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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 — 내가 죽은 뒤에終制

안씨가훈 顏氏家訓 · 안지추(顏之推) · 6세기 말 · 단락 4 · 한자 638자 · 낭독 2.6분

「안씨가훈」 한 권 「종제 — 내가 죽은 뒤에」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남북조 말의 학자 안지추가 자손에게 남긴 스무 편의 가훈. 양나라에서 나서 서위·북제·북주·수 네 나라를 떠돌며 살아남은 사람이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자손을 일깨우려고」 쓴 글이라, 아이 가르치기·형제·재혼·집안 살림·몸가짐과 말씨·배움·문장·이름과 실상·족함을 아는 것에서 글자와 책의 고증, 말소리, 글씨·그림·활·점·거문고·바둑 같은 여러 재주, 그리고 제 장례를 어떻게 치르라는 유언까지 이른다. 「수레에서 안 떨어지면 저작랑」이라던 양나라 귀족 자제가 난리 뒤 밭 갈고 말 기르게 된 것을 보고 「몸에 지닌 작은 재주가 재물 천만보다 낫다」고 한 대목, 「어려서 배우는 이는 해 뜰 때의 빛 같고 늙어서 배우는 이는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가는 것 같다」는 대목이 여기서 나왔다. 뒷날의 가훈이 모두 이 책을 조상으로 삼는다.

1쉰이면 요절이 아니다 — 남기는 말

死者,人之常分,不可免也。吾年十九,值梁家喪亂,其間與白刃爲伍者,亦常數輩;幸承餘福,得至於今。古人云:「五十不爲夭。」吾已六十餘,故心坦然,不以殘年爲念。先有風氣之疾,常疑奄然,聊書素懷,以爲汝誡。

죽음은 사람의 정해진 분수라 면할 수 없다. 나는 열아홉에 양나라의 상란을 만나 그 사이 흰 칼날과 함께한 것이 여러 번이었으나 다행히 남은 복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옛사람이 「쉰이면 요절이 아니다」 하였다. 나는 이미 예순 남짓이라 마음이 편안하여 남은 해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 앞서 풍기(風氣)의 병이 있어 늘 갑자기 갈까 의심스러워 평소의 마음을 대강 적어 너희의 경계로 삼는다.

2부모를 건업의 옛 산으로 모시지 못한 한

先君先夫人皆未還建鄴舊山,旅葬江陵東郭。承聖末,已啓求揚都,欲營遷厝。蒙詔賜銀百兩,已於揚州小郊北地燒磚,便值本朝淪没,流離如此,數十年間,絶於還望。今雖混一,家道罄窮,何由辦此奉營資費?且揚都污毀,無復孑遺,還被下濕,未爲得計。自咎自責,貫心刻髓。計吾兄弟,不當仕進;但以門衰,骨肉單弱,五服之內,傍無一人,播越他鄉,無復資蔭;使汝等沈淪廝役,以爲先世之恥;故靦冒人間,不敢墜失。兼以北方政教嚴切,全無隱退者故也。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건업의 옛 산으로 돌려 모시지 못하고 강릉 동쪽 성 밖에 임시로 장사 지냈다. 승성 말에 이미 양도로 가기를 계청하여 이장을 꾀하였다. 조서로 은 백 냥을 하사받아 이미 양주 소교 북쪽 땅에서 벽돌을 굽다가 곧 본조가 망하는 것을 만나 이렇게 떠돌아 수십 년 사이 돌아갈 희망이 끊어졌다. 지금 비록 하나로 합쳐졌으나 집안 살림이 다하여 어디서 이 모시는 비용을 마련하겠는가. 또 양도는 더럽혀지고 무너져 남은 것이 없고 게다가 낮고 습하니 좋은 계책이 아니다. 스스로 탓하고 스스로 나무라니 마음을 꿰뚫고 골수에 새겨진다. 우리 형제를 생각하면 벼슬에 나아가서는 안 되었으나, 다만 문호가 쇠하고 골육이 외로워 오복 안에 곁에 한 사람도 없고 다른 고장으로 흘러 다시 기댈 음덕이 없어, 너희를 천한 부림에 빠뜨려 선대의 부끄러움이 되게 할까 하여 낯을 무릅쓰고 인간 세상에 나와 감히 떨어뜨리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북방의 정교가 엄하고 절박하여 은퇴하는 이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3내 장례는 이렇게 하라

今年老疾侵,儻然奄忽,豈求備禮乎?一日放臂,沐浴而已,不勞復魄,殮以常衣。先夫人棄背之時,屬世荒饉,家塗空迫,兄弟幼弱,棺器率薄,藏內無磚。吾當松棺二寸,衣帽已外,一不得自隨,床上唯施七星板;至如蠟弩牙、玉豚、錫人之屬,並須停省,糧罌明器,故不得營,碑誌旒旐,彌在言外。載以鱉甲車,襯土而下,平地無墳;若懼拜掃不知兆域,當築一堵低牆於左右前後,隨爲私記耳。靈筵勿設枕几,朔望祥禫,唯下白粥清水幹棗,不得有酒肉餅果之祭。親友來餟酹者,一皆拒之。汝曹若違吾心,有加先妣,則陷父不孝,在汝安乎?其內典功德,隨力所至,勿刳竭生資,使凍餒也。四時祭祀,周、孔所教,欲人勿死其親,不忘孝道也。求諸內典,則無益焉。殺生爲之,翻增罪累。若報罔極之德,霜露之悲,有時齋供,及七月半盂蘭盆,望於汝也。

이제 늙고 병이 침노하니 갑자기 가더라도 어찌 예를 갖추기를 구하겠는가. 하루아침에 팔을 놓으면 목욕만 시키고 초혼은 수고롭게 하지 말며 평소 옷으로 염하라.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흉년을 만나 집안이 텅 비고 형제가 어려 관이 대개 얇았고 광 안에 벽돌도 없었다. 나는 마땅히 소나무 관 두 치로 하고 옷과 관 밖에는 하나도 따라 넣지 말며 상 위에는 칠성판만 두라. 밀랍 쇠뇌·옥돼지·주석 인형 같은 것은 다 그만두고 곡식 항아리와 명기도 그러므로 마련하지 말며 비석과 명정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별갑거에 실어 흙에 바로 대어 내리고 평지에 봉분을 만들지 마라. 성묘할 때 자리를 모를까 두렵거든 좌우 앞뒤에 낮은 담 하나를 쌓아 사사로운 표시로 삼을 뿐이다. 영연에 베개와 안석을 두지 말고 초하루·보름과 상제·담제에는 오직 흰 죽과 맑은 물과 마른 대추만 놓고 술과 고기와 떡과 과일의 제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친구가 와서 술을 붓는 것은 다 물리쳐라. 너희가 내 마음을 어겨 어머니보다 더하면 아비를 불효에 빠뜨리는 것이니 너희 마음이 편하겠느냐. 내전의 공덕은 힘닿는 대로 하되 산 사람의 밑천을 긁어 다하여 얼고 굶주리게 하지 마라. 사철 제사는 주공·공자가 가르친 것으로 사람이 제 어버이를 죽은 이로 여기지 않고 효도를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내전에서 구하면 보탬이 없다. 살생하여 지내면 도리어 죄와 누만 더한다. 끝없는 은덕을 갚고 서리와 이슬의 슬픔을 펴려거든 때때로 재를 올리고 7월 보름 우란분을 지내기를 너희에게 바란다.

4숨이 끊어지면 곧 묻어라

孔子之葬親也,云:「古者,墓而不墳。丘東西南北之人也,不可以弗識也。」於是封之崇四尺。然則君子應世行道,亦有不守墳墓之時,況爲事際所逼也!吾今羈旅,身若浮云,竟未知何鄉是吾葬地;唯當氣絶便埋之耳。汝曹宜以傳業揚名爲務,不可顧戀朽壤,以取堙没也。

공자가 어버이를 장사 지내며 「옛날에는 무덤을 만들되 봉분을 하지 않았다. 나는 동서남북을 다니는 사람이니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이에 봉분을 넉 자로 높였다. 그렇다면 군자가 세상에 응하여 도를 행하다 보면 분묘를 지키지 못할 때도 있거늘 하물며 일의 형편에 몰려서야. 나는 지금 나그네라 몸이 뜬구름 같아 끝내 어느 고장이 내 묻힐 땅인지 모른다. 오직 숨이 끊어지면 곧 묻을 뿐이다. 너희는 마땅히 업을 전하고 이름을 드날리는 데 힘쓰고 썩은 흙을 돌아보고 그리워하다 묻혀 없어지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