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무 — 일을 맡는 법涉務
1나라가 쓰는 인재 여섯 가지
士君子之處世,貴能有益於物耳,不徒高談虛論,左琴右書,以費人君祿位也。國之用材,大較不過六事:一則朝廷之臣,取其鑒達治體,經綸博雅;二則文史之臣,取其著述憲章,不忘前古;三則軍旅之臣,取其斷決有謀,強幹習事;四則藩屏之臣,取其明練風俗,清白愛民;五則使命之臣,取其識變從宜,不辱君命;六則興造之臣,取其程功節費,開略有術,此則皆勤學守行者所能辨也。人性有長短,豈責具美於六塗哉?但當皆曉指趣,能守一職,便無媿耳。
선비와 군자가 세상에 처함은 남에게 보탬이 될 수 있음을 귀히 여길 뿐이니, 한갓 높은 이야기와 헛된 논의로 왼쪽에 거문고 오른쪽에 책을 두고 임금의 녹봉과 벼슬을 축내서는 안 된다. 나라가 쓰는 인재는 대략 여섯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조정의 신하는 다스림의 큰 틀을 꿰뚫고 경륜이 넓고 우아한 것을 취하고, 둘째 문사(文史)의 신하는 헌장을 저술하여 옛일을 잊지 않는 것을 취하며, 셋째 군대의 신하는 결단에 꾀가 있고 굳세며 일에 익숙한 것을 취하고, 넷째 번병(藩屛)의 신하는 풍속에 밝고 청백하며 백성을 아끼는 것을 취하며, 다섯째 사명(使命)의 신하는 변화를 알아 마땅함을 좇아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취하고, 여섯째 흥조(興造)의 신하는 공정을 헤아리고 비용을 절약하여 계획에 방법이 있는 것을 취한다. 이것은 다 부지런히 배우고 행실을 지키는 이가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성품에는 장단이 있으니 어찌 여섯 길을 다 갖추기를 요구하겠는가. 다만 다 그 요지를 알아 한 직분을 지킬 수 있으면 곧 부끄러움이 없을 뿐이다.
2손바닥 보듯 고금을 논하되 써 보면 감당하지 못하는 문사
吾見世中文學之士,品藻古今,若指諸掌,及有試用,多無所堪。居承平之世,不知有喪亂之禍;處廟堂之下,不知有戰陳之急;保俸祿之資,不知有耕稼之苦;肆吏民之上,不知有勞役之勤,故難可以應世經務也。晉朝南渡,優借士族;故江南冠帶,有才幹者,擢爲令仆已下尚書郎中書舍人已上,典掌機要。其餘文義之士,多迂誕浮華,不涉世務;纖微過失,又惜行捶楚,所以處於清高,蓋護其短也。至於台閣令史,主書監帥,諸王簽省,並曉習吏用,濟辦時須,縱有小人之態,皆可鞭杖肅督,故多見委使,蓋用其長也。人每不自量,舉世怨梁武帝父子愛小人而疏士大夫,此亦眼不能見其睫耳。
내가 세상의 문학하는 선비를 보니 고금을 품평하기는 손바닥을 가리키듯 하지만 써 보면 감당하지 못하는 이가 많다. 태평한 세상에 살아 상란의 화가 있는 줄 모르고, 묘당 아래 있어 전진의 급함이 있는 줄 모르며, 봉록의 밑천을 지녀 농사의 괴로움이 있는 줄 모르고, 아전과 백성 위에 군림하여 노역의 수고가 있는 줄 모르니, 그러므로 세상에 응하고 일을 경영하기 어렵다. 진나라가 남으로 건너와 사족을 우대하였으므로 강남의 관면 가운데 재간 있는 이는 뽑혀 영·복 이하 상서랑·중서사인 이상이 되어 기밀을 맡았다. 그 밖의 글 하는 선비는 대개 허황하고 부화하여 세상일에 손대지 않았고, 조그만 잘못도 매질하기를 아까워하니 그래서 청고한 자리에 둔 것은 대개 그 단점을 감싸 준 것이다. 대각의 영사, 주서와 감수, 여러 왕의 첨성(簽省)은 다 아전 일에 익숙하여 때에 맞게 처리하였으니, 소인의 태도가 있더라도 다 채찍과 매로 엄히 감독할 수 있어 그래서 흔히 일을 맡겼으니 대개 그 장점을 쓴 것이다. 사람은 늘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여 온 세상이 양 무제 부자가 소인을 사랑하고 사대부를 멀리한다고 원망하였으니, 이 또한 눈이 제 속눈썹을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3「바로 범인데 어찌 말이라 하는가」
梁世士大夫,皆尚褒衣博帶,大冠高履,出則車輿,入則扶侍,郊郭之內,無乘馬者。周弘正爲宣城王所愛,給一果下馬,常服御之,舉朝以爲放達。至乃尚書郎乘馬,則糾劾之。及侯景之亂,膚脆骨柔,不堪行步,體羸氣弱,不耐寒暑,坐死倉猝者,往往而然。建康令王復性既儒雅,未嘗乘騎,見馬嘶歕陸梁,莫不震懾,乃謂人曰:「正是虎,何故名爲馬乎?」其風俗至此。
양나라의 사대부는 다 넓은 옷과 큰 띠, 큰 관과 높은 신을 숭상하여 나갈 때는 수레를 타고 들어올 때는 부축을 받아, 성 밖 안에 말을 타는 이가 없었다. 주홍정이 선성왕의 사랑을 받아 과하마 한 마리를 얻어 늘 타고 다니니 온 조정이 방달하다 여겼다. 심지어 상서랑이 말을 타면 탄핵하였다. 후경의 난에 이르러 살은 무르고 뼈는 약하여 걷지 못하고 몸이 여위고 기운이 약하여 추위와 더위를 견디지 못하여 앉은 채 갑자기 죽은 이가 곳곳에 있었다. 건강령 왕복은 성품이 유아하여 말을 타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 울며 콧김을 내뿜고 날뛰는 것을 보면 놀라 떨지 않은 적이 없어 사람들에게 「이는 바로 범인데 어찌 말이라 하는가」 하였다. 그 풍속이 이에 이르렀다.
4농사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古人欲知稼穡之艱難,斯蓋貴穀務本之道也。夫食爲民天,民非食不生矣,三日不粒,父子不能相存。耕種之,茠鉏之,刈獲之,載積之,打拂之,簸揚之,凡幾涉手,而入倉廩,安可輕農事而貴末業哉?江南朝士,因晉中興,南渡江,卒爲羈旅,至今八九世,未有力田,悉資俸祿而食耳。假令有者,皆信僮僕爲之,未嘗目觀起一□〔土發〕土,耘一株苗;不知幾月當下,幾月當收,安識世間餘務乎?故治官則不了,營家則不辦,皆優閒之過也。
옛사람이 농사의 어려움을 알고자 한 것은 대개 곡식을 귀히 여기고 근본에 힘쓰는 도리다.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라 백성은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니 사흘 곡식을 못 먹으면 부자도 서로 지킬 수 없다. 갈고 심고, 김매고, 베고 거두고, 실어 쌓고, 두드리고 떨고, 키질하여 까부르기까지 몇 번이나 손을 거쳐 창고에 들어가는데 어찌 농사를 가벼이 여기고 말업을 귀히 여기겠는가. 강남의 조정 선비들은 진나라 중흥 때 남으로 강을 건너 마침내 나그네가 되어 지금 여덟아홉 대에 이르도록 밭에 힘쓴 이가 없고 다 봉록에 기대어 먹을 뿐이다. 설령 밭이 있어도 다 종에게 맡겨 하게 하여 흙 한 삽 일으키고 모 한 포기 김매는 것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몇 월에 심고 몇 월에 거두는지 모르니 어찌 세상의 다른 일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벼슬을 하면 마치지 못하고 집안을 경영하면 처리하지 못하니 다 한가로움의 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