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文章
1문장은 오경에서 나왔으나 문인은 경박에 빠지기 쉽다
夫文章者,原出五經:詔命策檄,生於書者也;序述論議,生於易者也;歌詠賦頌,生於詩者也;祭祀哀誄,生於禮者也;書奏箴銘,生於春秋者也。朝廷憲章,軍旅誓誥,敷顯仁義,發明功德,牧民建國,施用多途。至於陶冶性靈,從容諷諫,入其滋味,亦樂事也。行有餘力,則可習之。然而自古文人,多陷輕薄:屈原露才揚己,顯暴君過;宋玉體貌容冶,見遇俳優;東方曼倩,滑稽不雅;司馬長卿,竊貲無操;王褒過章僮約;揚雄德敗美新;李陵降辱夷虜;劉歆反覆莽世;傅毅黨附權門;班固盜竊父史;趙元叔抗竦過度;馮敬通浮華擯壓;馬季長佞媚獲誚;蔡伯喈同惡受誅;吳質詆忤鄉里;曹植悖慢犯法;杜篤乞假無厭;路粹隘狹已甚;陳琳實號麤疏;繁欽性無檢格;劉楨屈強輸作;王粲率躁見嫌;孔融、祢衡,誕傲致殞;楊修、丁廙,扇動取斃;阮籍無禮敗俗;嵇康凌物凶終;傅玄忿斗免官;孫楚矜誇凌上;陸機犯順履險;潘岳乾沒取危;顏延年負氣摧黜;謝靈運空疏亂紀;王元長凶賊自詒;謝玄暉侮慢見及。凡此諸人,皆其翹秀者,不能悉記,大較如此。至於帝王,亦或未免。自昔天子而有才華者,唯漢武、魏太祖、文帝、明帝、宋孝武帝,皆負世議,非懿德之君也。自子遊、子夏、荀況、孟軻、枚乘、賈誼、蘇武、張衡、左思之儔,有盛名而免過患者,時復聞之,但其損敗居多耳。每嘗思之,原其所積,文章之體,標舉興會,發引性靈,使人矜伐,故忽於持操,果於進取。今世文士,此患彌切,一事愜當,一句清巧,神厲九霄,志凌千載,自吟自賞,不覺更有傍人。加以砂礫所傷,慘於矛戟,諷刺之禍,速乎風塵,深宜防慮,以保元吉。
문장이란 본디 오경에서 나왔다. 조(詔)·명(命)·책(策)·격(檄)은 『서경』에서 났고, 서(序)·술(述)·논(論)·의(議)는 『역경』에서 났으며, 가(歌)·영(詠)·부(賦)·송(頌)은 『시경』에서 났고, 제(祭)·사(祀)·애(哀)·뇌(誄)는 『예기』에서 났으며, 서(書)·주(奏)·잠(箴)·명(銘)은 『춘추』에서 났다. 조정의 헌장과 군대의 맹세와 고유는 인의를 펴서 드러내고 공덕을 밝히며 백성을 기르고 나라를 세우니 쓰임이 여러 갈래다. 성령을 도야하고 조용히 풍간하는 데 이르러 그 맛에 들어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행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익힐 만하다. 그러나 예부터 문인은 경박에 빠진 이가 많았다. 굴원은 재주를 드러내고 제 자랑을 하여 임금의 허물을 드러냈고, 송옥은 생김이 고와 광대 대접을 받았으며, 동방삭(만천)은 익살스러워 우아하지 못하였고, 사마상여(장경)는 재물을 훔쳐 지조가 없었으며, 왕포는 「동약」으로 지나쳤고, 양웅은 「미신」으로 덕을 그르쳤으며, 이릉은 오랑캐에게 항복하여 욕을 당하였고, 유흠은 왕망의 세상에서 이랬다저랬다 하였으며, 부의는 권문에 붙었고, 반고는 아버지의 사서를 훔쳤으며, 조일(원숙)은 뻗대기가 지나쳤고, 풍연(경통)은 부화하여 배척당하였으며, 마융(계장)은 아첨으로 비난을 받았고, 채옹(백개)은 악인과 같이하다 죽임을 당하였으며, 오질은 향리를 헐뜯었고, 조식은 거만하여 법을 범하였으며, 두독은 청탁이 끝이 없었고, 노수는 옹졸함이 심하였으며, 진림은 실로 거칠다 일컬어졌고, 번흠은 성품에 절제가 없었으며, 유정은 굽히지 않다가 노역에 처해졌고, 왕찬은 경솔하고 조급하여 미움받았으며, 공융과 예형은 오만하여 죽음에 이르렀고, 양수와 정의는 선동하다 죽임을 당하였으며, 완적은 예가 없어 풍속을 무너뜨렸고, 혜강은 남을 업신여기다 흉하게 마쳤으며, 부현은 성내어 싸우다 벼슬을 잃었고, 손초는 뽐내며 윗사람을 능멸하였으며, 육기는 순리를 어겨 위험을 밟았고, 반악은 요행을 좇다 위태로움을 얻었으며, 안연년은 객기를 부리다 꺾여 쫓겨났고, 사령운은 소루하여 기강을 어지럽혔으며, 왕융(원장)은 흉포함을 스스로 불렀고, 사조(현휘)는 업신여기고 오만하다 화를 입었다. 이 여러 사람은 다 그 가운데 빼어난 이들인데 다 적을 수 없으니 대략 이러하다. 제왕에 이르러도 면치 못한 이가 있다. 예부터 천자로서 재주와 문장이 있던 이는 한 무제·위 태조·문제·명제·송 효무제뿐인데 다 세상의 비평을 받았으니 아름다운 덕의 임금은 아니다. 자유·자하·순황·맹가·매승·가의·소무·장형·좌사 같은 무리는 큰 이름을 지니고도 허물과 근심을 면하였으니 때때로 그런 이도 들리지만 손상되고 그르친 이가 더 많을 뿐이다. 늘 생각해 보니 그 쌓인 까닭을 캐면, 문장의 본체가 흥취를 내걸고 성령을 끌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랑하게 하므로 지조를 지키는 데 소홀하고 나아가 취하는 데 과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세상의 문사는 이 병이 더욱 절실하여, 한 가지 일이 맞아떨어지고 한 구절이 맑고 교묘하면 정신은 구천에 오르고 뜻은 천 년을 넘어, 스스로 읊고 스스로 감상하며 곁에 다른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른다. 게다가 모래와 자갈에 다치는 것이 창칼보다 참혹하고 풍자의 화가 바람과 먼지보다 빠르니, 깊이 막고 헤아려 큰 길함을 지켜야 한다.
2「내 재주를 아내도 못 알아주니 하물며 남이야」
學問有利鈍,文章有巧拙。鈍學累功,不妨精熟;拙文研思,終歸蚩鄙。但成學士,自足爲人。必乏天才,勿強操筆。吾見世人,至無才思,自謂清華,流布丑拙,亦以眾矣,江南號爲詅痴符。近在幷州,有一士族,好爲可笑詩賦,誂撇邢、魏諸公,眾共嘲弄,虛相贊説,便擊牛釃酒,招延聲譽。其妻,明鑒婦人也,泣而諫之。此人嘆曰:「才華不爲妻子所容,何況行路!」至死不覺。自見之謂明,此誠難也。
학문에는 예리함과 둔함이 있고 문장에는 교묘함과 졸렬함이 있다. 둔한 배움도 공을 쌓으면 정밀하고 익숙해지는 데 방해되지 않지만, 졸렬한 글은 아무리 생각을 다듬어도 끝내 어리석고 비루한 데로 돌아간다. 학사가 되기만 하면 사람 노릇 하기에 넉넉하다. 반드시 타고난 재주가 모자라면 억지로 붓을 잡지 마라.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전혀 재주와 생각이 없으면서 스스로 맑고 화려하다 여겨 추하고 졸렬한 것을 퍼뜨리는 이가 또한 많으니, 강남에서는 이를 「바보 팔이 부적(詅痴符)」이라 한다. 근래 병주에 한 사족이 우스운 시부를 즐겨 지으며 형·위 여러 공을 조롱하니, 여럿이 함께 놀려 거짓으로 칭찬하면 곧 소를 잡고 술을 걸러 명성을 끌어들이려 하였다. 그 아내는 밝게 살피는 부인이라 울며 말렸다. 이 사람이 탄식하였다. 「내 재주를 아내도 알아주지 못하니 하물며 길 가는 사람이야.」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스스로를 보는 것을 밝음이라 하니 이것이 참으로 어렵다.
3글은 먼저 친한 벗에게 보이고 내놓아라
學爲文章,先謀親友,得其評裁,知可施行,然後出手;慎勿師心自任,取笑旁人也。自古執筆爲文者,何可勝言。然至於宏麗精華,不過數十篇耳。但使不失體裁,辭意可觀,便稱才士;要須動俗蓋世,亦俟河之清乎!
글짓기를 배우면 먼저 친한 벗과 의논하여 그 평과 손질을 받아 내놓을 만함을 안 뒤에야 내놓아라. 제 마음을 스승 삼아 제멋대로 하여 곁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삼가라. 예부터 붓을 잡고 글을 지은 이가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으랴. 그러나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정밀하고 빛나는 것은 수십 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체재를 잃지 않고 말과 뜻이 볼 만하면 곧 재사라 일컬어지니, 반드시 세속을 움직이고 세상을 덮으려면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4조조를 승냥이라 하고 원소를 뱀이라 한 진림
不屈二姓,夷、齊之節也;何事非君,伊、箕之義也。自春秋已來,家有奔亡,國有吞滅,君臣固無常分矣;然而君子之交絶無惡聲,一旦屈膝而事人,豈以存亡而改慮?陳孔璋居袁裁書,則呼操爲豺狼;在魏制檄,則目紹爲蛇虺。在時君所命,不得自專,然亦文人之巨患也,當務從容消息之。
두 성씨에게 굽히지 않은 것은 백이·숙제의 절개요,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랴 한 것은 이윤·기자의 의리다. 춘추 이래로 집안이 달아나고 나라가 삼켜져 임금과 신하에 본디 정해진 분수가 없어졌다. 그러나 군자의 사귐은 끊어져도 나쁜 말이 없는 법이니, 하루아침에 무릎을 굽혀 남을 섬기게 되었다고 어찌 존망에 따라 생각을 바꾸겠는가. 진림(공장)은 원소에게 있으면서 글을 지을 때는 조조를 승냥이라 부르더니 위나라에 있으면서 격문을 지을 때는 원소를 뱀이라 하였다. 그때 임금이 시킨 것이라 제멋대로 할 수 없었겠으나 역시 문인의 큰 병이니 마땅히 조용히 헤아려 처리하는 데 힘써야 한다.
5「어린아이의 벌레 새김」이라 한 양웅은 어떤가
或問揚雄曰:「吾子少而好賦?」雄曰:「然。童子雕蟲篆刻,壯夫不爲也。」余竊非之曰:虞舜歌南風之詩,周公作鴟鴞之詠,吉甫、史克雅、頌之美者,未聞皆在幼年累德也。孔子曰:「不學詩,無以言。」「自衞返魯,樂正,雅、頌各得其所。」大明孝道,引詩證之。揚雄安敢忽之也?若論「詩人之賦麗以則,辭人之賦麗以淫」,但知變之而已,又未知雄自爲壯夫何如也?着劇秦美新,妄投於閣,周章怖懾,不達天命,童子之爲耳。桓譚以勝老子,葛洪以方仲尼,使人嘆息。此人直以曉算術,解陰陽,故着太玄經,數子爲所惑耳;其遺言餘行,孫卿、屈原之不及,安敢望大聖之清塵?且太玄今竟何用乎?不啻覆醬瓿而已。
어떤 이가 양웅에게 「그대는 젊어서 부(賦)를 좋아하였는가」 물으니 양웅이 「그렇다. 어린아이의 벌레 새김 같은 것이라 장부는 하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속으로 이를 그르다 여겨 말한다. 우순은 「남풍」의 시를 노래하였고 주공은 「치효」의 노래를 지었으며 길보와 사극의 아름다운 아(雅)·송(頌)이 다 어린 나이에 덕을 해친 것이라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공자가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하였고 「위에서 노로 돌아와 음악이 바로잡히니 아와 송이 각기 제자리를 얻었다」 하였다. 효도를 크게 밝히면서 시를 끌어 증명하였다. 양웅이 어찌 감히 그것을 가벼이 여기는가. 「시인의 부는 아름답되 법도가 있고 사인의 부는 아름답되 방탕하다」고 논한다면 다만 바꿀 줄 알았을 뿐이니, 또 양웅 자신이 장부로서는 어떠하였는지 모르겠다. 「극진미신」을 지어 함부로 각에서 몸을 던지고 허둥대며 두려워하여 천명에 통하지 못하였으니 어린아이의 짓일 뿐이다. 환담은 노자보다 낫다 하고 갈홍은 공자에 견주니 사람을 탄식하게 한다. 이 사람은 다만 산술에 밝고 음양을 알아 『태현경』을 지었기에 몇 사람이 홀렸을 뿐이다. 그가 남긴 말과 행실은 순경·굴원에도 미치지 못하니 어찌 감히 큰 성인의 맑은 자취를 바라겠는가. 또 『태현』이 지금 끝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장독 뚜껑으로나 쓰일 뿐이다.
6「겨울나무에 봄꽃이 피면 어떻겠소」
齊世有席毗者,清幹之士,官至行台尚書,嗤鄙文學,嘲劉逖云:「君輩辭藻,譬若榮華,須臾之翫,非宏才也;豈比吾徒千丈松樹,常有風霜,不可凋悴矣!」劉應之曰:「既有寒木,又發春華,何如也?」席笑曰:「可哉!」
제나라에 석비라는 이가 있었는데 맑고 유능한 선비로 벼슬이 행대상서에 이르렀다. 문학을 비웃고 천히 여겨 유적을 조롱하였다. 「그대들의 글재주는 꽃과 같아 잠깐의 노리개일 뿐 큰 재목이 아니오. 어찌 우리 무리의 천 길 소나무가 늘 바람과 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는 데 견주겠소.」 유적이 답하였다. 「겨울나무이면서 또 봄꽃이 피면 어떻겠소.」 석비가 웃으며 「좋소」 하였다.
7준마에 재갈과 굴레를 물리듯
凡爲文章,猶人乘騏驥,雖有逸氣,當以銜勒制之,勿使流亂軌躅,放意填坑岸也。
글을 짓는 것은 사람이 준마를 타는 것과 같아, 비록 빼어난 기운이 있어도 마땅히 재갈과 굴레로 다스려 궤도를 벗어나 어지러이 흐르거나 뜻대로 내달리다 구덩이와 언덕에 처박히지 않게 해야 한다.
8글의 심장과 뼈와 살갗과 관
文章當以理致爲心腎,氣調爲筋骨,事義爲皮膚,華麗爲冠冕。今世相承,趨本棄末,率多浮艷。辭與理競,辭勝而理伏;事與才争,事繁而才損。放逸者流宕而忘歸,穿鑿者補綴而不足。時俗如此,安能獨違?但務去泰去甚耳。必有盛才重譽,改革體裁者,實吾所希。
글은 마땅히 이치를 심장으로, 기운과 가락을 힘줄과 뼈로, 사실과 뜻을 살갗으로, 화려함을 관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 세상은 서로 이어받아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아 대개 들뜨고 고운 데로 흐른다. 말이 이치와 겨루면 말이 이기고 이치가 눌리며, 사실이 재주와 다투면 사실이 번거로워 재주가 손상된다. 방일한 이는 흘러 떠돌다 돌아올 줄 모르고, 억지로 캐는 이는 기워 붙여도 모자란다. 시속이 이러하니 어찌 홀로 거스르겠는가. 다만 너무 지나친 것을 버리는 데 힘쓸 뿐이다. 반드시 큰 재주와 무거운 명망으로 체재를 개혁하는 이가 나온다면 실로 내가 바라는 바다.
9옛 글의 재단을 근본으로, 지금의 가락을 끝으로
古人之文,宏材逸氣,體度風格,去今實遠;但緝綴疏朴,未爲密致耳。今世音律諧靡,章句偶對,諱避精詳,賢於往昔多矣。宜以古之制裁爲本,今之辭調爲末,並須兩存,不可偏棄也。
옛사람의 글은 큰 재목과 빼어난 기운, 체도와 풍격이 지금과 실로 거리가 멀다. 다만 엮음이 성글고 질박하여 촘촘하지 못할 뿐이다. 지금 세상은 음률이 고르고 부드러우며 장구가 짝을 맞추고 휘를 피함이 정밀하고 자세하여 지난날보다 나은 점이 많다. 마땅히 옛 재단을 근본으로 삼고 지금의 가락을 끝으로 삼아 둘을 다 두어야지 한쪽을 버려서는 안 된다.
10불에 타 없어진 형제의 문집 스무 권
吾家世文章,甚爲典正,不從流俗;梁孝元在蕃邸時,撰西府新文,訖無一篇見錄者,亦以不偶於世,無鄭、衞之音故也。有詩賦銘誄書表啓疏二十卷,吾兄弟始在草土,並未得編次,便遭火蕩盡,竟不傳於世。銜酷茹恨,徹於心髓!操行見於梁史文士傳及孝元懷舊志。
우리 집안의 문장은 대대로 매우 전아하고 바르며 시속을 따르지 않았다. 양 효원제가 번저에 있을 때 『서부신문』을 엮었는데 끝내 한 편도 실린 것이 없었으니 역시 세상과 맞지 않고 정·위의 음악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부·명·뇌·서·표·계·소 스무 권이 있었는데 우리 형제가 막 상중에 있어 미처 엮지 못하고 불이 나 다 타 버려 끝내 세상에 전하지 못하였다. 참혹함을 머금고 한을 삼키니 골수에 사무친다. 행적은 『양사』 문사전과 효원제의 『회구지』에 보인다.
11심약의 「세 가지 쉬움」
沈隱侯曰:「文章當從三易:易見事,一也;易識字,二也;易讀誦,三也。」邢子才常曰:「沈侯文章,用事不使人覺,若胸憶語也。」深以此服之。祖孝征亦嘗謂吾曰:「沈詩云:『崖傾護石髓。』此豈似用事邪?」
심은후(심약)가 말하였다. 「글은 마땅히 세 가지 쉬움을 따라야 한다. 사실을 알아보기 쉬운 것이 하나요, 글자를 알아보기 쉬운 것이 둘이요, 읽고 외우기 쉬운 것이 셋이다.」 형자재는 늘 「심후의 글은 고사를 쓰되 사람이 깨닫지 못하게 하니 가슴속에서 나온 말 같다」 하고 깊이 탄복하였다. 조효징도 일찍이 내게 「심약의 시에 『벼랑이 기울어 석수를 감싼다』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고사를 쓴 것 같은가」 하였다.
12임방과 심약의 시비는 곧 형소와 위수의 우열
邢子才、魏收俱有重名,時俗準的,以爲師匠。邢賞服沈約而輕任昉,魏愛慕任昉而毀沈約,每於談燕,辭色以之。鄴下紛紜,各有朋黨。祖孝征嘗謂吾曰:「任、沈之是非,乃邢、魏之優劣也。」
형자재와 위수는 다 무거운 이름이 있어 시속의 표준이 되어 스승으로 삼았다. 형은 심약을 높이고 임방을 가벼이 여겼으며 위는 임방을 사모하고 심약을 헐뜯어, 담론과 잔치마다 말과 낯빛에 그것이 드러났다. 업 땅이 어지러워 각기 붕당이 있었다. 조효징이 일찍이 내게 「임방과 심약의 시비는 곧 형소와 위수의 우열이다」 하였다.
13「파경」·「경동」·「무릎 위에서 어머니를 날리다」 — 글에서 피할 이름
吳均集有破鏡賦。昔者,邑號朝歌,顏淵不舍;里名勝母,曾子斂襟:蓋忌夫惡名之傷實也。破鏡乃凶逆之獸,事見漢書,爲文幸避此名也。比世往往見有和人詩者,題云敬同,孝經云:「資於事父以事君而敬同。」不可輕言也。梁世費旭詩云:「不知是耶非。」殷澐詩云:「颻揚雲母舟。」簡文曰:「旭既不識其父,澐又颻揚其母。」此雖悉古事,不可用也。世人或有文章引詩「伐鼓淵淵」者,宋書已有屢遊之誚;如此流比,幸須避之。北面事親,別舅摛渭陽之詠;堂上養老,送兄賦桓山之悲,皆大失也。舉此一隅,觸塗宜慎。
오균의 문집에 「파경부」가 있다. 옛날 고을 이름이 조가(朝歌)라 안연이 머물지 않았고, 마을 이름이 승모(勝母)라 증자가 옷깃을 여몄으니, 대개 나쁜 이름이 실상을 해칠까 꺼린 것이다. 파경(破鏡)은 흉악하고 패역한 짐승으로 『한서』에 보이니 글에서는 이 이름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근세에 남의 시에 화답한 것을 흔히 보면 제목에 경동(敬同)이라 적는데, 『효경』에 「아버지 섬기는 것으로 임금을 섬기니 공경이 같다(敬同)」 하였으니 가벼이 말할 수 없다. 양나라 비욱의 시에 「옳은지 그른지(是耶非) 모르겠네」 하였고 은운의 시에 「운모 배를 날려 올리네(颻揚)」 하였는데, 간문제가 「비욱은 제 아버지(耶)를 모르고 은운은 또 제 어머니(母)를 날려 올렸다」 하였다. 이것은 다 옛일이지만 써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 가운데 글에 시의 「북을 치니 연연(淵淵)」을 끌어온 이가 있는데 『송서』에 이미 여러 번 놀았다는 나무람이 있으니 이런 따위는 피해야 한다. 북면하여 어버이를 섬기면서 외숙과 헤어질 때 「위양」의 노래를 펴고, 당상에서 노인을 봉양하면서 형을 보내며 「환산」의 슬픔을 읊는 것은 다 큰 잘못이다. 이 한 귀퉁이를 들었으니 부딪치는 자리마다 삼가야 한다.
14글의 흠을 지적받기를 바라는 강남, 그렇지 않은 산동
江南文制,欲人彈射,知有病累,隨即改之,陳王得之於丁廙也。山東風俗,不通擊難。吾初入鄴,遂嘗以此忤人,至今爲悔;汝曹必無輕議也。
강남의 글 짓는 법은 남이 흠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 병통이 있음을 알면 곧 고치니, 진왕이 정의에게서 얻은 바다. 산동의 풍속은 논박을 주고받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업에 들어와 마침내 이 일로 남의 뜻을 거슬러 지금까지 뉘우친다. 너희는 결코 가벼이 논평하지 마라.
15남을 대신하여 글을 지을 때
凡代人爲文,皆作彼語,理宜然矣。至於哀傷凶禍之辭,不可輒代。蔡邕爲胡金盈作母靈表頌曰:「悲母氏之不永,然委我而夙喪。」又爲胡顥作其父銘曰:「葬我考議郎君。」袁三公頌曰:「猗歟我祖,出自有媯。」王粲爲潘文則思親詩云:「躬此勞悴,鞠予小人;庶我顯妣,克保遐年。」而並載乎邕、粲之集,此例甚眾。古人之所行,今世以爲諱。陳思王武帝誄,遂深永蟄之思;潘岳悼亡賦,乃愴手澤之遺:是方父於蟲,匹婦於考也。蔡邕楊秉碑云:「統大麓之重。」潘尼贈盧景宣詩云:「九五思龍飛。」孫楚王驃騎誄云:「奄忽登遐。」陸機父誄云:「億兆宅心,敦敘百揆。」姊誄云:「俔天之和。」今爲此言,則朝廷之罪人也。王粲贈楊德祖詩云:「我君餞之,其樂泄泄。」不可妄施人子,況儲君乎?
남을 대신하여 글을 지을 때는 다 그 사람의 말로 짓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다. 그러나 슬프고 흉한 일의 글은 함부로 대신할 수 없다. 채옹이 호금영을 위해 지은 「어머니 영표송」에 「어머니께서 오래 사시지 못하고 나를 버리고 일찍 돌아가심을 슬퍼한다」 하였고, 또 호호를 위해 지은 그 아버지의 명에 「내 아버지 의랑군을 장사 지낸다」 하였으며, 「원삼공송」에 「아름다워라 내 조상이여, 유규(有媯)에서 나셨네」 하였다. 왕찬이 반문칙을 위해 지은 「사친시」에 「몸소 이 수고와 초췌함을 겪어 나 소인을 기르셨네. 바라건대 내 밝으신 어머니 오래 사시기를」 하였다. 그런데 채옹과 왕찬의 문집에 함께 실렸으니 이런 예가 매우 많다. 옛사람이 행한 것을 지금 세상은 꺼린다. 진사왕의 「무제뢰」는 마침내 길이 칩거하는 벌레의 생각을 깊이 하였고, 반악의 「도망부」는 손때 남은 것을 슬퍼하였으니, 이는 아버지를 벌레에 견주고 아내를 아버지에 짝지은 것이다. 채옹의 「양병비」에 「큰 산기슭의 무거움을 통솔하였다」 하였고, 반니가 노경선에게 준 시에 「구오(九五)에서 용이 날기를 생각하네」 하였으며, 손초의 「왕표기뢰」에 「문득 하늘로 오르셨다(登遐)」 하였고, 육기의 「아버지 뢰」에 「억조가 마음을 두어 백규를 도탑게 폈다」 하였으며 「누이 뢰」에 「하늘과 짝하는 화목」이라 하였으니, 지금 이런 말을 하면 조정의 죄인이다. 왕찬이 양덕조에게 준 시에 「우리 임금이 전송하시니 그 즐거움이 넘치네」 하였는데, 남의 아들에게 함부로 쓸 수 없거늘 하물며 태자에게야.
16만가는 산 사람이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것
輓歌辭者,或云古者虞殯之歌,或云出自田橫之客,皆爲生者悼往告哀之意。陸平原多爲死人自嘆之言,詩格既無此例,又乖制作本意。
만가의 노랫말은 혹은 옛날 우빈(虞殯)의 노래라 하고 혹은 전횡의 문객에게서 나왔다 하는데, 다 산 사람이 죽은 이를 애도하고 슬픔을 고하는 뜻이다. 육평원(육기)은 죽은 사람이 스스로 탄식하는 말을 많이 지었으니 시의 격식에 본디 이런 예가 없고 또 지은 본뜻에도 어긋난다.
17풍자와 칭송을 한 편에 섞지 않는다
凡詩人之作,刺箴美頌,各有源流,未嘗混雜,善惡同篇也。陸機爲齊謳篇,前敘山川物產風教之盛,後章忽鄙山川之情,殊失厥體。其爲吳趨行,何不陳子光、夫差乎?京洛行,胡不述赧王、靈帝乎?
시인의 지음은 풍자와 경계, 찬미와 칭송에 각기 원류가 있어 선악을 한 편에 섞은 적이 없다. 육기의 「제구편」은 앞에서 산천과 물산과 풍교의 성함을 서술하고 뒷장에서 갑자기 산천의 정을 비루하다 하였으니 그 본체를 몹시 잃었다. 그의 「오추행」에서는 어찌 자광과 부차를 진술하지 않았으며, 「경락행」에서는 어찌 난왕과 영제를 서술하지 않았는가.
18수꿩과 암꿩, 공회, 옹검, 조석조, 낭당 — 고사를 잘못 쓴 예
自古宏才博學,用事誤者有矣;百家雜説,或有不同,書儻湮滅,後人不見,故未敢輕議之。今指知決紕繆者,略舉一兩端以爲誡。詩云:「有鷕雉鳴。」又曰:「雉鳴求其牡。」毛傳亦曰:「鷕,雌雉聲。」又云:「雉之朝雊,尚求其雌。」鄭玄注月令亦云:「雊,雄雉鳴。」潘岳賦曰:「雉鷕鷕以朝雊。」是則混雜其雄雌矣。詩云:「孔懷兄弟。」孔,甚也;懷,思也,言甚可思也。陸機與長沙顧母書,述從祖弟士璜死,乃言:「痛心拔腦,有如孔懷。」心既痛矣,即爲甚思,何故方言有如也?觀其此意,當謂親兄弟爲孔懷。詩云:「父母孔邇。」而呼二親爲孔邇,於義通乎?異物志云:「擁劍狀如蟹,但一螯偏大爾。」何遜詩云:「躍魚如擁劍。」是不分魚蟹也。漢書:「御史府中列柏樹,常有野鳥數千,棲宿其上,晨去暮來,號朝夕鳥。」而文士往往誤作烏鳶用之。抱朴子説項曼都詐稱得仙,自云:「仙人以流霞一杯與我飲之,輒不饑渴。」而簡文詩云:「霞流抱朴碗。」亦猶郭象以惠施之辨爲莊周言也。後漢書:「囚司徒崔烈以鋃鐺鎖。」鋃鐺,大鎖也;世間多誤作金銀字。武烈太子亦是數千卷學士,嘗作詩云:「銀鎖三公腳,刀撞僕射頭。」爲俗所誤。
예부터 큰 재주와 넓은 배움을 지니고도 고사를 잘못 쓴 이가 있었다. 백가의 잡설이 더러 같지 않고 책이 묻혀 없어져 뒷사람이 보지 못하니 그러므로 감히 가벼이 논하지 못한다. 지금 분명히 그르다고 알 수 있는 것만 한두 가지 들어 경계로 삼는다. 『시경』에 「요요 하며 암꿩이 운다」 하고 또 「꿩이 울어 수컷을 구한다」 하였으며, 모전에도 「요는 암꿩 소리」라 하고 또 「꿩이 아침에 우는 것은 암컷을 구하는 것」이라 하였다. 정현의 「월령」 주에도 「구(雊)는 수꿩이 우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반악의 부에 「꿩이 요요 하며 아침에 운다」 하였으니 이는 암수를 섞은 것이다. 『시경』에 「공회(孔懷) 형제」라 하였는데 공은 매우, 회는 생각하는 것이니 매우 그리워할 만하다는 말이다. 육기가 장사 고모에게 보낸 편지에 종조의 아우 사황의 죽음을 말하며 「마음이 아프고 골이 빠지는 듯하기가 공회와 같다」 하였다. 마음이 이미 아프면 곧 매우 그리운 것인데 어찌 「같다」고 하는가. 그 뜻을 보면 친형제를 공회라 여긴 것이다. 『시경』에 「부모가 매우 가깝다(孔邇)」 하였다고 하여 부모를 공이라 부르면 뜻에 통하겠는가. 『이물지』에 「옹검(擁劍)은 모양이 게 같은데 한쪽 집게만 크다」 하였는데 하손의 시에 「뛰는 물고기가 옹검 같다」 하였으니 이는 물고기와 게를 가리지 못한 것이다. 『한서』에 「어사부 안에 측백나무가 늘어서 있어 늘 들새 수천 마리가 그 위에 깃들어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오니 조석조(朝夕鳥)라 불렀다」 하였는데 문사들이 흔히 까마귀와 솔개로 잘못 쓴다. 『포박자』에 항만도가 신선이 되었다고 속이며 「신선이 유하 한 잔을 내게 마시게 하니 곧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았다」 하였다고 하였는데, 간문제의 시에 「노을이 포박의 사발에 흐르네」 하였으니 이 또한 곽상이 혜시의 변론을 장주의 말로 여긴 것과 같다. 『후한서』에 「사도 최열을 낭당(鋃鐺)으로 묶어 가두었다」 하였는데 낭당은 큰 쇠사슬이다. 세상에서는 흔히 금은 자로 잘못 쓴다. 무열태자도 수천 권을 읽은 학사인데 일찍이 시를 지어 「은사슬이 삼공의 다리에, 칼이 복야의 머리를 치네」 하였으니 시속에 잘못 배운 것이다.
19글 속의 지리는 맞아야 한다
文章地理,必須愜當。梁簡文雁門太守行乃云:「鵝軍攻日逐,燕騎蕩康居,大宛歸善馬,小月送降書。」蕭子暉隴頭水云:「天寒隴水急,散漫俱分瀉,北注徂黃龍,東流會白馬。」此亦明珠之纇,美玉之瑕,宜慎之。
글 속의 지리는 반드시 맞아떨어져야 한다. 양 간문제의 「안문태수행」에 「거위 군사가 일축을 치고 연나라 기병이 강거를 쓸며, 대완이 좋은 말을 바치고 소월지가 항복 문서를 보내네」 하였고, 소자휘의 「농두수」에 「하늘이 차가워 농수가 급하니 흩어져 다 갈라져 쏟아지네. 북으로 흘러 황룡으로 가고 동으로 흘러 백마에서 모이네」 하였다. 이 또한 밝은 구슬의 흠이요 아름다운 옥의 티이니 삼가야 한다.
20「매미 울어 숲은 더욱 고요하고, 새 울어 산은 더욱 그윽하다」
王籍入若耶溪詩云:「蟬噪林逾靜,鳥鳴山更幽。」江南以爲文外斷絶,物無異議。簡文吟詠,不能忘之,孝元諷味,以爲不可復得,至懷舊志載於籍傳。范陽盧詢祖,鄴下才俊,乃言:「此不成語,何事於能?」魏收亦然其論。詩云:「蕭蕭馬鳴,悠悠旆旌。」毛傳曰:「言不諠嘩也。」吾每嘆此解有情致,籍詩生於此耳。
왕적의 「약야계에 들어가며」에 「매미가 울어 숲은 더욱 고요하고, 새가 울어 산은 더욱 그윽하다」 하였다. 강남에서는 글 밖의 절창이라 하여 아무도 다른 말이 없었다. 간문제는 읊조리며 잊지 못하였고 효원제는 음미하며 다시 얻을 수 없다 하여 『회구지』의 왕적전에까지 실었다. 범양의 노순조는 업의 재주 있는 이인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무엇이 능하다는 것인가」 하였고 위수도 그 논의를 옳다 하였다. 『시경』에 「쓸쓸히 말이 울고 유유히 깃발 나부낀다」 하였는데 모전에 「시끄럽지 않다는 말이다」 하였다. 나는 늘 이 풀이에 정취가 있다고 감탄하니 왕적의 시는 여기서 난 것이다.
21「연꽃은 이슬 아래 떨어지고, 버들은 달 속에 성기다」
蘭陵蕭愨,梁室上黃侯之子,工於篇什。嘗有秋詩云:「芙蓉露下落,楊柳月中疏。」時人未之賞也。吾愛其蕭散,宛然在目。潁川荀仲舉、琅邪諸葛漢,亦以爲爾。而盧思道之徒,雅所不愜。
난릉의 소각은 양나라 황실 상황후의 아들로 시를 잘 지었다. 일찍이 가을 시에 「연꽃은 이슬 아래 떨어지고, 버들은 달 속에 성기다」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 소산함이 완연히 눈앞에 있는 듯하여 사랑한다. 영천의 순중거와 낭야의 제갈한도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노사도의 무리는 본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22하손의 맑고 교묘함, 유효작의 시기
何遜詩實爲清巧,多形似之言;揚都論者,恨其每病苦辛,饒貧寒氣,不及劉孝綽之雍容也。雖然,劉甚忌之,平生誦何詩,常云:「『蘧車響北闕』,□〔心畫〕□〔心畫〕不道車。」又撰詩苑,止取何兩篇,時人譏其不廣。劉孝綽當時既有重名,無所與讓;唯服謝朓,常以謝詩置几案間,動靜輒諷味。簡文愛陶淵明文,亦復如此。江南語曰:「梁有三何,子朗最多。」三何者,遜及思澄、子朗也。子朗信饒清巧。思澄遊廬山,每有佳篇,亦爲冠絶。
하손의 시는 실로 맑고 교묘하여 형상을 닮게 그린 말이 많다. 양도의 논자들은 그가 늘 괴롭고 쓰라린 병통이 있어 가난하고 추운 기운이 넘쳐 유효작의 온화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스러워하였다. 그렇지만 유효작은 그를 몹시 시기하여 평생 하손의 시를 외우며 늘 「『거거가 북궐에 울린다』 하니 □〔心畫〕□〔心畫〕한 것이지 수레를 말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또 『시원』을 엮으며 하손의 시는 두 편만 취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 좁음을 나무랐다. 유효작은 당시 이미 무거운 이름이 있어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않았고 오직 사조에게만 탄복하여 늘 사조의 시를 책상에 두고 움직일 때마다 음미하였다. 간문제가 도연명의 글을 사랑한 것도 이와 같았다. 강남 말에 「양나라에 세 하씨가 있으니 자랑이 가장 많다」 하였다. 세 하씨란 하손과 하사징·하자랑이다. 자랑은 참으로 맑고 교묘함이 넘쳤다. 사징은 여산에 놀며 좋은 시가 많았으니 역시 으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