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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사 — 말소리音辭

안씨가훈 顏氏家訓 · 안지추(顏之推) · 6세기 말 · 단락 10 · 한자 1,353자 · 낭독 5.4분

「안씨가훈」 한 권 「음사 — 말소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북조 말의 학자 안지추가 자손에게 남긴 스무 편의 가훈. 양나라에서 나서 서위·북제·북주·수 네 나라를 떠돌며 살아남은 사람이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자손을 일깨우려고」 쓴 글이라, 아이 가르치기·형제·재혼·집안 살림·몸가짐과 말씨·배움·문장·이름과 실상·족함을 아는 것에서 글자와 책의 고증, 말소리, 글씨·그림·활·점·거문고·바둑 같은 여러 재주, 그리고 제 장례를 어떻게 치르라는 유언까지 이른다. 「수레에서 안 떨어지면 저작랑」이라던 양나라 귀족 자제가 난리 뒤 밭 갈고 말 기르게 된 것을 보고 「몸에 지닌 작은 재주가 재물 천만보다 낫다」고 한 대목, 「어려서 배우는 이는 해 뜰 때의 빛 같고 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다」는 대목이 여기서 나왔다. 뒷날의 가훈이 모두 이 책을 조상으로 삼는다.

1금릉과 낙양의 말 — 남북의 소리

夫九州之人,言語不同,生民已來,固常然矣。自春秋標齊言之傳,離騷目楚詞之經,此蓋其較明之初也。後有揚雄著方言,其言大備。然皆考名物之同異,不顯聲讀之是非也。逮鄭玄注六經,高誘解呂覽、淮南,許慎造說文,劉熹製釋名,始有譬況假借以證音字耳。而古語與今殊別,其間輕重清濁,猶未可曉;加以內言外言、急言徐言、讀若之類,益使人疑。孫叔言創爾雅音義,是漢末人獨知反語。至於魏世,此事大行。高貴鄉公不解反語,以為怪異。自茲厥後,音韻鋒出,各有土風,遞相非笑,指馬之諭,未知孰是。共以帝王都邑,參校方俗,考覈古今,為之折衷。搉而量之,獨金陵與洛下耳。南方水土和柔,其音清舉而切詣,失在浮淺,其辭多鄙俗。北方山川深厚,其音沈濁而鈋鈍,得其質直,其辭多古語。然冠冕君子,南方為優;閭里小人,北方為愈。易服而與之談,南方士庶,數言可辯;隔垣而聽其語,北方朝野,終日難分。而南染吳、越,北雜夷虜,皆有深弊,不可具論。其謬失輕微者,則南人以錢為涎,以石為射,以賤為羨,以是為舐;北人以庶為戍,以如為儒,以紫為姊,以洽為狎。如此之例,兩失甚多。至鄴已來,唯見崔子約、崔瞻叔姪,李祖仁、李蔚兄弟,頗事言詞,少為切正。李季節著音韻決疑,時有錯失;陽休之造切韻,殊為疏野。吾家兒女,雖在孩稚,便漸督正之;一言訛替,以為己罪矣。云為品物,未考書記者,不敢輒名,汝曹所知也。

구주의 사람은 말이 같지 않으니 백성이 생긴 이래 본디 늘 그러하였다. 『춘추』에 제나라 말이라 표한 전(傳)이 있고 「이소」를 초사의 경으로 삼은 데서 그 뚜렷한 시작을 볼 수 있다. 뒤에 양웅이 『방언』을 지어 그 말이 크게 갖추어졌다. 그러나 다 명물의 같고 다름을 상고하였지 소리와 읽기의 옳고 그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정현이 육경에 주하고 고유가 『여람』·『회남』을 풀며 허신이 『설문』을 짓고 유희가 『석명』을 지음에 이르러 비로소 비유하고 가차하여 음과 글자를 증명하는 것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옛말은 지금과 달라 그 사이의 가볍고 무겁고 맑고 탁함은 아직 알 수 없고, 게다가 내언·외언, 급언·서언, 독약(讀若) 같은 것이 더욱 사람을 의심하게 한다. 손숙연이 『이아음의』를 처음 지었으니 이는 한나라 말 사람이 홀로 반절을 안 것이다. 위나라에 이르러 이 일이 크게 행해졌다. 고귀향공은 반절을 몰라 괴이하게 여겼다. 이로부터 뒤로 음운이 봇물처럼 나와 각기 고장 풍속이 있어 서로 그르다 비웃으니, 말을 가리켜 사슴이라 하는 비유처럼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함께 제왕의 도읍으로 방속을 견주고 고금을 상고하여 절충한다. 헤아려 보면 오직 금릉과 낙양뿐이다. 남방은 물과 흙이 부드러워 그 소리가 맑고 높으며 빠르고 또렷하되 들뜨고 얕은 데 잘못이 있고 그 말은 비속한 것이 많다. 북방은 산천이 깊고 두터워 그 소리가 가라앉고 탁하며 무디되 질박하고 곧음을 얻었고 그 말은 옛말이 많다. 그러나 관면의 군자는 남방이 낫고 마을의 소인은 북방이 낫다. 옷을 바꿔 입히고 이야기해 보면 남방의 사와 서인은 몇 마디에 가릴 수 있으나, 담을 사이에 두고 그 말을 들으면 북방의 조야는 종일토록 가리기 어렵다. 그런데 남은 오·월에 물들고 북은 이적에 섞여 다 깊은 폐단이 있어 다 논할 수 없다. 그 잘못이 가벼운 것으로는, 남쪽 사람은 전(錢)을 연(涎)으로, 석(石)을 사(射)로, 천(賤)을 선(羨)으로, 시(是)를 지(舐)로 하고, 북쪽 사람은 서(庶)를 수(戍)로, 여(如)를 유(儒)로, 자(紫)를 자(姊)로, 흡(洽)을 압(狎)으로 한다. 이런 예로 두 쪽의 잘못이 매우 많다. 업에 온 이래 오직 최자약·최섬 숙질과 이조인·이울 형제만이 자못 말을 일삼아 조금 바르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계절이 『음운결의』를 지었으나 때로 잘못이 있고 양휴지가 『절운』을 지었으나 몹시 성글고 거칠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곧 차츰 바로잡아 한마디라도 잘못되면 내 죄로 여긴다. 사물의 이름은 기록을 상고하지 못한 것이면 감히 함부로 부르지 않으니 너희가 아는 바다.

2옛 반절이라고 다 따를 수는 없다

古今言語,時俗不同;著述之人,楚、夏各異。蒼頡訓詁,反稗為逋賣,反娃為於乖;戰國策音刎為免,穆天子傳音諫為間;說文音戛為棘,讀皿為猛;字林音看為口甘反,音伸為辛;韻集以成、仍、宏、登合成兩韻,為、奇、益、石分作四章;李登聲類以系音羿,劉昌宗周官音讀乘若承;此例甚廣,必須考校。前世反語,又多不切,徐仙民毛詩音反驟為在遘,左傳音切椽為徒緣,不可依信,亦為眾矣。今之學士,語亦不正;古獨何人,必應隨其偽僻乎?通俗文曰:「入室求曰搜。」反為兄侯。然則兄當音所榮反。今北俗通行此音,亦古語之不可用者。璵璠,魯人寶玉,當音餘煩,江南皆音藩屏之藩。岐山當音為奇,江南皆呼為神祇之祇。江陵陷沒,此音被於關中,不知二者何所承案。以吾淺學,未之前聞也。

고금의 말은 시대의 풍속이 같지 않고 저술하는 사람도 초와 하가 각기 다르다. 『창힐훈고』는 패(稗)를 포(逋)·매(賣)의 반절, 왜(娃)를 어(於)·괴(乖)의 반절로 하고, 『전국책』은 문(刎)을 면(免)으로, 『목천자전』은 간(諫)을 간(間)으로 읽으며, 『설문』은 알(戛)을 극(棘)으로, 명(皿)을 맹(猛)으로 읽고, 『자림』은 간(看)을 구(口)·감(甘)의 반절로, 신(伸)을 신(辛)으로 읽으며, 『운집』은 성(成)·잉(仍)·굉(宏)·등(登)을 합하여 두 운으로 하고 위(爲)·기(奇)·익(益)·석(石)을 나누어 네 장으로 하며, 이등의 『성류』는 계(系)를 예(羿)로 읽고, 유창종의 『주관음』은 승(乘)을 승(承)처럼 읽으니 이런 예가 매우 넓어 반드시 상고해야 한다. 전대의 반절은 또 맞지 않는 것이 많아 서선민의 『모시음』은 취(驟)를 재(在)·구(遘)의 반절로, 『좌전음』은 연(椽)을 도(徒)·연(緣)의 반절로 하였으니 기대어 믿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많다. 지금의 학사도 말이 바르지 않은데 옛사람이라고 홀로 어떤 사람이기에 반드시 그 그릇되고 치우친 것을 따라야 하는가. 『통속문』에 「방에 들어가 찾는 것을 수(搜)라 한다」 하고 반절을 형(兄)·후(侯)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형은 소(所)·영(榮)의 반절로 읽어야 한다. 지금 북쪽 풍속에 이 음이 통행하나 역시 옛말 가운데 쓸 수 없는 것이다. 여번(璵璠)은 노나라 사람의 보옥으로 여번(餘煩)으로 읽어야 하는데 강남에서는 다 번병(藩屏)의 번으로 읽는다. 기산(岐山)은 기(奇)로 읽어야 하는데 강남에서는 다 신기(神祇)의 기로 부른다. 강릉이 함락되자 이 음이 관중에 퍼졌는데 둘 다 무엇에 근거하였는지 모르겠다. 나의 얕은 배움으로는 전에 듣지 못하였다.

3「거」와 「구」는 다르다 — 동곽아의 입 모양

北人之音,多以舉、莒為矩;唯李季節云:「齊桓公與管仲於臺上謀伐莒,東郭牙望見桓公口開而不閉,故知所言者莒也。然則莒、矩必不同呼。」此為知音矣。

북쪽 사람의 소리는 흔히 거(舉)·거(莒)를 구(矩)로 하는데, 오직 이계절이 「제 환공이 관중과 대 위에서 거(莒)를 칠 것을 꾀할 때 동곽아가 환공의 입이 열리고 닫히지 않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 거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거와 구는 반드시 부르는 소리가 같지 않다」 하였으니 이것이 소리를 아는 것이다.

4「호오」의 두 음

夫物體自有精麤,精麤謂之好惡;人心有所去取,去取謂之好惡。此音見於葛洪、徐邈。而河北學士讀尚書云好生惡殺。是為一論物體,一就人情,殊不通矣。

사물에는 본디 정밀함과 거침이 있으니 정밀하고 거친 것을 호오(好惡)라 하고, 사람 마음에는 버리고 취함이 있으니 버리고 취하는 것을 호오(好惡)라 한다. 이 두 음은 갈홍과 서막에게서 보인다. 그런데 하북의 학사는 『상서』를 읽으며 「호생오살(好生惡殺)」이라 하니, 이는 하나는 사물을 논하고 하나는 사람의 정에 나아간 것이라 전혀 통하지 않는다.

5보(甫)는 남자의 미칭

甫者,男子之美稱,古書多假借為父字;北人遂無一人呼為甫者,亦所未喻。唯管仲、范增之號,須依字讀耳。

보(甫)는 남자의 미칭으로 옛 책에 흔히 부(父) 자로 가차하였다. 북쪽 사람은 마침내 한 사람도 보라 부르는 이가 없으니 또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오직 관중·범증의 호(중보·아보)만은 글자대로 읽어야 한다.

6언(焉)의 두 음

案:諸字書,焉者鳥名,或云語詞,皆音於愆反。自葛洪要用字苑分焉字音訓:若訓何訓安,當音於愆反,「於焉逍遙」,「於焉嘉客」,「焉用佞」,「焉得仁」之類是也;若送句及助詞,當音矣愆反,「故稱龍焉」,「故稱血焉」,「有民人焉」,「有社稷焉」,「託始焉爾」,「晉、鄭焉依」之類是也。江南至今行此分別,昭然易曉;而河北混同一音,雖依古讀,不可行於今也。

살펴보니 여러 자서에 언(焉)은 새 이름이라 하고 더러 어조사라 하며 다 어(於)·건(愆)의 반절로 읽는다. 갈홍의 『요용자원』부터 언 자의 음과 뜻을 나누었다. 「어찌」나 「어디」로 풀면 어·건의 반절이니 「어언소요(於焉逍遙)」, 「어언가객(於焉嘉客)」, 「언용녕(焉用佞)」, 「언득인(焉得仁)」 같은 것이 이것이고, 구절을 마치거나 조사이면 의(矣)·건(愆)의 반절이니 「고칭룡언(故稱龍焉)」, 「고칭혈언(故稱血焉)」, 「유민인언(有民人焉)」, 「유사직언(有社稷焉)」, 「탁시언이(託始焉爾)」, 「진정언의(晉鄭焉依)」 같은 것이 이것이다. 강남은 지금까지 이 구별을 행하여 환히 알기 쉬운데 하북은 한 음으로 뒤섞으니 옛 읽기를 따른 것이라 하여도 지금 행할 수는 없다.

7야(邪)는 정해지지 않은 말

邪者,未定之詞。左傳曰:「不知天之棄魯邪?抑魯君有罪於鬼神邪?」莊子云:「天邪地邪?」漢書云:「是邪非邪?」之類是也。而北人即呼為也,亦為誤矣。難者曰:「繫辭云:『乾坤,易之門戶邪?』此又為未定辭乎?」答曰:「何為不爾!上先標問,下方列德以折之耳。」

야(邪)는 정해지지 않은 말이다. 『좌전』에 「하늘이 노나라를 버린 것인가, 아니면 노나라 임금이 귀신에게 죄를 지은 것인가」 하였고 『장자』에 「하늘인가 땅인가」 하였으며 『한서』에 「옳은가 그른가」 한 따위가 이것이다. 그런데 북쪽 사람은 곧 야(也)로 부르니 역시 잘못이다. 따지는 이가 「「계사」에 『건곤은 역의 문호인가(邪)』 하였는데 이것도 정해지지 않은 말입니까」 하니 답하였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위에서 먼저 물음을 세우고 아래에서 비로소 덕을 벌여 판단한 것일 뿐이다.」

8「패(敗)」의 두 읽기는 억지

江南學士讀左傳,口相傳述,自為凡例,軍自敗曰敗,打破人軍曰敗。諸記傳未見補敗反,徐仙民讀左傳,唯一處有此音,又不言自敗、敗人之別,此為穿鑿耳。

강남 학사가 『좌전』을 읽는 데 입으로 서로 전하며 스스로 범례를 만들어 군사가 스스로 패한 것을 패(敗)라 하고 남의 군사를 쳐부순 것을 패(敗, 보(補)·패(敗)의 반절)라 한다. 여러 기전에 보·패의 반절은 보이지 않고 서선민이 『좌전』을 읽으며 오직 한 곳에 이 음이 있으나 스스로 패한 것과 남을 패하게 한 것의 구별은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억지로 뚫은 것일 뿐이다.

9「치둔」을 「시단」으로 말한 후작

古人云:「膏粱難整。」以其為驕奢自足,不能剋勵也。吾見王侯外戚,語多不正,亦由內染賤保傅,外無良師友故耳。梁世有一侯,嘗對元帝飲謔,自陳「癡鈍」,乃成「颸段」,元帝答之云:「颸異涼風,段非幹木。」謂「郢州」為「永州」,元帝啟報簡文,簡文云:『庚辰吳入,遂成司隸。」如此之類,舉口皆然。元帝手教諸子侍讀,以此為誡。

옛사람이 「고량자제는 바로잡기 어렵다」 하였으니 교만하고 사치하며 스스로 만족하여 극기하고 힘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왕후와 외척을 보니 말이 바르지 않은 것이 많은데 역시 안으로 천한 보모와 사부에게 물들고 밖으로 좋은 스승과 벗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양나라의 한 후작이 일찍이 원제 앞에서 술 마시며 농담하다 스스로 「치둔(癡鈍)」하다 한다는 것이 「시단(颸段)」이 되니 원제가 답하기를 「시(颸)는 서늘한 바람과 다르고 단(段)은 간목(幹木)이 아니다」 하였다. 「영주(郢州)」를 「영주(永州)」라 하니 원제가 간문제에게 계를 올려 알리자 간문제가 「경진(庚辰)에 오나라가 들어온 것이 마침내 사례(司隸)가 되었구나」 하였다. 이런 따위는 입만 열면 다 그러하였다. 원제는 손수 아들들의 시독을 가르치며 이것으로 경계를 삼았다.

10공(攻)을 고종(古琮)으로 반절하는 하북

河北切攻字為古琮,與工、公、功三字不同,殊為僻也。比世有人名暹,自稱為纖;名琨,自稱為袞;名洸,自稱為汪;名䋤,自稱為獡。非唯音韻舛錯,亦使其兒孫避諱紛紜矣。

하북에서는 공(攻) 자를 고(古)·종(琮)으로 반절하여 공(工)·공(公)·공(功) 세 글자와 다르게 하니 몹시 치우쳤다. 근세에 이름이 섬(暹)인 사람이 스스로 섬(纖)이라 부르고, 이름이 곤(琨)인 사람이 스스로 곤(袞)이라 부르며, 이름이 광(洸)인 사람이 스스로 왕(汪)이라 부르고, 이름이 견(䋤)인 사람이 스스로 삭(獡)이라 부르니, 음운이 어긋날 뿐 아니라 그 자손의 휘 피하기까지 어지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