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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왕의 서울 파련불읍

불국기 佛國記 · 법현(法顯) · 동진 의희 연간(416년 무렵) · 단락 7 · 한자 737자 · 낭독 2.9분

「불국기」 한 권 「아육왕의 서울 파련불읍」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예순다섯의 승려 법현이 계율을 구하러 장안을 떠나 사막과 총령을 넘어 천축까지 갔다가, 사자국을 거쳐 바닷길로 돌아온 십오 년의 기록. 다녀온 나라가 서른.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던 시대에, 동아시아 사람이 인도를 제 눈으로 보고 남긴 가장 이른 기행문이다.

1귀신이 쌓은 아육왕의 궁성

度河南下一由延,到摩竭提國巴連弗邑。巴連弗邑是阿育王所治。城中王宮殿皆使鬼神作,累石墻闕,雕文刻鏤,非世所造。今故現在。

강을 건너 남쪽으로 일 유연을 내려가 마갈제국 파련불읍에 이르렀다. 파련불읍은 아육왕이 다스리던 곳이다. 성안의 왕궁전은 모두 귀신을 부려 지은 것이라, 돌을 쌓은 담과 궐문이며 아로새긴 무늬가 세상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2성안에 산을 지어 준 왕

阿育王弟得羅漢道,常住耆闍崛山,志樂閑靜。王敬心欲請家供養。以樂山靜,不肯受請。王語弟言:「但受我請,當爲汝於城裏作山。」王乃具飲食,召諸鬼神而告之曰:「明日悉受我請,無座席,各自賷來。」明日諸大鬼神各持大石來,辟方四五步,坐訖,即使鬼神累作大石山。又於山底以五大方石作一石室,可長三丈,廣二丈,高丈餘。

아육왕의 아우가 나한의 도를 얻어 늘 기사굴산에 머물며 고요함을 즐겼다. 왕이 공경하는 마음에 집으로 청해 공양하고자 하였으나, 산의 고요함이 좋아 청을 받지 않았다. 왕이 아우에게 「청만 받아 주면 성안에 그대를 위해 산을 만들어 주리라」 하고, 이에 음식을 갖추고 귀신들을 불러 말하였다. 「내일 모두 내 청을 받으라. 자리가 없으니 저마다 제 것을 가지고 오라.」 이튿날 큰 귀신들이 저마다 큰 돌을 지고 오니 네댓 걸음 너비였다. 자리를 파한 뒤 곧 귀신들을 시켜 그 돌을 쌓아 큰 돌산을 만들고, 또 산 밑에는 큰 네모 돌 다섯으로 석실을 만드니 길이 세 길, 너비 두 길, 높이 한 길 남짓이었다.

3라옥사바미 바라문

有一大乘婆羅門子,名羅沃私婆迷,住此城裏,爽悟多智,事無不達,以清淨自居。國王宗敬師事,若往問訊,不敢並坐。王設以愛敬心執手,執手已,婆羅門輒自灌洗。年可五十餘,舉國瞻仰。賴此一人,弘宣佛法,外道不能得加陵衆僧。

라옥사바미라는 대승 바라문의 아들이 이 성안에 사는데, 밝게 깨치고 지혜가 많아 통달하지 못한 일이 없으며 청정하게 스스로를 지녔다. 국왕이 그를 높여 스승으로 섬기니, 찾아가 문안할 때 감히 나란히 앉지 못하였다. 왕이 아끼고 공경하는 마음에 그 손을 잡기라도 하면, 바라문은 손을 잡힌 뒤 번번이 스스로 물을 부어 씻었다. 나이 쉰 남짓으로 온 나라가 우러러보았다. 이 한 사람 덕분에 불법이 널리 펴져 외도가 승려들을 능멸하지 못하였다.

4마하연 승가람

於阿育王塔邊,造摩訶衍僧伽藍,甚嚴麗。亦有小乘寺,都合六七百僧衆。威儀庠序可觀。四方高德沙門及學問人,欲求義理,皆詣此寺。婆羅門子師亦名文殊師利,國內大德沙門、諸大乘比丘,皆宗仰焉,亦住此僧伽藍。

아육왕탑 곁에 마하연 승가람을 지으니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다. 소승 절도 있어 합하여 육칠백 승려가 사는데 위의가 반듯하여 볼 만하다. 사방의 덕 높은 사문과 배움을 묻는 이들이 뜻과 이치를 구하고자 하면 다 이 절로 모여든다. 바라문의 아들인 스승은 이름을 또한 문수사리라 하는데, 나라 안의 큰스님들과 대승 비구들이 모두 그를 우러르며, 그도 이 승가람에 머문다.

5염부제 제일의 성읍 — 행상과 무료 의원

凡諸中國,唯此國城邑爲大。民人富盛,競行仁義。年年常以建卯月八日行像。作四輪車,縛竹作五層,有承櫨、揠戟,高二疋許,其狀如塔。以白㲲纏上,然後彩畫,作諸天形像。以金、銀、琉璃莊校其上,懸繒幡蓋。四邊作龕,皆有坐佛,菩薩立侍。可有二十車,車車莊嚴各異。當此日,境內道俗皆集,作倡伎樂,華香供養。婆羅門子來請佛,佛次第入城,入城內再宿。通夜然燈,伎樂供養。國國皆爾。其國長者、居士各於城內立福德醫藥舍,凡國中貧窮、孤獨、殘跛、一切病人,皆詣此舍,種種供給。毉師看病隨宜,飲食及湯藥皆令得安,差者自去。

무릇 중국의 여러 나라 가운데 오직 이 나라의 성읍이 가장 크다. 백성은 부유하고 다투어 어짊과 의로움을 행한다. 해마다 건묘월 초여드레에 행상을 하는데, 네 바퀴 수레를 만들어 대나무를 엮어 다섯 층을 세우고 받침대와 창 기둥을 얹으니 높이가 두 길 남짓으로 그 모양이 탑 같다. 흰 무명을 그 위에 두르고 채색으로 그림을 그려 여러 천인의 형상을 만들고, 금과 은과 유리로 그 위를 꾸미고 비단 번과 일산을 매단다. 네 면에 감실을 만들어 다 앉은 부처가 있고 보살이 서서 모신다. 수레가 스무 대쯤 되는데 수레마다 꾸밈이 저마다 다르다. 이날이 되면 나라 안의 도인과 속인이 다 모여 노래와 풍악을 벌이고 꽃과 향으로 공양한다. 바라문들이 와서 부처를 청하면 부처가 차례로 성에 들어와 성안에서 이틀 밤을 묵는데, 밤새 등을 켜고 풍악으로 공양한다. 나라마다 다 이렇게 한다. 그 나라의 장자와 거사들은 저마다 성안에 복덕의약사(福德醫藥舍)를 세워, 나라 안의 가난한 이·외로운 이·불구자·온갖 병자가 다 이 집에 오면 갖가지로 돌봐 주고, 의원이 병을 보아 마땅한 대로 음식과 탕약을 주어 다 편안하게 하며, 나으면 스스로 떠나간다.

6아육왕의 첫 큰 탑

阿育王壞七塔,作八萬四千塔。最初所作大塔在城南三里餘。此塔前有佛脚跡,起精舍,戶北向塔。塔南有一石柱,圍丈四、五高,三丈餘。上有銘題,云︰「阿育王以閻浮提布施四方僧,還以錢贖,如是三反。」

아육왕은 일곱 탑을 헐어 팔만사천 탑을 만들었다. 맨 처음 만든 큰 탑은 성 남쪽 삼 리 남짓한 곳에 있다. 이 탑 앞에는 부처의 발자국이 있어 정사를 세웠는데 문이 북쪽으로 탑을 향한다. 탑 남쪽에 돌기둥 하나가 있으니 둘레가 한 길 네댓 자에 높이 세 길 남짓이다. 위에 새긴 글이 있으니 「아육왕이 염부제를 사방 승단에 보시하고 다시 돈으로 무르기를 이렇게 세 번 하였다」라 하였다.

7니리성의 돌기둥

塔北三四百步,阿育王本於此作泥梨城。中央有石柱,亦高三丈餘,上有師子。柱上有銘,記作泥梨城因緣及年數、日月。

탑 북쪽 삼사백 걸음은 아육왕이 본래 니리성(泥梨城), 곧 지옥성을 만들었던 곳이다. 한가운데 돌기둥이 있는데 역시 높이 세 길 남짓으로 위에 사자가 있다. 기둥에 새긴 글이 있으니, 니리성을 만든 인연과 햇수와 날짜를 적은 것이다.