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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고향 가유라위

불국기 佛國記 · 법현(法顯) · 동진 의희 연간(416년 무렵) · 단락 10 · 한자 773자 · 낭독 3.1분

「불국기」 한 권 「부처의 고향 가유라위」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예순다섯의 승려 법현이 계율을 구하러 장안을 떠나 사막과 총령을 넘어 천축까지 갔다가, 사자국을 거쳐 바닷길로 돌아온 십오 년의 기록. 다녀온 나라가 서른.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던 시대에, 동아시아 사람이 인도를 제 눈으로 보고 남긴 가장 이른 기행문이다.

1구루진불의 고향

從舍衛城東南行十二由延,到一邑,名那毗伽,是拘樓秦佛所生處。父子相見處、般泥洹處,亦有僧伽藍,起塔。

사위성에서 동남쪽으로 십이 유연을 가면 나비가라는 고을에 이르니, 구루진불이 태어난 곳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 곳과 열반한 곳에도 승가람이 있고 탑을 세웠다.

2구나함모니불의 고향

從此北行,減一由延,到一邑,是拘那含牟尼佛所生處。父子相見處、般泥洹處,亦皆起塔。

여기서 북쪽으로 일 유연이 채 못 되게 가면 한 고을에 이르니, 구나함모니불이 태어난 곳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 곳과 열반한 곳에도 다 탑을 세웠다.

3가유라위성 — 텅 빈 부처의 고향

從此東行,減一由延,到迦維羅衛城。城中都無王民,甚如坵荒,只有衆僧、民戶數十家而已。白淨王故宮處,作太子母形像,及太子乘白象入母胎時。太子出城東門,見病人迴車還處。皆起塔。阿夷相太子處。與難陀等撲象、捔、射處,箭東南去三十里入地,今泉水出,後世人治作井,令行人飲之。佛得道,還見父王處。五百釋子出家,向優波離作禮,地六種震動處。佛爲諸天說法,四天王守四門,父王不得入處。佛在尼拘律樹下,東向坐,大愛道布施佛僧伽梨處,此樹猶在。瑠璃王殺釋種子,釋種子先盡得須陀洹,立塔,今亦在。城東北數里有王田,太子坐樹下觀耕者處。

여기서 동쪽으로 일 유연이 채 못 되게 가면 가유라위성에 이른다. 성안에는 왕도 백성도 없어 몹시 황폐한 언덕 같으니, 다만 승려들과 민가 수십 호가 있을 뿐이다. 백정왕의 옛 궁전 자리에는 태자의 어머니 형상을 만들었으니, 태자가 흰 코끼리를 타고 어머니 태에 들던 모습이다. 태자가 성 동문을 나서 병든 사람을 보고 수레를 돌려 되돌아온 곳에도 다 탑을 세웠다. 아이(阿夷)가 태자의 상을 본 곳도 있다. 난타 들과 코끼리를 메치고 힘을 겨루고 활을 쏜 곳이 있으니, 화살이 동남쪽으로 삼십 리를 날아가 땅에 박혔는데 지금 샘물이 솟아, 뒷사람이 우물로 다듬어 길 가는 이들이 마시게 하였다. 부처가 도를 얻고 돌아와 부왕을 뵌 곳, 오백 석가 종족 아들이 출가하여 우바리에게 예배하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한 곳, 부처가 여러 천인을 위해 설법할 때 사천왕이 네 문을 지켜 부왕도 들어가지 못한 곳, 부처가 니구율나무 아래 동향으로 앉고 대애도가 승가리를 보시한 곳 — 그 나무는 아직 있다 — 유리왕이 석가 종족을 죽인 곳 — 그들은 죽기 전에 모두 수다원을 얻었다 — 에 탑을 세웠으니 지금도 있다. 성 동북쪽 몇 리에 왕의 밭이 있으니, 태자가 나무 아래 앉아 밭 가는 사람을 바라보던 곳이다.

4논민원 — 태자가 태어난 동산

城東五十里有王園,園名論民。夫人入池洗浴,出池北岸二十步,舉手攀樹枝,東向生太子。太子墮地行七步,二龍王浴太子身,浴處遂作井。及上洗浴池,今衆僧常取飲之。

성 동쪽 오십 리에 왕의 동산이 있으니 동산 이름이 논민(論民)이다. 부인이 못에 들어가 몸을 씻고 못 북쪽 언덕으로 나와 스무 걸음을 걷고서, 손을 들어 나뭇가지를 잡고 동쪽을 향해 태자를 낳았다. 태자는 땅에 떨어져 일곱 걸음을 걸었고, 두 용왕이 태자의 몸을 씻겼는데 씻긴 자리는 마침내 우물이 되었다. 위의 목욕하던 못과 아울러, 지금 승려들이 늘 그 물을 길어 마신다.

5네 곳은 늘 정해져 있다

凡諸佛有四處常定:一者成道處;二者轉法輪處;三者說法論議伏外道處;四者上忉利天爲母說法來下處。餘者則隨時示現焉。

무릇 모든 부처에게는 늘 정해진 곳이 넷 있다. 하나는 도를 이루는 곳이요, 둘은 법륜을 굴리는 곳이요, 셋은 설법하고 논의하여 외도를 굴복시키는 곳이요, 넷은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고 내려오는 곳이다. 그 밖에는 때에 따라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6흰 코끼리와 사자를 두려워하는 길

迦維羅衛國大空荒,人民希疏。道路怖畏白象、師子,不可妄行。

가유라위국은 크게 비고 황폐하여 백성이 드물다. 길에는 흰 코끼리와 사자가 두려우니 함부로 다닐 수 없다.

7남막탑 — 용이 지키는 탑

從佛生處東行五由延,有國名藍莫。此國王得佛一分舍利,還歸起塔,即名藍莫塔。塔邊有池,池中有龍,常守護此塔,晝夜供養。阿育王出世,欲破八塔作八萬四千塔,破七塔已,次欲破此塔,龍便現身,持阿育王入其宮中,觀諸供養具已,語王言:「汝供若能勝是,便可壞之持去,吾不與汝爭。」阿育王知其供養具非世之有,於是便還。

부처가 태어난 곳에서 동쪽으로 오 유연을 가면 남막이라는 나라가 있다. 이 나라 왕이 부처의 사리 한 몫을 얻어 돌아와 탑을 세우니 곧 남막탑이라 이름하였다. 탑 곁에 못이 있고 못 안에 용이 있어 늘 이 탑을 지키며 밤낮으로 공양한다. 아육왕이 세상에 나와 여덟 탑을 헐어 팔만사천 탑을 만들고자 일곱 탑을 헌 뒤 다음으로 이 탑을 헐려 하니, 용이 곧 몸을 나타내어 아육왕을 제 궁으로 데려가 공양거리들을 보여 주고 왕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공양이 이보다 나을 수 있거든 헐어 가져가라. 내 그대와 다투지 않으리라.」 아육왕은 그 공양거리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이에 돌아갔다.

8코끼리가 비질하는 탑, 사미가 절 주인이 된 사연

此中荒蕪,無人灑掃。常有羣象以鼻取水灑地,取雜華香而供養塔。諸國有道人來,欲禮拜塔,遇象大怖,依樹自翳,見象如法供養。道人大自悲感:此中無有僧伽藍可供養此塔,乃令象灑掃。道人即捨大戒,還作沙彌,自挽草木,平治處所,使得淨潔,勸化國王作僧住處,己爲寺主。今現有僧住。此事在近。自爾相承至今,恒以沙彌爲寺主。

이곳은 거칠고 묵어 물 뿌리고 쓸 사람이 없는데, 늘 코끼리 떼가 코로 물을 길어 땅에 뿌리고 온갖 꽃과 향을 가져다 탑에 공양한다. 여러 나라에서 도인이 와서 탑에 예배하려다 코끼리를 만나 크게 두려워 나무에 몸을 숨겼는데, 코끼리가 법답게 공양하는 것을 보았다. 도인은 크게 슬퍼져 감격하였다 — 이곳에 승가람이 없어 이 탑을 공양하지 못하기에 코끼리로 하여금 물 뿌리고 쓸게 하는구나. 도인은 곧 대계(大戒)를 버리고 도로 사미가 되어, 몸소 풀과 나무를 뽑고 자리를 골라 깨끗하게 만들고, 국왕을 권화하여 승려 머물 곳을 짓게 하고 스스로 절 주인이 되었다. 지금도 승려가 머문다. 이 일은 근래의 일이니, 그로부터 이어져 지금까지 늘 사미를 절 주인으로 삼는다.

9차닉과 백마가 돌아간 곳

從此東行三由延,太子遣車匿、白馬還處,亦起塔。

여기서 동쪽으로 삼 유연을 가면 태자가 차닉과 흰 말을 돌려보낸 곳이니, 여기에도 탑을 세웠다.

10탄탑

從此東行四由延,到炭塔,亦有僧伽藍。

여기서 동쪽으로 사 유연을 가면 탄탑(炭塔)에 이르니, 여기에도 승가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