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예 — 여러 재주雜藝
1글씨는 마음에 두되 지나치게 정밀할 것은 없다
真草書迹,微須留意。江南諺云:「尺牘書疏,千里面目也。」承晉、宋餘俗,相與事之,故無頓狼狽者。吾幼承門業,加性愛重,所見法書亦多,而翫習功夫頗至,遂不能佳者,良由無分故也。然而此藝不須過精。夫巧者勞而智者憂,常爲人所役使,更覺爲累;韋仲將遺戒,深有以也。
해서와 초서의 글씨는 조금 마음에 두어야 한다. 강남 속담에 「편지와 글은 천 리 밖의 얼굴」이라 하였다. 진·송의 남은 풍속을 이어받아 서로 익혔으므로 갑자기 낭패하는 이가 없었다. 나는 어려서 집안의 업을 이어받고 게다가 성품이 아끼고 무겁게 여겨 본 법서도 많고 익힌 공부도 자못 이르렀으나 끝내 잘 쓰지 못하니 참으로 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재주는 지나치게 정밀할 것은 없다. 재주 있는 이는 수고롭고 지혜로운 이는 근심하여 늘 남에게 부림을 받으니 도리어 누가 됨을 느낀다. 위중장의 유계가 깊이 까닭이 있다.
2「내가 글씨를 몰랐다면 오늘에 이르지 않았으련만」
王逸少風流才士,蕭散名人,舉世惟知其書,翻以能自蔽也。蕭子云每嘆曰:「吾着齊書,勒成一典,文章弘義,自謂可觀;唯以筆迹得名,亦異事也。」王褒地胄清華,才學優敏,後雖入關,亦被禮遇。猶以書工,崎嶇碑碣之間,辛苦筆硯之役,嘗悔恨曰:「假使吾不知書,可不至今日邪?」以此觀之,慎勿以書自命。雖然,廝猥之人,以能書拔擢者多矣。故道不同不相爲謀也。
왕일소(왕희지)는 풍류 있는 재사요 소산한 명인인데 온 세상이 오직 그 글씨만 알아 도리어 그 능함으로 스스로 가려졌다. 소자운은 늘 탄식하였다. 「내가 『제서』를 지어 한 전적을 이루었으니 문장과 큰 뜻이 스스로 볼 만하다 여기는데 오직 필적으로 이름을 얻었으니 또한 이상한 일이다.」 왕포는 문벌이 맑고 화려하며 재주와 학문이 뛰어나 뒤에 관중에 들어가서도 예우를 받았다. 그런데도 글씨 솜씨 때문에 비갈 사이를 헤매고 붓과 벼루의 부림에 고생하며 일찍이 뉘우쳐 한하기를 「내가 글씨를 몰랐다면 오늘에 이르지 않았으련만」 하였다. 이것으로 보건대 삼가 글씨로 자부하지 마라. 그렇지만 천하고 낮은 사람으로 글씨를 잘 써서 발탁된 이는 많다. 그러므로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꾀하지 않는 것이다.
3두 왕씨의 글씨 열 권
梁氏秘閣散逸以來,吾見二王真草多矣,家中嘗得十卷;方知陶隱居、阮交州、蕭祭酒諸書,莫不得羲之之體,故是書之淵源。蕭晚節所變,乃右軍年少時法也。
양나라 비각이 흩어진 이래 나는 두 왕씨의 해서와 초서를 많이 보았고 집에도 일찍이 열 권을 얻었다. 비로소 도은거·완교주·소제주의 여러 글씨가 왕희지의 체를 얻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았으니 그래서 글씨의 연원이다. 소자운이 만년에 바꾼 것은 곧 우군(왕희지)의 젊었을 때 법이다.
4「백념(百念)」을 우(憂)로 만든 북조의 글자
晉、宋以來,多能書者。故其時俗,遞相染尚,所有部帙,楷正可觀,不無俗字,非爲大損。至梁天監之間,斯風未變;大同之末,訛替滋生。蕭子云改易字體,邵陵王頗行偽字;朝野翕然,以爲楷式,畫虎不成,多所傷敗。至爲一字,唯見數點,或妄斟酌,逐便轉移。爾後墳籍,略不可看。北朝喪亂之餘,書迹鄙陋,加以專輒造字,猥拙甚於江南。乃以百念爲憂,言反爲變,不用爲罷,追來爲歸,更生爲蘇,先人爲老,如此非一,遍滿經傳。唯有姚元標工於楷隸,留心小學,後生師之者眾。洎於齊末,秘書繕寫,賢於往日多矣。
진·송 이래로 글씨 잘 쓰는 이가 많았다. 그러므로 그때 풍속이 서로 물들어 숭상하여 모든 책이 해서로 바르고 볼 만하였으며 속자가 없지 않았으나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다. 양 천감 연간까지 이 풍조가 바뀌지 않았으나 대동 말에 잘못이 불어났다. 소자운이 자체를 바꾸고 소릉왕이 자못 거짓 글자를 행하니 조야가 한꺼번에 본으로 삼아 범을 그리다 못 이룬 것처럼 손상된 것이 많았다. 심지어 한 글자를 쓰는 데 몇 점만 보이거나 함부로 짐작하여 편한 대로 바꾸었다. 그 뒤로 전적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북조는 상란 끝에 글씨가 비루한 데다 제멋대로 글자를 만들어 졸렬함이 강남보다 심하였다. 백념(百念)을 우(憂)로, 언반(言反)을 변(變)으로, 불용(不用)을 파(罷)로, 추래(追來)를 귀(歸)로, 갱생(更生)을 소(蘇)로, 선인(先人)을 로(老)로 하니 이런 것이 하나가 아니라 경전에 가득하였다. 오직 요원표만이 해서와 예서에 능하고 소학에 마음을 두어 후생이 그를 스승 삼는 이가 많았다. 제나라 말에 이르러 비서의 베껴 쓰기가 지난날보다 나아진 것이 많다.
5「화서부」는 도사가 지은 것
江南閭里間有畫書賦,乃陶隱居弟子杜道士所爲;其人未甚識字,輕爲軌則,托名貴師,世俗傳信,後生頗爲所誤也。
강남 마을 사이에 「화서부(畫書賦)」가 있는데 곧 도은거의 제자 두 도사가 지은 것이다. 그 사람은 글자를 그리 알지 못하면서 가벼이 법칙을 만들고 귀한 스승의 이름에 기대니, 세속이 전하며 믿어 후생이 자못 그르치게 되었다.
6그림 재주가 부림을 부르다
畫繪之工,亦爲妙矣;自古名士,多或能之。吾家嘗有梁元帝手畫蟬雀白團扇及馬圖,亦難及也。武烈太子偏能寫真,坐上賓客,隨宜點染,即成數人,以問童孺,皆知姓名矣。蕭賁、劉孝先、劉靈,並文學已外,復佳此法。翫閲古今,特可寶愛。若官未通顯,每被公私使令,亦爲猥役。吳縣顧士端出身湘東王國侍郎,後爲鎮南府刑獄參軍,有子曰庭,西朝中書舍人,父子並有琴書之藝,尤妙丹青,常被元帝所使,每懷羞恨。彭城劉岳,橐之子也,仕爲驃騎府管記、平氏縣令,才學快士,而畫絶倫。後隨武陵王入蜀,下牢之敗,遂爲陸護軍畫支江寺壁,與諸工巧雜處。向使三賢都不曉畫,直運素業,豈見此恥乎?
그림의 솜씨도 묘한 것이라 예부터 명사 가운데 능한 이가 많았다. 우리 집에 일찍이 양 원제가 손수 그린 매미와 참새의 흰 둥근 부채와 말 그림이 있었는데 역시 미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열태자는 특히 초상을 잘 그려 자리의 손님을 되는대로 찍고 물들여 곧 몇 사람을 이루고 아이들에게 물으면 다 이름을 알았다. 소분·유효선·유령은 다 문학 밖에 또 이 법에 뛰어났다. 고금을 완상하니 특히 보배로 아낄 만하다. 그러나 벼슬이 아직 통달하지 못하면 늘 공사의 심부름을 받으니 또한 천한 일이다. 오현의 고사단은 상동왕국 시랑으로 출신하여 뒤에 진남부 형옥참군이 되었고 아들 고정은 서조의 중서사인이었는데 부자가 다 거문고와 글씨의 재주가 있고 특히 단청에 묘하여 늘 원제의 부림을 받으니 매양 부끄러움과 한을 품었다. 팽성의 유악은 유탁의 아들로 벼슬이 표기부 관기·평씨현령이었는데 재주와 학문이 뛰어난 선비이면서 그림이 절륜하였다. 뒤에 무릉왕을 따라 촉에 들어갔다가 하뢰의 패전 뒤 마침내 육호군을 위해 지강사 벽에 그림을 그리며 여러 장인과 섞여 지냈다. 만약 세 현인이 그림을 전혀 몰라 다만 본업만 하였다면 어찌 이런 부끄러움을 보았겠는가.
7활쏘기 — 병사(兵射)와 박사(博射)
弧矢之利,以威天下,先王所以觀德擇賢,亦濟身之急務也。江南謂世之常射,以爲兵射,冠冕儒生,多不習此;別有博射,弱弓長箭,施於準的,揖讓升降,以行禮焉。防禦寇難,了無所益。亂離之後,此術遂亡。河北文士,率曉兵射,非直葛洪一箭,已解追兵,三九燕集,常縻榮賜。雖然要輕禽,截狡獸,不願汝輩爲之。
활과 화살의 이로움으로 천하를 위엄 있게 하니 선왕이 덕을 보고 어진 이를 가리던 바요 또한 몸을 구하는 급한 일이다. 강남에서는 세상의 보통 활쏘기를 병사(兵射)라 하여 관면의 유생이 흔히 익히지 않고, 따로 박사(博射)가 있어 약한 활과 긴 화살을 과녁에 쏘며 읍하고 사양하며 오르내려 예를 행한다. 도적과 난을 막는 데는 전혀 보탬이 없다. 난리 뒤에 이 술법은 마침내 없어졌다. 하북의 문사는 대개 병사를 알아, 갈홍이 한 화살로 쫓는 군사를 물리친 것뿐 아니라 삼구의 잔치에서 늘 영예로운 상을 받는다. 그렇지만 날쌘 새를 맞히고 교활한 짐승을 잡는 것은 너희가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8점은 열에 여섯일곱을 맞혀도 상수라 하니
卜筮者,聖人之業也;但近世無復佳師,多不能中。古者,卜以決疑,今人生疑於卜;何者?守道信謀,欲行一事,卜得惡卦,反令□〔心式〕□〔心式〕,此之謂乎!且十中六七,以爲上手,粗知大意,又不委曲。凡射奇偶,自然半收,何足賴也。世傳云:「解陰陽者,爲鬼所嫉,坎壈貧窮,多不稱泰。」吾觀近古以來,尤精妙者,唯京房、管輅、郭璞耳,皆無官位,多或罹災,此言令人益信。儻值世網嚴密,強負此名,便有詿誤,亦禍源也。及星文風氣,率不勞爲之。吾嘗學六壬式,亦值世閒好匠,聚得龍首、金匱、玉軨變、玉曆十許種書,討求無驗,尋亦悔罷。凡陰陽之術,與天地俱生,亦吉凶德刑,不可不信;但去聖既遠,世傳術書,皆出流俗,言辭鄙淺,驗少妄多。至如反支不行,竟以遇害;歸忌寄宿,不免凶終:拘而多忌,亦無益也。
복서는 성인의 업이나 근세에는 다시 좋은 스승이 없어 맞히지 못하는 이가 많다. 옛날에는 점으로 의심을 결단하였는데 지금 사람은 점에서 의심이 생긴다. 어째서인가. 도를 지키고 꾀를 믿어 한 가지 일을 행하려다 점에서 나쁜 괘를 얻으면 도리어 □〔心式〕□〔心式〕하게 되니 이것을 이름이 아닌가. 또 열에 여섯일곱을 맞히면 상수라 하는데 대략 큰 뜻만 알고 또 자세하지 못하다. 무릇 홀짝을 맞히면 절로 반은 거두니 어찌 기댈 만하겠는가. 세상에 전하기를 「음양을 아는 이는 귀신이 시기하여 곤궁하고 가난하여 태평한 이가 드물다」 한다. 내가 근고 이래를 보니 더욱 정묘한 이는 오직 경방·관로·곽박뿐인데 다 벼슬이 없고 흔히 재앙을 만났으니 이 말이 더욱 믿음이 간다. 만일 세상의 그물이 엄밀할 때 억지로 이 이름을 지면 곧 얽혀 그르치니 역시 화의 근원이다. 별의 무늬와 바람의 기운은 대개 수고롭게 할 것이 없다. 나는 일찍이 육임식을 배웠고 또 세간의 좋은 장인을 만나 『용수』·『금궤』·『옥령변』·『옥력』 열 가지 남짓의 책을 모았으나 따져 구하여도 징험이 없어 곧 뉘우쳐 그만두었다. 음양의 술은 천지와 함께 생겼고 또한 길흉과 덕형이라 믿지 않을 수 없으나 성인에게서 멀어진 지 이미 오래라 세상에 전하는 술서는 다 시속에서 나와 말이 비루하고 얕으며 징험은 적고 망령됨은 많다. 반지(反支)에 다니지 않고도 끝내 해를 입고, 귀기(歸忌)에 묵고도 흉한 죽음을 면치 못하니 얽매여 꺼리는 것이 많아도 보탬이 없다.
9산술은 겸하여 밝힐 것
算術亦是六藝要事;自古儒士論天道,定律歷者,皆學通之。然可以兼明,不可以專業。江南此學殊少,唯范陽祖晅精之,位至南康太守。河北多曉此術。
산술도 육예의 요긴한 일이라 예부터 유사가 천도를 논하고 율력을 정할 때 다 배워 통하였다. 그러나 겸하여 밝힐 수는 있어도 전업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강남에서는 이 학문이 몹시 적어 오직 범양의 조훤이 정통하여 벼슬이 남강태수에 이르렀다. 하북에는 이 술을 아는 이가 많다.
10의술로 자부하지 마라
醫方之事,取妙極難,不勸汝曹以自命也。微解藥性,小小和合,居家得以救急,亦爲勝事,皇甫謐、殷仲堪則其人也。
의방의 일은 묘함을 얻기가 지극히 어려우니 너희가 이것으로 자부하기를 권하지 않는다. 약의 성질을 조금 알아 작은 약을 조제하여 집에서 급한 데 구할 수 있으면 또한 좋은 일이니 황보밀·은중감이 그런 사람이다.
11거문고 — 칭찬을 얻지는 마라
禮曰:「君子無故不徹琴瑟。」古來名士,多所愛好。洎於梁初,衣冠子孫,不知琴者,號有所闕;大同以末,斯風頓盡。然而此樂愔愔雅致,有深味哉!今世曲解,雖變於古,猶足以暢神情也。唯不可令有稱譽,見役勛貴,處之下坐,以取殘杯冷炙之辱。戴安道猶遭之,況爾曹乎!
『예기』에 「군자는 까닭 없이 거문고와 비파를 치우지 않는다」 하였으니 예부터 명사가 많이 사랑하였다. 양나라 초에 이르러 의관의 자손으로 거문고를 모르면 모자란 데가 있다고 하였는데 대동 말에 이 풍조가 갑자기 다하였다. 그러나 이 음악은 그윽하고 우아하여 깊은 맛이 있다. 지금 세상의 곡조는 옛것과 달라졌으나 오히려 정신을 펴기에 넉넉하다. 오직 칭찬을 얻어 훈귀에게 부림을 받아 아랫자리에 앉아 남은 술과 식은 고기의 욕을 취하는 일이 없게 하라. 대안도도 오히려 당하였으니 하물며 너희야.
12장기와 바둑
家語曰:「君子不博,爲其兼行惡道故也。」論語云:「不有博弈者乎?爲之,猶賢乎已。」然則聖人不用博弈爲教;但以學者不可常精,有時疲倦,則儻爲之,猶勝飽食昏睡,兀然端坐耳。至如吳太子以爲無益,命韋昭論之;王肅、葛洪、陶侃之徒,不許目觀手執,此並勤篤之志也。能爾爲佳。古爲大博則六箸,小博則二煢,今無曉者。比世所行,一煢十二棋,數術淺短,不足可翫。圍棋有手談、坐隱之目,頗爲雅戲;但令人耽憒,廢喪實多,不可常也。
『가어』에 「군자는 장기를 두지 않으니 악한 길을 겸하여 행하기 때문」이라 하였고 『논어』에 「장기와 바둑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그만두는 것보다 낫다」 하였다. 그렇다면 성인은 장기와 바둑을 가르침으로 쓰지 않았으나 배우는 이가 늘 정밀할 수 없어 때로 피곤하면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배불리 먹고 어둡게 졸며 멍하니 단정히 앉아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일 뿐이다. 오나라 태자가 무익하다 하여 위소에게 논하게 하고 왕숙·갈홍·도간의 무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다 부지런하고 독실한 뜻이니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다. 옛날 대박(大博)은 여섯 젓가락이요 소박(小博)은 두 경(煢)인데 지금은 아는 이가 없다. 근세에 행하는 것은 한 경에 열두 말이라 술수가 얕고 짧아 완상할 만하지 않다. 바둑은 수담·좌은이라는 이름이 있어 자못 우아한 놀이지만 사람을 빠져 어지럽게 하여 잃는 것이 실로 많으니 늘 해서는 안 된다.
13투호와 탄기
投壺之禮,近世愈精。古者,實以小豆,爲其矢之躍也。今則唯欲其驍,益多益喜,乃有倚竿、帶劍、狼壺、豹尾、龍首之名。其尤妙者,有蓮花驍。汝南周□〔王貴〕,弘正之子,會稽賀徽,賀革之子,並能一箭四十餘驍。賀又嘗爲小障,置壺其外,隔障投之,無所失也。至鄴以來,亦見廣寧、蘭陵諸王,有此校具,舉國遂無投得一驍者。彈棋亦近世雅戲,消愁釋憒,時可爲之。
투호의 예는 근세에 더욱 정밀해졌다. 옛날에는 팥을 채워 화살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였다. 지금은 오직 튀어 오르기(驍)를 바라 많을수록 기뻐하니 의간·대검·낭호·표미·용수 같은 이름이 있다. 그 가운데 더욱 묘한 것으로 연화효가 있다. 여남의 주□〔王貴〕는 주홍정의 아들이요 회계의 하휘는 하혁의 아들인데 다 한 화살에 마흔 번 남짓 튀어 오르게 할 수 있었다. 하휘는 또 일찍이 작은 가리개를 만들어 병을 그 밖에 두고 가리개 너머로 던져 놓치는 일이 없었다. 업에 온 이래 광녕·난릉의 여러 왕에게 이 기구가 있는 것을 보았으나 온 나라에 끝내 한 번이라도 튀어 오르게 한 이가 없었다. 탄기도 근세의 우아한 놀이라 근심을 없애고 답답함을 푸니 때로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