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불국기 › 한 권

열반의 땅 구이나갈

불국기 佛國記 · 법현(法顯) · 동진 의희 연간(416년 무렵) · 단락 7 · 한자 850자 · 낭독 3.4분

「불국기」 한 권 「열반의 땅 구이나갈」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예순다섯의 승려 법현이 계율을 구하러 장안을 떠나 사막과 총령을 넘어 천축까지 갔다가, 사자국을 거쳐 바닷길로 돌아온 십오 년의 기록. 다녀온 나라가 서른.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던 시대에, 동아시아 사람이 인도를 제 눈으로 보고 남긴 가장 이른 기행문이다.

1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들다

復東行十二由延,到拘夷那竭城。城北雙樹間希連河邊,世尊於此北首而般泥洹。及須跋最後得道處,以金棺供養世尊七日處,金剛力士放金杵處,八王分舍利處。此諸處皆起塔,有僧伽藍,今悉現在。

다시 동쪽으로 십이 유연을 가서 구이나갈성에 이르렀다. 성 북쪽 쌍수 사이 희련하 가에서 세존은 머리를 북쪽에 두고 열반하셨다. 수발이 맨 마지막으로 도를 얻은 곳, 금관에 모신 세존께 이레 동안 공양한 곳, 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내려놓은 곳, 여덟 왕이 사리를 나눈 곳 — 이 여러 곳에 다 탑을 세우고 승가람도 있으니 지금 다 남아 있다.

2구이나갈성

其城中人民亦希曠,止有衆僧民戶。

그 성안도 백성이 드물어, 승려들과 민가가 있을 뿐이다.

3이차 사람들을 돌려보낸 곳

從此東南行十二由延,到諸梨車欲逐佛般泥洹處。而佛不聽,戀佛不肯去。佛化作大深壍,不得渡。佛與鉢作信遣還。其家處立石柱,上有銘題。

여기서 동남쪽으로 십이 유연을 가면, 여러 이차(梨車) 사람들이 열반하러 가시는 부처를 따라가려 한 곳에 이른다. 부처가 허락하지 않아도 부처를 사모하여 떠나려 하지 않으니, 부처는 크고 깊은 구덩이를 화작하여 건너지 못하게 하고, 발우를 주어 믿음의 표로 삼아 돌려보냈다. 그 자리에 돌기둥을 세웠는데 위에 새긴 글이 있다.

4비사리 — 최후를 돌아본 자리

自此東行十由延,到毗舍離國。毗舍離城北,大林重閣精舍,佛住處,及阿難半身塔。其城裏本菴婆羅女家,爲佛起塔,今故現在。城南三里,道西,菴婆羅女以園施佛,作佛住處。佛將般泥洹,與諸弟子出毗舍離城西門,迴身右轉,顧看毗舍離城,告諸弟子:「是吾最後所行處。」後人於此處起塔。

여기서 동쪽으로 십 유연을 가서 비사리국에 이르렀다. 비사리성 북쪽 대림(大林)의 중각 정사는 부처가 머물던 곳인데, 아난의 반신탑도 있다. 그 성안 본래 암바라 여인의 집터에는 부처를 위해 탑을 세웠는데 지금도 그대로 있다. 성 남쪽 삼 리 길 서쪽에는 암바라 여인이 동산을 부처께 바쳐 부처 머물 곳으로 삼은 데가 있다. 부처가 열반하러 가실 때 제자들과 비사리성 서문을 나서서,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비사리성을 돌아보며 제자들에게 「여기가 내가 마지막으로 지나는 곳이다」 하셨다. 뒷사람이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

5방궁장탑 — 천 아들이 활을 내려놓다

城西北三里,有塔,名放弓仗。以名此者,恒水上流有一國王,王小夫人生一肉胎,大夫人妬之,言:「汝生不祥之徵。」即盛以木函,擲恒水中。下流有國王遊觀,見水上木函,開看,見千小兒,端正殊特,王即取養之。遂便長大,甚勇健,所往征伐,無不摧伏。次伐父王本國,王大愁憂。小夫人問王:「何故愁憂?」王曰︰「彼國王有千子,勇健無比,欲來伐吾國,是以愁耳。」小夫人言︰「王勿愁憂!但於城東作高樓,賊來時,置我樓上,則我能却之。」王如其言。至賊來時,小夫人於樓上語賊言:「汝是我子,何故作反逆事?」賊曰:「汝是何人,云是我母?」小夫人曰︰「汝等若不信者,盡仰向張口。」小夫人即以兩手構兩乳,乳各作五百道,墮千子口中。賊知是其母,即放弓仗。二父王於是思惟,皆得辟支佛。二辟支佛塔猶在。後世尊成道,告諸弟子:「是吾昔時放弓仗處。」後人得知,於此立塔,故以名焉。千小兒者,即賢劫千佛是也。佛於放弓仗塔邊告阿難言:「我却後三月,當般泥洹。」魔王嬈固阿難,使不得請佛住世。

성 서북쪽 삼 리에 탑이 있으니 이름이 방궁장(放弓仗), 곧 활과 병장기를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름한 까닭은 이러하다. 항수 상류에 한 나라 왕이 있었는데, 왕의 작은 부인이 살덩이 하나를 낳으니 큰 부인이 시샘하여 「너는 상서롭지 못한 조짐을 낳았다」 하고, 곧 나무 함에 담아 항수에 던졌다. 하류에서 한 나라 왕이 유람하다가 물 위의 나무 함을 보고 열어 보니 작은 아이 천 명이 들어 있는데 단정하고 뛰어났다. 왕이 곧 거두어 길렀더니 자라나 몹시 용맹하고 굳세어, 치러 가는 곳마다 꺾어 굴복시키지 못하는 데가 없었다. 다음으로 아버지 왕의 본국을 치려 하니 왕이 크게 근심하였다. 작은 부인이 왕에게 근심하는 까닭을 물으니 왕이 말하였다. 「저 나라 왕에게 아들 천이 있는데 용맹하기 짝이 없고, 우리나라를 치러 온다 하니 그래서 근심하오.」 작은 부인이 말하였다. 「근심하지 마소서. 다만 성 동쪽에 높은 누각을 지으시고, 적이 올 때 저를 누각 위에 두시면 제가 물리치겠습니다.」 왕이 그 말대로 하였다. 적이 이르자 작은 부인이 누각 위에서 적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내 아들인데, 어찌하여 배반하는 짓을 하느냐?」 적이 말하였다. 「너는 누구인데 우리 어머니라 하느냐?」 작은 부인이 말하였다. 「너희가 믿지 못하겠거든 모두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라.」 작은 부인이 곧 두 손으로 양 젖가슴을 누르니 젖이 저마다 오백 줄기가 되어 천 아들의 입 속으로 떨어졌다. 적은 제 어머니임을 알고 곧 활과 병장기를 내려놓았다. 두 아버지 왕은 이 일을 깊이 생각하다가 모두 벽지불을 얻으니, 두 벽지불의 탑이 아직 있다. 뒤에 세존이 도를 이루고 제자들에게 「여기가 내가 옛날 활과 병장기를 내려놓은 곳이다」 하셨다. 뒷사람이 이를 알고 이 자리에 탑을 세웠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천 명의 작은 아이란 곧 현겁의 천불이다. 부처는 방궁장탑 곁에서 아난에게 「내가 석 달 뒤에 열반하리라」 하셨는데, 마왕이 아난을 홀려 아난이 부처께 세상에 더 머무시기를 청하지 못하게 하였다.

6칠백 결집의 탑

從此東行三四里,有塔。佛般泥洹後百年,有毗舍離比丘錯行戒律,十事證言佛說如是。爾時諸羅漢及持律比丘凡有七百僧,更檢校律藏。後人於此處起塔,今亦現在。

여기서 동쪽으로 삼사 리에 탑이 있다. 부처가 열반하신 지 백 년에 비사리의 비구들이 계율을 그릇 행하며 열 가지 일을 두고 부처가 그리 말씀하셨다고 우겼다. 그때 여러 나한과 계율을 지키는 비구 모두 칠백 승려가 율장을 다시 검교하였다. 뒷사람이 이곳에 탑을 세웠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7아난이 강 한가운데서 열반하다

從此東行四由延,到五河合口。阿難從摩竭國向毗舍離,欲般泥洹,諸天告阿闍世王,阿闍世王即自嚴駕,將士衆追到河上。毗舍離諸梨車聞阿難來,亦復來迎,俱到河上。阿難思惟:「前則阿闍世王致恨,還則梨車復怨。」則於河中央入火光三昧,燒身而般泥洹,分身作二分,一分在一岸邊。於是二王各得半身舍利,還歸起塔。

여기서 동쪽으로 사 유연을 가면 다섯 강이 합치는 어귀에 이른다. 아난이 마갈국에서 비사리로 건너가 열반하려 하니, 여러 천인이 아사세왕에게 알렸다. 아사세왕이 곧 수레를 갖추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강가까지 쫓아왔고, 비사리의 이차들도 아난이 온다는 말을 듣고 역시 마중 나와 함께 강가에 이르렀다. 아난은 생각하였다. 「앞으로 가면 아사세왕이 한스러워할 것이요, 물러가면 이차들이 또 원망하리라.」 이에 강 한가운데서 화광삼매에 들어 몸을 사르고 열반하니, 몸이 두 몫으로 나뉘어 한 몫씩 양쪽 언덕에 있었다. 두 왕은 저마다 반신 사리를 얻어 돌아가 탑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