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 — 이름과 실상名實
1이름과 실상은 형체와 그림자
名之與實,猶形之與影也。德藝周厚,則名必善焉;容色姝麗,則影必美焉。今不修身而求令名於世者,猶貌甚惡而責妍影於鏡也。上士忘名,中士立名,下士竊名。忘名者,體道合德,享鬼神之福佑,非所以求名也;立名者,修身慎行,懼榮觀之不顯,非所以讓名也;竊名者,厚貌深奸,幹浮華之虛構,非所以得名也。
이름과 실상은 형체와 그림자 같다. 덕과 재주가 두루 두터우면 이름이 반드시 좋고, 얼굴빛이 곱고 아름다우면 그림자가 반드시 아름답다. 지금 몸을 닦지 않고 세상에서 좋은 이름을 구하는 것은 얼굴은 몹시 추하면서 거울에게 고운 그림자를 내놓으라는 것과 같다. 으뜸가는 선비는 이름을 잊고, 중간 선비는 이름을 세우며, 아래 선비는 이름을 훔친다. 이름을 잊는 이는 도를 체득하고 덕에 합하여 귀신의 복과 도움을 누리니 이름을 구할 까닭이 없고, 이름을 세우는 이는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 영예가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니 이름을 사양할 까닭이 없으며, 이름을 훔치는 이는 겉을 두텁게 하고 속으로 깊이 간사하여 들뜬 허구를 꾸미니 이름을 얻을 까닭이 없다.
2발 디딜 곳 곁에 여지가 없으면 넘어진다
人足所履,不過數寸,然而咫尺之途,必顛蹶於崖岸,拱把之梁,每沈溺於川谷者,何哉?爲其旁無餘地故也。君子之立己,抑亦如之。至誠之言,人未能信,至潔之行,物或致疑,皆由言行聲名,無餘地也。吾每爲人所毀,常以此自責。若能開方軌之路,廣造舟之航,則仲由之言信,重於登壇之盟,趙熹之降城,賢於折衝之將矣。
사람의 발이 밟는 곳은 몇 치에 지나지 않지만, 한 자 남짓한 길에서 반드시 벼랑 끝에서 넘어지고 한 아름 되는 다리에서 늘 골짜기 물에 빠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곁에 남은 땅이 없기 때문이다. 군자가 제 몸을 세우는 것도 이와 같다. 지극히 성실한 말을 남이 믿지 못하고 지극히 깨끗한 행실을 남이 의심하는 것은 다 말과 행실과 명성에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남에게 헐뜯길 때마다 늘 이것으로 스스로를 나무란다. 만약 수레 두 대가 나란히 갈 길을 열고 배를 이어 놓은 나루를 넓힌다면, 중유의 말이 믿음직스럽기가 단에 올라 맺은 맹세보다 무겁고 조희가 성을 항복시킨 것이 적을 꺾는 장수보다 나을 것이다.
3한 가지 거짓으로 백 가지 성실을 잃는다
吾見世人,清名登而金貝入,信譽顯而然諾虧,不知後之矛戟,毀前之幹櫓也。虙子賤云:「誠於此者形於彼。」人之虛實真偽在乎心,無不見乎迹,但察之未熟耳。一爲察之所鑒,巧偽不如拙誠,承之以羞大矣。伯石讓卿,王莽辭政,當於爾時,自以巧密;後人書之,留傳萬代,可爲骨寒毛豎也。近有大貴,以孝着聲,前後居喪,哀毀踰制,亦足以高於人矣。而嘗於苫塊之中,以巴豆塗臉,遂使成瘡,表哭泣之過。左右童豎,不能掩之,益使外人謂其居處飲食,皆爲不信。以一偽喪百誠者,乃貪名不已故也。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맑은 이름이 오르자 금과 조개가 들어오고, 신의가 드러나자 약속이 이지러지니, 뒤의 창이 앞의 방패를 무너뜨리는 줄 모른다. 복자천이 「여기서 성실하면 저기서 드러난다」 하였다. 사람의 허와 실, 참과 거짓은 마음에 있으나 자취에 드러나지 않음이 없으니 다만 살피기가 익지 않았을 뿐이다. 한번 살핌에 비추이면 교묘한 거짓이 서툰 성실만 못하여 큰 부끄러움으로 이어진다. 백석이 경(卿)을 사양하고 왕망이 정권을 사양한 것은 그때에는 스스로 교묘하고 치밀하다 여겼겠으나, 뒷사람이 적어 만대에 전하니 뼈가 시리고 털이 곤두설 만하다. 근래 한 큰 귀인이 효로 이름이 나서 앞뒤로 상을 치를 때 슬픔으로 몸을 상하게 함이 법도를 넘었으니 남보다 높을 만하였다. 그런데 일찍이 거적자리 위에서 파두를 얼굴에 발라 부스럼이 나게 하여 곡한 자취를 드러내려 하였다. 좌우의 아이들이 감추지 못하여 바깥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거처와 음식이 다 믿을 수 없다 하게 하였다. 한 가지 거짓으로 백 가지 성실을 잃은 것은 이름을 탐하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남이 지어 준 글로 이름을 얻은 사족
有一士族,讀書不過二三百卷,天才鈍拙,而家世殷厚,雅自矜持,多以酒犢珍玩,交諸名士,甘其餌者,遞共吹噓。朝廷以爲文華,亦嘗出境聘。東萊王韓晉明篤好文學,疑彼制作,多非機杼,遂設燕言,面相討試。竟日歡諧,辭人滿席,屬音賦韻,命筆爲詩,彼造次即成,了非向韻。眾客各自沈吟,遂無覺者。韓退嘆曰:「果如所量!」韓又嘗問曰:「玉珽杼上終葵首,當作何形?」乃答云:「珽頭曲圜,勢如葵葉耳。」韓既有學,忍笑爲吾説之。
한 사족이 있었는데 책은 이삼백 권을 넘지 못하고 타고난 재주가 둔하였으나 집안이 넉넉하여 본디 몸을 사리며 흔히 술과 송아지와 진귀한 노리개로 여러 명사와 사귀니, 그 미끼를 달게 여긴 이들이 돌아가며 함께 불어 주었다. 조정에서 문화(文華)라 여겨 국경 밖 사신으로도 내보냈다. 동래왕 한진명은 문학을 독실히 좋아하여 그의 지은 것이 대개 제 솜씨가 아니라고 의심하여 마침내 잔치를 베풀고 마주 앉아 시험하였다. 온종일 즐거이 어울리며 사인이 자리에 가득하여 음을 붙이고 운을 내어 붓을 잡고 시를 짓게 하니, 그는 급히 지어 냈으나 전혀 앞서의 운이 아니었다. 손님들은 각자 읊조리느라 끝내 알아챈 이가 없었다. 한진명이 물러나 탄식하였다. 「과연 헤아린 대로다.」 한진명이 또 일찍이 「옥정(玉珽)의 저상종규수(杼上終葵首)는 어떤 모양인가」 물으니 답하기를 「정의 머리가 굽고 둥근 것이 아욱 잎 같은 모양일 뿐이오」 하였다. 한진명은 학문이 있었으므로 웃음을 참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5자제의 글을 고쳐 주어 이름을 얻게 하는 폐단
治點子弟文章,以爲聲價,大弊事也。一則不可常繼,終露其情;二則學者有憑,益不精勵。
자제의 글을 손질해 주어 명성을 얻게 하는 것은 큰 폐단이다. 하나는 늘 이어 갈 수 없어 끝내 그 실정이 드러나고, 둘은 배우는 이가 기댈 데가 있어 더욱 힘써 갈고 닦지 않는다.
6손을 잡고 배와 대추를 주며 병사를 보내던 현령
鄴下有一少年,出爲襄國令,頗自勉篤。公事經懷,每加撫恤,以求聲譽。凡遣兵役,握手送離,或齎梨棗餅餌,人人贈別,云:「上命相煩,情所不忍;道路饑渴,以此見思。」民庶稱之,不容於口。及遷爲泗州別駕,此費日廣,不可常周,一有偽情,觸塗難繼,功績遂損敗矣。
업의 한 젊은이가 양국령으로 나가 자못 스스로 힘써 독실하였다. 공무를 마음에 두고 늘 어루만지고 돌보아 명성을 구하였다. 병역을 보낼 때마다 손을 잡고 전송하며 더러 배와 대추와 떡을 주어 한 사람 한 사람 작별하며 「위의 명으로 번거롭게 하니 정으로는 차마 못 할 일이다. 길에서 배고프고 목마를 때 이것으로 나를 생각하라」 하였다. 백성들이 칭송이 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주별가로 옮기자 이 비용이 날로 늘어 늘 두루 미칠 수 없었다. 한 번 거짓된 정이 있으면 부딪치는 자리마다 잇기 어려우니 공적이 마침내 무너졌다.
7성인이 이름을 가르침으로 삼은 까닭
或問曰:「夫神滅形消,遺聲餘價,亦猶蟬殼蛇皮,獸迒鳥迹耳,何預於死者,而聖人以爲名教乎?」對曰:「勸也,勸其立名,則獲其實。且勸一伯夷,而千萬人立清風矣;勸一季札,而千萬人立仁風矣;勸一柳下惠,而千萬人立貞風矣;勸一史魚,而千萬人立直風矣。故聖人欲其魚鱗鳳翼,雜沓參差,不絶於世,豈不弘哉?四海悠悠,皆慕名者,蓋因其情而致其善耳。抑又論之,祖考之嘉名美譽,亦子孫之冕服牆宇也,自古及今,獲其庇蔭者亦眾矣。夫修善立名者,亦猶築室樹果,生則獲其利,死則遺其澤。世之汲汲者,不達此意,若其與魂爽俱升,松柏偕茂者,惑矣哉!
어떤 이가 물었다. 「정신이 사라지고 형체가 없어지면 남은 명성과 값어치란 매미 껍질이나 뱀 허물, 짐승 발자국이나 새 자취일 뿐이니 죽은 이와 무슨 상관이기에 성인은 이름을 가르침으로 삼았습니까.」 답하였다. 「권하기 위해서다. 이름을 세우기를 권하면 그 실상을 얻는다. 또 백이 한 사람을 권하면 천만 사람이 맑은 풍조를 세우고, 계찰 한 사람을 권하면 천만 사람이 어진 풍조를 세우며, 유하혜 한 사람을 권하면 천만 사람이 곧은 풍조를 세우고, 사어 한 사람을 권하면 천만 사람이 곧은 풍조를 세운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들이 물고기 비늘과 봉황 날개처럼 어지러이 잇대어 세상에 끊이지 않기를 바랐으니 어찌 넓지 않은가. 사해의 아득한 사람들이 다 이름을 사모하는 이이니 그 정을 따라 착함에 이르게 한 것이다. 또 논하건대 조상의 아름다운 이름과 명예는 자손의 관복이요 담장이니 예부터 지금까지 그 그늘을 입은 이가 또한 많다. 착함을 닦아 이름을 세우는 것은 집을 짓고 과일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 살아서는 그 이익을 얻고 죽어서는 그 은택을 남긴다. 세상의 급급한 이들은 이 뜻에 통하지 못하니, 만약 이름이 혼백과 함께 오르고 소나무·잣나무와 함께 무성하리라 여긴다면 미혹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