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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 — 족함을 알라止足

안씨가훈 顏氏家訓 · 안지추(顏之推) · 6세기 말 · 단락 3 · 한자 326자 · 낭독 1.3분

「안씨가훈」 한 권 「지족 — 족함을 알라」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북조 말의 학자 안지추가 자손에게 남긴 스무 편의 가훈. 양나라에서 나서 서위·북제·북주·수 네 나라를 떠돌며 살아남은 사람이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자손을 일깨우려고」 쓴 글이라, 아이 가르치기·형제·재혼·집안 살림·몸가짐과 말씨·배움·문장·이름과 실상·족함을 아는 것에서 글자와 책의 고증, 말소리, 글씨·그림·활·점·거문고·바둑 같은 여러 재주, 그리고 제 장례를 어떻게 치르라는 유언까지 이른다. 「수레에서 안 떨어지면 저작랑」이라던 양나라 귀족 자제가 난리 뒤 밭 갈고 말 기르게 된 것을 보고 「몸에 지닌 작은 재주가 재물 천만보다 낫다」고 한 대목, 「어려서 배우는 이는 해 뜰 때의 빛 같고 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다」는 대목이 여기서 나왔다. 뒷날의 가훈이 모두 이 책을 조상으로 삼는다.

1「벼슬은 이천 석을 넘지 말고 혼인은 권세가를 탐하지 마라」

禮云:『欲不可縱,誌不可滿。』宇宙可臻其極,情性不知其窮,唯在少欲知足,為立涯限爾。先祖靖侯戒子侄曰:『汝家書生門戶,世無富貴;自今仕宦不可過二千石,婚姻勿貪勢家。』吾終身服膺,以為名言也。

『예기』에 『욕심은 방종해서는 안 되고 뜻은 가득 차서는 안 된다』 하였다. 우주는 그 끝에 이를 수 있으나 정과 성은 그 다함을 모르니, 오직 욕심을 적게 하고 족함을 알아 한계를 세우는 데 있을 뿐이다. 선조 정후께서 자질들을 경계하시기를 『너희 집은 서생의 문호라 대대로 부귀가 없었다. 이제부터 벼슬은 이천 석을 넘지 말고 혼인은 권세가를 탐하지 마라』 하셨다. 나는 평생 가슴에 새겨 명언으로 여긴다.

2스무 식구의 집에 종은 스물, 밭은 열 이랑

天地鬼神之道,皆惡滿盈。謙虛沖損,可以免害。人生衣趣以覆寒露,食趣以塞饑乏耳。形骸之內,尚不得奢靡,己身之外,而欲窮驕泰邪?周穆王、秦始皇、漢武帝,富有四海,貴為天子,不知紀極,猶自敗累,況士庶乎?常以二十口家,奴婢盛多,不可出二十人,良田十頃,堂室纔蔽風雨,車馬僅代杖策,蓄財數萬,以擬吉凶急速,不啻此者,以義散之;不至此者,勿非道求之。

천지와 귀신의 도는 다 가득 차는 것을 미워한다. 겸허하고 비우고 덜면 해를 면할 수 있다. 사람의 삶에 옷은 추위와 이슬을 가리면 되고 밥은 굶주림을 막으면 될 뿐이다. 형체 안에서도 오히려 사치할 수 없거늘 제 몸 밖에서 교만과 방종을 다하려 하는가. 주 목왕·진 시황·한 무제는 부유하기가 사해를 가지고 귀하기가 천자였는데도 그칠 줄을 몰라 스스로 실패와 누를 끼쳤으니 하물며 사서인이야. 늘 스무 식구의 집으로 종은 아무리 많아도 스무 사람을 넘지 말고, 좋은 밭 열 이랑에 집은 겨우 비바람을 가리고, 수레와 말은 겨우 지팡이를 대신하며, 쌓은 재물 몇만은 길흉의 급한 일에 대비하고, 이보다 넘치면 의로써 흩고 이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도리 아닌 것으로 구하지 마라.

3벼슬은 중품이면 넉넉하다

仕宦稱泰,不過處在中品,前望五十人,後顧五十人,足以免恥辱,無傾危也。高此者,便當罷謝,偃仰私庭。吾近為黃門郎,已可收退;當時羈旅,懼罹謗讟,思為此計,僅未暇爾。自喪亂已來,見因托風雲,僥幸富貴,旦執機權,夜填坑谷,朔歡卓、鄭,晦泣顏、原者,非十人五人也。慎之哉!慎之哉!

벼슬이 편안하다 일컬을 만한 것은 중품에 있는 데 지나지 않으니, 앞으로 쉰 사람을 바라보고 뒤로 쉰 사람을 돌아보면 부끄러움과 욕을 면하고 기울어 위태로울 일이 없다. 이보다 높아지면 곧 그만두고 사양하여 사사로운 뜰에서 편히 지내야 한다. 나는 근래 황문랑이 되었으니 이미 물러날 만하였다. 그때 나그네 처지라 비방을 입을까 두려워 이 계책을 생각하면서도 겨우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상란 이래로 풍운에 기대어 요행으로 부귀하여 아침에 기밀을 잡았다가 밤에 구렁을 메우고, 초하루에 탁·정처럼 즐기다가 그믐에 안·원처럼 우는 이를 보았으니 열 사람 다섯 사람이 아니다. 삼갈지어다, 삼갈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