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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시국

불국기 佛國記 · 법현(法顯) · 동진 의희 연간(416년 무렵) · 단락 6 · 한자 933자 · 낭독 3.7분

「불국기」 한 권 「승가시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예순다섯의 승려 법현이 계율을 구하러 장안을 떠나 사막과 총령을 넘어 천축까지 갔다가, 사자국을 거쳐 바닷길로 돌아온 십오 년의 기록. 다녀온 나라가 서른.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던 시대에, 동아시아 사람이 인도를 제 눈으로 보고 남긴 가장 이른 기행문이다.

1승가시국 — 부처가 하늘에서 내려온 세 계단

從此東南行十八由延,有國名僧仂施。佛上忉利天三月爲母說法來下處。佛上忉利天,以神通力,都不使諸弟子知。未滿七日,乃放神足。阿那律以天眼遙見世尊,即語尊者大目連,汝可往問訊世尊。目連即往,頭面禮足,共相問訊。問訊已,佛語目連︰「吾却後七日,當下閻浮提。」目連既還,于時八國大王及諸臣民,不見佛久,咸皆渴仰,雲集此國以待世尊。時優鉢羅比丘尼即自心念︰「今日國王、臣民皆當迎佛,我是女人,何由得先見佛?」即以神足,化作轉輪聖王,最前禮佛。佛從忉利天上東向下。下時,化作三道寶階:佛在中道七寶階上行;梵天王亦化作白銀階,在右邊執白拂而侍;天帝釋化作紫金階,在左邊執七寶蓋而侍。諸天無數從佛來下。佛既下,三階俱没於地,餘有七級而現。後阿育王欲知其根際,遣人掘看,下至黃泉,根猶不盡。王益敬信,即於階上起精舍,當中階作丈六立像,精舍後立石柱,高二十肘,上作師子,柱內四邊有佛像,內外映徹,淨若琉璃。有外道論師與沙門諍此住處,時沙門理屈,於是共立誓言︰「此處若是沙門住處者,今當有靈驗。」作是言已,柱頭師子乃大鳴吼見證,於是外道懼怖,心伏而退。佛以受天食三月故,身作天香,不同世人。即便浴身,後人於此處起浴室,浴室猶在。優鉢羅比丘尼初禮佛處今亦起塔。佛在世時,有翦髮、爪作塔,及過去三佛并釋迦文佛坐處、經行處,及作諸佛形像處,盡有塔,今悉在。天帝釋、梵天王從佛下處亦起塔。

여기서 동남쪽으로 십팔 유연을 가면 승가시라는 나라가 있다. 부처가 도리천에 올라가 석 달 동안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고 내려온 곳이다. 부처가 도리천에 오를 때는 신통력을 써서 제자들이 아무도 모르게 하였다가, 이레가 차기 전에 신족을 놓아 보였다. 아나율이 천안으로 멀리 세존을 보고 존자 대목련에게 「그대가 가서 세존께 문안드리라」 하니, 목련이 곧 올라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서로 문안하였다. 문안이 끝나자 부처가 목련에게 「내가 이레 뒤에 염부제로 내려가리라」 하였다. 목련이 돌아오자, 이때 여덟 나라의 대왕과 신하와 백성들이 부처를 못 뵌 지 오래라 모두 목마르게 우러르며 이 나라에 구름처럼 모여 세존을 기다렸다. 그때 우발라 비구니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오늘 국왕과 신하와 백성이 모두 부처를 맞이할 터인데, 나는 여인이니 무슨 수로 먼저 뵈올까」 하고, 곧 신족으로 전륜성왕의 몸으로 변화하여 맨 앞에서 부처께 예배하였다. 부처는 도리천에서 동쪽을 향해 내려왔다. 내려올 때 세 갈래 보배 계단이 화하여 생기니, 부처는 가운데 길 칠보 계단 위로 걸었고, 범천왕은 백은 계단을 화작하여 오른쪽에서 흰 불자를 들고 모셨으며, 천제석은 자마금 계단을 화작하여 왼쪽에서 칠보 일산을 들고 모셨다. 무수한 천인들이 부처를 따라 내려왔다. 부처가 내려오자 세 계단은 모두 땅속으로 꺼지고 일곱 층계만 남아 드러나 있었다. 뒤에 아육왕이 그 밑뿌리가 어디까지인지 알고자 사람을 시켜 파 보게 하였는데, 황천에 이르도록 뿌리가 끝나지 않았다. 왕은 더욱 공경과 믿음을 더하여 곧 계단 위에 정사를 세우고, 가운데 계단에 열여섯 자 입상을 만들었다. 정사 뒤에는 돌기둥을 세우니 높이 스무 팔꿈치인데 위에 사자를 앉혔다. 기둥 안 네 면에 불상이 있어 안팎이 맑게 비치니 유리처럼 깨끗하다. 일찍이 외도 논사가 사문과 이 거처를 다투었는데, 그때 사문 쪽 이치가 몰리게 되자 서로 맹세하여 말하기를 「이곳이 사문이 머물 곳이라면 지금 영험이 있으리라」 하였다. 말을 마치자마자 기둥 머리의 사자가 크게 울부짖어 증험을 보이니, 외도는 두려워 마음으로 승복하고 물러갔다. 부처는 석 달 동안 하늘의 음식을 받은 터라 몸에서 하늘 향내가 나 세상 사람과 같지 않았으므로 곧 몸을 씻었는데, 뒷사람이 그 자리에 욕실을 지으니 지금도 있다. 우발라 비구니가 처음 부처께 예배한 곳에도 지금 탑을 세웠다. 부처가 살아 계실 때 머리카락과 손톱으로 세운 탑이며, 과거 삼불과 석가문불이 앉았던 자리와 거닐던 자리며 여러 부처의 형상을 만든 자리에 다 탑이 있어 지금도 남아 있다. 천제석과 범천왕이 부처를 따라 내려온 곳에도 탑을 세웠다.

2천 명의 승려와 비구니

此處僧及尼可有千人,皆同衆食,雜大、小乘學。

이곳에는 승려와 비구니가 천 명쯤 되는데 모두 한솥밥을 먹으며, 대승과 소승을 섞어 배운다.

3흰 귀 용왕의 시주

住處一白耳龍,與此衆僧作檀越,令國內豐熟,雨澤以時,無諸災害,使衆僧得安。衆僧感其惠,故爲作龍舍,敷置坐處,又爲龍設福食供養。衆僧日日衆中別差三人,到龍舍中食。每至夏坐訖,龍輒化形作一小蛇,兩耳邊白。衆僧識之,銅杅盛酪,以龍置中。從上座至下座行之,似若問訊,遍便化去,年年一出。

머무는 곳에 흰 귀 용(白耳龍)이 있어 이 승려들의 시주가 되어, 나라 안을 풍년 들게 하고 단비를 때맞추어 내리며 온갖 재해를 없애어 승려들을 편안하게 한다. 승려들은 그 은혜에 감복하여 용의 집을 지어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또 용을 위해 복 비는 음식을 차려 공양한다. 승려들은 날마다 대중 가운데 세 사람씩을 따로 뽑아 용의 집에 가서 밥을 먹게 한다. 여름 안거가 끝날 때마다 용은 문득 작은 뱀으로 변화하는데 두 귀 가장자리가 희다. 승려들은 그를 알아보고 구리 그릇에 타락죽을 담아 용을 그 안에 앉히고, 윗자리부터 아랫자리까지 두루 돌리니 마치 문안을 다니는 듯하다. 다 돌면 곧 화하여 사라진다. 해마다 한 번 나온다.

4넉넉한 나라

其國豐饒,人民熾盛,最樂無比。諸國人來,無不經理,供給所須。

그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이 번성하여 즐겁기가 견줄 데 없다. 여러 나라 사람이 오면 보살펴 주지 않는 일이 없고 필요한 것을 다 대어 준다.

5불경계 — 귀신이 비질하는 탑

寺西北五十由延,有一寺名火境。火境者,惡鬼名也。佛本化是惡鬼。後人於此處起精舍,以精舍布施阿羅漢,以水灌手,水瀝滴地,其處故在。正復掃除,常現不滅。此處別有佛塔,善鬼神常掃灑,初不須人功。有邪見國王言︰「汝能如是者,我當多將兵衆住此,益積糞穢,汝復能除不?」鬼神即起大風,吹之令淨。此處有百枚小塔。人終日數之,不能得知。若至意欲知者,便一塔邊置一人,已復計數。人人或多或少,其不可得知。有一僧伽藍,可六七百僧。此中有辟支佛食處、泥洹地,大如車輪。餘處生草,此處獨不生。及曬衣地處,亦不生草。衣條著地跡,今故現在。

절 서북쪽 오십 유연에 절 하나가 있으니 이름이 불경계(火境)다. 불경계란 악귀의 이름이다. 부처가 본래 이 악귀를 교화하였는데, 뒷사람이 그 자리에 정사를 세웠다. 정사를 나한에게 보시하며 물을 손에 부었는데, 그 물방울이 떨어진 자리가 아직도 남아 있어 아무리 쓸어 내어도 늘 드러나 없어지지 않는다. 이곳에는 또 불탑이 하나 있어 착한 귀신이 늘 쓸고 물 뿌리니 애초에 사람 손이 필요 없다. 삿된 견해를 가진 왕이 「네가 그리할 수 있다면 내가 군사를 많이 끌고 와 여기 머물며 똥오줌을 더 쌓으리니, 그래도 치울 수 있느냐」 하니, 귀신이 곧 큰 바람을 일으켜 불어서 깨끗하게 하였다. 이곳에는 작은 탑이 백 개나 있는데 종일 세어도 다 알 수 없다. 기어이 알고자 하는 이가 탑마다 사람 하나씩을 세워 두고 세어 보아도, 사람 수가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여 끝내 알 수가 없다. 승가람이 하나 있는데 승려가 육칠백 명쯤 된다. 이 안에 벽지불이 밥을 먹던 자리와 열반한 땅이 있으니 크기가 수레바퀴만 하다. 다른 데는 풀이 나는데 이곳만은 풀이 나지 않고, 옷을 말리던 자리에도 풀이 나지 않는다. 옷자락이 땅에 닿았던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

6용정사의 안거

法顯在龍精舍夏坐。

법현은 용정사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