러워 뉘우치며 쌓은 것을 흩을 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본디 사납고 모진 이는 옛사람이 조심하여 스스로를 물리고 이는 빠져도 혀는 남으며 허물을 품고 병을 감추어 어진 이를 높이고 뭇사람을 용납한 것을 보고 풀이 죽어 옷도 못 이기는 듯하게 하려는 것이다. 본디 겁 많고 나약한 이는 옛사람이 삶에 통달하여 운명에 맡기고 굳세고 정직하며 말을 세우면 반드시 지키고 복을 구하되 굽히지 않은 것을 보고 불끈 떨쳐 일어나 두려워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아가 백 가지 행실이 다 그러하다. 순수해지지는 못하더라도 너무 지나친 것은 버릴 수 있다. 배워서 아는 것은 베풀면 이르지 않는 데가 없다. 세상의 책 읽는 이는 말은 할 줄 알아도 행하지는 못하여 충효는 들리는 바 없고 인의는 모자란다. 게다가 송사 한 건을 판결해도 반드시 이치를 얻지는 못하고, 천 호의 고을을 다스려도 반드시 백성을 다스리지는 못하며, 집 짓기를 물으면 문미는 가로 놓고 동자기둥은 세로 세우는 줄을 반드시 알지는 못하고, 밭농사를 물으면 기장은 이르고 찰기장은 늦은 줄을 반드시 알지는 못한다. 시 읊고 농담하며 사부를 읊조리기나 하니 일은 한가롭고 재주는 더욱 허황되어 군국의 경륜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 그러므로 무인과 속리들이 함께 비웃고 헐뜯으니, 참으로 이 때문이다.

7배움으로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

夫學者所以求益耳。見人讀數十卷書,便自高大,凌忽長者,輕慢同列;人疾之如讎敵,惡之如鴟梟。如此以學自損,不如無學也。

배움이란 보탬을 구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책 수십 권을 읽고 스스로 높은 체하여 어른을 업신여기고 동료를 얕보니, 사람들이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올빼미처럼 싫어한다. 이렇게 배움으로 스스로를 해치는 것은 배우지 않느니만 못하다.

8봄꽃과 가을 열매

古之學者爲己,以補不足也;今之學者爲人,但能説之也。古之學者爲人,行道以利世也;今之學者爲己,修身以求進也。夫學者猶種樹也,春玩其華,秋登其實;講論文章,春華也,修身利行,秋實也。

옛날의 배우는 이는 자기를 위하여 모자란 데를 채웠고, 지금의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하여 말할 줄만 안다. 옛날의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하여 도를 행해 세상을 이롭게 하였고, 지금의 배우는 이는 자기를 위하여 몸을 닦아 출세를 구한다. 배움이란 나무 심는 것과 같아 봄에는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열매를 거둔다. 글을 강론하는 것은 봄꽃이요, 몸을 닦아 행실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을 열매다.

9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다

人生小幼,精神專利,長成已後,思慮散逸,固須早教,勿失機也。吾七歲時,誦靈光殿賦,至於今日,十年一理,猶不遺忘;二十之外,所誦經書,一月廢置,便至荒蕪矣。然人有坎壈,失於盛年,猶當晚學,不可自棄。孔子云:「五十以學易,可以無大過矣。」魏武、袁遺,老而彌篤,此皆少學而至老不倦也。曾子七十乃學,名聞天下;荀卿五十,始來遊學,猶爲碩儒;公孫弘四十餘,方讀春秋,以此遂登丞相;朱云亦四十,始學易、論語;皇甫謐二十,始受孝經、論語:皆終成大儒,此並早迷而晚寤也。世人婚冠未學,便稱遲暮,因循面牆,亦爲愚耳。幼而學者,如日出之光,老而學者,如秉燭夜行,猶賢乎瞑目而無見者也。

사람이 어릴 때는 정신이 한곳에 모여 날카롭고 자란 뒤에는 생각이 흩어지니, 진실로 일찍 가르쳐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일곱 살에 「영광전부」를 외웠는데 지금까지 십 년에 한 번 더듬어도 잊지 않는다. 스물이 넘어 외운 경서는 한 달만 놓아두면 곧 거칠어진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좌절이 있어 한창때를 놓치기도 하니 그래도 늦게라도 배워야지 스스로 버려서는 안 된다. 공자가 「쉰에 『역』을 배우면 큰 허물이 없을 수 있다」 하였다. 위 무제와 원유는 늙어서 더욱 독실하였으니 이들은 다 젊어서 배워 늙도록 게으르지 않은 이들이다. 증자는 일흔에 배워 이름이 천하에 들렸고, 순경은 쉰에 비로소 유학하러 와서 오히려 큰 선비가 되었으며, 공손홍은 마흔 남짓에 비로소 『춘추』를 읽고 그것으로 마침내 승상에 올랐고, 주운도 마흔에 비로소 『역』과 『논어』를 배웠으며, 황보밀은 스물에 비로소 『효경』과 『논어』를 받았는데 다 끝내 큰 선비가 되었으니, 이들은 다 일찍 헤매다 늦게 깨친 이들이다. 세상 사람은 혼인과 관례 때까지 배우지 못하면 곧 늦었다 하고 그대로 담벼락을 마주하고 있으니 또한 어리석을 뿐이다. 어려서 배우는 이는 해 뜰 때의 빛 같고, 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으나, 눈을 감고 보지 못하는 이보다는 낫다.

10「박사가 나귀를 사면서 문서 석 장에 나귀 려 자가 없다」

學之興廢,隨世輕重。漢時賢俊,皆以一經弘聖人之道,上明天時,下該人事,用此致卿相者多矣。末俗已來不復爾,空守章句,但誦師言,施之世務,殆無一可。故士大夫子弟,皆以博涉爲貴,不肯專儒。梁朝皇孫以下,總丱之年,必先入學,觀其志尚,出身已後,便從文史,略無卒業者。冠冕爲此者,則有何胤、劉瓛、明山賓、周舍、朱異、周弘正、賀琛、賀革、蕭子政、劉絛等,兼通文史,不徒講説也。洛陽亦聞崔浩、張偉、劉芳,鄴下又見邢子才:此四儒者,雖好經術,亦以才博擅名。如此諸賢,故爲上品,以外率多田野閒人,音辭鄙陋,風操蚩拙,相與專固,無所堪能,問一言輒酬數百,責其指歸,或無要會。鄴下諺云:「博士買驢,書券三紙,未有驢字。」使汝以此爲師,令人氣塞。孔子曰:「學也祿在其中矣。」今勤無益之事,恐非業也。夫聖人之書,所以設教,但明練經文,粗通注義,常使言行有得,亦足爲人;何必「仲尼居」即須兩紙疏義,燕寢講堂,亦復何在?以此得勝,寧有益乎?光陰可惜,譬諸逝水。當博覽機要,以濟功業;必能兼美,吾無閒焉。

배움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은 세상이 무겁게 여기고 가벼이 여김에 따른다. 한나라 때 어진 이들은 다 경서 하나로 성인의 도를 넓혀 위로 하늘의 때를 밝히고 아래로 사람의 일을 갖추어, 이것으로 경상에 이른 이가 많았다. 말세 이래로는 다시 그렇지 않아 헛되이 장구만 지키고 스승의 말만 외워 세상일에 베풀면 거의 하나도 쓸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대부의 자제는 다 널리 섭렵하는 것을 귀히 여기고 유학 하나만 전공하려 하지 않는다. 양나라 조정에서는 황손 이하가 총각 때 반드시 먼저 태학에 들어가 그 뜻을 보고, 벼슬에 나간 뒤로는 곧 문사(文史)를 따라 학업을 마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벼슬아치로 이렇게 한 이로는 하윤·유환·명산빈·주사·주이·주홍정·하침·하혁·소자정·유조 등이 있으니 문사도 겸하여 통하여 강설만 하지 않았다. 낙양에서도 최호·장위·유방의 이름을 들었고 업에서도 형자재를 보았는데, 이 네 선비는 경술을 좋아하면서도 재주와 박학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런 여러 어진 이는 그래서 상품이 되지만, 그 밖은 대개 시골의 한가한 사람들이라 말소리가 비루하고 풍조가 어리석고 서로 고집만 부려 감당할 것이 없어, 한마디를 물으면 수백 마디를 답하되 그 요지를 따지면 더러 요령이 없다. 업의 속담에 「박사가 나귀를 사면서 문서 석 장에 나귀 려(驢) 자가 없다」 하였다. 너희로 하여금 이런 이를 스승 삼게 한다면 사람 숨이 막힌다. 공자가 「배우면 녹이 그 안에 있다」 하였는데 지금 보탬 없는 일에 힘쓰니 아마 본업이 아닐 것이다. 성인의 글은 가르침을 세우는 것이니 경문에 밝고 주석의 뜻에 대강 통하여 늘 말과 행실에 얻음이 있게 하면 또한 사람 노릇 하기에 넉넉하다. 어찌 반드시 「중니거(仲尼居)」 석 자에 두 장의 소(疏)가 있어야 하며, 연침(燕寢)이니 강당이니 하는 것이 또 어디에 있는가. 이런 것으로 이긴들 어찌 보탬이 있겠는가. 세월은 아까워 흐르는 물에 견줄 만하다. 마땅히 요긴한 것을 널리 보아 공업을 이루어야 한다. 반드시 둘 다 아름답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나무랄 것이 없다.

11「문집이 어찌 경서를 논하랴」 — 위수가 『한서』를 던지다

俗間儒士,不涉群書,經緯之外,義疏而已。吾初入鄴,與博陵崔文彥交遊,嘗説王粲集中難鄭玄尚書事。崔轉爲諸儒道之,始將發口,懸見排蹙,云:「文集只有詩賦銘誄,豈當論經書事乎?且先儒之中,未聞有王粲也。」崔笑而退,竟不以粲集示之。魏收之在議曹,與諸博士議宗廟事,引據漢書,博士笑曰:「未聞漢書得證經術。」收便忿怒,都不復言,取韋玄成傳,擲之而起。博士一夜共披尋之,達明,乃來謝曰:「不謂玄成如此學也。」

세속의 선비는 여러 책을 섭렵하지 않아 경서와 위서 밖에는 의소(義疏)뿐이다. 내가 처음 업에 들어가 박릉의 최문언과 사귀었는데, 일찍이 왕찬의 문집 가운데 정현의 『상서』 풀이를 논박한 일을 말하였다. 최가 여러 선비에게 돌려 말하려고 막 입을 열자 곧 물리침을 당하니 「문집에는 시·부·명·뇌만 있거늘 어찌 경서의 일을 논하겠소. 또 선유 가운데 왕찬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하였다. 최는 웃고 물러나 끝내 왕찬의 집을 보여 주지 않았다. 위수가 의조에 있을 때 여러 박사와 종묘의 일을 논하며 『한서』를 끌어 근거로 삼으니 박사들이 웃으며 「『한서』가 경술을 증명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하였다. 위수가 곧 성내어 다시는 말하지 않고 위현성전을 가져다 던지고 일어났다. 박사들이 하룻밤을 함께 뒤져 새벽에 이르러서야 와서 사과하기를 「위현성이 이런 학문이 있는 줄 몰랐소」 하였다.

12노장의 책과 그것을 배운 사람들의 끝

夫老、莊之書,蓋全真養性,不肯以物累己也。故藏名柱史,終蹈流沙;匿迹漆園,卒辭楚相,此任縱之徒耳。何晏、王弼,祖述玄宗,遞相誇尚,景附草靡,皆以農、黃之化,在乎己身,周、孔之業,棄之度外。而平叔以黨曹爽見誅,觸死權之網也;輔嗣以多笑人被疾,陷好勝之阱也;山巨源以蓄積取譏,背多藏厚亡之文也;夏侯玄以才望被戮,無支離擁腫之鑒也;荀奉倩喪妻,神傷而卒,非鼓缶之情也;王夷甫悼子,悲不自勝,異東門之達也;嵇叔夜排俗取禍,豈和光同塵之流也;郭子玄以傾動專勢,寧後身外己之風也;阮嗣宗沈酒荒迷,乖畏途相誡之譬也;謝幼輿贓賄黜削,違棄其餘魚之旨也:彼諸人者,並其領袖,玄宗所歸。其餘桎梏塵滓之中,顛仆名利之下者,豈可備言乎!直取其清談雅論,剖玄析微,賓主往復,娛心悅耳,非濟世成俗之要也。洎於梁世,茲風復闡,莊、老、周易,總謂三玄。武皇、簡文,躬自講論。周弘正奉贊大猷,化行都邑,學徒千餘,實爲盛美。元帝在江、荊間,復所愛習,召置學生,親爲教授,廢寢忘食,以夜繼朝,至乃倦劇愁憤,輒以講自釋。吾時頗預末筵,親承音旨,性既頑魯,亦所不好云。

노자·장자의 책은 대개 참됨을 온전히 하고 본성을 기르며 사물로 제 몸을 얽매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주하사(柱下史)에 이름을 감추었다가 끝내 유사(流沙)로 갔고, 칠원(漆園)에 자취를 숨겼다가 마침내 초나라 재상을 사양하였으니 이들은 제멋대로 사는 무리일 뿐이다. 하안·왕필은 현묘한 종지를 조술하며 서로 자랑하니 그림자처럼 붙좇고 풀처럼 쓰러져, 다 신농·황제의 교화는 제 몸에 있고 주공·공자의 업은 도외시하였다. 그런데 하안(평숙)은 조상의 당이 되어 죽임을 당하였으니 죽음의 권세에 걸려든 것이요, 왕필(보사)은 남을 많이 비웃어 미움을 받았으니 이기기 좋아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요, 산도(거원)는 재물을 쌓아 비웃음을 샀으니 「많이 간직하면 크게 잃는다」는 글을 저버린 것이요, 하후현은 재주와 명망으로 죽임을 당하였으니 지리소와 옹종(擁腫)의 거울이 없었던 것이요, 순찬(봉천)은 아내를 잃고 마음이 상하여 죽었으니 동이를 두드리던 마음이 아니요, 왕연(이보)은 아들을 애도하여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동문오의 달관과 달랐고, 혜강(숙야)은 세속을 물리치다 화를 얻었으니 어찌 빛을 감추고 티끌과 같이하는 무리이며, 곽상(자현)은 권세를 흔들어 독차지하였으니 어찌 몸을 뒤로 하고 제 몸을 잊는 풍모이며, 완적(사종)은 술에 빠져 헤매었으니 험한 길에서 서로 경계하라는 비유에 어긋났고, 사곤(유여)은 뇌물로 파면되었으니 「남은 고기를 버리라」는 뜻을 어겼다. 저 여러 사람은 다 그들의 우두머리요 현묘한 종지가 돌아가는 곳인데, 그 밖에 티끌 속에 갇혀 이름과 이익 아래 엎어진 이야 어찌 다 말하랴. 다만 그 청담과 고상한 논의, 현묘한 것을 쪼개고 미세한 것을 가르며 손과 주인이 오가는 것이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귀를 기쁘게 할 뿐, 세상을 구하고 풍속을 이루는 요체는 아니다. 양나라에 이르러 이 풍조가 다시 일어나 『장자』·『노자』·『주역』을 통틀어 삼현(三玄)이라 하였다. 무황(武皇)과 간문(簡文)이 몸소 강론하였고 주홍정이 큰 도를 받들어 도읍에 교화를 행하니 학도가 천여 명으로 실로 성대하였다. 원제는 강주와 형주에 있을 때 다시 좋아하여 익혀, 학생을 불러 두고 몸소 가르치며 침식을 잊고 밤으로 낮을 이었고, 심지어 몹시 지치고 근심스러울 때면 곧 강론으로 스스로를 풀었다. 나도 그때 자못 말석에 참여하여 몸소 말씀을 받았으나 성품이 본디 둔하여 좋아하는 바가 아니었다.

13효성은 지극한데 배움이 없어 — 효소제의 유조

齊孝昭帝侍婁太后疾,容色憔悴,服膳減損。徐之才爲灸兩穴,帝握拳代痛,爪入掌心,血流滿手。後既痊愈,帝尋疾崩,遺詔恨不見山陵之事。其天性至孝如彼,不識忌諱如此,良由無學所爲。若見古人之譏欲母早死而悲哭之,則不發此言也。孝爲百行之首,猶須學以修飾之,況餘事乎!

제나라 효소제가 누태후의 병을 간호할 때 낯빛이 초췌하고 옷과 음식을 줄였다. 서지재가 두 혈에 뜸을 뜨자 황제는 주먹을 쥐어 아픔을 대신하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어 피가 손에 가득하였다. 뒤에 태후가 낫자 황제는 곧 병으로 죽었는데, 유조에 「산릉의 일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하였다. 그 천성의 지극한 효성은 저와 같은데 꺼리는 말을 모름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배움이 없어서다. 옛사람이 「어머니가 일찍 죽기를 바라며 슬피 곡한다」고 나무란 것을 보았다면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효도는 백 가지 행실의 으뜸인데도 오히려 배움으로 닦아야 하니 하물며 다른 일이랴.

14옴에 걸려 주먹도 못 쥐면서 하루 스무 권을 읽은 원제

梁元帝嘗爲吾説:「昔在會稽,年始十二,便已好學。時又患疥,手不得拳,膝不得屈。閒齋張葛幃避蠅獨坐,銀甌貯山陰甜酒,時復進之,以自寬痛。率意自讀史書,一日二十卷,既未師受,或不識一字,或不解一語,要自重之,不知厭倦。」帝子之尊,童稚之逸,尚能如此,況其庶士,冀以自達者哉?

양 원제가 일찍이 내게 말하였다. 「옛날 회계에 있을 때 나이 겨우 열둘에 이미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그때 또 옴을 앓아 손은 주먹을 못 쥐고 무릎은 굽히지 못하였다. 한가한 서재에 칡 휘장을 쳐 파리를 피하고 홀로 앉아 은사발에 산음의 단술을 담아 두고 때때로 마셔 스스로 아픔을 달래며, 마음 내키는 대로 사서를 읽어 하루에 스무 권이었다. 스승에게 받지 못하여 더러 한 글자를 모르고 더러 한 구절을 풀지 못하였으나 스스로 소중히 여겨 싫증을 몰랐다.」 황제의 아들로 존귀하고 어린아이로 놀 만한 몸이면서도 오히려 이러하였으니, 하물며 스스로 이루기를 바라는 뭇 선비야 어떻겠는가.

15갈대를 태워 밤에 읽고, 종이를 삼켜 배를 채우고

古人勤學,有握錐投斧,照雪聚螢,鋤則帶經,牧則編簡,亦爲勤篤。梁世彭城劉綺,交州刺史勃之孫,早孤家貧,燈燭難辦,常買荻尺寸折之,然明夜讀。孝元初出會稽,精選寮寀,綺以才華,爲國常侍兼記室,殊蒙禮遇,終於金紫光祿。義陽朱詹,世居江陵,後出揚都,好學,家貧無資,累日不爨,乃時吞紙以實腹。寒無氈被,抱犬而臥。犬亦飢虛,起行盜食,呼之不至,哀聲動鄰,猶不廢業,卒成學士,官至鎮南錄事參軍,爲孝元所禮。此乃不可爲之事,亦是勤學之一人。東莞臧逢世,年二十餘,欲讀班固漢書,苦假借不久,乃就姊夫劉緩乞丐客刺書翰紙末,手寫一本,軍府服其志尚,卒以漢書聞。

옛사람의 부지런한 배움에는 송곳을 쥐고 도끼를 던지고 눈빛에 비추고 반딧불을 모으며 호미질하며 경서를 지니고 양 치며 죽간을 엮은 이가 있으니 또한 부지런하고 독실하였다. 양나라 팽성의 유기는 교주자사 유발의 손자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등불을 마련하기 어려워 늘 갈대를 사서 한 자씩 꺾어 불을 붙여 밤에 읽었다. 효원제가 처음 회계에 나갔을 때 관속을 정선하였는데 유기는 재주로 국상시 겸 기실이 되어 유달리 예우를 받았고 금자광록으로 마쳤다. 의양의 주첨은 대대로 강릉에 살다 뒤에 양도로 나왔는데 배움을 좋아하였으나 집이 가난하여 밑천이 없어 여러 날 밥을 짓지 못하면 때로 종이를 삼켜 배를 채웠다. 추워도 담요와 이불이 없어 개를 안고 잤는데 개도 굶주려 일어나 먹을 것을 훔치러 나가 불러도 오지 않으니 슬픈 소리가 이웃을 움직였으나 그래도 학업을 폐하지 않아 끝내 학사가 되고 벼슬이 진남녹사참군에 이르러 효원제의 예우를 받았다. 이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역시 부지런히 배운 한 사람이다. 동완의 장봉세는 나이 스물 남짓에 반고의 『한서』를 읽고자 하였으나 빌린 것을 오래 둘 수 없어 괴로워하다, 자형 유완에게 가서 손님들의 명함과 편지 종이의 남은 끝을 얻어 손수 한 벌을 베껴 썼다. 군부에서 그 뜻을 우러러보았고 끝내 『한서』로 이름이 났다.

16팔다리가 잘리면서도 임금의 행방을 말하지 않은 환관 전붕란

齊有宦者內參田鵬鸞,本蠻人也。年十四五,初爲閽寺,便知好學,懷袖握書,曉夕諷誦。所居卑末,使彼苦辛,時伺閒隙,周章詢請。每至文林館,氣喘汗流,問書之外,不暇他語。及睹古人節義之事,未嘗不感激沈吟久之。吾甚憐愛,倍加開獎。後被賞遇,賜名敬宣,位至侍中開府。後主之奔青州,遣其西出,參伺動靜,爲周軍所獲。問齊主何在,紿云:「已去,計當出境。」疑其不信,歐捶服之,每折一支,辭色愈厲,竟斷四體而卒。蠻夷童丱,猶能以學成忠,齊之將相,比敬宣之奴不若也。

제나라에 환관 내참 전붕란이 있었는데 본디 만족 사람이었다. 나이 열네댓에 처음 문지기가 되었을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할 줄 알아 소매에 책을 품고 아침저녁으로 외웠다. 있는 자리가 낮아 저를 괴롭게 부렸으나 때때로 틈을 엿보아 두루 물었다. 문림관에 올 때마다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며 책 묻는 것 말고는 다른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옛사람의 절의 이야기를 보면 감격하여 오래 읊조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몹시 아끼고 사랑하여 곱절로 열어 주고 북돋았다. 뒤에 상을 받아 경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벼슬이 시중 개부에 이르렀다. 후주가 청주로 달아날 때 그를 서쪽으로 보내 동정을 살피게 하였는데 주나라 군사에게 잡혔다. 제나라 임금이 어디 있느냐 묻자 속여 「이미 떠나셨으니 아마 국경을 나갔을 것이오」 하였다. 믿지 못하겠다고 의심하여 매질하며 굴복시키려 하였으나 팔다리를 하나 꺾을 때마다 말과 낯빛이 더욱 매서워져 끝내 사지가 다 끊겨 죽었다. 만이의 어린아이도 오히려 배움으로 충성을 이루었으니 제나라의 장수와 재상은 경선의 종에 견주어도 못하였다.

17「아들은 봉양을 마음에 두고 아비는 배움을 가르침으로 삼는다」

鄴平之後,見徙入關。思魯嘗謂吾曰:「朝無祿位,家無積財,當肆筋力,以申供養。每被課篤,勤勞經史,未知爲子,可得安乎?」吾命之曰:「子當以養爲心,父當以學爲教。使汝棄學徇財,豐吾衣食,食之安得甘?衣之安得暖?若務先王之道,紹家世之,藜羹縕褐,我自欲之。」

업이 평정된 뒤 관중으로 옮겨졌다. 사로가 일찍이 내게 말하였다. 「조정에 녹봉이 없고 집에 쌓인 재물이 없으니 마땅히 힘을 다해 봉양을 펴야 합니다. 그런데 늘 독실히 배우라 다그치시니 경사에 부지런히 힘쓰면서 자식으로서 어찌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명하였다. 「아들은 봉양을 마음에 두어야 하고 아비는 배움을 가르침으로 삼아야 한다. 너로 하여금 배움을 버리고 재물을 좇아 내 옷과 밥을 넉넉히 하게 한다면 먹은들 어찌 달겠으며 입은들 어찌 따뜻하겠느냐. 선왕의 도에 힘써 집안의 업을 잇는다면 명아주국과 헌 베옷이라도 내가 절로 바라는 바다.」

18「맹로」를 사람 이름으로 알고, 「준치」를 양으로 알고

書曰:「好問則裕。」禮云:「獨學而無友,則孤陋而寡聞。」蓋須切磋相起明也。見有閉門讀書,師心自是,稠人廣坐,謬誤差失者多矣。穀梁傳稱公子友與莒挐相搏,左右呼曰「孟勞」。「孟勞」者,魯之寶刀名,亦見廣雅。近在齊時,有姜仲岳謂:「『孟勞』者,公子左右,姓孟名勞,多力之人,爲國所寶。」與吾苦諍。時清河郡守邢峙,當世碩儒,助吾證之,赧然而伏。又三輔決錄云:「靈帝殿柱題曰:『堂堂乎張,京兆田郎。』」蓋引論語,偶以四言,目京兆人田鳳也。有一才士,乃言:「時張京兆及田郎二人皆堂堂耳。」聞吾此説,初大驚駭,其後尋媿悔焉。江南有一權貴,讀誤本蜀都賦注,解「蹲鴟,芋也」,乃爲「羊」字;人饋羊肉,答書云:「損惠蹲鴟。」舉朝驚駭,不解事義,久後尋迹,方知如此。元氏之世,在洛京時,有一才學重臣,新得史記音,而頗紕繆,誤反「顓頊」字,頊當爲許錄反,錯作許緣反,遂謂朝士言:「從來謬音『專旭』,當音『專翾』耳。」此人先有高名,翕然信行;期年之後,更有碩儒,苦相究討,方知誤焉。漢書王莽贊云:「紫色蛙聲,餘分閏位。」謂以偽亂真耳。昔吾嘗共人談書,言及王莽形狀,有一俊士,自許史學,名價甚高,乃云:「王莽非直鴟目虎吻,亦紫色蛙聲。」又禮樂志云:「給太官挏馬酒。」李奇注:「以馬乳爲酒也,揰挏乃成。」二字並從手。揰挏,此謂撞搗挺挏之,今爲酪酒亦然。向學士又以爲種桐時,太官釀馬酒乃熟。其孤陋遂至於此。太山羊肅,亦稱學問,讀潘岳賦:「周文弱枝之棗」,爲杖策之杖;世本:「容成造歷。」以歷爲碓磨之磨。

『서경』에 「묻기를 좋아하면 넉넉해진다」 하고 『예기』에 「홀로 배우고 벗이 없으면 고루하고 견문이 적다」 하였으니, 대개 갈고 닦으며 서로 일깨워야 한다. 문을 닫고 책을 읽으며 제 마음을 스승 삼아 스스로 옳다 하다가 많은 사람 앞에서 그릇되고 어긋나는 이를 많이 보았다. 『곡량전』에 공자우가 거나와 맞붙어 싸울 때 좌우가 「맹로(孟勞)」라 외쳤다고 하였다. 맹로란 노나라의 보검 이름이니 『광아』에도 보인다. 근래 제나라에 있을 때 강중악이 「맹로는 공자의 좌우로 성이 맹이요 이름이 로인 힘센 사람이니 나라가 보배로 여긴 것이다」 하며 나와 애써 다투었다. 그때 청하군수 형치가 당세의 큰 선비로 나를 도와 증명하니 낯을 붉히며 굴복하였다. 또 『삼보결록』에 「영제가 전각 기둥에 『당당하다 장이여, 경조의 전랑이여』라 적었다」 하였으니, 『논어』를 끌어와 네 글자로 맞추어 경조 사람 전봉을 가리킨 것이다. 어떤 재사가 「그때 장경조와 전랑 두 사람이 다 당당했던 것이다」 하다가 내 말을 듣고 처음에는 크게 놀랐으나 뒤에 곧 부끄러워 뉘우쳤다. 강남의 한 권귀는 잘못된 판본의 「촉도부」 주를 읽고 「준치(蹲鴟)는 토란이다」를 「양(羊)」 자로 풀었다. 누가 양고기를 보내자 답장에 「준치를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니 온 조정이 놀라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오래 뒤에 자취를 더듬어 비로소 그런 줄 알았다. 원씨의 세상에 낙양에 있을 때 재주와 학문 있는 중신 하나가 새로 『사기음』을 얻었는데 자못 잘못이 많아 「전욱(顓頊)」 자의 반절이 틀려 있었다. 욱은 허(許)·록(錄)의 반절이어야 하는데 허(許)·연(緣)의 반절로 잘못되어, 마침내 조정 선비들에게 「여태 『전욱』이라 잘못 읽었으니 『전현』이라 읽어야 한다」 하였다. 이 사람이 본디 이름이 높아 모두 믿고 따랐는데 한 해 뒤에 다시 큰 선비가 나와 애써 따져 비로소 잘못임을 알았다. 『한서』 왕망찬에 「자줏빛과 개구리 소리, 남은 나머지가 윤위(閏位)」라 하였으니 거짓으로 참을 어지럽혔다는 말이다. 옛날 내가 남과 책 이야기를 하다 왕망의 생김새에 말이 미쳤는데, 스스로 사학을 자부하여 이름값이 높은 한 준수한 선비가 「왕망은 올빼미 눈에 범의 입일 뿐 아니라 자줏빛 낯에 개구리 소리였다」 하였다. 또 「예악지」에 「태관에 동마주(挏馬酒)를 댄다」 하였는데 이기의 주에 「말젖으로 술을 빚는 것이니 휘저어야 된다」 하였다. 두 글자는 다 손 수(手) 변이다. 충동(揰挏)이란 부딪치고 찧고 흔드는 것을 이르니 지금 낙주(酪酒)를 만드는 것도 그러하다. 앞서 말한 학사는 또 오동나무를 심을 때 태관이 말술을 빚으면 익는다고 여겼다. 그 고루함이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다. 태산의 양숙도 학문한다 일컬어졌는데 반악의 부 「주문의 약지지조(弱枝之棗)」를 지팡이 장(杖)으로 읽었고, 『세본』의 「용성이 역(歷)을 만들었다」를 디딜방아 마(磨)로 읽었다.

19귀로 배운 잘못 — 「오대의 까치」와 「장안의 냉이」

談説制文,援引古昔,必須眼學,勿信耳受。江南閭里閒,士大夫或不學問,羞爲鄙朴,道聽塗説,強事飾辭:呼征質爲周、鄭,謂霍亂爲博陸,上荊州必稱陝西,下揚都言去海郡,言食則餬口,道錢則孔方,問移則楚丘,論婚則宴爾,及王則無不仲宣,語劉則無不公幹。凡有一二百件,傳相祖述,尋問莫知原由,施安時復失所。莊生有乘時鵲起之説,故謝朓詩曰:「鵲起登吳台。」吾有一親表,作七夕詩云:「今夜吳台鵲,亦共往填河。」羅浮山記云:「望平地樹如薺。」故戴暠詩云:「長安樹如薺。」又鄴下有一人詠樹詩云:「遙望長安薺。」又嘗見謂矜誕爲誇毗,呼高年爲富有春秋,皆耳學之過也。

이야기하고 글을 지을 때 옛일을 끌어오면 반드시 눈으로 배운 것이어야지 귀로 들은 것을 믿지 마라. 강남 마을에서는 사대부가 학문을 하지 않으면서 촌스럽다는 소리를 부끄러워하여 길에서 듣고 말하며 억지로 꾸며 댄다. 징질(征質)을 주·정이라 하고 곽란을 박륙이라 하며, 형주로 올라가면 반드시 섬서라 하고 양도로 내려가면 해군(海郡)으로 간다 하며, 먹는 것을 말하면 호구(餬口)라 하고 돈을 말하면 공방(孔方)이라 하며, 이사를 물으면 초구(楚丘)라 하고 혼인을 논하면 연이(宴爾)라 하며, 왕씨에 이르면 중선(仲宣)이 아닌 이가 없고 유씨를 말하면 공간(公幹)이 아닌 이가 없다. 이런 것이 백이백 가지로 서로 전하여 본받으니 까닭을 물으면 아무도 모르고 쓰는 자리도 때때로 어긋난다. 장자에 때를 타고 까치처럼 일어난다는 말이 있어 사조의 시에 「까치가 일어나 오대에 오르네」 하였는데, 내 친척 하나가 칠석 시를 지어 「오늘 밤 오대의 까치도 함께 가서 은하를 메우리」 하였다. 『나부산기』에 「평지를 바라보면 나무가 냉이 같다」 하였기에 대고의 시에 「장안의 나무가 냉이 같네」 하였는데, 업의 한 사람이 나무를 읊은 시에 「멀리 장안의 냉이를 바라보네」 하였다. 또 거만하고 허황한 것을 과비(誇毗)라 하고 나이 많은 이를 「춘추가 넉넉하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니 다 귀로 배운 허물이다.

20글자는 책의 뿌리

夫文字者,墳籍根本。世之學徒,多不曉字:讀五經者,是徐邈而非許慎;習賦誦者,信褚詮而忽呂忱;明史記者,專徐、鄒而廢篆籀;學漢書者,悅應、蘇而略蒼、雅。不知書音是其枝葉,小學乃其宗系。至見服虔、張揖音義則貴之,得通俗、廣雅而不屑。一手之中,向背如此,況異代各人乎?

문자란 옛 책의 뿌리다. 세상의 학도들은 글자를 모르는 이가 많다. 오경을 읽는 이는 서막을 옳다 하고 허신을 그르다 하며, 사부를 익히는 이는 저전을 믿고 여침을 소홀히 하고, 『사기』에 밝은 이는 서광·추탄생만 전공하고 전서·주문을 버리며, 『한서』를 배우는 이는 응소·소림을 좋아하고 『창힐』·『이아』를 가벼이 여긴다. 책의 음은 그 가지와 잎이요 소학(小學)이 그 뿌리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복건·장읍의 음의는 보면 귀히 여기면서 『통속문』·『광아』를 얻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 사람 손 안에서도 이렇게 등지고 향하니 하물며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이야.

21제 이름 글자도 모르는 이름난 선비

夫學者貴能博聞也。郡國山川,官位姓族,衣服飲食,器皿制度,皆欲根尋,得其原本;至於文字,忽不經懷,己身姓名,或多乖舛,縱得不誤,亦未知所由。近世有人爲子制名:兄弟皆山傍立字,而有名峙者;兄弟皆手傍立字,而有名機者;兄弟皆水傍立字,而有名凝者。名儒碩學,此例甚多。若有知吾鍾之不調,一何可笑。

배우는 이는 널리 듣는 것을 귀히 여긴다. 군국과 산천, 벼슬과 성씨, 옷과 음식, 그릇과 제도를 다 뿌리까지 찾아 그 근본을 얻으려 하면서, 글자에 이르러서는 문득 마음에 두지 않아 제 성명조차 더러 어긋나고, 틀리지 않았더라도 그 까닭을 모른다. 근세에 어떤 사람이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형제가 다 뫼 산(山) 변 글자인데 치(峙)라 이름한 이가 있고, 형제가 다 손 수(手) 변 글자인데 기(機)라 이름한 이가 있으며, 형제가 다 물 수(水) 변 글자인데 응(凝)이라 이름한 이가 있었다. 이름난 선비와 큰 학자 가운데 이런 예가 매우 많다. 내 종이 고르지 않은 것을 아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22엽려촌과 항구성의 옛 이름을 『자림』과 『운집』에서 찾다

吾嘗從齊主幸幷州,自井陘關入上艾縣,東數十里,有獵閭村。後百官受馬糧在晉陽東百餘里亢仇城側。並不識二所本是何地,博求古今,皆未能曉。及檢字林、韻集,乃知獵閭是舊躐□〔足改谷〕餘聚,亢仇舊是□〔谷曼〕□〔谷九〕亭,悉屬上艾。時太原王劭欲撰鄉邑記注,因此二名聞之,大喜。

내가 일찍이 제나라 임금을 따라 병주에 갔는데, 정형관에서 상애현으로 들어가 동쪽으로 수십 리에 엽려촌(獵閭村)이 있었다. 뒤에 백관이 말 먹이를 받은 곳은 진양 동쪽 백여 리 항구성(亢仇城) 곁이었다. 두 곳이 본디 어느 땅인지 몰라 고금을 널리 뒤졌으나 다 알 수 없었다. 『자림』과 『운집』을 살펴보고서야 엽려는 옛 엽□〔足改谷〕여취(餘聚)이고 항구는 옛 □〔谷曼〕□〔谷九〕정(亭)으로 다 상애에 속한 것임을 알았다. 그때 태원의 왕소가 향읍의 기주(記注)를 지으려다 이 두 이름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23「螝」 자를 여러 해 만에 풀다

吾初讀莊子「螝二首」,韓非子曰:「蟲有螝者,一身兩口,争食相齕,遂相殺也」,茫然不識此字何音,逢人輒問,了無解者。案:爾雅諸書,蠶蛹名螝,又非二首兩口貪害之物。後見古今字詁,此亦古之虺字,積年凝滯,豁然霧解。

내가 처음 『장자』의 「螝는 머리가 둘」과 『한비자』의 「벌레 가운데 螝라는 것이 있어 한 몸에 입이 둘이라 먹이를 다투어 서로 물다가 마침내 서로 죽인다」를 읽고 이 글자의 소리가 무엇인지 아득히 몰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물었으나 아는 이가 전혀 없었다. 살펴보니 『이아』 등 여러 책에서 누에 번데기를 螝라 하니 또 머리 둘 입 둘의 탐욕스럽고 해로운 물건은 아니다. 뒤에 『고금자고』를 보니 이것 또한 옛 훼(虺) 자였다. 여러 해 막혔던 것이 안개 걷히듯 환해졌다.

24백인성 북쪽 이름 없는 물

嘗遊趙州,見柏人城北有一小水,土人亦不知名。後讀城西門徐整碑云:「□〔水百〕流東指。」眾皆不識。吾案説文,此字古魄字也,□〔水百〕,淺水貌。此水漢來本無名矣,直以淺貌目之,或當即以□〔水百〕爲名乎?

일찍이 조주에 놀러 가 백인성 북쪽에 작은 물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고장 사람도 이름을 몰랐다. 뒤에 성 서문의 서정 비문을 읽으니 「□〔水百〕의 흐름이 동쪽을 가리킨다」 하였는데 아무도 몰랐다. 내가 『설문』을 살피니 이 글자는 옛 백(魄) 자이고 □〔水百〕은 얕은 물의 모양이다. 이 물은 한나라 이래 본디 이름이 없어 다만 얕은 모양으로 이른 것이니, 아마 곧 □〔水百〕으로 이름 삼은 것이 아닐까.

25편지 끝의 「물물(勿勿)」

世中書翰,多稱勿勿,相承如此,不知所由,或有妄言此忽忽之殘缺耳。案:説文:「勿者,州里所建之旗也,象其柄及三斿之形,所以趣民事。故忽遽者稱爲勿勿。」

세상의 편지에 흔히 물물(勿勿)이라 적는데 서로 이어받아 이렇게 하면서 그 까닭을 모르고, 더러는 이것이 홀홀(忽忽)의 떨어져 나간 꼴이라고 함부로 말한다. 살펴보니 『설문』에 「물(勿)은 고을에서 세우는 기로 그 자루와 세 깃발의 모양을 본떴으니 백성의 일을 재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쁘고 급한 것을 물물이라 한다」 하였다.

26「두핍」 — 촉 땅에서 팥알을 부르는 말

吾在益州,與數人同坐,初晴日晃,見地上小光,問左右:「此是何物?」有一蜀豎就視,答云:「是豆逼耳。」相顧愕然,不知所謂。命取將來,乃小豆也。窮訪蜀士,呼粒爲逼,時莫之解。吾云:「三蒼、説文,此字白下爲匕,皆訓粒,通俗文音方力反。」眾皆歡悟。

내가 익주에 있을 때 몇 사람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막 갠 날 햇빛에 땅 위에서 작은 빛이 보이기에 좌우에게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촉 땅의 아이 하나가 가서 보고 「두핍(豆逼)입니다」 답하였다. 서로 돌아보며 놀라 무슨 말인지 몰랐다. 가져오게 하니 곧 팥이었다. 촉의 선비들에게 두루 물으니 알갱이를 핍이라 부르는데 당시 아무도 풀지 못하였다. 내가 「『삼창』과 『설문』에 이 글자는 백(白) 아래 비(匕)를 쓰며 다 알갱이(粒)로 풀이하고, 『통속문』에서는 방(方)·력(力)의 반절로 읽는다」 하니 모두 기뻐하며 깨달았다.

27갈(鶡)이라 부르던 푸른 새

愍楚友婿竇如同從河州來,得一青鳥,馴養愛翫,舉俗呼之爲鶡。吾曰:「鶡出上黨,數曾見之,色並黃黑,無駁雜也。故陳思王鶡賦云:『揚玄黃之勁羽。』」試檢説文:「□〔介鳥〕雀似鶡而青,出羌中。」韻集音介。此疑頓釋。

민초의 동서 두여동이 하주에서 오다가 푸른 새 한 마리를 얻어 길들이며 아꼈는데, 온 고을이 그것을 갈(鶡)이라 불렀다. 내가 말하였다. 「갈은 상당에서 나는데 여러 번 보았소. 빛깔은 다 누렇고 검어 얼룩이 없소. 그래서 진사왕의 「갈부」에 『검고 누런 굳센 깃을 드날린다』 하였소.」 시험 삼아 『설문』을 살피니 「□〔介鳥〕작은 갈과 비슷하되 푸르고 강중에서 난다」 하였고 『운집』에서 소리를 개(介)라 하였다. 이 의심이 단번에 풀렸다.

28순채를 노규라 부른 사람들

梁世有蔡朗者諱純,既不涉學,遂呼蓴爲露葵。面牆之徒,遞相仿效。承聖中,遣一士大夫聘齊,齊主客郎李恕問梁使曰:「江南有露葵否?」答曰:「露葵是蓴,水鄉所出。卿今食者綠葵菜耳。」李亦學問,但不測彼之深淺,乍聞無以核究。

양나라에 채랑이라는 이가 순(純)을 휘하였는데, 학문에 손대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순채(蓴)를 노규(露葵)라 불렀다. 담벼락을 마주한 무리가 서로 본떴다. 승성 연간에 한 사대부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제나라의 주객랑 이서가 양나라 사신에게 「강남에 노규가 있습니까」 물었다. 답하기를 「노규는 순채로 물가 고을에서 납니다. 그대가 지금 드시는 것은 푸른 아욱일 뿐입니다」 하였다. 이서도 학문은 하였으나 상대의 깊고 얕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갑자기 듣고는 따져 볼 수 없었다.

29자의(諮議)의 이름과 소리가 같은 글자 쉰 가지

思魯等姨夫彭城劉靈,嘗與吾坐,諸子侍焉。吾問儒行、敏行曰:「凡字與諮議名同音者,其數多少,能盡識乎?」答曰:「未之究也,請導示之。」吾曰:「凡如此例,不預研檢,忽見不識,誤以問人,反爲無賴所欺,不容易也。」因爲説之,得五十許字。諸劉嘆曰:「不意乃爾!」若遂不知,亦爲異事。

사로 등의 이모부 팽성의 유령이 일찍이 나와 앉아 있었고 아들들이 곁에서 모셨다. 내가 유행·민행에게 「자의(諮議)의 이름과 소리가 같은 글자가 얼마나 되는지 다 알 수 있느냐」 물으니 「아직 따져 보지 못하였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답하였다. 내가 「이런 예를 미리 살펴 두지 않으면 문득 보고 알지 못하여 남에게 잘못 물었다가 도리어 무뢰한에게 속으니 쉬운 일이 아니다」 하고, 이어 말해 주니 쉰 자 남짓이 나왔다. 유씨들이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탄식하였다. 끝내 몰랐다면 또한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30책을 교정하는 일은 함부로 할 수 없다

校定書籍,亦何容易,自揚雄、劉向,方稱此職耳。觀天下書未遍,不得妄下雌黃。或彼以爲非,此以爲是;或本同末異;或兩文皆欠,不可偏信一隅也。

책을 교정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랴. 양웅·유향에 이르러서야 이 직분을 일컬을 만하였을 뿐이다. 천하의 책을 두루 보지 못하였으면 함부로 자황(雌黃)을 대어서는 안 된다. 저쪽은 그르다 하고 이쪽은 옳다 하기도 하고, 근본은 같은데 끝이 다르기도 하며, 두 글이 다 빠졌기도 하니, 한 귀퉁이만 치우쳐 믿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