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심 — 부처에 마음을 두다歸心
1삼세의 일은 믿을 만하다
三世之事,信而有征,家世歸心,勿輕慢也。其間妙旨,具諸經論,不復於此,少能贊述;但懼汝曹猶未牢固,略重勸誘爾。
삼세의 일은 믿을 만하고 징험이 있으니 집안 대대로 마음을 두어 왔다. 가벼이 여기지 마라. 그 사이의 묘한 뜻은 여러 경론에 갖추어져 있으니 여기서 다시 조금이나마 기리어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너희가 아직 굳지 못할까 두려워 대략 거듭 권할 뿐이다.
2안과 밖의 두 가르침은 본디 한 몸
原夫四塵五蔭,剖析形有;六舟三駕,運載群生:萬行歸空,千門入善,辯才智惠,豈徒七經、百氏之博哉?明非堯、舜、周、孔所及也。內外兩教,本為一體,漸積為異,深淺不同。內典初門,設五種禁;外典仁義禮智信,皆與之符。仁者,不殺之禁也;義者,不盜之禁也;禮者,不邪之禁也;智者,不酒之禁也;信者,不妄之禁也。至如畋狩軍旅,燕享刑罰,因民之性,不可卒除,就為之節,使不淫濫爾。歸周、孔而背釋宗,何其迷也!
살피건대 사진(四塵)과 오온(五蔭)은 형체와 존재를 쪼개 살피고 육주(六舟)와 삼가(三駕)는 뭇 중생을 실어 나른다. 만 가지 행이 공(空)으로 돌아가고 천 가지 문이 선(善)으로 들어가니, 변재와 지혜가 어찌 칠경과 백가의 넓음에 그치겠는가. 요·순·주공·공자가 미칠 바가 아님이 분명하다. 안과 밖의 두 가르침은 본디 한 몸인데 차츰 쌓여 달라졌고 깊고 얕음이 같지 않다. 내전(불교)의 첫 문에 다섯 가지 금계를 두었는데 외전의 인·의·예·지·신이 다 이와 부합한다. 인은 죽이지 말라는 금계요, 의는 훔치지 말라는 금계요, 예는 삿되지 말라는 금계요, 지는 술 마시지 말라는 금계요, 신은 망령되지 말라는 금계다. 사냥과 군사, 잔치와 형벌 같은 것은 백성의 본성에 따른 것이라 갑자기 없앨 수 없으므로 절도를 세워 지나치지 않게 할 뿐이다. 주공·공자에 돌아가면서 석가의 종지를 등지는 것은 얼마나 미혹된 일인가.
3세속이 불교를 헐뜯는 다섯 가지
俗之謗者,大抵有五:其一,以世界外事及神化無方為迂誕也,其二,以吉凶禍福或未報應為欺誑也,其三,以僧尼行業多不精純為奸慝也,其四,以糜費金寶減耗課役為損國也,其五,以縱有因緣如報善惡,安能辛苦今日之甲,利益後世之乙乎?為異人也。今並釋之於下云。
세속의 헐뜯음은 대략 다섯 가지다. 첫째는 세계 밖의 일과 신령한 변화가 끝이 없음을 허황하다 하는 것이요, 둘째는 길흉화복이 더러 보응하지 않음을 속임이라 하는 것이요, 셋째는 승니의 행업이 흔히 정순하지 않음을 간특하다 하는 것이요, 넷째는 금보를 낭비하고 부역을 축내는 것을 나라를 해친다 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설령 인연이 있어 선악에 보응한들 어찌 오늘의 갑이 애써 후세의 을을 이롭게 하겠느냐 하여 다른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이제 아래에서 함께 풀이한다.
4첫째 풀이 — 하늘과 땅도 다 헤아리지 못하면서
釋一曰:夫遙大之物,寧可度量?今人所知,莫若天地。天為積氣,地為積塊,日為陽精,月為陰精,星為萬物之精,儒家所安也。星有墜落,乃為石矣;精若是石,不得有光,性又質重,何所系屬?一星之徑,大者百里,一宿首尾,相去數萬;百里之物,數萬相連,闊狹從斜,常不盈縮。又星與日月,形色同爾,但以大小為其等差;然而日月又當石也?石既牢密,烏兔焉容?石在氣中,豈能獨運?日月星辰,若皆是氣,氣體輕浮,當與天合,往來環轉,不得錯違,其間遲疾,理宜一等;何故日月五星二十八宿,各有度數,移動不均?寧當氣墜,忽變為石?地既滓濁,法應沈厚,鑿土得泉,乃浮水上;積水之下,復有何物?江河百谷,從何處生?東流到海,何為不溢?歸塘尾閭,渫何所到?沃焦之石,何氣所然?潮汐去還,誰所節度?天漢懸指,那不散落?水性就下,何故上騰?天地初開,便有星宿;九州未劃,列國未分,翦疆區野,若為躔次?封建已來,誰所制割?國有增減,星無進退,災祥禍福,就中不差;幹象之大,列星之夥,何為分野,止系中國?昴為旄頭,匈奴之次;西胡、東越,雕題、交址,獨棄之乎?以此而求,迄無了者,豈得以人事尋常,抑必宇宙外也?
첫째 풀이. 아득히 큰 것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이 아는 것으로 천지만 한 것이 없다. 하늘은 쌓인 기운이요 땅은 쌓인 덩어리요 해는 양의 정기요 달은 음의 정기요 별은 만물의 정기라는 것이 유가가 편안히 여기는 바다. 별이 떨어지면 돌이 되는데, 정기가 돌이라면 빛이 있을 수 없고 성질이 또 무거운데 어디에 매달려 있는가. 별 하나의 지름이 큰 것은 백 리요 한 별자리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수만 리 떨어져 있는데, 백 리 되는 물건이 수만 리에 잇대어 너비와 기울기가 늘 늘고 줄지 않는다. 또 별과 해와 달은 형체와 빛이 같고 다만 크기로 등급이 다를 뿐인데 그러면 해와 달도 돌이란 말인가. 돌은 단단하고 빽빽한데 까마귀와 토끼가 어찌 들어 있으며, 돌이 기운 속에 있으면서 어찌 홀로 돌겠는가. 해·달·별이 다 기운이라면 기운의 몸은 가볍고 떠서 하늘과 합하여 오가고 돌며 어긋날 수 없고 그 사이의 느리고 빠름이 이치로 한결같아야 하거늘, 어찌하여 해와 달과 오성과 이십팔수가 각기 도수가 있어 움직임이 고르지 않은가. 기운이 떨어지면 갑자기 돌로 변한단 말인가. 땅은 찌꺼기로 탁하니 법으로는 가라앉아 두꺼워야 하는데 흙을 파면 샘이 나오니 곧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다. 쌓인 물 아래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강과 하천과 온갖 골짜기는 어디서 생기며, 동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러 어찌 넘치지 않는가. 귀당(歸塘)과 미려(尾閭)로 새어 어디로 가며, 옥초(沃焦)의 돌은 무슨 기운으로 타는가. 조수가 갔다 오는 것은 누가 절도하며, 은하수가 걸려 있는데 어찌 흩어져 떨어지지 않는가. 물의 성질은 아래로 가는데 어찌하여 위로 오르는가. 천지가 처음 열릴 때 곧 별자리가 있었는데, 구주가 아직 그어지지 않고 열국이 아직 나뉘지 않았을 때 강토를 자르고 들을 나눈 것을 어떻게 별자리에 배당하였는가. 봉건 이래로 누가 갈라 정하였는가. 나라는 늘고 줄어도 별은 나아가고 물러남이 없는데 재앙과 상서, 화와 복이 그 가운데 어긋나지 않는다. 하늘의 형상은 크고 뭇별은 많은데 어찌하여 분야(分野)가 중국에만 매여 있는가. 묘성은 모두(旄頭)로 흉노의 자리인데 서호·동월·조제·교지는 홀로 버려졌는가. 이렇게 구하여도 끝내 아는 이가 없으니, 어찌 사람 일의 평상으로 우주 밖을 반드시 없다 할 수 있겠는가.
5귀와 눈 밖의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
凡人之信,唯耳與目;耳目之外,咸致疑焉。儒家說天,自有數義:或渾或蓋,乍宣乍安。鬥極所周,管維所屬,若所親見,不容不同;若所測量,寧足依據?何故信凡人之臆說,迷大聖之妙旨,而欲必無恒沙世界、微塵數劫也?而鄒衍亦有九州之談。山中人不信有魚大如木,海上人不信有木大如魚;漢武不信弦膠,魏文不信火布;胡人見錦,不信有蟲食樹吐絲所成;昔在江南,不信有千人氈帳,及來河北,不信有二萬斛船:皆實驗也。
범인이 믿는 것은 오직 귀와 눈뿐이라 귀와 눈 밖의 것은 다 의심한다. 유가가 하늘을 말하는 데도 본디 여러 설이 있어 혼천설이니 개천설이니 선야설이니 안천설이니 한다. 북두와 북극이 도는 것, 관유(管維)가 매인 것이 만약 친히 본 것이라면 같지 않을 수 없고, 헤아려 잰 것이라면 어찌 근거로 삼기에 넉넉하겠는가. 어찌하여 범인의 억측은 믿으면서 큰 성인의 묘한 뜻에 헤매어 항하사 세계와 미진수 겁이 반드시 없다 하려 하는가. 추연에게도 구주의 이야기가 있었다. 산속 사람은 나무만 한 물고기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바닷가 사람은 물고기만 한 나무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한 무제는 현교(弦膠)를 믿지 않았고 위 문제는 화포(火布)를 믿지 않았으며, 호인은 비단을 보고 벌레가 나무를 먹고 실을 토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옛날 강남에 있을 때는 천 사람이 드는 담요 장막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하북에 와서는 이만 섬 배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니, 다 실제로 징험한 것이다.
6사람의 힘으로도 이러하거늘 신통이야
世有祝師及諸幻術,猶能履火蹈刃,種瓜移井,倏忽之間,十變五化。人力所為,尚能如此;何況神通感應,不可思量,千里寶幢,百由旬座,化成凈土,踴出妙塔乎?
세상에 주술사와 여러 환술이 있어 오히려 불을 밟고 칼날을 딛으며 오이를 심고 우물을 옮겨 잠깐 사이에 열 번 스무 번 변한다.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하물며 헤아릴 수 없는 신통과 감응으로 천 리의 보당(寶幢)과 백 유순의 자리, 정토로 화하고 묘탑이 솟아나는 것이야 어떻겠는가.
7둘째 풀이 — 보응이 더딜 뿐 없지 않다
釋二曰:夫信謗之徵,有如影響;耳聞目見,其事已多,或乃精誠不深,業緣未感,時儻差闌,終當獲報耳。善惡之行,禍福所歸。九流百氏,皆同此論,豈獨釋典為虛妄乎?項橐、顏回之短折,伯夷、原憲之凍餒,盜跖、莊蹻之福壽,齊景、桓魋之富強,若引之先業,冀以後生,更為通耳。如以行善而偶鐘禍報,為惡而儻值福征,便生怨尤,即為欺詭;則亦堯、舜之雲虛,周、孔之不實也,又欲安所依信而立身乎?
둘째 풀이. 믿음과 헐뜯음의 징험은 그림자와 메아리 같아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일이 이미 많다. 더러는 정성이 깊지 않고 업연이 아직 감응하지 못하여 때가 어긋나더라도 끝내 보응을 받을 뿐이다. 선악의 행실은 화복이 돌아가는 바이니 구류백가가 다 이 논의를 같이하거늘 어찌 불전만 허망하다 하는가. 항탁·안회의 요절, 백이·원헌의 추위와 굶주림, 도척·장교의 복과 수명, 제 경공·환퇴의 부강을 전생의 업으로 끌어 후생을 바란다면 더욱 통한다. 착한 일을 하다 우연히 화를 만나고 악한 일을 하다 우연히 복을 만난다고 곧 원망하여 속임이라 한다면, 요·순도 헛되고 주공·공자도 실답지 않다는 것이니 또 어디에 의지하고 믿어 몸을 세우려 하는가.
8셋째 풀이 — 배우는 이가 게으른 것이 어찌 가르침의 허물이랴
釋三曰:開闢已來,不善人多而善人少,何由悉責其精絜乎?見有名僧高行,棄而不說;若睹凡僧流俗,便生非毀。且學者之不勤,豈教者之為過?俗僧之學經律,何異世人之學詩、禮?以詩、禮之教,格朝廷之人,略無全行者;以經律之禁,格出家之輩,而獨責無犯哉?且闕行之臣,猶求祿位;毀禁之侶,何慚供養乎?其於戒行,自當有犯。一披法服,已墮僧數,歲中所計,齋講誦持,比諸白衣,猶不啻山海也。
셋째 풀이. 천지가 열린 이래 착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착한 사람이 적은데 어찌 그 정결함을 다 요구하겠는가. 이름난 승려와 높은 행실이 있어도 버려두고 말하지 않으면서 범속한 승려의 시속을 보면 곧 비방을 낸다. 또 배우는 이가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 어찌 가르치는 이의 허물이겠는가. 속된 승려가 경과 율을 배우는 것이 세상 사람이 『시경』과 『예기』를 배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시경』·『예기』의 가르침으로 조정 사람을 재면 온전히 행하는 이가 거의 없다. 경과 율의 금계로 출가한 무리를 재면서 홀로 범함이 없기를 요구하는가. 또 행실이 모자란 신하도 오히려 녹과 벼슬을 구하는데 금계를 어긴 무리가 어찌 공양을 부끄러워하겠는가. 그 계행에는 절로 범함이 있다. 그러나 한번 법복을 입어 이미 승려의 수에 들면 한 해 동안 재계·강설·독송·수지하는 것이 흰옷 입은 이에 견주면 산과 바다만큼 차이가 날 뿐 아니다.
9넷째 풀이 — 도를 구함은 몸의 계책, 비용을 아낌은 나라의 계책
釋四曰:內教多途,出家自是其一法耳。若能誠孝在心,仁惠為本,須達、流水,不必剃落鬚髮;豈令罄井田而起塔廟,窮編戶以為僧尼也?皆由為政不能節之,遂使非法之寺,妨民稼穡,無業之僧,空國賦算,非大覺之本旨也。抑又論之:求道者,身計也;惜費者,國謀也。身計國謀,不可兩遂。誠臣徇主而棄親,孝子安家而忘國,各有行也。儒有不屈王侯高尚其事,隱有讓王辭相避世山林;安可計其賦役,以為罪人?若能偕化黔首,悉入道場,如妙樂之世,禳佉之國,則有自然稻米,無盡寶藏,安求田蠶之利乎?
넷째 풀이. 내교에는 길이 많으니 출가는 그 가운데 한 법일 뿐이다. 성실과 효도가 마음에 있고 인과 은혜가 근본이 될 수 있다면 수달(須達)·유수(流水)처럼 반드시 수염과 머리를 깎을 것이 없으니, 어찌 정전을 다 써서 탑과 절을 세우고 편호를 다하여 승니를 만들겠는가. 다 정사가 절제하지 못하여 마침내 법도에 어긋난 절이 백성의 농사를 방해하고 업 없는 승려가 나라의 부세를 비게 한 것이니 큰 깨달음의 본뜻이 아니다. 또 논하건대 도를 구함은 몸의 계책이요 비용을 아낌은 나라의 계책이니, 몸의 계책과 나라의 계책은 둘 다 이룰 수 없다. 성실한 신하가 임금을 따르다 어버이를 버리고 효자가 집안을 편안히 하다 나라를 잊는 것은 각기 행하는 바가 있다. 유자에게는 왕후에게 굽히지 않고 그 일을 높이는 이가 있고 은자에게는 왕위를 사양하고 재상을 사퇴하여 산림에 세상을 피하는 이가 있으니, 어찌 그 부역을 따져 죄인이라 하겠는가. 모든 백성을 다 교화하여 다 도량에 들게 하여 묘락(妙樂)의 세상이나 양거(禳佉)의 나라처럼 된다면 절로 나는 쌀과 다함없는 보물 창고가 있을 것이니 어찌 밭과 누에의 이익을 구하겠는가.
10다섯째 풀이 — 뒷몸도 내 몸이다
釋五曰:形體雖死,精神猶存。人生在世,望於後身似不相屬;及其歿後,則與前身似猶老少朝夕耳。世有魂神,示現夢想,或降童妾,或感妻孥,求索飲食,征須福佑,亦為不少矣。今人貧賤疾苦,莫不怨尤前世不修功業;以此而論,安可不為之作地乎?夫有子孫,自是天地間一蒼生耳,何預身事?而乃愛護,遺其基址,況於己之神爽,頓欲棄之哉?凡夫蒙蔽,不見未來,故言彼生與今非一體耳;若有天眼,鑒其念念隨滅,生生不斷,豈可不怖畏邪?又君子處世,貴能克己復禮,濟時益物。治家者欲一家之慶,治國者欲一國之良,仆妾臣民,與身竟何親也,而為勤苦修德乎?亦是堯、舜、周、孔虛失愉樂耳。一人修道,濟度幾許蒼生?免脫幾身罪累?幸熟思之!汝曹若觀俗計,樹立門戶,不棄妻子,未能出家;但當兼修戒行,留心誦讀,以為來世津梁。人生難得,無虛過也。
다섯째 풀이. 형체는 죽어도 정신은 남는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 뒷몸을 바라보면 서로 상관없는 듯하지만, 죽은 뒤에 앞몸과의 관계는 늙음과 젊음, 아침과 저녁 같을 뿐이다. 세상에 혼신이 있어 꿈에 나타나거나 아이와 첩에게 내리거나 처자를 감응시켜 음식을 구하고 복과 도움을 청하는 일이 또한 적지 않다. 지금 사람이 빈천하고 병들어 괴로우면 전세에 공업을 닦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이것으로 논하면 어찌 뒷일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지 않겠는가. 자손이 있다 한들 절로 천지 사이의 한 중생일 뿐이니 제 몸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런데도 아끼고 지켜 그 터전을 남기면서 하물며 제 정신은 대뜸 버리려 하는가. 범부는 가려져 미래를 보지 못하므로 저 생과 이 생이 한 몸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천안이 있어 생각마다 사라지고 생마다 끊이지 않음을 비춘다면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또 군자가 세상에 처함은 극기복례하여 때를 구하고 남을 이롭게 함을 귀히 여긴다. 집안을 다스리는 이는 한 집안의 경사를 바라고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한 나라의 좋음을 바라니, 종과 첩과 신하와 백성이 제 몸과 끝내 무슨 친함이 있기에 그들을 위해 애써 덕을 닦는가. 이것도 요·순·주공·공자가 헛되이 즐거움을 잃은 것일 뿐이라 하겠다. 한 사람이 도를 닦으면 얼마나 많은 중생을 건지고 얼마나 많은 몸의 죄와 누를 벗기는가. 부디 깊이 생각하라. 너희가 세속의 계책을 보아 문호를 세우고 처자를 버리지 못하여 출가하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계행을 아울러 닦고 독송에 마음을 두어 내세의 나루와 다리로 삼아라. 사람 몸은 얻기 어려우니 헛되이 지내지 마라.
11살생을 멀리하라
儒家君子,尚離庖廚,見其生不忍其死,聞其聲不食其肉。高柴、折像,未知內教,皆能不殺,此乃仁者自然用心。含生之徒,莫不愛命;去殺之事,必勉行之。好殺之人,臨死報驗,子孫殃禍,其數甚多,不能悉錄耳,且示數條於末。
유가의 군자도 오히려 푸줏간을 멀리하니, 산 것을 보고 그 죽음을 차마 못 보고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시와 절상은 내교를 몰랐어도 다 죽이지 않았으니 이는 어진 이의 자연스러운 마음씀이다. 목숨 지닌 무리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 없으니 살생을 버리는 일은 반드시 힘써 행하라. 죽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죽을 때 보응이 나타나고 자손이 재앙을 입은 수가 매우 많아 다 적을 수 없으나 끝에 몇 조목을 보인다.
12달걀흰자로 머리를 감던 사람
梁世有人,常以雞卵白和沐,云使髮光,每沐輒二三十枚。臨死,髮中但聞啾啾數千雞雛聲。
양나라에 어떤 사람이 늘 달걀흰자를 섞어 머리를 감으며 머리에 윤이 난다 하여 감을 때마다 이삼십 개씩 썼다. 죽을 때 머리카락 속에서 수천 마리 병아리가 짹짹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13드렁허리국을 팔던 집
江陵劉氏,以賣鱔羹為業。後生一兒頭是鱔,自頸以下,方為人耳。
강릉의 유씨는 드렁허리국을 팔아 생업으로 삼았다. 뒤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머리는 드렁허리요 목 아래부터 비로소 사람이었다.
14손님 품에 뛰어든 양
王克為永嘉郡守,有人餉羊,集賓欲燕。而羊繩解,來投一客,先跪兩拜,便入衣中。此客竟不言之,固無救請。須臾,宰羊為羹,先行至客。一臠入口,便下皮內,周行遍體,痛楚號叫;方復說之。遂作羊鳴而死。
왕극이 영가군수였을 때 어떤 이가 양을 보내와 손님을 모아 잔치하려 하였다. 그런데 양의 줄이 풀려 한 손님에게 달려와 먼저 두 번 무릎을 꿇어 절하고 곧 옷 속으로 들어갔다. 이 손님은 끝내 말하지 않았고 살려 달라고 청하지도 않았다. 잠시 뒤 양을 잡아 국을 끓여 먼저 그 손님에게 돌렸다. 한 점이 입에 들어가자 곧 살가죽 속으로 내려가 온몸을 돌아다니니 아파서 울부짖고서야 비로소 그 일을 말하였다. 마침내 양 울음소리를 내며 죽었다.
15섬돌에 와서 절한 소
梁孝元在江州時,有人為望蔡縣令,經劉敬躬亂,縣廨被焚,寄寺而住。民將牛酒作禮,縣令以牛繫旛柱,屏除形像,鋪設床坐,於堂上接賓。未殺之頃,牛解,徑來至階而拜,縣令大笑,命左右宰之。飲噉醉飽,便臥檐下。稍醒而覺體癢,爬搔隱疹,因爾成癩,十許年死。
양 효원제가 강주에 있을 때 어떤 이가 망채현령이 되었는데 유경궁의 난을 겪어 현 관청이 불타 절에 붙어살았다. 백성이 소와 술을 가져와 예를 차리자 현령은 소를 깃대 기둥에 매고 불상을 치우고 평상과 자리를 펴서 당 위에서 손님을 맞았다. 잡기 전에 소가 풀려 곧장 섬돌에 와서 절하니 현령이 크게 웃고 좌우에게 잡게 하였다. 먹고 마셔 취하고 배불러 처마 아래 누웠다. 조금 깨어 몸이 가려운 것을 느껴 긁다가 두드러기가 생겨 그로 인해 문둥병이 되어 십 년 남짓 만에 죽었다.
16손목을 자른 부곡의 아들
楊思達為西陽郡守,值侯景亂,時復旱儉,饑民盜田中麥。思達遣一部曲守視,所得盜者,輒截手腕,凡戮十餘人。部曲後生一男,自然無手。
양사달이 서양군수였을 때 후경의 난을 만나고 또 가뭄과 흉년이 들어 굶주린 백성이 밭의 보리를 훔쳤다. 양사달이 부곡 한 사람을 보내 지키게 하니 잡히는 도둑마다 손목을 잘라 모두 십여 사람을 해쳤다. 그 부곡이 뒤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나면서부터 손이 없었다.
17제 손으로 소를 잡아야 맛있다던 사람
齊有一奉朝請,家甚豪侈,非手殺牛,噉之不美。年三十許,病篤,大見牛來,舉體如被刀刺,叫呼而終。
제나라에 봉조청 하나가 있었는데 집이 몹시 호사스러워 제 손으로 소를 잡지 않으면 먹어도 맛이 없다 하였다. 나이 서른 남짓에 병이 위독하자 소가 오는 것을 크게 보고 온몸이 칼에 찔리는 듯하여 부르짖다 죽었다.
18물고기를 잡던 고위
江陵高偉,隨吾入齊,凡數年,向幽州澱中捕魚。後病,每見群魚嚙之而死。
강릉의 고위는 나를 따라 제나라에 들어와 몇 해 동안 유주의 못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뒤에 병들어 늘 물고기 떼가 저를 무는 것을 보다가 죽었다.
19며느리의 부모를 욕하는 시부모
世有癡人,不識仁義,不知富貴並由天命。為子娶婦,恨其生資不足,倚作舅姑之尊,蛇虺其性,毒口加誣,不識忌諱,罵辱婦之父母,卻成教婦不孝己身,不顧他恨。但憐己之子女,不愛己之兒婦。如此之人,陰紀其過,鬼奪其算。慎不可與為鄰,何況交結乎?避之哉!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인의를 모르고 부귀가 다 천명에서 나오는 줄 모른다.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얻고는 그 살림 밑천이 모자람을 한하여 시부모의 존귀함을 믿고 뱀처럼 독한 성질로 독한 입에 무함을 더하며 꺼릴 줄 모르고 며느리의 부모를 욕하니, 도리어 며느리에게 제 몸에 불효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면서 남의 원한을 돌아보지 않는다. 다만 제 자녀만 가엾이 여기고 제 며느리는 사랑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저승에서 그 허물을 적고 귀신이 그 수명을 빼앗는다. 삼가 이웃도 되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사귀겠는가. 피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