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성 기원정사
1사위성 — 이백 집만 남은 서울
從此北行八由延,到拘薩羅國舍衛城。城內人民希曠,都有二百餘家。即波斯匿王所治城也。大愛道故精舍處,須達長者井壁,及鴦掘魔得道、般泥洹、燒身處,後人起塔,皆在此城中。諸外道婆羅門生嫉妬心,欲毀壞之,天即雷電霹靂,終不能得壞。
여기서 북쪽으로 팔 유연을 가서 구살라국 사위성에 이르렀다. 성안은 백성이 드물어 통틀어 이백여 집뿐이니, 곧 파사닉왕이 다스리던 성이다. 대애도의 옛 정사 자리와 수달 장자의 우물 담장, 앙굴마가 도를 얻고 열반하여 몸을 사른 곳에 뒷사람이 탑을 세웠는데 모두 이 성안에 있다. 외도 바라문들이 시샘하는 마음이 나서 부수려 하였으나, 하늘이 곧 우레와 번개와 벼락을 치니 끝내 부수지 못하였다.
2수달 장자의 기원정사
出城南門千二百步,道西,長者須達起精舍。精舍東向開門,門戶兩厢有二石柱,左柱上作輪形,右柱上作牛形。池流清淨,林木尚茂,衆華異色,蔚然可觀,即所謂祇洹精舍也。
성 남문을 나서 천이백 걸음, 길 서쪽에 수달 장자가 세운 정사가 있다. 정사는 동향으로 문을 열었는데 문 양쪽 곁채에 돌기둥이 둘 서 있어, 왼쪽 기둥 위에는 바퀴 모양을, 오른쪽 기둥 위에는 소 모양을 새겼다. 못물은 맑고 숲은 아직 우거지고 온갖 꽃이 색색으로 피어 볼 만하니, 이것이 이른바 기원정사다.
3우두전단 불상 — 뭇 불상의 시초
佛上忉利天爲母說法九十日,波斯匿王思見佛,即刻牛頭栴檀作佛像,置佛坐處。佛後還入精舍,像即避出迎佛。佛言:「還坐。吾般泥洹後,可爲四部衆作法式。」像即還坐。此像最是衆像之始,後人所法者也。佛於是移住南邊小精舍,與像異處,相去二十步。祇洹精舍本有七層,諸國王、人民競興供養,懸繒幡蓋,散華,燒香,然燈續明,日日不絶。鼠銜燈炷,燒花幡蓋,遂及精舍,七重都盡。諸國王、人民皆大悲惱,謂栴檀像已燒。却後四五日,開東小精舍戶,忽見本像,皆大歡喜。共治精舍,得作兩重,還移像本處。
부처가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를 위해 아흔 날을 설법할 때, 파사닉왕은 부처를 뵙고 싶은 마음에 곧 우두전단을 새겨 불상을 만들어 부처 앉던 자리에 두었다. 부처가 뒤에 정사로 돌아오니 불상이 곧 자리를 비켜 나와 부처를 맞았다. 부처가 「돌아가 앉으라. 내가 열반한 뒤에 사부대중의 법식이 되어 다오」 하니, 불상이 곧 돌아가 앉았다. 이 불상은 뭇 불상의 맨 처음으로, 뒷사람이 본받은 바다. 부처는 이에 남쪽 곁의 작은 정사로 옮겨 머무니, 불상 있는 곳과 스무 걸음 떨어진 자리다. 기원정사는 본래 일곱 층이라, 여러 나라 왕과 백성이 다투어 공양하며 비단 번과 일산을 걸고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며 등불을 켜 밝히기를 날마다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쥐가 등불 심지를 물어 가 꽃 번과 일산에 불이 붙고 정사까지 미쳐 일곱 층이 다 타 버렸다. 여러 나라 왕과 백성이 모두 크게 슬퍼하며 전단 불상도 탔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네댓새 뒤 동쪽 작은 정사의 문을 여니 본래의 불상이 문득 보이는지라,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함께 정사를 고쳐 지어 두 층을 만들고 불상을 본래 자리에 되모셨다.
4「변방 사람이 법을 구해 예까지」
法顯、道整初到祇洹精舍,念昔世尊住此二十五年,自傷生在邊地,共諸同志遊歷諸國,而或有還者,或有無常者,今日乃見佛空處,愴然心悲。彼衆僧出,問顯等言:「汝等從何國來?」答曰︰「從漢地來。」彼衆僧歎曰︰「奇哉!邊國之人乃能求法至此!」自相謂言︰「我等諸師和上相承已來,未見漢道人來到此也。」
법현과 도정이 처음 기원정사에 이르러, 옛날 세존이 여기서 스물다섯 해를 머무셨음을 생각하니, 변방에 태어난 몸이 서글펐다. 뜻을 같이한 이들과 여러 나라를 두루 다녔는데 더러는 돌아가고 더러는 세상을 떠났으며, 오늘 부처 계시던 빈자리를 보게 되니 애달프고 마음이 슬펐다. 그곳 승려들이 나와서 법현 등에게 「그대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 묻기에 「한나라 땅에서 왔소」 하고 답하니, 그 승려들이 감탄하였다. 「기이하다! 변방 나라 사람이 법을 구하러 예까지 오다니.」 그러고는 저희끼리 말하였다. 「우리 스승과 화상들이 서로 이어 온 이래로, 한나라 도인이 여기 온 것을 본 적이 없다.」
5눈을 얻은 숲
精舍西北四里有榛,名曰得眼。本有五百盲人,依精舍住此。佛爲說法,盡還得眼。盲人歡喜,刺杖著地,頭面作禮。杖遂生長大,世人重之,無敢伐者,遂成爲榛,是故以得眼爲名。祇洹衆僧中食後,多往彼榛中坐禪。
정사 서북쪽 사 리에 숲이 있으니 이름이 득안(得眼), 곧 눈을 얻은 숲이다. 본래 눈먼 사람 오백이 정사에 의지해 이곳에 살았는데, 부처가 설법해 주니 모두 도로 눈을 얻었다. 눈먼 이들이 기뻐하며 지팡이를 땅에 꽂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였는데, 지팡이가 그대로 자라 크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소중히 여겨 감히 베는 이가 없어 마침내 숲을 이루니, 그래서 득안이라 이름한 것이다. 기원의 승려들은 점심 공양 뒤 흔히 그 숲에 가서 좌선한다.
6비사거 어머니의 정사
祇洹精舍東北六七里,毗舍佉母作精舍,請佛及僧,此處故在。
기원정사 동북쪽 육칠 리에 비사거 어머니가 정사를 지어 부처와 승려들을 청하였는데, 그곳이 아직 있다.
7금을 깔아 산 땅
祇洹精舍大援各有二門,一門東向,一門北向。此園即須達長者布金錢買地處也。精舍當中央,佛住此處最久。說法、度人、經行、坐處亦盡起塔,皆有名字。及孫陀利殺身謗佛處。
기원정사의 큰 뜰에는 문이 둘 있어 하나는 동향이고 하나는 북향이다. 이 동산이 곧 수달 장자가 금전을 깔아 산 땅이다. 정사는 한가운데 있는데 부처가 이곳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설법하고 사람을 제도하고 거닐고 앉았던 자리에 다 탑을 세웠는데 모두 이름이 있다. 손타리가 몸을 죽여 부처를 모함한 곳도 여기 있다.
8외도의 여인이 산 채로 지옥에 든 곳
出祇洹東門,北行七十步,道西,佛昔共九十六種外道論議,國王、大臣、居士、人民皆雲集而聽。時外道女名旃柘摩那起嫉妬心,及懷衣著腹前,似若妊身,於衆會中謗佛以非法,於是天帝釋即化作白鼠,齧其腰帶斷,所懷衣墮地,地即劈裂,生入地獄。及調達毒爪欲害佛,生入地獄處。後人皆標識之。又於論議處起精舍,精舍高六丈許,裏有坐佛像。
기원 동문을 나서 북쪽으로 일흔 걸음, 길 서쪽에 부처가 옛날 아흔여섯 갈래 외도와 논의하던 곳이 있다. 국왕과 대신과 거사와 백성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그때 전차마나라는 외도 여인이 시샘이 나서, 옷을 배 앞에 품어 아이 밴 모양을 하고는 모인 대중 앞에서 부처가 법답지 못한 짓을 했다고 모함하였다. 이에 천제석이 곧 흰 쥐로 변화하여 그 허리띠를 갉아 끊으니 품은 옷이 땅에 떨어졌고, 땅이 곧 갈라져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갔다. 조달이 독 바른 손톱으로 부처를 해치려다 산 채로 지옥에 든 곳도 있다. 뒷사람이 다 표를 세워 알게 하였다. 또 논의하던 자리에 정사를 세우니 높이 여섯 길 남짓으로, 안에 앉은 불상이 있다.
9그림자를 덮는 절
其道東有外道天寺,名曰影覆,與論議處精舍夾道相對,亦高六丈許。所以名影覆者,日在西時,世尊精舍影則映外道天寺;日在東時,外道天寺影則北映,終不能得映佛精舍也。外道常遣人守其天寺,掃灑、燒香,燃燈供養。至明旦,其燈輒移在佛精舍中。婆羅門恚言:「諸沙門取我燈,自供養佛。」爲爾不止。婆羅門於是夜自伺候,見其所事天神持燈繞佛精舍三帀,供養佛已,忽然不見。婆羅門乃知佛神大,即捨家入道。傳云︰近有此事。
그 길 동쪽에 외도의 천사(天寺)가 있으니 이름이 영복(影覆), 곧 그림자를 덮는다는 뜻이다. 논의하던 자리의 정사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데 높이가 역시 여섯 길 남짓이다. 영복이라 이름한 까닭은, 해가 서쪽에 있으면 세존 정사의 그림자가 외도의 천사를 덮는데, 해가 동쪽에 있으면 외도 천사의 그림자는 북쪽으로 드리울 뿐 끝내 부처의 정사를 덮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도는 늘 사람을 보내 그 천사를 지키며 쓸고 물 뿌리고 향을 사르고 등을 켜 공양하는데, 이튿날 새벽이면 그 등이 번번이 부처의 정사 안에 옮겨져 있었다. 바라문이 성을 내며 「사문들이 내 등을 가져다 저희 부처에게 공양한다」 하였으나 그치지 않았다. 바라문이 이에 밤에 몸소 지켜보니, 저희가 섬기는 천신이 등을 들고 부처의 정사를 세 바퀴 돌며 부처께 공양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바라문은 이에 부처의 신령함이 큼을 알고 곧 집을 버리고 도에 들어갔다. 전하기를, 근래에 있었던 일이라 한다.
10아흔여덟 승가람
繞祇洹精舍有九十八僧伽藍,盡有僧住處,唯一處空。
기원정사를 둘러 승가람이 아흔여덟 있는데 다 승려가 머물고, 오직 한 곳만 비어 있다.
11아흔여섯 갈래 외도
此中國有九十六種外道,皆知今世、後世,各有徒衆。亦皆乞食,但不持鉢。亦復求福,於曠路側立福德舍,屋宇、床卧、飲食,供給行路人及出家人、來去客,但所期異耳。調達亦有衆在,供養過去三佛,唯不供養釋迦文佛。
이 중국 땅에는 아흔여섯 갈래 외도가 있어 모두 이승과 저승을 안다고 하며 저마다 따르는 무리가 있다. 그들도 걸식하되 발우를 들지 않을 뿐이다. 또한 복을 구하여 큰길가에 복덕사(福德舍)를 세우고 집과 침상과 음식을 길 가는 사람과 출가한 사람과 오가는 나그네에게 대어 주니, 다만 바라는 바가 다를 뿐이다. 조달의 무리도 아직 남아 있어 과거 삼불에게는 공양하되 오직 석가문불에게만은 공양하지 않는다.
12유리왕을 막아선 자리
舍衛城東南四里,瑠璃王欲伐舍夷國,世尊當道側立,立處起塔。
사위성 동남쪽 사 리는, 유리왕이 사이국을 치러 갈 때 세존이 길가에 막아섰던 곳이니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
13가섭불의 고향
城西五十里,到一邑,名都維,是迦葉佛本生處。父子相見處、般泥洹處,皆悉起塔。迦葉如來全身舍利亦起大塔。
성 서쪽 오십 리를 가면 도위라는 고을에 이르니 가섭불이 태어난 곳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 곳, 열반한 곳에 다 탑을 세웠다. 가섭 여래의 전신사리에도 큰 탑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